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산에

GangSanE

# 하루아침[ | ]

 

나에게 있어 강산에는 그다지 기분좋은 아티스트가 아니었다. 그의 히트곡 '라구요'에는 '내 어머니 레파토리/그 중에 18번이기 때문에, 18번이기 때문에/남은 인생 남았으면 얼마나 남았겠니 하시고/눈물로 지새우시던 내 어머니'라는 가사가 담겨있다. 그가 '18번'이라는 말의 유래를 알고 사용하진 않았겠지만 아무래도 역사적으로 일본인들에 의해 생긴 부정적인 말을 대중음악 가사에서 사용한다는 것 자체가 귀에 거슬렸기 때문이다. 이것은 지금도 그러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꾸준히 음반을 내고 저력있는 가사를 담아 힘있는 락음악을 하고있는 그에게서 관심을 지울 수는 없었다. 그리고 얼마전에 내놓은 '강영걸(2002)'에서도 그는 지치지않는 실험을 계속해왔으니 그는 인디씬을 제외한다면 가장 당당하게 음악활동을 하는 음악인 중 하나일 것이다.
그에 대해 인식을 완전히 바꿀 수 밖에 없었던 계기는 이 짧은 리메이크 음반 '하루아침(1999)'이다.

가수경력 십년이상 되는 싱어송라이터라면 다들 리메이크 음반을 하나씩 생각하곤 하는데 사실 다른 이의 곡을 자신의 스타일로 재해석한다는 것은 그다지 쉬운 일이 아니다. 대부분의 리메이크 음반은 명반대접을 별로 받지 못한다. 하지만 이 음반은 다르다.
이 음반은 두 부분으로 정확하게 나눌 수 있다. 8곡 중에 갑돌이와 갑순이,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 쾌지나 칭칭나네, 도라지 이렇게 네곡은 DJ 달파란이 프로듀싱을 했고 나머지 네곡은 강산에의 오랜 음악적 동료 카스가 '하찌' 히로부미春日博文가 프로듀싱을 했기 때문이다. 강산에는 달파란과 함께 실험을 하고 싶었고 자신의 스타일 또한 반영한 리메이크 음반을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가벼운 보험에 들어 둔 것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먼저 하찌가 프로듀싱한 곡들을 살펴보자. 첫곡 '우연히'는 이정선의 곡이다. 얼마전에 재발매되었다가 또 희귀음반이 되어버린 '30대(1987)'수록곡인데 소박한 사랑노래였던 것이 강산에가 불러서 바로 힘있는 구애곡이 되었다. 그의 구음 박자넣기가 인상적이다. 세번째, 네번째 곡은 한대수의 '하루아침'과 '물좀주소'. 모두 불멸의 명곡으로 남은 이 곡들에서 강산에는 한대수 특유의 털털한 민초적 저항의 이미지를 잘 살리고 있다. '물좀주소'에서는 훵키한 연주를 가미해서 원곡의 신랄함을 더욱 풍자적으로 만들었다. 여섯번째 곡 '제비꽃'은 조동진의 명곡으로 이 곡은 다른 가수들이 불러야 더 제맛이다. 장필순이 부른 버젼도 너무나 살갑고 좋았는데 강산에가 소박하게 부른 버젼도 원곡의 맛을 잘 살리고 있다.

달파란이 프로듀싱한 부분은 당연히 일렉트로닉스 반주가 깔려있다. 달파란은 주로 덥dub 스타일이나 몽롱한 테크노 사운드를 만들어왔는데 강산에 또한 나른한 보컬을 연주 위에 실어 조화를 이루고 있다. '갑돌이와 갑순이'에서 강산에는 전래동화를 읽어주는 것 처럼 갑돌이와 갑순이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귀여운 노랫말이 이렇게 비극적 사랑얘기를 담고있는지 예전에는 미처 인식하지 못했는데, 몽롱한 일렉트로닉스 사운드로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절절하게 느껴진다니 놀라운 일이다.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는 산울림의 명곡인데 달파란은 이것을 언더월드Underworld 스타일의 질주하는 테크노 비트에 실었다. 마지막 두 곡 '쾌지나 칭칭나네'와 '도라지'까지 이 달파란 파트에 담긴 네곡 중 세곡의 원곡은 민요이다. 여기서 강산에의 선곡이 돋보이는데 우리의 농악은 분명 테크노적인 반복적 리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쾌지나 칭칭나네'의 테크노 연주는 원곡과는 전혀 다른 색깔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리드믹한 느낌을 잃지 않고있다. '도라지'는 이 음반에서 가장 나른한 곡으로 전체적으로는 그다지 어울리는 곡은 아니지만 음반 마지막을 조용히 마무리짓고 있어 나쁘지 않다.

중견 아티스트라면 강산에나 신해철처럼 자신의 경계를 실험해보는 자세는 갖추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강산에는 결코 실험적인 가수는 아니지만 항상 자신의 경계를 실험하고 있다. 이것은 전작 '연어(1998)'에 담긴 '코메디'나 이번 앨범 '강영걸(2002)'에 담긴 '명태', '와그라노'에서 확인할 수 있다. 유쾌하게 그의 실험에 동참할 수 있는 리메이크 앨범, 그것이 바로 이 '하루아침(1999)'이다. -- 거북이 2003-3-1 11:58

  1. 우연히 (작사:이정선, 작곡:이정선) 3:30
  2. 갑돌이와 갑순이 4:28
  3. 하루아침 (작사:한대수, 작곡:한대수) 4:41
  4. 물좀주소 (작사:한대수, 작곡:한대수) 3:50
  5.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 (작사:김창완, 작곡:김창완) 4:52
  6. 제비꽃 (작사:조동진, 작곡:조동진) 4:19
  7. 쾌지나 칭칭나네 4:50
  8. 도라지 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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