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밤중 잡생각 - 사이버펑크의 리얼리즘에 대하여

1 개요[ | ]

오밤중 잡생각 - 사이버펑크의 리얼리즘에 대하여
  • 2022-11-01 jjw

사이버 + 펑크 장르에 무슨 리얼리즘을 찾냐고 타박하면 할 말이 없긴 하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개연성이 없으면 그거 누가 보냐는 생각으로 몇 마디 적는다.

무엇이 가상의 세계를 실재하게 하는가? 거칠고 투박하게 딱 잘라 말하면 그 세계 속 필수불가결한 필요와 욕망이 그것을 실재하게 한다. 총몽을 보자. 구즈쿠로가네쵸, 그러니까 고철마을의 사람들은 간단히 말하면 잉여적 존재다. 그들의 삶은 공중에 떠 있는 자렘이 투척하는 쓰레기에 의존한다. 만화는 폐기물로 돌아가는 경제의 단면을 배경삼아 캐릭터 들의 욕망을 쌓아 올린다. 지구의 나머지 지역은 왜 그런지 분명한 설명이 없지만 이미 황폐화 된 상태. 구질구질하고 먼지 투성이인 고철마을은 그럼에도 지상의 오아시스인 셈이다. 이렇게 배경을 깔아 놓으면 옛 군용 사이보그가 폐기되었다 되살아나, 아니 재활용되어 투기장에 던져져도 그 수 많은 물리 오류에도 불구하고 진짜 살아있는 듯 움직이게 된다. 가상 세계에 존재하는 상호작용이 얼마나 리얼한가에 따라 정말 허무맹랑한 "펑크" 스토리도 우리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

공각기동대 고스트 인 더 셀의 경우, 의체는 실용적이라는 설정이 매우 매혹적이다. 육체로 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을 더욱 효율적이고 빠르게, 그리고 육체 인간은 도무지 할 수 없는 일을 해내기 위해 인간은 사이보그를 택한다. 물론 돈 많고 힘 있는 사람의 경우 그렇게 실용적이라는 의체를 가지고 뭔 짓을 하냐고 하면 서로의 몸 바꾸고 놀기, 게이샤 의체로 뇌를 옮겨 놀기 같은 한심한 짓거리를 한다. 남들은 꿈도 못꿀 가격의 엄청난 의체를 만들면 뭐하나 하는 짓이 고작... 이런 설정은 설국열차 맨 앞칸의 약쟁이들과 일맥 상통하는 면이 있다. 하긴 우리 사회의 약쟁이들을 생각하면 이건 심지어 나름 고증이 완벽하.. 읍읍읍.

무정부적 사회를 그리는 펑크 계열의 진화에는 관료제에 대한 지독한 불신이 자리잡고 있다. 이것도 나름 현실에 바탕을 두었다 볼 수 있지만, 그 무정부 상황이 가끔은 너무 무리한 상황을 만든다. 어제 본 "사이버펑크:엣지 러너"의 경우가 그런데, 저 정도의 치안 상황이면 사회 유지가 과연 가능할까 싶은 것이다. 그러니까 생산과 판매에 따른 이익의 실현이라는 경제 구조를 상정하는 순간, 사이버펑크 세계의 실제 주인인 "기업"의 입장에서도 안정적 소비의 유지는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다. 즉 최소한의 사회 안정망의 유지는 "기업"에게 매우 중요한 사항이다. 그런데 무작정 때리고 부수고 테러가 매일인데 다들 그런가 보다 하고 있는 상황이란 건 좀... 게임이 원작이라는 한계도 인정하긴 해야 하지만... 음.. 끙..

그런면에서 넷플릭스의 다른 시리즈 "얼터드 카본"의 경우엔 보다 유려한 경제 시스템을 보여준다. 여기라고 사이버펑크 장르의 세계관을 비켜 갈 순 없지만, 최소한 그 사회의 경제는 어떤 식으로 돌아가는 지에 대한 나름의 기준이 있다. 이 시리즈는 다른 쪽에서 망했는데 이 엉망진창이고 무정부적이며 영생하는 기업주가 사실상 신인 세상을 바꿔보겠다고 나선 혁명 세력의 메세지가 너무 빈약하고 어이없고 광신적이어서 그만 맥이 풀려버린다. 세계관을 유지하는 필요 요소는 나름 잘 설정했는데 스토리를 이끌어가야 할 대안 세력이 영 매가리가 없다. 그러니 이야기는 주인공이 과거의 인연에 목을 매는 신파로 빠져 버리고 만다. 아까워라... 다시 찾은 동생까지는 내 이해 한다만... 보다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시즌2는 포기했다.

그러니까 이런 것이다. 사이버펑크라고 해도 결국 사람들은 스토리 때문에 그걸 보는 거다. 우리 다 배웠지 않나? 주구문인사배. 장르 특성상 주제, 구성, 문체 쪽엔 많은 제약이 있다고 하더라도 인물 사건 배경이 허술하면 스토리가 망가지기 마련. 가상의 초현실을 다룬다고 하더라도 리얼리티는 여전히 필요하다. 암튼 요즘 삼박자 딱 갖춘 작품이 드물다는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이래서 오밤중에 뭘 적으면 안된다. 내일 이불킥 각이긴 하지만 쓴게 아까워 등록.

2 같이 보기[ | ]

문서 댓글 ({{ doc_comments.length }})
{{ comment.name }} {{ comment.created | snstim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