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 ]
- 오늘의 뜬금포 - 노드와 포인트
- 저자: Jjw
- 2015-02-28
감기가 온 관계로 횡설수설임. 약 좀 빨았... 응?
낮에 뉴스 하나를 보았다. 대구에 사는 어떤 분이 아들이 자폐라는 진단을 받고 한달 동안 잠도 못자고 이를 어쩌나 하다가 아들을 끌고 15층 아파트에서 뛰어내렸단다. 나는 이글을 연합뉴스에서 보았는데, 아까도 썼지만 그곳 댓글들은 뭐랄까 내가 즐겨 보는 언론사 페이지하고는 차원이 좀 다르다.
대번에 눈에 띈게 "이거 보고도 정부 탓이라 하는 새끼 꼭 있을 걸?" 이라는 댓글이었다. 이걸 어디서부터 뭐라고 해 줘야 하나. 우리 사회에서 네살배기 자폐아를 기른다는 건 다른 삶은 송두리째 포기해야 하는 걸 의미한다. 거기에 주변의 눈이 곱지만은 않다는 건 덤이다.
물론 정부는 그 아주머니에게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이 경우엔 아무것도 해 주지 않은 게 문제다. 장애 아동에 대한 적절한 교육은 고사하고 육아에 대한 지원도 변변치 않다. 그 아주머니가 그런 선택을 한 것은 매우 불행하고 안타깝지만, 그 심정은 미루어 짐작이 간다. 나도 직간접적인 경험이 있다면 있기 때문인다. 다른 사람의 이런 저런 사생활 얘기까지 할 거 없으니 사례는 생략. 이 경우에 정말 아쉬운 건 이런 저런 도움 받을 곳이 있으니 꼭 가서 상담 받으세요 비용은 정부가 부담합니다 같은 안내다.
어찌되었건 이건 좀 아니다 싶어 한마디 했다.
"정부가 뭘 직접적으로 잘못한 게 아니라도 이 사회가 엉망인 건 분명하고 정부가 해야할 일도 분명있는 겁니다. 그걸 추진할 수 있는 건 정부뿐이고요. 그러니 정부가 대책을 내놓아야죠."
하고. 그랬더니 냉큼 댓글이 하나 달린다.
"진심이신가요?"
야.... 이거 참. 여긴 차원이 다른 곳이 맞긴 맞구나. 내가 잠시 평행우주에 방문한 기분이다. 그래서 캡쳐를 해서 올리면서 뭔가 실험을 하고 싶지만 계삭의 위험을 감수하고 싶지 않아 참는다는 농담을 남겼다. 실은 저런 부류의 사람에게 광역 어그로를 끌면 어떻게 될까 같은 거였는데.. 늘 그렇듯, 귀찮다.
지금 그 글 밑에는 몇 개의 댓글 뒤에 "정부가 저 아줌마 아들 자폐증으로 만들었나요?"라는 댓글이 하나 더 달려있다. 플픽을 보니 십자가를 들고 계시다. 예수님이 참 좋아하시겠다... ( https://www.facebook.com/yonhap/posts/958091044202670?comment_id=958319497513158¬if_t=share_reply ) 그리고 내가 캡쳐한 그 사람은 내 글을 자기 담벼락으로 공유하며 "재밌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확실히 나와 그 사람은 같은 세상에 살고 있지 않은 게 분명하다.
얘기는 갑자기 옆으로 새서, 예전에 오일러라는 분이 계셨다. 이 분이 수학 좀 하시는 분이었는데 이런 문제를 하나 받았다.
프로이센에 쾨니히스베르크라는 도시가 있다. 지금은 러시아 땅이고 이름도 칼리닌그라드로 바뀌었다. (이름 바뀌게 된 사연도 재밌긴하지만 더 옆으로 새지는 말자.) 이 도시엔 다리가 일곱개 있었는데 아래의 지도와 같다.
어떤 사람이 물었다.
한 번 건너간 다리는 다시 건너지 않고 모든 다리를 다 건너서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을까?
처음에는 그냥 호사가들의 궁금증을 자아내는 질문이었지만, 이게 생각보다 쉽지 않아서 내노라 하는 수학자들도 머리를 싸매기 시작했다. 이때 오일러가 이 문제를 한 방에 해결해 주시니... "안됨." 오일러는 다리의 지도를 아래와 같이 단순화하여 한붓그리기 정리를 완성함으로써 증명에 성공한다.
이 그림에서 검은 원은 점 그러니까 포인트이고, 선은 노드이다. 한붓그리기가 가능하려면 홀수의 노드를 갖는 포인트가 없거가 두개여야 한다. 거기에 제자리로 돌아오려면 홀수의 노드를 갖는 포인트는 없어야 한다. 따라서, 쾨니히스베르크의 다리를 한 번만 건너서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 이 엄청 부러운 능력. 아... 오일러 느님...)
갑자기 뜬금없이 노드와 포인트 얘기를 꺼내는 건 내가 감기 기운 만땅이라 내 머릿속 포인트와 노드가 멋대로 연결되는 까닭이기도 하지만(.. 쿨럭 ..), SNS는 흔히 사용자를 포인트로 하고 상호작용을 노드로 하는 네트워크로 표현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앞서의 예에서 보듯, 페이스북이라는 하나의 플랫폼을 사용하고 있는 사람들도 실상은 평소엔 서로를 전혀 의식할 수 없는 여러 개의 고립된 연결망 가운데 하나에 속해 있을 뿐이다. 가끔, 아주 가끔, 이렇게 마주치는 경우에도 이건 마치 평행우주를 건너간 느낌을 받지 않을 수가 없다. 서로 사고 회로가 비슷한 사람들 끼리의 의사 교환을 다중의 소통이라고 하긴 어렵기 때문에... SNS와 소통은 그닥 관계가 없는 것 같다. 안그래도 나는 평소에 선거에서 SNS는 지지자 결집용이지 무슨 부동층 포섭용은 아니라고 생각해 왔던 터이긴 하다.
문제는 다중적인데, 가파르게 상승하는 SNS의 데이터 증가 속도와 달리 우리 사회에서 공론화의 장은 점점 좁아진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일부는 의도적이기도 하고 일부는 환경의 변화 때문이기도 한데, 지난 정권부터 망가지기 시작한 지상파 방송은 더 이상 품질 높은 토론프로그램을 생산하지 못하고(또는 안하고)있고, 신문 사설이나 칼럼은 방송보다 주목받지 못한지 한참 된듯하다. 이 상황에서 불리한 건 당연히 사회를 뭔가 바꿔보겠단 쪽인데, 반대편의 결집력은 단단해지는 반면 의미있는 의사 소통의 방법은 여의치가 않기 때문이다. 이런 환경에서 어떻게 자신의 포인트에서 노드를 늘릴 수 있을 것인가는 정치나 언론같은 곳의 당면과제인 것 같다.
포인트와 노드에 대해서는 횡설수설을 하루종일도 할 수 있는데 여기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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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참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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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jw (4)
오밤중에 적는 낙서 ― Jjw오밤중에 적는 낙서 ― John Jeong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Pinkcrimson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Pinkcrims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