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 ]
- 오늘의 뜬금포 - 문화: 행동과 공간
- 저자: Jjw
- 2014-11-11
이 글을 노트에 쓰는 의도는 간단하다. 페이스북은 타임라인에 그냥 쓴 글은 나중에 찾기가 정말 어렵기 때문이다. 페이스북은 검색 같은 거 나몰라라 한다. 맨 위에 있는 검색창은 말그대로 친구와 장소만 찾아준다. 아, 공정을 기해서.. 페이스북 페이지도 잘 찾아주긴 한다. 하지만, 내가 쓴 글을 나중에 찾을려면??? 진짜 쉽지 않다. 작년부터 간간히 뜬금포라는 제목의 글을 쓰고 있지만 내 타임라인을 다 뒤져도 도무지 나타나질 않는다. 잘한다, 주커버그 -_-
오늘 이 주제와 관련해서 두 개의 좋은 글을 읽고 한 참을 생각해 보았다.
- 슬로우뉴스: 페이스북, ‘좋아요’만 있는 멋진 신세계 http://slownews.kr/32633
- 얼리어답터: 페이스북, ‘좋아요’만 있는 멋진 신세계 http://www.earlyadopter.co.kr/8264
페이스북 노트는 끝까지 a href /a 따위는 지원하지 않을 생각인 것 같다. 잘한다, 주커버그(2) -_-
두 의견 모두 나름 합리적 근거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하다 의외의 부분을 둘 다 언급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페이스북은 정말 지금 이 순간을 중시하는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지만, 업로드한 이미지 만큼은 기가막히게 관리해준다. 원래 만든 이유가 여대생 인물평이었다 카더라는 낭설이 떠도는 건 다 이유가 있는 거다. 결국 페이스북 시스템은 두루마리 풀리듯 흘러가는 타임라인에 쓴 텍스트는 시간이 지나면 그닥 쓸모 없는 '잡담'으로 치부하지만, 이미지 만큼은 두고 두고 찾아보고 관리할 수 있는 소중한 정보로 여기는 공간이다. 뿐만 아니다. 내 스스로가 페이스북을 사용하며 느끼는 것이지만 사람들의 집중도 좋아요가 달리는 횟수등을 고려하면 이미지는 다른 모든 정보를 압도한다. 각 언론사가 카드 뉴스를 도입한 이유도, 별 쓸데 없어 보이는 페이지들이 자극적인 사진을 꾸준히 올려대는 이유도 다 이런 시스템에서 기인한다. 페이스북은 사실 이미지 마이닝을 위한 쉐도우 프로젝트였다는 음모론이라도 엮어보고 싶어진다.
했던 말 또 하고 했던 말 또하는 건 좀 그렇지만, 일전에 어떤 바이올리니스트가 뉴욕 지하철에서 연주를 했는데 사람들이 그냥 쌩쌩지나가더라는 소릴 들었을 때 나는 "당연하지, 그 바쁜 와중에 연주 같은 거 누가 신경쓰냐? 주말 인사동 골목에 가면 아무리 연주가 형편 없어도 사람들이 박수만 잘 쳐 주더라"하는 뜬금포를 날린 적이 있다. (그 글 못 찾았다. 도무지 안보인다. 잘한다. 주커버그(3) ) 그러면서 사람들이 은행 창구 앞에서 얌전히 앉아 차례를 기다리는 건 드높은 공중도덕 덕분이 아니라 번호표 기계 때문이란 소리도 했더랬다. 공간, 그리고 배치는 사람들의 행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이번에 성남에서 일어난 안타까운 환풍구 사고도 따지고 보면 무대의 배치와 환풍구의 위치가 사고의 주된 원인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한다. 페이스북이라는 공간은 어떨까? 좋아요는 어떤 배치를 가지고 있나?
나는 무엇보다 좋아요 버튼이 귀찮은 타자질을 대신해 "어, 나 니글 읽었다. 공감" 또는 "그림 좋네"라는 소리를 한 번에 해결해 주는 장치라고 생각한다. 모바일에서 무언가를 쓴다는 건 사실 매우 귀찮은 작업이다. 버튼 하나로 그걸 대신해주니까 사람들은 타임라인을 쭉 보다가 좋아요 한 번 눌러준다. 이 부분에서 만큼은 페이스북이 여타 SNS 특히 트위터에 비해 확연히 달라지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좋아요 버튼은 양가적인데, 트위터의 RT가 어쨌든 본인의 계정이름으로 공개된다면 좋아요 버튼은 누가 눌렀는 지를 일일이 확인하기 전엔 알 수 없도록 만든다. 그저 몇 명이 눌렀는 지를 계량화해 줄 뿐이다. 분명 장단점이 있다. 사용자가 반쯤 익명인 상태에서 동감을 나타낼 수도 있는 장치가 되기도 하고, 정보 제공자에게 특정한 종류의 정보를 더 생산하도록 무지막지한 압력을 가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경향신문 페이스북 지기의 기가막힌 짤방 솜씨는 점점 정교하게 진화하는 중이다...
분명 관계를 맺고 있다고 하는데 그 관계가 그저 좋아요 횟수로 표현되는 피상적인 관계 이상을 넘지 못한다면 그것은 당연히 시스템의 결함 가운데 하나이다. 하지만, 실제 생활 역시 바로 옆집에서 누가 사는 지 죽는 지 전혀 알 수 없는 공간 배치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고려하면, 그나마 현실보다는 강력한 소통의 도구임에도 분명하다.
몇 가지 페이스북 그룹에서 함께 활동하고 있는 나로서는 이 점은 앞으로도 큰 고민거리이긴 하다. 1) 애초에 갖고 있는 사용자간 정보의 비대칭성 문제는 그렇다고 하더라도 일단 생성된 정보를 공유할 때 어떻게 보다 소통을 강화할 수 있을 것인가? 2) 자칫 좋아요 한 번 누르고 피상적인 관계만을 맺고 마는 관계만이 넘쳐날 수 밖에 없는 페이스북의 시스템적 문제를 극복하고 서로 보다 진전된 관계를 맺으려면 어찌할 것인가? 버리고 딴 데 가는 거 말고... 3) SNS가 무슨 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다느니 하는 건 내 생각엔 과장이, 그것도 엄청난 과장이 존재한다. 아랍의 봄에서 SNS는 큰 일을 도왔다는 것에 동의하지만 혁명은 사람들이 한거다. SNS가 한게 아니라... 하지만, 내가 지금 하고자 하는 일에서 온라인에서 만난 사람을 어떻게 오프라인에서도 함께 하도록 할 것인가. 이건 정말 절박한 과제인데, 베트남 빈호아 초등학교에 보낼 장학금 모금 속도가 너무나도 더디기 때문이다.
생각은 열심히 하는데 답은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