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만년 만에 뜬금포 - 공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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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만년 만에 뜬금포 - 공화

백만년 만에 뜬금포 - 공화.

집에서 쉬며 덕질 마무리하고 앉아서 잡생각 중이다. 최근 떠도는 말 가운데 “공화주의”를 생각해 본다.

맥락을 잃은 인용문은 늘 위험하다. 공화주의 역시 그렇다. 유신시기 집권당의 이름이 “공화당”이었다는 걸 늘 상기할 필요가 있다. 우리 헌법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임을 선언하고 있더라도 “공화국”은 한 때 매우 불온한 말이었다. 그건 이북의 다른 말이었으니까.

그렇더라도 공화는 참으로 멋진 말이다. “민국”이라고 하면 중국 사람들에겐 쑨원의 그 민국을 뜻한다. 중화민국이 수립되자 인천 조계지엔 멋들어진 요리집이 들어선다. “공화춘.”

아는 사람 다 아는 이야기지만 공화란 말은 주나라 여왕(성별이 아니라 이름이 여)이 쫓겨나고 다음 왕이 설 때까지 쓰였던 연호이다. 사마천의 설명. 다른 책의 공나라 화씨 운운은 믿기 어렵다. 왕 없는 정치를 공화라 했으니 근대에 이르러 Republic 이란 말을 들었을 때 공화로 번안한 것은 너무나 당연할수도.

근대 이전의 공화정은 사실 민주주의와는 별 관련 없었다. 그들이 왕의 통치를 부정했다고 만민 평등을 인정했냐고 하면 천만의 말씀이다. 마키아벨리가 꿈꾸어 마지 않은 피렌체의 공화정은 물론 과두정을 의미했다. 피렌체에서 베네치아에서 이루어진 공화정은 결국 껍데기만 남게 될 때까지 어쨌든 과두정에 의해 운영되었다.

공화정이 민주정과 결합된 것은 미국 혁명의 결과이다. 정치적 이유에서 미국의 독립을 지원한 프랑스는 당시 절대군주제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영국이 미국의 독립을 인정 한 몇 년 뒤 프랑스는 국왕을 단두대로 보냈다. 성공을 맛본 민중의 힘은 매우 강했다. 아무튼 그리하여 지상에 최초로 민주공화국이 탄생하였다. 그 이후에야 공화주의와 민주주의는 한 묶음이 되었다. 3대 세습이 이루어진 어디도 민주와 공화를 국체로 한다는 건 잠시 넘어가보자.

내가 공화주의란 말을 처음 들은 건 빠리의 택시운전사를 접고 귀국하신 홍세화 선생님의 글들이었다. 홍세화 선생님은 공화주의의 기본 원칙과 똘레랑스가 없이 한국 사회의 진전은 어렵다고 여러 차례 강조하였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간단히 공화주의란 사회를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으로 나누고 사적 영역에서 인권의 보장과 공적 영역에서 법률의 지배를 실현코자 하는 이념이다. 이게 이해하기 어렵다는 사람은 공직에 있으면 안된다.

누가 언제 왜 말하느냐에 따라 말의 의미가 달라진다. 그래서 홍세화 선생님이 호출한 공화주의와 유승민 김무성 전원책의 언명은 자뭇 다른 맥락을 갖는다. 그래서 “공화”에게 무척 미안해 지는 요즘이다. 사적인 영역인 성적 정체성은 공중 앞에서 까발려져 비난받고 공적 영역인 사법 농단 양승태의 집은 사생활을 핑계로 영장 기각인 나라의 공화주의라.... 그냥 공화춘 라면이나 먹을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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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참고[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