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잡생각 - 녹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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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잡생각 - 녹색
  • 2021-11-02 jjw

최근 일주일 동안 아바즈 메일링 링크를 통해 툰베리의 호소문이 매일 같이 날아오고 있다. 얘기의 핵심은 화석에너지의 추가적인 개발을 중단해 달라는 것이다.

흔히 기후 위기를 이야기하지만 그 속에는 정말 많은 것들이 너무나 뒤죽 박죽 섞여 있어서 정확히 어떤 것을 어떻게 하자는 건 지 모를 때가 많다. 일단 "자연보호"나 "생태계 다양성" 문제는 "에너지 정책"과 섞어서 말하면 죽도 밥도 안된다. 미세먼지, 공해 등등도 기후 변화 문제의 본줄기에서는 좀 벗어난 곁가지다.

이걸 다 섞어서 너도 나도 "녹색"을 이야기 하니까 늘 선거용 생색내기 이상 뭐가 되는 게 없다. 그래서 이야기가 돌고 돌다 보면 개개인의 착한 소비를 강조하거나 쓰레기 재활용 같은 개인적 실천을 이야기하거나 정도에서 그치고 만다. 조금 더 나가 봐야 미세먼지를 어떻게든 줄여야 한다 정도이다.

기후 위기를 포함한 환경 문제는 결국 산업 구조 문제이다. 에너지의 개발과 사용도 그렇지만 각종 물자의 소비 역시 그렇다. 늘 문제가 되고 있는 일회용품을 생각해 보자. 스타벅스가 종이 빨대를 사용하면 문제가 해결되는가? 문제는 테이크 아웃과 일회용 소비재가 일상을 점령하고 있는 21세기 소비 시스템인데, 소비자는 종이 빨대 하나로 면죄부를 얻는다. 매장내 일회용품 사용 금지는 그 보다는 조금 더 전진한 것이지만, 여전히 넘쳐나는 온갖 즉석 소비재 속에서 그저 나름 노력하고 있다는 "착한 거짓말"에 가깝다.

현대의 소비재는 기본적으로 사치품이다. 이게 없다고 죽는다거나 당장 반드시 필요한 건 아니지만 소비를 통해 얻는 만족감을 보장한다. 이런 판매 전략은 "코카콜라 그것 뿐!"이라는 슬로건 만큼이나 오래 된 것이지만, 오늘날엔 아예 의식주에 해당하는 기초 소비재까지도 어떤 "가성비"를 보장하지 않으면 팔리지 않는다. 여윳돈이 있으면 거기에 약간의 "허영심"도 채울 수 있다.

그러니 어지간한 상품은 즉석에서 내용물을 취하고 나머지 자질구래한 포장과 용기는 아낌없이 버리는 소매품으로 판매된다. 에너지는 내용물을 만들 때만 드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쓰레기가 된 이후까지 이 모든 과정에서 에너지가 사용된다. 그러니 화석 에너지니 친환경 에너지니 하는 에너지의의 종류도 문제지만 산업 구조 전반에 어떻게 에너지가 분배 되는가 하는 에너지 분배도 당연히 문제가 된다.

즉 생산 유통 소비 폐기로 이어지는 구조 전반에서 에너지 분배를 생각하지 않으면 결국 이런 이야기가 된다. 화석 에너지가 아닌 다른 에너지로 이 산업 구조를 지탱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차라리 그냥 원전을 더 지을까? 세상은 공평하지 않고 세계 각국 역시 균등하지 않기 때문에 일괄적으로 하나의 에너지 정책을 주장하는 것은 현실성이 없다. 친환경 재생 에너지 문제를 보자. 한국은 참 이상한 에너지 정책을 쓰는데, 늘 에너지의 생산지와 소비지를 뚝 떨어트려 놓으려고 한다. 그게 석탄 화력이나 원전이라면 공해나 위험 문제 때문이라고 이해도 되는데, 아니 풍력이나 태양광은 왜 산간 오지에 짓는데? 태양광발전소 짓겠다고 숲을 미는 건 기후 위기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

한편에선 이런 불만도 있을 수 밖에 없다. 1인당 소득이 3만 달러니 5만 달러니 하는 너희 선진국이야 무슨 에너지를 어떻게 쓰는 지 신경이 쓰이겠지만, 아직 1만 달러도 요원한 개발도상국은 어쩌라는거냐? 왜 사고는 니들이 다 치고 똥은 같이 치우자고 하는데? 당장 브라질 같은 나라의 주장은 딱 이것이다.

그러니까 화석 연료 개발에 투자를 중단하라는 주장은 긴박함을 호소하는 방법일 수 있지만, 산업 구조를 보지 않으면 현실성은 없다. 생산과 소비의 문제에서 소비자 개인의 실천 만을 강조하는 것은 우선 지금까지 금욕주의를 주장해서 성공한 사례가 없다는 문제가 있고, 결국 살 것 다 사고 할 건 다 하지만 나름 환경도 생각하는 "착한 소비자"에 머무르게 한다는 문제가 있다.

이게 기후 위기에 대한 대응에 대한 태도에서도 마찬가지 상황이 있다. 모여서 지금 당장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하면 크게 동감은 하지만 흩어지면 여전히 그냥 저냥 지금처럼 살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모두가 10년 동안 같은 옷 한 벌로 버틸 수는 없지 않은가.

우리 사회에서 녹색이 잘 안먹히는 건 워낙에 성장에 대한 요구가 다른 모든 것을 압도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을 어떻게 하자는 건지 정책 방향을 놓고 설득하지 못한 측면이 크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의 감성에 호소 하느라 "하나 뿐인 지구"를 외치면, 사람들은 그래서 나도 나름 종이 빨대를 쓰고 있다고 응답하기 마련이다. 추상적이고 감성적인 호소는 현실을 그리 변화 시키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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