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잡생각 - 원형과 변형 그리고 새로움

1 개요[ | ]

오늘의 잡생각 - 원형과 변형 그리고 새로움
  • 2023-08-30 jjw

세상이 어제와 같이 오늘도 이어지며 내일도 계속될 것이라는 믿음은 오래된 것이다. 일찌기 유대교의 한 전도자는 "해 아래 새 것이 없나니"라고 노래하였다. 실은 그리 틀린 말이라고 하기도 어렵다. 우리가 하루를 살아가며 하는 일들 가운데 상당수는 인간이 인간이기 이전이었던 시절부터 수 백만 년 동안 계속해 온 것들이다. 먹고 자고 싸고 사랑하고 싸우고 외로워하고 그리워하고 그렇게 살다가 하루가 가듯이 한 생애가 간다. 이 덧없음이 인간의 수 많은 생각과 문화의 바탕에 깔려있다.

그리하여 어떤 이야기들은 "원형"을 갖추게 되었다. 우리의 삶이 원래 거기서 거기인 부분이 많은 지라 어딜 갔다 두어도 통하는 이야기란 게 있기 마련이다. 이를테면 "먼 길을 헤매는 방랑자"와 같은 이야기들이 있다. 구스타프 융이 제안한 무의식의 원형은 한 때 세계를 풍미한 이론이기도 하였다.

원형이 있으면 나머지는 변형 또는 변주에 해당한다. 길가메시가 영생을 찾아 온갖 모험을 하는 이야기나, 오디세우스가 바다를 돌며 헤매는 이야기나, 에이허브가 모비딕을 찾아 돌아다니는 이야기나, 땅에 발딛을 수 없는 저주를 받은 선원의 망령들이 해안을 떠도는 이야기나... 이 수 많은 이야기들은 결국 주체의 욕망, 그것을 이루지 못하는 상실감, 반복되는 좌절을 다룬 이야기라고 "뭉뚱그릴" 수 있다. 그러면 이 수 많은 변형들은 결국 하나의 이야기를 그저 반복 재생하는 것일 뿐일까?

무언가를 원점의 이상향으로 놓고 그것에 되돌아가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이라면 이 질문에 서슴없이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다. 주나라의 예법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믿었던 공자의 눈에 춘추 시대의 난무하는 하극상과 배신 배반은 그야말로 말세의 징조일 수 있었다. 기독교 세계의 수 많은 "회복운동"이 그렇고 불교의 수 많은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말이 그렇고... 이런 주장 역시 달라질 것 없이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과연 그런가? 그저 과거의 일부들을 짜맞춘 것이라 폄하되는 새로운 것도 그것이 세상의 보편적 모습이 되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옛 모습을 유지하며 살 수 없게 된다.

라만차의 돈키호테는 기사도의 영광이 하늘을 찌르던 롤랑의 시대를 재현하고 싶어하였지만,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 롤랑의 시대에 당도하더라도 이미 용과 거인들은 지크프리트 이후 자취를 감추었다는 사실에 절망할 것이다. 그의 풍차 돌격은 과거에도 존재하지 않았던 이상을 향한 열정이지만 시대는 이미 머스킷을 손에 들고 대열을 맞춰 전진하는 총사들이 일제 사격으로 기사의 시대를 무너뜨리는 중이었다. 아쉽지만 이제는 그만 놓아주어야만 하는 옛것들이 늘 있기 마련이다.

모비딕을 찾아 해메는 에이허브의 경우를 보자. 유럽 중산층의 그 수 많은 코르셋에 들어갈 뼈대와 집집마다 놓인 등불에 쓸 기름이 아니라면 포경선의 선주는 그 험난한 바다로 배를 보낼 이유가 없다. 석유가 일상화 되기 전까지 고래는 유럽의 근대를 떠받치는 자원이었다. 사람들이 배를 타고 표류하는 이야기는 수 천년 계속된 원형의 반복에 불과할 지라도 그 사람들이 기어이 바다로 나가야 했던 건 예전엔 상상도 할 수 없는 새로운 이유 때문인 것이다. 그 폭풍 속에서 에이허브는 눈을 번뜩이며 모비딕을 쫓는다. 인간의 발 아래 길들여지지 않은 마지막 야생을 정복하기 위하여. 물론, 인간은 그로부터 1 세기가 안 되어 이 오만이 부른 참사를 후회하게 된다.

외계인이 등장하더라도 이야기의 뼈대에 새로움을 추가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법인데, 우리가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 자체가 그리 쉽게 변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야기는 뼈대를 들춰내기 위해 만들고 듣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에서 재현되는 새로운 무언가의 모습에 매료되는 것이다. 모든 것은 그저 짜집기일 뿐 새로운 거란 거 없다는 주장은 어쩌면 우리의 존재 자체에 대한 자기부정일 뿐이다. 새상은 늘 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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