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V/AIDS 에디터톤 참여 기념 바이러스 감염에 대한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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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V/AIDS 에디터톤 참여 기념 바이러스 감염에 대한 정리
  • 2021-10-30 jjw

1. 모든 바이러스는 극단적인 기생충이다. 스스로는 어떠한 생명활동을 위한 대사도 할 수 없고 오로지 숙주 세포에 들어가서 숙주의 자원을 활용하여 복제된다. 단 하나의 바이러스가 숙주 속에서 수 천만 배 증폭될 수 있다.

2. 그래도 어딘가에 침투하여 복제되려면 최소한의 유전체를 담고 있어야 한다. 바이러스는 DNA로 된 유전체를 가진 녀석도 있고 RNA로 된 녀석도 있다. 이게 숙주 안에서 활성화 되려면 자체적인 몇 가지 효소도 함께 가지고 있어야 한다. 효소는 단백질이고, 따라서 바이러스의 자체 효소는 "바이러스 단백질"이라고 부른다.

3. 바이러스 단백질은 면역계의 항원 항체 반응의 주요 타겟이다. 면역계는 정상적인 자기 자신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고 자기 자신이 아닌 것을 공격하여(정확히는 자기 자신이 아닌 것에 감염된 녀석을 공격하여) 건강을 유지한다. 인체의 면역계는 무지막지한 게쉬타포여서 일단 "나 아님"하고 인식하면 자비란 없다. 예를 들면 각종 장기 이식에서 게쉬타포 면역체계는 큰 난관이다. 살릴려고 다른 사람 장기를 넣었는데 나 아님 하고 공격해 댄다.

4. 2년 동안 사람 미치게 만들고 있는 코로나19의 백신 역시 이러한 면역 반응을 이용하여 만들어진다. 다만 직접 살아있는 바이러스를 주입하는 건 미친 짓이므로 바이러스의 단백질 형성을 지시하는 유전 정보만을 이용하여 만들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mRNA 백신은 인류 최초로 병원체 자체가 아닌 그것의 정보만을 이용한 백신이다. 어찌보면 인간의 몸에 직접 액세스 할 수 있는 최초의 인터페이스를 만든 셈이다. (이렇게 얘기하면 꼭 백신 맞으면 5G로 조종한다더라 어쩌구 하는 사람이 있다. 아이고...)

5. 인간이 가지고 있는 면역계는 수십억년 진화의 산물로 기가막힌 성능을 자랑한다. 항원 항체 반응을 일으키는 후천 면역 체계는 유악류 어류 이상의 모든 생물에게서 발견된다. 즉 수십억년 전 어느 물고기 조상님께서 드디어 득도하셔서 오늘의 우리가 있는 셈이다. 물론 그 이전부터 지금까지 잘만 작동하고 있는 선천 면역 체계도 나름 매우 훌륭하다.

6. 선천 면역 체계는 미리 등록된 자동 공격 체크 리스트로 작동한다. 딱 봐서 이건 위험하다 싶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박멸이다. 그래야 살아남기 때문이다. 선천 멱역 체계는 심지어 단세포 생물도 지니고 있고 식물도 가지고 있다. 사실 진화의 대부분은 이미 단세포 생물 단계에서 이루어졌다. 잠깐 옆으로 새면 단세포 동물도 운동할 수 있는 근육 노릇을 하는 소기관과 눈 노릇 심지어 입이나 코 노릇하는 기관이 있는 녀석들이 있다. 단세포 무시하지 말자.

7. 후천 면역 체계는 일단 한 대 두들겨 맞고 방어를 생각하는 시스템이다. 숙주와 기생 생물의 관계는 진화의 역사 만큼이나 오래 되었기 때문에 아무리 자동 공격 목록에 새 공격 목표를 추가하여도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목록에 없는 녀석이 침입하면 속수무책 당할 수 밖에 없다. 후천 면역 체계는 이때 어라 저 놈 못 보던 놈일세 하고 등록해 둔다. 이렇게 해서 '다행히' 살아 남았다면, 다음에 똑 같은 녀석이 들어 오면 초장에 박살을 내 버린다. 어이쿠 또 오셨어요, 어서 죽어주세요... 쯤이다.

8. 한편 바이러스는 매우 빨리 돌연변이를 거듭하여 숙주의 면역계를 회피한다. 이를테면 연쇄살인마가 성형수술로 공개 수배 명단을 피하는 것 쯤 된다. 코로나19 역시 평범한 여느 코로나 바이러스가 어느날 돌연변이로 면역계를 돌파하였다. 망할.... 하지만 이게 지난 수십억년 끊임 없이 이루어져 오던 생태계의 일상다반사이다.

9. 아무튼 이리하여 각각의 바이러스는 저마다 어떻게든 기생을 계속하고 번져나갈 수 있는 무기를 장착하게 되었다. 우선 저마다 좋아하는 숙주 세포가 다르다. 코로나19는 특히 폐세포를 좋아한다. 실은 감기니 독감이니 하는 바이러스들이 모두 폐를 특히나 좋아한다. 비말 전파는 전염도 쉽고 침입도 쉽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모든 바이러스가 다 폐만 편식하는 것은 아니다. 일본뇌염 바이러스는 모기를 통해 피로 전염되고 유행성출열을 일으키는 한탄바이러스도 벼룩 등의 매개체가 있다.

10.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 즉 HIV는 이 가운데도 좀 많이 특이한데, 이 녀석이 좋아하는 것은 사람의 면역 세포이다. 사람의 면역세포 역시 살아있는 세포이기 때문에 바이러스 감염의 위험이 있기 마련이다. 문제는 이렇게 HIV에 감염되어 면역 세포가 사라지면 그 때문에 다른 병원체들이 덩달아 잔치판을 벌이게 된다는 점이다. 경찰 노릇하던 녀석이 없으니 올타구나 난리가 난다. 그 결과가 후천성 면역결핍증 즉 AIDS 이다. 면역 체계가 붕괴되었기 때문에 각종 질병이 갑자기 몰려오고 심할 경우 급작스런 사망에 이르게 된다.

11. AIDS는 80년대 갑자기 유행하였는데 주요 감염 경로가 체액의 교환이었기 때문에 온갖 편견에 시달렸다. 체액 교환의 흔한 상황이 섹스기 때문이다. 물론 HIV 감염은 그 외에도 상처를 통한 전염, 수혈 등의 경로가 있고 굳이 동성애자 사이의 섹스인지 남녀 사이의 섹스인지도 따지지 않고 전염된다. 하지만 첫 발병 사례와 다수의 언론 보도가 동성애에 주목하였기 때문에 사회는 (특히 일부 기독교 교단은) AIDS는 동성애자를 낙인찍는 "천벌"인냥 여겼다.

12. 실은 HIV 감염과 AIDS는 그냥 질병일 뿐이다. 그리고 환자는 죄인이 아니다. 이 점은 코로나19 사태에서도 일각에서 환자를 죄인 취급하던 일과 겹친다. 사람들은 잘 알지 못하는 공포를 만나면 쉽게 피해자를 죄인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 사실은 코로나19고 HIV고 다 바이러스성 전염 질환이라는 것이다. 둘다 안전을 위해 감염 경로를 차단하고 치료를 받으면 된다.

13. HIV에 대한 연구가 꾸준히 지속되어 지금은 그냥 약먹고 살면 천수를 누리고 살 수 있다. 물론 살면서 주의해야 할 점이 좀 많아지긴 하지만, 당뇨병 환자 역시 그런 기나긴 주의사항 목록을 지니고 산다. 즉 그냥 만성질환이다. 당뇨병에 걸리는 게 결코 좋은 일이 아닌 것 처럼 AIDS 역시 안 걸리는 것이 천만배 쯤 낫기는 하다.

14. 바이러스는 저 마다 다른 특징을 보이는데 코로나19의 가장 그지 같은 점은 델타변이가 잘 보여주듯 변이가 너무나 빨라서 미처 대응하기 어렵다는 것이고, HIV의 경우엔 복제하기 어려운 여건이 되면 숙주 세포인 백혈구에 조용히 숨어서 몇 십년이고 비활성화 상태로 버틴다는 점이다. 정말 재수 없지만 HIV 감염이 확진되면 평생 약을 복용해야 한다. 그에 비해 코로나19는 급성 질환만 피하면 완치를 기대할 수 있다.

15. 오랫동안 몸속에서 비활성 상태로 버티는 병원체는 의외로 많다. 대상포진 같은 경우를 생각하면 된다. 몰래 매복하고 있다가 몸 상태가 나빠지면 기습한다. 결핵 역시 그런데 치료를 제대로 받지 않으면 평생을 숨어있다가 괴롭힐 수 있다. 얘기인 즉슨 HIV 감염은 뭐 다른 게 아니라 그저 바이러스 감염일 뿐이라는 거다. 바이러스는 어느 것이고 예방이 최고지만, 걸렸다고 죽을 죄를 지은 사람이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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