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 ]
- 수도국산 박물관
- 저자: Jjw
- 2015-05-02
연휴 이틀째, 오후에 현우가 놀러 가자고 해서 수도국산 박물관에 들렀다. 예전에 인천광역시의 역사를 위키백과에 정리해 올리면서 한 번은 가보고 싶었던 곳이기에 얼른 그러자고 했다. 개항기에 산 꼭대기에 상수도를 위한 배수지를 마련해서 수도국산이라 불린 이곳은 인천의 대표적인 달동네였다. 그 곳을 "주거정비"(이런!!)해서 아파트 단지로 만들면서 옛 기억을 위해 박물관을 만들었다.
수도국산 달동네 사람들도 그냥 말 없이 봇짐을 싼 건 아니다. 우리 현대사에서 달동네가 다 그렇듯 이곳 사람들도 동네를 지키기 위해 싸웠다. 구질구질 비좁은 그 골목길 무엇 좋은 일 있다고 지키냐고 하지만, 그곳이 아니면 한 식구 또 어디가서 누울 자리를 마련할 것인가? 삶을 위해 싸웠다. 그 때나 지금이나, 이런 싸움이 나면 보상금 더 받으려 그런다고 손가락질하는 사람들이 있다. 평생 살던 터전 눈물 흘리며 떠나가는 데 그러면 최소한 누울 곳을 달라는 게 그리 욕 먹을 일이었나? 아파트는 올라가고 예전에 살던 사람들은 그 아파트엔 어지간하면 못들어간다. 그 와중에 온갖 감언이설로 딱지 장사하던 떳다방들도 지금은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으리라.
박물관은 반지하(!)로 설계되었다. 산꼭대기까지 올라서 조금은 내려 들어가야 박물관으로 들어갈 수 있다. 조금 특이하다 생각하며 들어가니 설계자의 의도를 바로 알 수 있었다. 이제는 박물관 속에 박제가 되어버린 이 달동네는 언제나 밤인 것이다.
어둑 어둑한 달동네 골목 어귀엔 반공방첩 표어와 전기 안전 점검 표지판과 낡은 영화 포스터와 유신 공약 화보가 어질 어질 시대의 뒤켠을 묘사한다. 그 옆으론 깡통 물지게를 진 꼬마와 연탄 창고에서 구공탄을 옮기는 아저씨, 소반 위에 올린 밥을 둘러싸고 옹기 종기 모인 가족들이 전시되어 있다. 이 모든 것이 한 때 이곳은 이런 곳이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시선은 따스하다. 이러 저러한 이유로 모여든 달동네 사람들이 이렇게 모여 살았노라고, 인터뷰 영상 속 할머니는 그래도 이 곳이 이 사람들의 터전이었다고 증언한다.
전시물 가운데 낡은 방범용 철창이 눈에 띈다. 나 역시 어린 시절 뛰 놀았던 계단 많던 성남시 수진동 달동네 창문마다 걸려 있던 저 창살을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많은 추억이 있었다. 앗 하는 순간 막내를 잊어 버리고 정신을 놓친 사람마냥 온 골목을 헤매셨던 어머니, 커다란 강아지에게 쫓겨 뛰어 오르던 숨가쁘던 계단들, 저녁이면 별이 내려 앉기도 전에 먼저 저 아래 길가부터 밝아져 오던 가로등 불빛.
기획 전시실에선 이 동네에 박경리 님이 헌책방을 하며 살았다는 사실을 알린다. 그 시절 이 곳엔 박경리가 있었다고.
그러나 이 모든 것은 1970년대 어디 쯤에서 정지되어 있다. 마치 그 이후론 달동네라고는 없었단듯이. 하지만 수도국산 달동네는 90년대 말까지 버젓이 사람이 살았다. 왜 달동네의 마지막 모습이 아니라 아련한 70년대로 시대를 돌려 놓았을까?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결과는 자명하다. 이 가난하지만 북적였던 동네는 70년대에나 존재했던 것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아니다. 그렇지 않다. 여기에 불과 20년 전에 사람이 살았다. 그 모습은 어디로 갔나? 박물관 전시 기획자의 따스한 시선과 달리 이 전시 공간의 시대는 삶의 흔적을 너무나도 차갑게 박제로 만들어 버린다.
진실은 길 위에 있다. 아파트가 들어선 맞은 편은 여전히 오늘날의 달동네가 살아 있다. 으리으리한 아파트와 으리으리한 교회를 마주하고 이제는 자동차가 다니라고 군데군데 길을 넓힌 사이로 여전히 계단이 켜켜이 놓인 동네엔 사람들이 산다. 화분을 기르고 빨래를 널고 하늘을 보고 그렇게 살고 있다.
그곳엔 여전히 방범용 철창이 제 구실을 하고 있다. 낡아 떨어진 페인트 뒤로 들어난 흙벽이 이 집의 역사를 말한다. 못해도 반백년은 이곳에 있었을 것이다.
이 "살아있는" 달동네엔 쇠락해가는 집들과 함께 더 이상 집 노릇을 못하는 건물들이 방치되어 있다. 그 사이로 옛집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달동네 교회가 보인다. 아까 그 교회와 저 교회는 서로 같은 하느님을 믿을까? 알 수 없다. 두 교회는 불과 백 몇 십 미터를 사이에 두고 있지만 각자의 교인들은 서로 한 번도 마주칠 일이 없을 것만 같다. 최소한 둘은 서로를 한 동네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을 것 같다.
집은 사유 재산이고 정비는 소유주의 몫이기에 살아있는 달동네는 해가 갈수록 누추해 져 간다. 하지만, 어느 날 수 많은 집들을 밀어내고 거기에 살던 사람들을 흩어 놓을 때는 거창한 국가의 계획을 말할 것이다. 이 남아있는 달동네도 언젠가는 박제가 되어 저 반지하 박물관에 애련하게 걸리면 그만인 것일까?
덧: 박물관 안에서 옛날 장난감이며 딱지며를 판다. 그래도 구경이라고 옛 생각이 나서 팽이 하나를 샀다. 동영상은 노트에 못 붙이는 구나. 따로 올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