오늘의 뜬금포 - 인터페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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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뜬금포 - 인터페이스
  • 2019-02-08 jj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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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에서 SF드라마를 보다가 때려치곤 한다. 한두 회 보면 딱 감이 오는데 서너 회 보면 감이 온 바로 그대로 이야기가 진행돼서 재미가 없다. 무려 조지 R.R. 마틴이 원작인 나이트플라이어 역시 서너 회 보고 나서 쉬고 있는 중이다. 아무래도 내가 이쪽 분야를 너무 파댄것 아닌가 하는 느낌적인 느낌이다. 암튼 생각난 김에 이쪽 분야 썰이나 풀어둔다. SF 속에서는 종종 한 사람의 인격 전체가 컴퓨터 또는 네트워크로 업로드된 설정을 다룬다. 전자기기 속에 담긴 인격도 인격인가 아니면 프로그램인가라는 질문은 이제 SF 속에서만큼은 이미 진부해져가는 클리셰가 되었다.

이런 이야기라면 먼저 떠오르는 게 캡틴 하록 시리즈가 있다. 하록의 기함 아르카디아는 제작자 스스로가 메인컴퓨터에 업로드 되어 있다. 시스템과 결합한 인격체라는 설정에 굉장히 충실하다. 취향이 좀 많이 마초 아재라 "오토코"스러움에 목숨을 건다. 음악은 왠지 클래식을 좋아하는데 애니메 제작비용이라는 어른의 사정이 원인일 것이다.

은하철도999의 기계인간은 사이보그의 최종형으로 뇌마저 기계로 대체한 경우다. 모든 부품이 교체 가능하므로 "거의" 불사의 존재가 된다. 엄청난 비용을 감당할 수만 있다면. 이른바 "전뇌화"의 원조라 할 만 하다. 인격의 업로드에는 어쩐지 오류가 있는 듯 한데 하나 같이 몹시 이기적이고 비인간적이다. 아니다, 그 정도 돈을 긁어 모으려면 다른 사람을 쥐어짜는 건 기본 탑재된 성격이겠구나. 한국에도 전뇌화를 시도하고 있는 지 불사의 경지에 이른 분이 최소 한 명은 있는 듯한데.... 넘어가자.

또 다른 고전 만화/애니 총몽에서는 뇌 전체를 CPU로 대체한다는 설정이 있다. 분명 멀티 코어이긴 할 텐데 몇 개의 코어로 된 건지 자세한 설명은 안나온다. 공중 도시 자렘의 시민은 일정 나이가 되면 뇌를 칩으로 대체한다는 설정이다. 왜때문에 인지는 몰라도 육체는 그냥 놔둔다. 반면에 뇌만 살리고 나머지는 몽땅 기계로 대체하는 경우도 등장한다. 주인공이 대표적인 경우. 이렇게 하여 총몽은 인간-기계 혼합체의 종류가 조합 가능한 행렬, 그러니까 '매트릭스'를 이루는 세계관을 만들어낸다. 두뇌가 칩인 경우와 생체인 경우, 그리고 육체의 전부 또는 일부가 기계인 경우와 생체인 경우가 어느 쪽이든 조합 가능한 것이다. 고철도시 빈민들은 부품 교체할 돈이 없어서 여차하면 다른 '사람'의 '부품'을 강탈한다. 강탈 당하거나. 최근 개봉된 알리타는 물론 이런 복잡한 세계관은 그냥 건너뛰지만, 그 속에서도 얼굴에 목숨거는 사이보그가 하나 등장한다. 나머진 몽땅 기계라도 일단 "사람"은 잘생기고 봐야 하는 것이다. 이 얼마나 인간적인지...

공각기동대:고스트 인 더 셀에서는 의체화와 전뇌화를 구분한다. 의체화된 신체는 뇌를 블랙박스형 생존장치에 안착되어 그 자체로 교체가능한 부품이 되고 나머지 신체는 기계화되어 뇌와 연결된다. 뇌와 몸은 케이블을 통한 인터페이스로 연결된다는 설정이다. 한편 전뇌화는 인격 자체를 전산장치로 업로드하는 경우다. '소좌' 쿠사나기(草薙 - 풀 베듯 싹쓸어 버린다는 뜻이다. ㅎㄷㄷ) 모토코는 의체화로 시작하여 의도치 않게 전뇌화를 선택한다. 인격의 전산화 업로드를 닫힌 시스템인 "퍼스널" 시스템에만 할 이유는 없다. 소좌의 인격은 네트워크로 업로드 된다. "네트는 광대하니까." 그 결과 네트워크는 "다중인격"이 된다. 공각기동대가 영화로 만들어진 1995년엔 소셜미디어니 크라우딩이니 하는 개념이 그닥 없었는데도 이런 설정이 가능했다. 다시 한 번 ㅎㄷㄷ. 공각기동대에서는 인격의 다운로드도 가능한데, 인형사라고 불리는 인격체(이자 인공지능)이 어먼 사람의 인격을 덮어쓰기 한 설정은 정말 압권이었다.

메트릭스 시리즈의 경우를 보자. 메트릭스 안에서는 네오와 같은 인격체인지 아니면 스미스와 같은 프로그램인지 구분할 방법도 없고 구분자체가 무의미하다. 물론 프로그램쪽이 훨씬 강력한 능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그 역시 메트릭스의 "물리 엔진"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러니까 이쯤 되면 스페이스 오딧세이의 HAL이나 켑틴 하록의 아르카디아호에 업로드된 토치로나 동일한 인터페이스 안에서는 동등한 인격체가 된다는 소리다. 메트릭스에서 인터페이스는 이중 구조를 지닌다. 메트릭스 내에서 다른 객체들과 상호 작용할 수 있는 메트릭스 자체(또는 그것의 물리엔진)이 있고, 실체인 인간의 육체가 건전지로 쓰이면서 메트릭스와 묶이는 케이블이 있다. 빨간약을 먹으면 이 커넥션이 풀린다. 먹지말자 그거 위험하다.

하나의 인터페이스 안에서 인간과 구분될 수 없으면 인간과 동등한 지능이라고 판단하는 것이 "튜링 테스트"의 핵심이다. "중국어 방" 문제는 튜링 테스트가 프로세스를 블랙박스로 취급하여 결과만을 평가할 뿐이라고 비판하지만, 이 조차도 공통의 인터페이스가 정보를 매개한다는 전제가 있다. 문제는 과연 인간의 지능이란 것이 단일한 또는 분명히 구별될 수 있는 몇 개의 인터페이스만으로 온전히 전달될 수 있느냐는 것이다.

클리셰가 되어 버린 SF 세계관 속이나 지능의 업로드를 꿈꾸는 진지한 과학자들의 희망과 달리 지능과 연결될 인터페이스의 모습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무엇보다 지능의 특성화 Characterization가 문제다. 한 때 인간의 지능은 매우 협소한 작용에 대해서만 측정되고 지수화 되었다. 지능지수 그러니까 IQ가 대표적인데, 그 정의의 허접함은 잠시 뒤로 하더라도 측정하고자 하는 대상 역시 매우 제한적일 뿐이다. IQ 테스트는 거의 대부분 시각적 이미지의 변별 속도만을 측정한다. 요즘도 IQ 지수를 신뢰할 만한 지능 척도로 여기는 분들이 있긴 하던데, 그거 별로 도움 안됩니다...

오늘날 "인공지능"이라고 불리는 기술은 사실 "지능"과 별다른 관련이 없다. IBM의 왓슨이나 구글의 알파고는 지능을 "자체 판단으로 결과물을 제출하는 알고리즘" 쯤으로 '재정의'하였다. 판단이 물론 지능의 큰 특징이고 두 인공지능의 결과물이 놀랍긴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지능의 범주가 IQ 만큼이나 협소하다. 반면에 인터페이스 쪽은 많은 진전이 있어 보인다. 생각만으로 근육을 통제하여 움직이는 의수가 실험단계에 있고, 이미지와 뇌의 작용 관계에 대한 분석도 시작되었다. 조만간 이미지 이외의 다른 감각과 운동 인터페이스도 발전될 것이다. 이쯤되면 기계인간까지는 아니더라도 사이보그화는 분명 실용성이 있는 단계까지 진입하려나 싶다. 아무튼, 인터페이스는 결국 둘 이상의 객체 사이에 존재하는 것이다. 매일 아침 나는 자동차에 올라 자동차가 갖고 있는 각종 인터페이스를 통해 차를 몰고 출근한다. 헨들을 돌리고 엑셀을 밟고 브레이크를 밟고 기타 등등 기타 등등. 깜박이 켜는 것도 잊지 말자. 각설.

영어의 INTER- 는 참 멋진 말이다. internet, international, interstellar... 이게 한국어로 옮기면 참 맛이 안나긴 한다. interface는 표면 특히 얼굴을 마주한 사이를 뜻한다. 이게 사실 표면 속 내부야 알게 뭐냐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어서 더 오묘하다. 자동차가 실제 어떻게 작동되는 지 알바 아니고 잘 달리고 잘 서면 되는 것이다. 그런면에서 “중국인의 방” 식 비판은 한편으로 과도하게 인간 중심적이기도 하다. 기계가 꼭 인간과 같은 프로세스를 거치는 지능을 가져서 어디다 쓰겠나. 커버 이미지는 총몽의 한 장면. 인터페이스란게 사람 사이에도 있지 싶다. 횡설수설 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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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참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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