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잡생각 - 잘못된 상식이 선입견으로 자리 잡는 방법

1 개요[ | ]

오늘의 잡생각 - 잘못된 상식이 선입견으로 자리 잡는 방법
  • 2024-05-14 jjw

그 색상을 나타내는 말이 없으면 인식하지도 못한다는 말도 안되는 소리가 있다는 걸 보고 열이 난 나머지 페친 담벼락에 겁나 기나긴 댓글을 달아버렸다. 갑자기 미안해져 버렸다. 처음부터 여기에 잡소리를 적었어야 했다. 암튼,

한 때 이누이트들은 눈을 스무가지 넘게 구분하여 부른다는 소리가 있었다. 이건 한국 사람들은 붉은 색을 수십가지로 나누어 부른다고 하는 소리와 같은 경우다. 붉으스름이나 붉으죽죽이나 발그스레나... 이게 실제 색상보다는 말하는 사람의 정서가 더 강하게 담긴 말들이란 걸 이해 하지 못하면 전부 다른 소리로 들릴 수 밖에. 이누이트의 눈을 가리키는 말도 이와 같아서 그저 딱딱한 눈, 젖은 눈, 부슬부슬 떨어지는 눈... 같은 것들을 그들 말을 모르는 외부인이 잘못 이해한 경우다.

문제는 그 다음인데, 그들을 직접 만나는 경우가 극히 드문 시절에 우리는 이런 것들을 건너 건너 전해들어야 하였고 그렇게 전해 들은 말을 철썩같은 상식으로 받아들였다. 대개는 일본에서 건너 들은 것들이 많았는데, 딱히 일본 사람들이 넘겨짚기를 좋아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건너 들을 수 있는 창구가 일본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한때 일본은 우리가 세계를 보는 창구였다. 각설.

이렇게 되고 나면 누구나 알고 있는 기정사실인 것처럼 쓰이게 된다. 이를테면 "서서히 데우는 냄비에 빠진 개구리" 같은 소리가 있다. 사실 우리는 개구리를 냄비에 집어 넣어 본 적 없잖아? 그럴듯 해 보이니 그런가 보다 하는 거지... 옛날에 왜 꼭꼭 닫은 방에서 선풍기 돌리면 죽는다는 소리도 있었지만, 그거 순 구라인 거 의심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이렇게 건너 건너 들은 이야기가 당연시 되면 결국 선입견으로 자리잡게 된다.

사람은 생각보다 자기 일에 바쁘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들이 진짜인지 아닌 지 일일이 확인할 시간따위는 없다. 그 틈을 비집고 잘못된 상식은 자가 증폭하여 기정사실이 되어 버리고 만다. 보통은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이지만, 어떤 것은 심각한 편견의 바탕이 되기도 한다. 특히 다른 언어, 다른 민족의 문제가 걸리면 심각해 질 수 있다. 이를테면 "알라"는 그저 "신"이라는 뜻이지만 우리는 이 말을 바로 특정 종교를 믿는 특정 사람들과 연결한다. 한석봉 하면 떡부터 떠오르듯이.

색상에 대해서라면 장애가 없는 경우 사람들은 누구나 비슷한 정도의 색상을 구분한다. 갖태어난 아기의 경우 문화와 상관 없이 대여섯 가지 색상을 구분하며 이후 색상의 자세한 구분은 문화적 영향을 받는다. 자세한 이야기는 https://www.sussexcolourgroup.co.uk/ 의 연구를 참조하자. 이 때 중요한 점은 문화에 따른 색상의 분류가 저마다 다를 뿐이지 색상 자체에 대한 구분은 어느 경우고 그다지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한국어는 전통적으로 "파란색"을 녹색과 청색 모두에 사용하였다. "파란불에 건너라"고 하지만 그거 사실 녹색이잖아? 인간의 색상 구분은 생리적으로는 망막의 시신경 세포들의 차이 때문이지만 이를 인지하고 해석하는데는 언어적 사고가 필요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진다.

색상뿐만 아니라 감정도 관계도 추상적 개념마저도 그것을 표현할 말이 없다고 그 자체마저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흔히 한국의 특징적 감정으로 "한이 서리"는 것을 거론하지만, 그런 감정은 남들도 다 느낄 수 있다. 딱히 "서러움"과 구분하여 부르지 않을 뿐이다. 어떤 것을 가리키는 말이 없다고 그런 생각조차 못한다고 보는 건 그야말로 편견이다.

한 때 서구의 잘나신 학자들이 세계 각지의 민족을 연구하면서 그들의 언어를 서구의 것과 비교하면서 이런 편견을 조장한 측면이 있다. 예를 들면 우랄산맥 너머 동쪽은 뭐 다 거기서 거기지 뭐 하는 생각이 이른바 "우랄-알타이어족"이라는 있지도 않은 가상의 어족을 만든 사례가 있다. 그런데 요즘은 그렇게 건너 건너 전해 들은 이야기가 기정 사실이 되어 우리 스스로가 아 한국어는 우랄 알타이어족이야 하게 되는 것이다. 서두에 말한 이누이트의 경우를 보자. 그들 말로 "이누이트"는 사람이란 뜻이다. 감이 오지 않는가? 서구의 학자는 잉글랜드인과 프랑스인을 구분하듯이 당신들은 누구요 하고 물었을 테고, 우리? 우리 사람인데? 하고 대답한 것이 그만...

2 같이 보기[ | ]

문서 댓글 ({{ doc_comments.length }})
{{ comment.name }} {{ comment.created | snstim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