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잡생각 - 실용주의

1 개요[ | ]

오늘의 잡생각 - 실용주의
  • 저자: Jjw
  • 작성일: 2018-05-27

실용주의란 말 만큼이나 오용되는 말도 없지 싶다. 철학에서 출발한 이말은 날 때 부터 이미 오해와 오독으로 몸살을 앓았는데 실은 창시자들도 정리가 잘 안돼서 헤맸기 때문이다.

미국에 좀 괴짜에 사교성 별로인 퍼스라는 수학자가 살았다. 직업은 수학자인데 수학엔 그닥 성과가 없었고 취미는 철학이었는데 생각은 참신했으나 말주변이 없어서 그닥 널리 알려지진 못했다.

퍼스에겐 제임스라는 베프가 있었는데 이 사람이야말로 훤칠한 생김새에 탁월한 언변으로 마당발이었다. 퍼스의 생각에 공감한 제임스는 책을 쓰라 꼬득였고 그렇게 해서 나온 책으로 전국을 누비시며 강연을 했다. 물론 대성공. 나중엔 퍼스의 책이 아니 제임스의 강연록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만다.

제임스는 사람들이 알아먹기 쉽게 (또는 사람들이 원하는 바대로) 이야기 했다. 실용주의란 실천적 결과에 따라 그 명제의 의미를 파악하려는 생각이다. 뭐 이런 거. 이게 가장 크게 히트를 친 건 일반상대성론인데 아인슈타인이 그걸 염두에 두었거나 말거나 중력과 가속도를 구분할 수 없으니 굳이 애써 구분하지 말자는 생각이야말로 실용주의인 것이다. 원본의 매우 현학적인 서술은 그냥 패쓰.

그런데 퍼스는 제임스가 자신의 생각을 “조악하게” 복사해서 팔아먹는다고 생각했다. 제임스는 말주변 없는 괴짜 친구 유명인사 만들어줬더니 헛소리 하고 있네. 실용주의는 스스로를 (내가 말한) 실용주의의 원칙에 따라 정리돼야 하는 거 아님? 하는 태도를 보였고 결국 두 베프는 웬수보다 못한 사이가 되었다. 이런.

퍼스는 왜 제임스를 비난 했을까? 질투때문에? 완전히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퍼스가 왜 그런 주장을 했는 지 들어보면 꼭 그헣게 이야기 할 수만은 없다. 여기서 잠깐 생각해야 할 건 퍼스가 용어도 막 바꾸고 갈팡지팡 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 나갔기 때문에 정형화 된 주장은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의 것이란 점이다. 아무튼 퍼스의 주장에 따르면 자신의 핵심 아이디어는 처음부터 그랬단다. 어땠냐면,

당시 철학의 일각을 이루던 데카르트의 합리주의는 어떠한 명제에는 반드시 연역적으로 선행하는 인과 관계에 놓인 선행 명제가 있고 그렇게 따라가다 보면 결국 더 이상 그 보다 앞선 명제가 없는 “제1원인”에 다다르게 된다고 주장하였다. 유클리드 기하학의 “공리”를 생각하면 된다. 이러한 생각 역시 막강한 영향력을 아직도 발휘하고 있다. 4개의 힘을 한데 묶고 싶어하는 “초끈 가설”을 보자. 답 없이 반세기가 지나고 있는데 아직도 매달리는 사람이 있다.

데카르트는 이러한 근본 명제에 도달하기 위해 현재의 명제를 분해하는 “의심”을 해야 한다고 보았으며 그것을 과학적 방법에 결부시키려 하였다. 수학자로서 퍼스는 이 부분에서 데카르트에게 그야말로 깊은 빡침을 느꼈다. 이미 연역적으로 주장된 공리에 다다르기 위해 주어진 명제에 질문을 던지는 건 그가 보기엔 가식일 뿐이었다. 그건 너무나 정연하게 자리잡은 세계의 질서를 보여주지만 실은 그 질서를 보여주기 위해 세심하게 준비된 의심일 뿐이었다. 세상이 진짜 그러냐? 퍼스는 중얼 거렸을 것이다. WT... 암튼.

그래서 퍼스는 거꾸로 가기로 했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훨씬 많이 세상을 믿어 의심치 않으며 그러한 믿음엔 다 이유가 있다고. 사람들은 어떤 명제를 믿을 뿐만 아니라 “주장”하는데 즉 그게 맞으니 너도 그런 줄 알라고 한다고.

어떤 명제가 주장되는 이유가 뭘까? 퍼스는 이렇게 구분하였다. 고집, 선천적 이유, 권위, 과학적 방법. 퍼스가 어떤 것이 올바른 주장의 근거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을 지야 자명하거니와 그가 무엇보다 “고집”을 제 일의 자리에 둔 건 곱씹어 볼만하다.

아무튼 퍼스은 이러한 배경 속에서 어떠한 명제의 정당성 확보는 결국 그것이 야기하는 실천적 결과가 얼마나 “유용성”을 갖는가로 판단할 수 밖에 없다고 보았다. 가장 큰 유용성을 가져 오는 것이 가장 믿을만한 명제인 것이다. 그는 이것을 “실용적 극대”라고 하였다.

실용주의의 원조 미국은 (실은 달리 내세울 다른 철학 사조가 있지는 않지만서도) 실용주의야 말로 가장 미국적인 것이라 자랑해 마지 않는다.

협상의 기술이고 거래의 기술이고 간에 블러핑 너무 치다 판 깨진다. 부디 좀 실용적인 주장을 하길. 고집 말고.

2 같이 보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