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을 걷다

1 개요[ | ]

강경을 걷다
  • 저자: Jjw
  • 2013-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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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바야흐로 휴가철. 나도 휴가를 받았으니 남쪽으로~!

강경을 걸었다. 예전에 현우랑 같이 뉘엿뉘엿 해질녘에 도착하여 걸어 본 이후 벌써 네 번째 방문이다. 사람마다 취향이 있으니 어떤 사람에겐 그저 한적한 시골 읍내 걷는게 뭐 그리 대수겠냐만. 나는 강경을 걷는 게 참 좋다. 골목길 돌아 담장에 피어있는 저 능소화 처럼 어디든 지천인 것 마저 강경에서 보면 무언가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강경은 한 때 물산의 집합지이자 큰 시장이 형성되었던 곳이다. 근대 초기까지도 조선은 육로가 매우 불편하였기 때문에 물자의 유통은 주로 수로를 이용하였다. 금강 줄기에 위치한 강경은 충청도에서 나는 산물이 배에 실려 서울로 가는 곳이었고, 각지의 산물이 포구로 내려지는 곳이었다. 충주 방면은 남한강 줄기를 이용할 수 있었지만, 청주나 다른 지역은 강경에서 물건을 사고 팔아 육로로 이동하였다. 이러다보니 국사교과서에서도 한 줄 언급해주는 '강경 상인'들이 전국적인 큰 상인 세력으로 자랄 수 있었고...

20세기 초까지 강경은 인근에서 제일 가는 경제 중심지였다. 은행이 들어서고, 각종 양화점이 즐비하며, 약방, 병원, 교회가 빼곡히 들어섰다. 뿐이랴, 강경은 충청도에서 처음으로 전기가 들어온 곳이고, 극장이 세워진 곳이었다. 이런 경제력을 바탕으로 강경포구엔 해운 노동조합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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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강경은행 건물. 일본의 식산은행으로 지었다가, 강경은행 - 충청은행 - 한일은행 - 조흥은행까지 사용하고 빈 건물이 되었다. 지금은 강경역사회가 관리하며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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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은행 내부 역사관은 민간이 관리하고 있는데, 유물이 정리되지는 못하고 일단 위탁받은 유물을 전시하는 정도였다. 개중에 농기계나 1960년대 경공업 기계 들은 따로 자리를 마련하여 옮기고, 좀 더 강경의 근대 역사를 테마로 잡아 정리하면 어떨까 하는 이야기를 친구와 하였다. 아무래도 국가나 지자체의 지원이 있어야 가능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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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은행 뒷 마당으로 들어가면 옛 창고 건물이 허물어지고 벽하나만 남겨둔 것을 볼 수 있다. 한국전쟁 당시 폭격으로 무너진 건물은 헐리었고, 저 벽은 새로 지어진 건물의 일부가 되어 살아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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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일당 건물. 남일당은 강경 인근에서 유명한 한약방이었다. 삼한 제일의 크기였다는 한약방은 지금도 후손이 살며 관리를 하고 있다는데 보존상태가 매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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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노동조합 건물은 후대에 복원작업을 거친 것인데 2층이었던 건물이 단층 건물로 바뀌고 말았다. 그래도 일본식 목조건물의 특징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철도가 놓이자 강경은 더 이상 유통의 중심지 구실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새로운 유통의 중심지는 경부선과 호남선이 만나는 대전으로 옮겨 가고, 강경은 날이 갈수록 쇠락해져 갔다. 하지만 1960년대 까지도 강경 포구는 물자 운반과 상업 활동을 계속하였다.

세월이 흐르고 내륙의 도로가 전국을 하나로 묶는 연결망이 되자 강경은 결국 물류의 기능을 완전히 상실하였다. 전성기 시절 몰려드는 해산물과 소금으로 만들어진 명물인 젓갈 시장이 유일하게 옛 영광의 그림자를 보여줄 뿐이다.

이후 강경은 한적한 시골 마을이 되었다. 이농 현상은 극심하였고 지금도 빈 집터는 허물어져 텃밭이 되었다. 골목 어귀에 아직도 글씨가 선명히 남아있는 옛 건물들만이 예전의 영화를 보여주고 있다.

오늘날 강경은 그 보다 이남의 시골들 보다는 그래도 활기찬 편이다. 초등학교는 한 학년에 두 반씩 있고, 중학교도 고등학교도 있다. 인근 공주시에 통합되었지만 생활 역시 공주와는 별개의 독자적인 생활권을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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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강경을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옛 골목길이 비교적 잘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근대 이전의 골목길들은 한길과 연결된 어귀에 번듯한 나무가 한 그루 있고 집과 집 사이를 구비 구비 돌아 들어간다. 최근 폐가를 몇 채 허물고 도로를 정비하면서 곧은 길을 내어 여기 저기가 끊겼지만, 여전히 옛 골목길을 간직하고 있다. 강경 사는 사람들의 편의와 발전을 위해 길을 펴는 것이야 마땅한 일이겠지만, 그래도 나중의 관광자원을 생각해서라도 골목과 옛 집들은 좀 놔두었으면 하고 간절히 바란다. 지금은 덩그라니 근대 유물로 지정된 건축물 몇 개 뿐이지만, 정말 사람을 불러들이는 것은 길과 도시의 구조 그 자체라고 나는 생각한다. 제주의 올레길이 집 구경 다니자고 만든 것은 아닌 것 처럼.

강경은 아무 때나 가도 좋지만, 젓갈 구경을 제대로 하고 싶으면 10월 젓갈 축제를 권하고, 사람 없는 한적한 길을 걷기엔 지금이 딱 좋다. 아무도 읍내로 피서를 오지는 않으니까. 더위 속에 걷는 게 싫다면 늦가을이나 겨울도 권한다. 그렇지만, 저리 빛나는 꽃과 함께 걸으려면 아무래도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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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곧곧에는 그나마 근대문화유적으로 지정도 되지 못한 옛건물들이 이후 덧대어 지어진 건물의 일부로 남아있다. 대동전기상회라는 간판이 뚜렷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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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참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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