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해록을쓸뻔하다

1 2007 08 04 토 : 표해록을 쓸 뻔 하다[ | ]

아침에 못일어났다. 일어나도 부페는 먹기 싫었으므로, 밖에 나가서 일단 요기를 하기로 했다. 아니나 다를까 밖에 나가자마자 식당이 세군데나 열었다. 이 나라는 우리나라 만큼이나 식당이 많은 것 같다. 계란 빵을 먹었다. 설렁설렁 금방도 만든다. 맛도괜찮고.

   

정말 뚝딱 만들어준다. 그리고 얘들은 밀크티를 참 많이 마시는듯.

일단 첫번째 세션을 들으러 갔는데 위키대학에 대한 것이었다. 내용은 형편없었다. 하긴 위키대학이 활성화되지 못한 프로젝트인지라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다른 방으로 갔는데 중국의 위키백과중 하나인 후동닷컴에 대한 것을 하고 있었다. 이거재미있는 프로젝트다. 내부적으로 커뮤니티적인 것을 잘 가꾸어놓았다. 한번 분석해 볼 필요가 있어보인다. 발표한 사람은후동닷컴의 대표였는데 날카로운 면이 보이는 샤프한 타입이었다. 이어서 한 것은 백과사전의 상업성이 어떻게 변해왔는가였는데 뭐이건 고만고만 했다.

   

어느 컨퍼런스나 잼난 녀석과 잼없는 녀석은 존재한다.

   

먹거리가 충만한 컨퍼런스. 왜 얘들은 이렇게 젤리류를 좋아할까.

두번째 세션은 워드 커닝햄을 보려고 갔다. 그는 자기의 소개대로 '가장 오래된 위키 사용자'이다. 당연하다, 그가 위키라는개념을 만들었으니까. 워드 커닝햄을 포함하여 너댓명이 나와 대담을 하는 거였는데, 재미가 없다. 솔직히 들리지도 않고. 그냥나갔다. 이 시간대에 하는 세션은 어째 들을만한게 하나도 없다.

   

이 양반이 위키라는 개념을 만들어낸 워드 커닝햄이다. 이름에 햄이 들어가서 그런가 좀 퉁퉁하다. ㅎㅎ

   

게시판. 전형적인 위키방식의 정보 축적이다. ㅎㅎ

그래서 계획대로 딴슈이행 전철을 탔다. 가다가 보니 강줄기도 보이고 뭐 그렇네.

   

꼬마녀석들도 나처럼 딴슈이까지 놀러가나보다. 대만의 주택 풍경은 일본과 참으로 닮아있다.

내려보니 별건 없는 동네였다. 구석구석 먹을건많고 재래시장도 있고 뭐 그렇네. 오늘 뭔가 축제를 하는건지 사람들이 이 삼복더위에 뭔가 껴입고 준비를 하고 있었다. Peace. -_-

   
   

고생이십니다 그려. 오후에는 폭우까지 왔으니 앞으로 더 고생하시겠구랴 -.-

   
   

어느나라든 재래시장은 참으로 정겨운데, 여기는 역시 중국이라 오만 잡동사니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거 같다. 얼음덩어리 위에 있는 저 생선들이 좀 부러울만한 날씨였다. 견과류 위에 돌고있는 실오라기는 나름 선풍기 역할 혹은 파리 퇴치기 역할을 하는 것이다. 워낙 더우니 최소한 저정도는 해야하는 것 같다. 마지막 오리발 닭발들은, 뭐랄까 먹고싶지 않은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하나 샘플을 집어먹었지만, 역시 쏠리더군.

여기서 가이드북에 써있는 먹거리인 아게이(阿給)을 먹었다. 보기에는 먹을만해 보이지 않았는데 먹으니 또 먹을만 하다. 유부 안에 당면 넣고 찐거다.

   

아게이와 아게이 만드는 재료. 중국에서 음식의 제조과정을 보는 것은 더욱 식욕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된다.

   

난 저렇게 큰 수세미는 처음 보았다. 별로 관계없어보이긴 하는데 이상하게 기념품 가게가 많았다.

   

쌀가게. 우리집이 옛날에 쌀집이었다. :-) 더워서 마신 음료수. 이것도 바닥에는 젤리가. -_-+

   

길거리에 난데없이 절인지 뭔지가 있다. 이런 것들도 일본이랑 비슷한 느낌이 있다.

이제 어딜갈까 하다가 해변과 선착장이 보이길래 대략 배를 탔다.

   

선착장 앞에도 역시 먹거리가 가득. 배를 기다리는데 옆에 있는 가게에서 이정현의 '바꿔'를 번안한 노래가 나오고 있었다. 테크노 여전사(-_-) 이정현은 이제 볼 수 없지만 그녀의 스피릿은 대만에서 따오판으로 살아남아 있었다.

가는 곳은 위런마터우(漁人碼頭)다. 배가 시원하게 달려가니기분이 좋더군.

   
 

열심히 달려가는 중이다. 오랜만에 배를 타니 좋구나.

그런데 정작 내리고나니 별로 볼것도 없다. 뭐 먹거리가 많다는데 가까운데는 없어보인다. 뭐 연인의 다리니 이런게 있지만 이건 관광객 끌려고 만든게 눈에 뻔히 보이고. 그래서 에이 그러고 돌아오는 배를 기다렸다.

   
   

저게 연인의 다리란다. 아래는 왠지 일본만화에서 많이 본 느낌의 개. 이미 날이 심상치 않았다.

그런데, 하늘이 꺼멓다. 저렇게 먹물 번지는 것처럼 움직이는 구름은 처음본다. 배 안에 들어가서 기둘리고 있으려니 비가 살짝내리기 시작한다. 이거 표해록을 읽으면서 온 여행이라 중국에서 배타고 비까지 맞아보는구나, 했는데...배가 코너를 꺾는 순간 비가 들이친다. 배가 방향을 바꾸자 바람이 빗물을 들어 배로 뿌려버린 것이다. 빗방울과 파도방울이 뒤섞여 짠물로 옷이 다 젖었다. 이런 젠장 하고 있었는데 이거 장난이 아니다. 파도 움직이는 것도 높고 비오는 양이 꽤 많다. 이거 표해록처럼 되는거아냐? 하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사실 밖은 장관이었다. 비오는 날의 바다는 무섭다. 죽을 고비를 몇번이나 넘기고 중국 땅에도착한 최부는 비오는 날의 바다가 얼마나 무서운지를 표해록에 자세히 기록했다. (하지만 그가 더 무섭게 기록한 것은 사람이었다.) 어쨌든 배 안은 오랜만의 모험을 겪게 된 청춘남녀들의 떠드는 소리로 왁자하다. 나는 파도와 비와 뿌연 공기를 열심히 구경하고 있었다.

   
   

내 사진실력이 형편없어서 그런데 저것보다 훨씬 심했다.

   

내가 비를 피해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것을 웃으며 지켜보던 꼬마 아가씨. 몇몇은 비를 피했고 몇몇은 포기었다. 아가씨 둘과 총각 하나가 한참 떠들고 있었는데 말은 못알아 듣지만 그 총각(오른쪽 뿔테안경)은 두 아가씨가 놀리는 것을 즐기고 있었다. 어느 곳이나 남녀관계란 다 똑같다.

어찌어찌 도착했는데 여전히 비가 쏟아진다. 열심히 뛰어서 가게 처마까지 갔지만 그 사이에 이미 게임은 끝났다. 옷이 정말로 다 젖었지만 더 맞을 수도 없으니 우산을 하나 샀다. 80원이라고 하던데 77원 있었다. -_- 아저씨가 보더니 그냥 받아간다. 그 옆에 가게에서 마저 비를 피하다가 그냥 요기나 하기로 했다. 짜장면 냄새가 나는 면을 시켰는데 짜장면 맛은 아니었다.이름은 초면(抄麵)이더군. 그리고 나오는 길에 이상한 이동네 특산물이라는 계란과 메추리알을 샀다. 도대체 어떻게 만든건지 시커멓다. 이것은 철단(鐵蛋)이라는 녀석으로 아직 안먹었다.

   

폭우가 안찍히는게 유감이다. 저것이 그닥 맛나진 않은 초면.

우산쓰고 열심히 역으로 돌아와 숙소로 왔다. 비에 젖은 생쥐가 되었네. 보니까 라따뚜이를 개봉하는지 광고가 있던데 제목이 요리서왕(料理鼠王)이더군. 저렇게 작명하는 것도 나름 괜찮은 듯 싶다. 한자문화권의 1+1, 2+2, 4+4에 대한 집착은 참 독특한 면이 있다. 근대 이전까지의 단어 조합은 거의 저런 식이었고, 한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지금은 단어 조합할 때 좀 더 다양한 방식이 있지만 여전히 저런 글자수를 지향한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사자성어를 좋아하지 않는가. 언능 들어와서 씻었다.

아까 게시판에서 일본인 참여자들은 한번 모입시다, 라는 게시물을 봐서 끼어보기로 했다. 한국인은 나 혼자고 또 일본의 위키인을알게되는 것도 좋겠다 싶어서 갔는데 조금 썰렁하긴 하더라. 일본인들도 다 따로 온 처지라 서로 명함을 돌리고 있었다. 어쨌거나 간단한 인사를 하고 파티장으로 함께 갔다.

   

증거사진을 하나 남겨봤다. 그런데 날 찍어준 왜놈은 어떻게 찍은건지 저렇게 다리를 짧게 만들었다. 불만이 있었나보다. -_-a

이 위키 컨퍼런스는 국제 컨퍼런스라 기본적으로 양키식이다. 양키들은 마지막 날 이브에 파티를 하나보다. 파티는 시먼역에 있는 홍루극장에서 했는데 꽤 넓은 장소이고, 파티하기에 딱 좋은 사이즈의 건물이었다. 음식준비도 잘 되어있고 여러가지로 부족함이없었으나 무슨 그지같은 영화를 틀면서 나오던 테크노 트랙들은 썩 좋진 않았다. 아까 만났던 일본인 중 한 명이 테크노에 맞춰막춤을 추고 있었다. 어이쿠.

   
   

먹을건 많다.

파티에서 가장 부족한 것은 나였다. 영어도 안돼, 파티도 별로야, 보기에 참으로 평범해, 남자야 뭐 이런 점들이 결합되어 다른사람들과 농담을 할 수가 없었다. 하다못해 여자였으면 누군가가 말이라도 걸어왔을걸. ㅎㅎ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사람들관찰을 하다가 나와버렸다. 여기서 가까운 곳에 화시지에 시장이 있으니 가기로 했다.

   

다양한 유니폼을 파는 가게인데, 가게 이름이 '슈퍼맨의 전화부스'라니 그 센스에 +20점 주고 싶다. 대만은 지금도 우리처럼 징병제를 시행하는 나라라 그런지 밀리터리 룩도 많다. 나랑 음반에 대해 얘기했던 젊은 총각이 지금 입대한지라 만날 수가 없었다. 대만의 병역기간는 1년 반.

   

화시지에 시장. 이제 시작이다. 코코넛 한 녀석을 마셨다.

화시지에는 정말 시장통이다. 안파는게 없다. 애들 장난감부터 딜도까지, 웃도리부터 빤쓰까지 다 판다. 야자열매 하나 사먹고 나왔다.

   

먹는것 뿐 아니라 야시장인만큼 다양한 엔터테인먼트도 있다. 공던지기, 빠찡꼬, 물고기 잡기 등등

   

쥐포. 쥐포가 왜 이렇게 커. -_- 여긴 가끔 스케일이 황당한 음식들이 많다. 길거리에서 파는 얘네들 음료수의 기본 사이즈는 700ml다. 오른쪽은 재미나게 생긴 감자칩.

   

용산사 앞에서 왠 국회의원 한 녀석이 가두연설을 하고 있었다. 사람이 많이 모여있다. 듣자하니 대만 정치도 개판이라고. ㅎㅎ

숙소인 지엔탄 역에서 내리면 스린 야시장이 있다. 여기서 밀크티나 사가야지 하고 들렀는데 들린 김에 다른 상가쪽도 가보기로했다. 그동안 평일에만 봐서 몰랐는데 주말이 되니 여기는 화시지에 시장보다 더 규모가 큰 시장이 되었다. 여기서는 사람이어떻게 움직이냐면 명절 연휴 끝에 서울에 진입하길 기다리는 자동차처럼 움직인다. 조금 거짓말 보태서 2002년 여름의 광화문같았다. 아까 화시지에 시장통은 이것에 비하면 침묵이다. 혼이 빠져나갈 것 같다. -_- 사실 돈이 조금 남을거 같아서 뭐든좀 사보려 했는데, 정신없어서 살 수가 없었다.

   
 

스린 야시장의 최고 볼거리는 역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길 낑겨서 걷다보면 정말 영화 의 한 장면이 절로 생각난다. All in all it's just another brick in the wall!

밀크티를 사들고 들어오는 길에 아까 본 일본인 막춤청년이었다. 이 양반은 위키아에서 일하고 있다고 자기소개를 했으므로, 시간되면 일본과 한국의 위키문화에 대해 얘기를 좀 하자고 했더니 좋단다. 들어온지 한시간 쯤 지나자 그가 방으로 찾아왔다.

처음에는 위키아와 일본의 현 상황 등에 대해 한참 얘기했는데 하다보니 그가 일본의 실험음악을 좋아한다는 걸 알게되었다. 그는 내가 말하는 뮤지션들을 대부분 알았다. 오토모 요시히데키도 나츠키 같은 사람들 말이다. -_- 이런 대화가 된다는 것에 대해 나도 그도 한참 웃었다. 이런 음악 좋아하는 사람 찾기는너무 어려우니까. 그것부터 시작하여 일본 역사와 한일간의 차이 등에 대해 얘기하다보니 한 두어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좋은친구가 될 수 있을것 같다.

알고보니 그는 나랑 나이도 같다. 엇그제는 고등학교 동문이 사이언스지에 논문을 실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어느새 나와 비슷한 나이의 사람들이 '국제적으로' 활동하게 된 것이다. 나도 시야를 넓히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영어공부를 안할수는 없는건가. -_-

이번 여행은 예기치않게 각종 모험과 자극이 날 즐겁게 해주는 것 같다. 만족이다.

1.1 촌평[ | ]

빗물과 파도에 젖은 모습은 그야말로 안습이구려
부디 다음에는 저런 사진은 자체검열로 거르길 바라오


그리고 영어는 나도 잘 하고 싶어
외국 나가면 항상 이눔의 영어가 문제지 -_-;; -- 자일리톨 2007-8-13 4:37 pm


황개공연 <= 표해록을 쓸 뻔 하다 => 남쪽나라안녕

거북이중국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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