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에 대한 잡다한 생각

1 개요[ | ]

민주주의에 대한 잡다한 생각
  • 저자: Jjw
  • 2013-07-20

몇 일전 현국성이랑 이야기하다가 민주주의에 대해 뭔가 할 말은 있는데 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내 단기 기억은 파란물고기 도리와 동급이라 엇 하고 지나간 건 잊어버리기 때문에... 뒤죽박죽 일단 적고 본다. 뒤죽박죽이니까 출처도 혼미하고 어디까지가 내 생각이고 어디부터 인용인지도 구분이 없다. 뭐, 논문쓰자는 것도 아닌데 어떠랴.

2 오용 사례[ | ]

민주주의란 말은 여러 상황에서 참으로 다양한 뜻으로 쓰인다. 예를 들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말할 때 민주주의는 특정한 정치 체제를 가리킨다. 한편 "분쟁의 해결을 위해 민주적 절차에 따라 의견을 구한다."라고 할 때 민주주의는 의사결정의 방식을 뜻한다. 한편, "민주 시민으로서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소양을 갖게하고.."와 같은 말에서는 특정한 생활 양식을 뜻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다양한 "사용법"의 바탕에는 민주주의에 대한 여러 정의와 암묵적 가정, 공리 등으로 구성된 철학이 바탕을 이루고 있다. 하지만, 각각의 경우에서 민주라는 말이 뜻하는 바는 조금씩 차이가 있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는 서로 민주를 말하면서 전혀 다른 소리를 하는 경우도 있기 마련이다. 비트겐슈타인식으로 말하면 전혀 다른 상황에서 의미를 잘못 유추하여 사용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오류라고 할 것이다.

민주주의의 오용에 대한 간단한 예를 들어보면,

  • 의견이 일치하지 않으면 다수결로 정하는 것이 민주주의 이다.
꼭 그렇지만은 않다. 예를 들어 신념의 선택은 다수결로 정할 수 없다. 어느날 특정 종교를 대한민국의 국교로 삼자고 국민투표를 한다고 하면, 그것은 다수결을 빙자한 폭력이 될 수 있다.(수도 서울을 자신의 신앙 대상에게 봉헌한 누구가 생각나지만.. 패쓰)
  • 민주주의가 의미하는 평등은 기회의 평등으로 충분하다.
이 것은 매우 불합리하다. 실제 세상은 삼신할매 렌덤빨의 결과 어떤 사람에겐 태어나자 마자 로또 1등을 한 다섯 번쯤 몰아주는데, 애초에 무차별적 기회의 평등이란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 그러면 무차별적 결과의 평등은?
그것은 원시 공동체에서나 가능한 소리다. 사회의 유지를 위해 필수적으로 분업이 필요한 현대 사회에서 무차별적 결과의 평등을 강조하면 사회가 유지가 안된다.(최악의 사례로 중국의 문혁이나 크메르 루즈의 반지식 운동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기타 민주주의적 요소라고 일컬어지는 자유와 규제, 권리와 의무 등에서도 평등의 경우와 같은 오류를 쉽게 찾을 수 있다.(더 이상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3 암묵적 가정[ | ]

민주주의라는 말을 설명하기 위해선 많은 용어가 필요하며 우리는 이것을 모두 정의할 수는 없다. 사실 말로 설명하는 모든 게 다 그렇기 마련이다. A를 설명하기 위해 B라는 말을 쓰고 B라는 말을 위해 C를 쓰고... 끝도 없이 이어지기 마련이다. 따라서 가장 기초적인 것은 모두가 알고 있다고 가정할 수 밖에 없다. 워낙 정치 사상마다 민주주의를 자기들 편한 대로 갖다 붙이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선 기초적 가정부터 어긋나는 매우 난감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하지만 ( 3대 째 아버지에서 아들로 '최고 존엄'의 자리를 물려주는 어떤 나라는 자신들도 민주주의 공화국이라고 한다더라..) 대다수가 인정할 수 있는 가정을 몇 가지 나열하면,

  • 민주주의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상호 작용에 관계하는 당위적 가치이다.
이 경우 상호 작용의 주체가 되는 사람은 '개인'이다. 개인이 행하지 않은 일은 책임도 묻지 않는다. 그러니까 연좌제 같은 게 살아있는 사회는 민주 사회가 아니다.
당위는 두 가지 의미를 포함한다. 하나는 그것이 '선하다'는 윤리적 가치를 내포하고, 다른 하나는 그것을 따를 것을 '권위적'으로 강제한다는 의미이다. 이른바 '반민주 세력'은 반윤리적이라는 지탄의 대상이자 상호 작용에서 배재되어야 할 축출의 대상이 된다.
  • 민주주의에서 개인의 존엄은 모두 동등하다.
상호 관계에서 특수 신분의 불인정은 민주주의의 핵심 요소이다. 입헌군주제의 군주라 할 지라도 교통법규를 위반하면 딱지를 끊어야 한다는 소리다. (또한, 민주사회라면 '최고 존엄'과 같은 것은 존재할 수 없다는 소리기도 하다.)
권리의 주장에서 개인이 갖는 능력차는 고려되지 않는다. 휠체어 없이는 이동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할 지라도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 (반면, 의무의 이행에서는 개인의 능력차가 고려되는 데 이것은 나중에 얘기하자.)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인 자유와 평등, 그리고 자연권으로서의 인권은 모두 이 가정에서 출발한다.
  • 민주주의는 구성원 모두가 의사 결정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가정한다.
이 때문에 대의민주주의는 언제나 여러 사정상 모두가 의사 결정에 참여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변명'이 따라 다닌다.
각 개인의 존엄이 동등하기 때문에 구성원 각자는 모두 동등한 '수량'의 의사 결정권을 갖는다.
현실에선 이익이 충돌하는 집단이 의사 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하지만, 개인의 의사 결정 권리를 본질적으로 훼손하여서는 안 된다. 이는 단순히 참정권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이민, 망명, 체제에 대한 반대 등에 대한 인정을 포함한다.
다만, 개인의 의사 결정은 당연히 민주주의가 가정하는 다른 가치를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유효하다. 당연한 소리지만, 따라서 특정 종교를 강요하거나 다른 개인의 존엄을 훼손하는 (예를 들어 아파르트헤이트 라거나) 의사 결정은 그것이 다수결이라 할 지라도 다른 구성원들에 의해 거부될 수 있다.
  • 민주주의는 개인 또는 집단 사이에 도저히 일치 될 수 없는 의견 차이가 있음을 전제로 한다.
개인 또는 집단 사이의 모든 의견이 일치된다면 그냥 지도자의 영도에 따라 행동만 하면 되겠지만 그런 상황은 불가능하다.(그러니까 스딸린 녀석이 당당히 주장한 무모순 사회는 그냥 히틀러 동급이 된다.)
현실적으로 인간 사이에는 종교나 철학 등의 신념, 경제적 이해 관계, 사회적 관계(예를 들어 부모 자식 관계) 기타 등등 도저히 일치 될 수 없는 차이가 존재한다.
민주주의는 이러한 불일치를 해소하기 위해 만들어진 게 아니다. 서로 다른 의견의 충돌을 되도록 평화롭게 해결하는데 목적이 있다. 결국 서로 다르지만 타협해야 어쨌든 사회가 굴러가지 않느냐는 것을 전제로 한다.
나의 안토니가 말한 바에 따르면 현실에서는 이러한 타협의 결과 "헤게모니"가 형성된다. 그러니까 타협이 언제나 공정한 것은 아니란 소리다. 아무리 비타협적 투쟁이 이어진다고 해도, 그래도 언젠가는 타협해야 한다.(아니면 내전뿐이니까, 그리고 그렇게 얻는 게 그냥 타협한 거 보다 더 나으리라는 보장도 없기 때문에)

이건 순전히 개인적인 생각인데, 모순이라고 부르던, 갈등이라고 부르던 이러한 불일치는 특정 집단을 몽땅 없앤다고 해결 될 수 있는 게 아니다. 사회의 불일치 자체가 워낙 다양한 방면에서 독립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자본가/노동자 대립이 거의 의미없을 정도로 해결된다고 덩달아 인종 갈등이나 성적 소수자에 대한 차별 장애인 차별 등등이 저절로 해결되지는 않는다. 그냥 가장 눈에 띄는 문제만 해결하면 된다고 주장하는 집단은 사실 스스로 무능력하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 민주주의에서 주장되는 사회적 당위는 잠정적이며, 절대적 진리 또는 선은 부정된다.
따라서 국교를 인정하지 않는다.
어떤 것이 절대적이라고 주장할 수 없기 때문에 각자의 주장은 잠정적으로만 인정되며, 의사 결정 과정에서 채택된 것이라 할 지라도 언제든 다시 수정하거나 폐지될 수 있다.
물론 이 경우에도 각 개인의 신념 자체를 평가할 수는 없다. 평가할 수 있는 것은 어떠한 행동을 하기로 하거나 금지하기로 한 규범일 뿐이다.
예를 들어 나체로 다닐 수 있는 권리 같은 걸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 사람의 주장 자체는 평가의 대상이 아니다. 다른 사람들이 그런 행동으로 인해 자신의 권리(안 볼 건 좀 안 보고 살 권리)를 침해 받았다고 여기는 지가 중요하며, 그 결과 나체 통행을 금지하는 규범을 만들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잠정적인 결정에 불과하다.

4 체제[ | ]

민주주의는 무엇보다 우선 정치 체제이다. 그런데, 현실에 등장하는 체제는 그것이 어떤 것이던 결국 이념 자체가 아니라 현실에 존재하는 여러 상호 관계 속에서 적당히 타협하고 적당히 짜집기한 "인스턴트"일 뿐이다. 장하준 식으로 말하면 세상 어디에도 완벽한 자유무역이 존재할 수 없듯이 완벽한 민주주의 제체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저 나라에선 어떻게 하는 지 같은 걸 얘기하는 것은 사실 이 나라에서 무얼 어떻게 바꿨으면 좋겠다는 소리지 그대로 따라하잔 소리가 될 수는 없다. 흔히 말하는 어디식 모델 같은 건 결국 여기식 모델의 일부로서만 작동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민주주의 체제라는 소리를 들으려면 몇가지 기본 사항은 좀 지켜야 한다. 가장 기본적인 것만 나열하면,

  • 우선 법치 국가여야 한다.
  • 권력 기관의 권한과 책임은 명확하여야 하며 서로 견제가 가능하여야 한다.
  • 구성원의 본질적인 권리는 침해받을 수 없다.

글이 너무 길어지는 관계로 지금의 상황만을 놓고 보면,

  • 입법자 스스로 법을 어기면서도 아무렇지도 않다고 생각하고, 행정부 스스로 법을 어기면서도 당연하게 여기는 곳은 이미 법치의 근간이 무너진 곳이다. 민주주의 체제의 가장 핵심인 참정권을 권력기관이 훼손하고도 아무런 문책없이 지나가는 건 이미 민주주의는 거진 망가졌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 입법 기관이 행정부를 견제하지 못하는 상황이 된다면 자정능력을 상실한 것이다. 무슨 주장을 하다가도 청와대에서 말 한마디만 나오면 언제 그랬냐는듯 말이 달라지는 일이 반복되는 것을 보면 우리 나라는 이미 자정 능력은 상실한 것으로 보인다.
  • 개개인의 자유를 규제하는 이유는 그것이 다른 개인의 권리를 침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개인의 모든 행위는 다른 개인이 주장할 수 있는 권리를 침해한다. 하다 못해 내가 전기를 많이 써서 전력 예비율을 바닥으로 만들면 옆집 사람은 전기를 맘대로 못쓰게 되는 것이다. 이 경우엔 전기를 많이 쓰는 사람은 전기료를 엄청나게 내도록 만들 수 있는 이유가 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각자 개인이 갖는 권리의 본질을 침해할 수는 없다. 이 경우엔 최소한 필수적인 전기는 공급받을 수 있는 권리가 될 것이다. 표현의 자유 역시 마찬가지인데, 촛불들고 길막으면 당연히 도로를 이용하는 다른 사람들에게 방해가 되기 마련이다. 따라서 교통의 흐름을 완전히 끊지 않도록 할 필요는 있다. 이 경우엔 경찰이 알아서 우회 표지를 세우고 교통지도를 하는 일이 될 것이다. 그런데, 이를 빌미로 개인의 본질적 권리인 정치적 의사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적 원칙을 무너뜨리는 일이 된다.
  • 그런데도 안 바뀌면?
이렇게 개판인데도 정부 지지율이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면, 지금까지 열거한 민주주의의 암묵적 가정에 따라 정부가 문제가 아니라 비판자가 문제다. 뭔가 헛발질을 하고 있으니 사람들이 안쳐다본다고 생각해야 맞다. 가장 무식한 짓 가운데 하나가 "국민들이 민도가 낮아서 이모양" 이라고 국민 탓 하는 거다. 도대체 누구한테 표 받을 생각인데?

쓰다보니 너무 길어져서 여기까지. 다음에 혹시나 또 이런 뻘 글을 쓸 기회가 있으면 자유와 평등에 대해서...

5 같이 보기[ | ]

6 참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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