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jw - 풀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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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 ]

풀하우스
  • 저자: Jjw
  • 2018-01-26

오늘 헌 책방에서 동생이 사준 풀하우스는 굴드의 글들 가운데서도 가장 공격적인 글 가운데 하나다. 예전에 참 재미있게 읽었는데 도무지 어디로 갔는 지 행방이 묘연해지고 말았다. 헌 책방에서 다시 보니 너무 반가워서 동생에게 낼름 사달라고 했다. 동생 고마워~.

굴드의 요지는 이런 거다. 진화를 이야기할 때 생물학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생물학 전공자들도 편견에 사로 잡혀 있는 경우가 너무도 많은 데, 특히 진화의 역사를 마치 인간의 출현을 위해 마련된 것으로 오해한다는 것이다. 인간을 생명의 최고 형태로 근거 없이 전제하고 다른 모든 생물의 진화와 멸종을 여기까지 오기 위한 과정으로서 '해석'하려 든다는 것이다.

굴드는 이 지점에서 단호하다. 그런 거 없다. 인간 역시 다른 모든 생물과 마찬가지로 환경이 주는 진화 압력에 어찌 어찌 적응하다 보니 나온 수 많은 생물 다양성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인간이 지구의 주인이라고 누가 정해줬는데? 인간을 묻생명들의 왕으로 선포하는 건, 그렇게 말하는 자 역시 인간이기 때문에 오는 편견일 뿐이다.

이러한 주장을 위해 굴드는 몇 가지 주장을 펼친다. 우선 진화란 건 진보가 아니라는 주장이다. 환경의 압력에 따라 생존에 필요하다면 생물은 얼마든지 퇴보할 수도 있다. 사막의 식물들이며, 기생충이며 같은 경우엔 친족들이 갖고 있는 복잡한 기관들이 오히려 생존에 방해가 된다. 그래서 이들은 적응에 불리한 기관들을 "퇴화" 시켰다. 그 이유는 분명치 않치만, 인간 역시 많은 기관들을 퇴화시켰다. 당장에 우리는 털도 별로 없고 꼬리도 없다.

그 다음엔 대표성의 문제를 거론한다. 우리는 너무나 우리 눈에 익숙한 것만으로 세상을 보려 한다. 인간을 포함한 포유류 전체가 지구 생명체의 대표로서는 자격 미달이다. 그 보다 훨씬 다양한 종들이 살고 있다. 곤충류만 해도 개체수 면에서나 다양성 면에서나 포유류를 압도한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가장 많은 다양성과 개체수를 자랑하는 생물은 단세포 생물이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이들을 무시하는 건 온당치 않다.

굴드는 우리의 이러한 편견이 인과 관계와 상관 관계를 혼동하기 때문에 생긴다고 본다. 내 나이의 증가와 휘발유 값 상승의 상관 관계는 1.0 이지만, 그렇다고 휘발유 값이 비싼 게 내 나이 탓은 아니다. 생물의 다양성 증가에서 시간이 지날 수록 더 복잡하고 큰 생명체가 나타나지만 그렇다고 진화가 그걸 목적으로 작동한다고 보면 곤란하다. 인간이건 코끼리건 수 많은 다양성을 갖는 진화의 흐름 속에 한 가지를 차지할 뿐이다.

그러면서 굴드는 왜 요즘엔 4할 타자가 없는가를 묻는다. 굴드는 양키즈의 열혈 광팬이었다. (이걸 과거형으로 써야 하다니... RIP) 굴드의 결론은 이런 거다. 투수와 타자는 일종의 공진화를 겪는다. 타자가 잘 때리려 할 수록 투수도 어떻게 하면 타자가 못치게 하도록 수 많은 기술을 개발한다. 내가 예전에 들은 농담 중에 이런 게 있다. 뛰어난 타자에게 물었다. 포크볼은 어떻게 쳐죠? 음... 포크볼은 안치는거죠.... (응?) 그 결과 더 이상 4할 타자는 구경할 수 없게 되었다. 3할 초반대면 엄청난 타자인거다.(물론, 야구 규칙이 투수에게 약간 유리하게 바뀌기도 했다.)

이게 뭔 소리냐면, 생물들 역시 타자와 투수 처럼 끊임 없이 새로운 전략으로 상대를 대한다. 진화는 코끼리에게만 일어나는 게 아니라 박테리아나 환형동물에게도 똑 같이 일어나는 거다. 오늘날 살고 있는 박테리아는 당연히 몇 십억년 전 박테리아와는 아주 다른 산전 수전 공중전 다 겪고 진화한 결과물이다. 진화는 사람만 한 게 아니란 소리다.

굴드는 단속평형설을 주장하였는데, 간단히 말하면 환경이 변화하지 않는다면 생물 역시 그렇게 진화의 압력이 세지 않기 때문에 큰 변화 없이 오랬동안 같은 모습을 유지하다가, 급격한 환경 변화가 오면 비교적 순식간에 그러니까 한 백만년 정도만에 완전히 다른 여러 종류로 분화하더라 이런 이야기다. 굴드의 단속평형설은 고생물학자들의 강력한 지지를 받는다. 화석이 가리키는 게 딱 그거니까.

그러면 급격한 변화는 어떻게 나타나는가? 여기서 우리는 생태학을 도입해야 한다. 생태적 지위란 게 있다. 학교에서 배운 거 생각해 보자. 생산자, 1차 소비자, 2차 소비자... 최종 소비자, 분해자. 이게 생태적 지위다. 생물은 이러한 지위의 하나를 차지하고 먹이사슬을 이루며 생태계를 구성한다. 엄청난 환경 변화나 또는 어떤 이유로 소수의 종 만이 환경에 던져졌다고 생각해보자. 이들은 차츰 다양한 생태적 지위를 차지하며 분화할 것이다. 굴드의 말마따나 “풀하우스”를 이룬다. 대표적으로 오스트레일리아의 유대류를 생각할 수 있다. 이들은 하나 또는 몇 안되는 공통조상에서 분화하였을 것이지만, 어떤 것은 초식 생물이 되고 어떤 것은 육식 생물이 되어 생태적 지위를 매워 나갔다. 코알라, 주머니쥐, 캥거루, 주머니두더쥐, 주머니고양이(!), 거기에 주머니늑대까지. 주머니 달린 늑대라니... 정말 신박하지 않은가? 이 신박한 동물이 사람때문에 멸종한 걸 생각하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암튼.

아니, 굳이 선택하라면 다 최종소비자가 될 거 같은데 어떤 녀석은 기꺼이 초식동물이 되어 맨날 숨고 도망가고 잡아먹히는 길을 택했을까? 이건 순전히 숫자의 문제다. 산에 호랑이만 가득하고 토끼가 없다면 몇 달을 못넘겨 호랑이들은 다 굶어 죽을 테니까. 생물은 스스로가 다른 생물의 생존 조건을 결정하는 환경이 되기도 한다. 생태적 균형이 맞지 않으면 그냥 다 같이 죽을 수 밖에. 그래서 호랑이 없는 골엔 여우라도 있어야 생태계가 유지된다. 한국 산야에 겨울마다 맷돼지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것도 자연적인 개채수 조절을 할 맹수가 전멸했기 때문이다. 이것도 암튼.

이렇게 하나의 공통조상이 급격히 다른 여러 생태적 지위를 갖는 종들로 분화하는 걸 “창시자 효과”라고 한다. 사실 이걸 맨 처음 발견한 사람은 다윈이다. 다윈은 갈라파고스 섬에서 부리가 제각각인 새들을 수집해 놓고 보니 그게 다 핀치더란 걸 알고, 아니 어떻게 핀치가 이렇게 여러 종류로 달라질 수 있지? 라는 질문을 했더랬다. 그리고 자연선택을 그 근거로 들었다. 서로 다른 먹이를 먹다보니 그 먹이를 더 잘 구할 수 있는 자손만 살아남아.. 이하 생략. 이 것 역시 창시자 효과의 하나인 것이다. 창시자 효과는 집단 사이의 공진화에 의해 강화된다.

사람들은 공진화에 대해 “붉은 여왕 가설”과 같이 상호 경쟁을 먼저 떠올리는데 그 보다 더 강력히 작용하는 압력은 경쟁 회피인 셈이다. 제한된 먹이를 놓고 서로 박터지게 경쟁하느니 아예 먹이의 종류를 바꿔서 경쟁을 회피한다. 심지어는 그 결과 육식동물이 초식동물로 완전히 바뀌기도 한다. 판다를 보자. 아직도 멀쩡히 육류를 소화시킬 수 있는 유전자가 있지만, 판다는 대나무를 먹고 산다.

간만에 옛날에 한 참 읽었던 거 생각나서 방언 터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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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참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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