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KnowWhatILike

1 # I Know what I Like[편집]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고 있기 때문에 나는 운좋은 사람이다. 제네시스 노래 중에 I know what I like라고 있는데 그것에 딱 맞는 케이스라 하겠다. 신해철 노래에는 '니가 진짜로 원하는게 머야'라는 곡도 있는데 거기에는 '그나이를 처먹도록 그걸하나 몰라'라는 신랄한 후렴구가 담겨있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그 말에 찔릴게 하나 없다라고 굳게 믿고있다. 굳게 믿고있기에 후배들과 얘기하다보면 조언 내지는 자랑삼아 좋아하는 것을 찾아라라고 말해왔다. 마치 내가 이미 찾은 것인양.

그런데 오늘 버스를 타고가다가 좋아한다는게 뭐지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까 어린이날이랍시고 고모와 사촌동생과 함께 서울랜드에 갔었는데 이 녀석이 짜장면을 먹고싶다고 해놓구선 조금 먹다가 배부르다고 안먹어버린 사건(?)도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그 녀석은 실제로 짜장면이 좋아서 내지는 먹고싶어서가 아니라 옆사람이 먹고있던 짜장면 냄새에 낚여서 졸라댔던 것이다.

좋아하게 된다는 것은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내부의 원인과 외부의 원인으로 나뉘는 것 같다. 체질적으로 단것을 더 많이 먹어야 하는 사람과 술을 못먹는 사람이 있는 것이니 이런 것은 내부의 원인이겠고, 현대음악이나 한시는 상당한 훈련을 쌓기 전에는 좋아하기 어려운 것이니 그것은 외부의 원인이라 할 수 있을게다. 물론 이 두가지가 명백하게 나뉘는 것은 아니다.

나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있는지 알고있기 때문에 그것이 어떤 것들이라는 것의 경향을 대충 말할 수 있다.

  • 뭔가 좀 다르고 특이한 것 : 정규분포에서 앞쪽 5% 정도 내에 있는 특이값들이라고 해도 좋겠다
  • 내적 통일성이 있는 것 : 뭔가 하나의 세계가 구축된 상태, 누락과 중복이 없는 상태, 일관성이 있는 상태, 논리적인 것, 분류가 잘 되어 비순차적 접근(random access)이 가능한 상태
  • 오래가는 것 : 복잡하지만 금방 고장나는 것보다는 단순해도 오래 쓸 수 있는 것, 지속가능한 개발, 시간이 흘러도 곱씹을 수 있는 고전

나는 이런 것들을 '아름답다'라고 여기는 것 같다. 이중 특이한 것을 좋아한다는 건 왜인지 모르겠다. 뭔가 다른 사람보다 튀고싶다는 욕망인건지. 아니면 불규칙적으로 그런 유전자를 가진 인간이 태어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어쨌거나 이런 성향이 있기 때문에 나는 특이한 것을 좋아하는 훈련(?)을 하게되었고 내가 좋아하는 음악, 만화, 그림, 책 등은 이런 취향을 반영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이건 내부의 원인과 외부의 원인이 함께 작용한 것일게다.

하지만 뭔가 통일된 것을 좋아하고 오래가는 것을 좋아하는 것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성같기도 하다. 책장정리를 싫어하는 사람도 방정리나 설겆이 정도는 하고살지 않는가. 오래가는 것도 마찬가지다. 누가 금방 고장나는 것을 좋아하겠는가. 물론 이런 성향에 특이한 것을 좋아하는 성향이 복잡하게 뒤섞여서 내게는 남들과 좀 다른 결과가 나타났지만 말이다.

어쩌면 내가 자본주의를 별로 안좋아하는 것은 내가 좋아하는 것에 자본주의가 반하는 면들이 있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자본주의는 특이한 것 보다는 대중적인 것(=거대시장)을, 통일성을 가지기 보다는 중복적이고 비효율적인 소비를, 오래가는 것 보다는 빨리 물건이 고장나서 소비가 촉진되기를 바라니까 말이다. 자본주의는 효율적인 생산과 비효율적인 소비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참으로 변태적인 시스템이다. 아니다. 효율적인 생산과 '효율적인 소비'를 추구하는 것이니 일관성이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미국인들은 다른 지구인들에 비해 너무나 효과적으로 지구의 자원을 소비해버리지 않는가.

좋아하는 것과 욕망은 비슷하면서도 묘하게 다른 무엇이 있는것 같다. 정말 좋아하기 위해서는 욕망이 적절히 절제되어야 한다.

매춘업소에는 절대 가지 않겠다라고 생각하고 있는 주제에 나는 가끔 포르노를 본다. 포르노는 분명 매춘의 확장태인데도 말이다. 포르노를 보다가 자위를 할 때도 있는데 이것은 욕망의 분출이지만, 사실 이것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욕망을 긍정하는 편이므로 이것을 수치스럽게 여기거나 하는 것은 아니나 가끔 참을 수 없는 구차함이 치밀어올라 토트가 나를 안쓰럽게 여기곤 한다. 왜 구도자들이 가끔 자기 똘똘이를 자르는지 알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자위를 하고나면 시원하다는 기분보다는 아무래도 뭐같은 기분이 더 많이 든다.

음악을 좋아하니 당연히 음반 구입도 좋아하는 나는 싼 음반을 파는 매장을 간다거나 괜찮은 아이템들을 염가세일하는 것을 보면 이성을 잃는 일이 있다. 하지만 이성을 잃은 상태로 음반을 사다보면 분명 후회를 한다. 이건 좋아하는 마음이 욕망을 통해 표출된 것이긴 하지만 이 시점에서는 분명 좋아하는 것을 넘어서 좋아하지 않는 상태가 된 것이다. 음반이 많아지는 것은 좋아하는 것이나 음반 정리하는 일과 음반 보관하는 일이 장난 아니게 되어 역시 좋아하지 않는 상태가 되어버린다. 무절제한 욕망 분출은 즐겁지 않다.

욕망의 조절이 필수적이라는 것은 분명 인정할 수 있는데 어떤 수준의 욕망은 절제되어도 크게 슬프지 않지만 당췌 이뤄지지 않는데 그 욕망이 사라지지도 않으면 그건 좀 슬프다. 게다가 그 욕망이 익숙해지면 좋겠으나 익숙해지지도 않고 계속 유지되거나 강해진다면, 이것이야말로 정말 안습 상황이다. 얼마전에 뒤늦게 존말코비치되기라는 영화를 봤는데 여기는 팜므 파탈 여자 하나를 좋아하는 부부가 나온다. 이 부부는 여자 하나 때문에 서로 지지고 볶고 하는데 남자쪽인 존 쿠삭이 보여주는 욕망의 분출은 꽤 서글프다. 코미디 영화라서 웃고 넘어가지만 사실 조금만 생각해보면 많은 남자들의 현실이기에 편하게 웃기가 쉽지않다.

좋아한다는 것을 재미있다라고 바꿔서 표현해보면 나는 남들과 더욱 달라지게 된다. 다른 사람들은 쇼프로 보는 것이 재미있다고 하지만 나는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이 재미있다. 다른 사람들은 회식이 재미있다고 하지만 나는 사전을 들여다보면서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를 고민하는 것(즉, 업무 -_-)이 더 재미있다. 즉 재미라는 측면에서 나는 다른 사람들과 관점이 많이 다른 것 같다.

나에게 있어서 재미있다고 하는 것은 뭔가 생각할 꺼리를 접하고 그것을 곱씹거나 그것에 대해 누군가와 얘기하는 것인듯 하다. 웃었지만 웃고나서 공허해진다거나, 관계를 통해 무언가를 지향하는 것이 아닌 관계를 위한 관계맺기 이런 것은 싫고 재미없다. 즉 싫은 사람과 술먹기 싫다. 아직까지 나에겐 (외로움을 회피하기 위한) 관계보다는 내 관심사 쪽이 더 중요한 듯 싶다. 이건 쉽게 말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고 시간이 가면서 분명 바뀔 수도 있는 것이지만 현재까지는 그렇다. 사실 옛날에는 외로움을 느낄 여유조차없이 재미를 찾아 살아왔지만 지금은 분명히 예전에 비해 근원적 외로움이 많이 느껴지니까 앞으로는 정말 모를 일이다. 대신 나는 나와 관심사가 비슷하고 잘 통하는 사람을 찾는 것에 꽤 고생을 하고 있으며 또 꽤나 노력하고 있다. 이거 쉽지가 않다. 나름대로 대가를 지불하고 있는 것인지.

뭔가 생각이 분명해서 쓴 글은 아니고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한번 생각해보기 위해서 쓴 글이긴 한데 어쨌든 결론은 필요해보인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은 확실히 어느정도 알고있는 것 같고, 이것을 어떻게든 살려서 먹고사는 길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단지 내가 좋아하는 것과 나의 욕망 중에 담겨있는 과도한 측면을 어떻게 조절하면서 충족시킬 것인가라는 문제는 여전히 쉽지가 않다. 예를들어 나는 저작권이 너무 많이 지켜지는 것을 맘에 안들어하는데 이런 것은 확실히 좀 과도한 욕망이거든. 그런가하면 쉼표를네자리마다찍어라, 광고를흑백으로찍어라 혹은 연말정산을 개선해라 등 나는 사회적 합의에 오만가지 불만을 가지고 있다. 이런 사회적 욕망 혹은 개인적 욕망을 잘 조절하여 평화롭게 뭔가 하고픈 것을 즐기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근데 욕망 조절이 잘 되려나. 너무 이성적인 접근인가. -- 거북이 2007-5-11 7:03 am

2 # 촌평[편집]


거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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