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잡생각 - 권위

1 개요[ | ]

오늘의 잡생각 - 권위
  • 2023-11-03

인간은 생각 보다 많은 것을 권위에 의존한다. 예를 들어 보자. 기침이 심하고 열이 난다. 감기일까? 코로나인가? 알 수가 없다. 검사키트를 사온다. 두 줄이다. 이런... 혹시 모르니 병원에 간다. 의사가 다시 검사를 진행하고 확정한다. 코로나다.

기침이 심하고 열이 나는 것은 내 몸이지만, 나는 왜 그런 지 확신하지 못한다. 검사키트로 자가 진단을 했지만 여전히 확신이 서지 않는다. 검사키트의 위음성율은 현장에서 대략 50%, 위양성율도 30%로 알려져 있다. 그러니까 내가 지금 코로나 같지만 아닐 확률이 여전히 큰 것이다. 의사의 진단은? 그것은 오진률이 없는가? 물론 있을 수 있지만, 우리는 의사의 짬밥을 믿는다. 이것이 권위다. 아무려면 감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내 스스로의 추측이나 아님 말고 보다 살짝 나은 검사키트의 결과보다야 그래도 전문가인 의사의 판단을 훨씬 더 신뢰할 수 있다.

민주주의의 작동 역시 다른 종류의 권위에 의존한다. 왜 맨날 술 먹고 주사나 부리는 우리 동네 아재도 한 표, 대기업 회장 비서도 한 표, 나도 한 표, 너도 한 표인가? 인간은 모두 평등하다는 관념, 특수 신분은 인정할 수 없다는 공화주의적 원칙, 그 누구도 남보다 월등한 결정을 내리 지 못하더라는 경험과 짬밥이 보통선거제도라는 법적 권위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이를 포함한 수 많은 제도적 권위 없이 민주주의는 한 순간도 유지되기 어렵다. 민주주의가 늘 취약한 이유다.

이제 생성형 인공지능의 생산물을 보자. AI 챗봇이 뽑아내는 글뭉치들에서 결정적으로 부족한 것은 바로 권위이다. 사람들은 종종 현실의 재판 결과에 실망하며 차라리 AI 판사를 도입하자 말하지만, 실제 자신의 운명을 거기에 걸고자 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것이다. 최소한 우리는 그 바닥에서 갈고 닦은 판사의 짬밥은 인정할 수 있는 것이다. 옆집에 불났을 때야 드론을 띄워 물을 뿌리라는 둥 화제 예방 시스템을 AI로 돌려 보라는 둥 이런 저런 말을 편안히 할 수 있지만, 그게 내 집이면 당장에 어서 빨리 소방대원과 구급대원이 와주기를 천지신명과 하느님 부처님 예수님 공자님 모두 찾으며 빌 것이 분명하지 않나? 이 역시 기존의 사회적 기능이 갖는 권위이다.

그래서 나는 AI가 누군가의 밥그릇을 뺏을 거라는 식의 뉴스를 좀 많이 호들갑 오바질이라고 생각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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