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낯을 한 역사, 그게 필요하다

1 개요[ | ]

민낯을 한 역사, 그게 필요하다.
  • 저자: Jjw
  • 2014-08-06

최근 위키백과에서 고조선의 건국 연도와 관련하여 이러 저러한 토론도 좀 하고, 몇 가지 뉴스를 접하기도 하며 안 그래도 뭔가 정리해야 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이런 포스팅을 보게 되었다.

늘 보던 그렇고 그런 역사적 사실을 안드로메다로 날려 버리는 뭐 그런 포스팅인데... 페친이 혹하는 걸 보니, 아무래도 정리를 한 번 하고 가야지 싶다.

우선 위 포스팅의 원판은 이런 거다.

내용인 즉, "4,500년 쯤 된 피라미드가 중국에 있다. 중국 역사보다 오래 된 거니 UFO가 와서 지은 거 맞다" 뭐 이런 내용이다. 이런 전형적인 UFO썰을 고조선에 갖다 붙이면 위에 링크한 글이 된다. 미권스의 포스팅은 적당히 각색하여 나돌아 다니던 글과 여기 저기서 가져온 사진들로 이루어져 있다. 물론 사진은 고증이 하나도 맞지 않아서 엉망이다. 진시황릉부터 집안 적석총군까지 그냥 보이는대로 붙여 넣었다.

이런 주장은 아무래도 여기가 갑이다.

미권스의 게시물은 이걸 가져다 붙인거고. 예전에 트위터 할 때 어쩌다 환빠 한 명과 엮여서 수메르가 단군조선의 번국이었다는 소리를 듣고 어이가 없어서 한 참을 싸우던 기억이 난다. 이 양반들은 발전도 없다. 왜 우리 가운데 일부는 이렇게 우리 "민족"이 전 아시아를 다 호령하였노라고 우기고 싶어 하는 것일까?

우리는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띄고 이 땅에 태어났다. – 국민교육헌장

우리의 과거를 윤색하기 시작한 것은 아무래도 일제의 식민지배가 큰 요인이다. 일본은 이른바 식민사관에 입각하여 조선사를 편찬하였고, 조선은 늘 주위의 외세에 의해 끌려다딘 "주변국"으로 내부에서는 "당쟁"만 일삼았다고 가르쳤다. 일제시대 학교를 다닌 사람들이 받은 이런 교육은 해방이라고 크게 달라지지는 않아서 우리 역사를 타율적인 것으로 인식하는 흐름이 있었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군대와 공장에서 "엽전은 별 수 없다", "조선 놈은 그저 맞아야 정신을 차린다"와 같은 경구가 실제 얻어 맞으며 터득되는 사이, 학계에서는 여전히 조선에 대해 정치적으로는 무의미한 정쟁이나 일삼았고, 경제적으로는 낙후되기 그지 없었던 그런 사회였다는 인식이 팽배하였다.

이러한 패배주의적이고 타율적인 가치관은 당연히 부정되기 마련이다. 우리의 역사를 보다 적극적으로 파악하고자 하는 활동은 여러 방면에서 시도되었다. 그 중에는 오늘날에도 다양한 성과를 올리고 있는 생활사, 문화사, 경제사와 같은 여러 분야의 연구도 있고, 정치 외교에 대해서도 기존의 타성에서 벗어나 보다 복합적인 연구 성과들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일제의 폐단을 거부한다는 것을 명분으로 오히려 일제보다 더한 왜곡을 일삼는 부류도 나오게 되었으니 이들이 자칭 "재야사학"으로 세칭 "환빠"(환단고기를 숭배하는 무리)이다.

식민지의 나락으로 떨어졌다가 분단되어 섬처럼 쪼그라든 나라의 모습이 안타까운 나머지 과거 우리는 대륙을 호령하였노라는 자부심이 커지기 시작하면 과거는 더욱 더 커지고 위대해지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민족 부흥의 역사적 사명을 몸소 실현하겠다는 의지가 충만하게 되어, 각종 "대체 역사" 또는 "대안 역사"를 탐닉하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과거에는 고조선이 연해주에서 바이칼을 거쳐 페르시아와 이라크까지 모두 지배하는 대제국이 되고, 미래에는 한국이 중국의 삼분의 일을 집어 삼킨다는 황당한 지도를 그려 놓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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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단고기를 바탕으로 한민족이 전세계 문명의 원조라고 주장하는 지도. 어? 이집트는 거기가 아닌거 같은데? 하는 사소한 문제는 무시해달라고 하는 것 같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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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SNS를 미친듯이 돌아다닌 지도. 과거를 나타낸 게 아니다. 미래를 예언하고 있다. 이 지도에서 미래의 한국 영토가 과거 일본의 최대 식민지 판도와 매우 유사하다는 것은 유심히 볼 필요가 있다. 현실에 대한 불만이 과거의 영광으로 투영되면 이렇듯 침략주의적 망상에 빠지게 된다.

그냥 재미로 하는 소리라고 보기엔 너무나 위험하다. 사실 이들의 이러한 주장은 처음이 아니다. 나치는 게르만 민족의 위대성을 설파하다가 결국 인도-유럽어족의 선조가 전 세계에 퍼져 세상의 모든 문명을 건설하였다는 뭐 그런 주장에 까지 이르게 되었다.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리 아닌가?

여기서 "환빠"들의 주장에 대한 학문적 문제점을 다시 제론하기는 귀찮다. 다만, 이들 주장의 공통점 한 가지만 지적하면 그 어디에도 이들의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제대로 된 근거는 없다는 것이다. 믿는자에게 복이 있다는 것은 종교의 몫이지 학문의 영역은 아니다. 실재로 환단고기류의 책들인 규원사화, 화랑세기, 천부경 등등은 모두 특정 종교를 중심으로 보급되었다.

이쯤에서 아까 받은 질문에 진지한 답변을 하나 해야 한다.

왜 너는 우리의 고대사에 그렇게 부정적인가?

나는 우리의 고대사에 그렇게 부정적이지 않다.(진지하니까 궁서체)

나는 대충 다음과 같은 역사관을 갖고 있다.

1. 역사는 먼저 당시의 눈으로 보아야 한다. "민족"은 근대의 개념이다. 근대 이전에 민족은 최소한 지금처럼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다. 고려와 조선의 역사 속에는 수 많은 곳에서 한반도에 이주하여 산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이웃한 중국, 여진, 몽고, 일본은 물론이고, 페르시아, 유구, 베트남 등에서도 넘어와 살았다. 당시 사람들은 이들을 어떻게 대했을까? "쌍화점"속 회회아비는 최소한 외국인이라 괄시를 받지는 않은 것 같다.

2. 제국을 부러워하지 말자. 땅덩이 크고 주변을 호령하는 패권국가, 제국. 환빠를 비롯한 모든 국수주의-신비주의적 역사관을 갖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우리의 역사에도 어느 시점에는 제국이 있었다는 것을 확신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맞다. 고조선(이 영역국가이기 보다는 이동국가였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은 잠시 논외로 하고)도, 고구려도, 백제나 신라도 어떤 면에선 제국이었는데 이들은 모두 주변의 소국을 패권으로 강압하거나 병합하면서 몸을 키웠다. 그러나 그 과정은 결코 아름답기만 했던 것은 아니란 점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큰 나라가 작은 나라를 유린할 때 어떤 일이 이어나는 지에 대해서는 예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질 것이 없으니, 미국이 이라크에 미사일을 쏟아 붇기 위해 어떤 거짓말을 했는 지 기억해 보길 바란다. 또한, 제국은 필연적으로 하나의 민족만이 주인공이 될 수 없다. 제국은 곧바로 수 많은 언어와 문화가 섞여 들어가는 용광로라는 의미이다. 로마를 보건 페르시아를 보건.. 어디를 보더라도 그렇다. 모두가 단군의 자손인 단일민족이 제국이라???? 어딘가 이상하지 않은가?

3. 역사에는 수 많은 결이 있다. 환빠류의 또 다른 특징은 역사를 왕조의 정치-군사 면에서만 판단한다는 것이다. 실재 역사 속 그 시대를 살던 사람들은 사실 그런 것 하고는 그닥 관련없는 평범한 삶을 살았다. 이 평범한 삶을 복원하고 그 곳에서 삶과 문화의 변화를 살피는 것이 더 중요한 역사의 과제이다.

4. 지역 공동의 역사가 절실히 필요하다. 한 지역에서 수 많은 나라가 세워지고 사라지며 수 많은 문화가 생겨나고 이동하고 사라진다. 이들 모두를 다 싸 잡아서 그냥 우리의 역사라고만 할 것은 정말 못된다. 고구려는 당연히 다문화 국가였다. 그 속엔 언어와 생활이 다른 여러 부류의 집단이 함께 생활하였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고조선이 어느 순간 한에 맞설 정도로 강성해 진 것은 분명하므로 고조선 역시 사정은 비슷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걸 다 싸잡아서 그냥 한민족의 역사, 또는 조선의 역사라고 눙치는 건 좀 어딘가 이상하지 않나? 최근 한일공동역사교과서 3권이 완간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다국적인 학문 교류를 통해 공동의 역사를 만들어 가는 것은 우리가 우리의 역사를 보다 깊숙히 이해하는데에도 반드시 필요하다.

끝으로 역사 속에서 문명을 굳이 가려 위대함을 부여하려던 건 제국주의자들과 사회진화론자들의 몹쓸 병폐였다. 높이 솟은 기념물만이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다.


정리 되지 않은 파편들

  • 1. UFO 드립은 서구 문명 말고는 그런 걸 지을만한 기술이 결코 존재할 수 없다는 오만이 깔려 있다. 그 옛날 이집트에서 그 어마 어마한 피라미드를 만들었을리 없잖아. 외계인이 한거야~ 뭐 이런거. 개뿔 . 인종차별주의자들.
  • 2. 민족을 혈연으로 구분하는 건 미친 짓이다. 중국, 일본, 한국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집단은 유전적으로 큰 구분이 가지 않는다.

2 같이 보기[ | ]

3 참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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