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번째 폭주

(첫번째폭주에서 넘어옴)

1 2006.05.18 : 첫번째 폭주[ | ]

새벽에 일어나니 비가 온다. 비안오면 교토가고 비오면 오사카나 돌아볼까 했는데 비가오니 일찍 일어날 필요가 없어서 다시 침대에 머리를 박았다. 그런데 다시 깨어보니 날이 아주 화창해졌네. 뭐 어쨌든 날이 좋아진 것은 좋은 일이니 민박집에서 자전거를 빌렸다. 오늘은 종일 자전거를 타고 오사카 시내를 누빌 생각이다. 오사카는 큰 도시이긴 하지만 그 중심지는 자전거로 충분히 돌아볼 수 있는 규모이다. 즉 도쿄나 서울같은 메트로폴리스가 아니라는 말이다.

Tjp2:DSCN5575.jpg Tjp2:DSCN5576.jpg

  • 오늘 내가 하루종일 타고다닐 자전거다. 일본에는 이 사진처럼 앞뒤로 애를 데리고 다니는 아줌마들이 많다.

한인 재래시장이라는 츠루하시쪽으로 나갔다. 거리가 꽤 되고 언덕도 솔찮게 있지만 열심히 달리니 기분이 좋다. 비온 뒤의 자전거 여행이라니 말만 들어도 상쾌하지 않은지? 츠루하시 시장은 그냥 재래시장이다. 그런데 한인들이 많아서 한국 음식이나 한복가게 이런 것들이 많다. 슬쩍슬쩍 돌아보다가 배가 고파져서 오코노미야키점으로 들어갔다.

Tjp2:DSCN5578.jpg Tjp2:DSCN5579.jpg Tjp2:DSCN5580.jpg

  • 아주머니가 요렇게 오코노미야키를 만들어주셨다.

들어가보니 아침부터 아저씨 아줌마 한 팀이 지짐이를 안주삼아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뭐 거기야 내 알바 없고 내 앞에서 직접 오코노미야키를 만들어주시는 주인아줌마와 얘기를 좀 나누었다. 여기에는 재일한국인과 조총련계 사람들이 모여서 장사를 하고 있었는데 남한 사람들이 직접 진출하여 시장질서를 흐리고 있다는 얘기를 해주시더라. 하여간 남한 사람들은 참 지독하다. 조선족들은 학대하고, 재일한국인 사회로는 틈만 있으면 비집고 들어간다.

그런데 터프하게 술을 자시던 아저씨가 나를 부르신다. 이 아저씨는 상당히 막나가는 듯한 캐릭터로 전형적인 재일한국인 분위기다. (이런 사람들은 박치기같은 재일교포를 다룬 영화를 보면 흔히 등장한다.) 일본어와 부산사투리와 북쪽사투리를 마구 섞어서 얘기하시는 통에 절반도 못알아들었지만 대충 알아들은 것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 남한은 북한보다 (재일한국인들에게) 잘못하고 있다.
  • 남한은 북쪽에 더 손을 내밀어야 한다.

사실 남한은 지금까지 싸가지없는 졸부 형제였을 뿐이었다. 남한, 북한, 조선족, 고려인, 미국교포, 재일교포 등 수많은 한인 집단이 존재하는데 아마 그중 가장 매너가 없는 집단은 남한이었을 것이다.

  • '오시리'가 한국어로 뭐지? 엉덩이요. 그럼 '궁디'는 뭐지? 그건 사투리에요. -_- 아 경상남도쪽이지?
  • '토모'는 뭐지? 친구요. 그럼 '동무'는 뭐지? 그건 북한말요. -_-

이것만 봐도 남한은 단지 '남한'일 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통일이 되고 또 재외한국인들을 받아안아야 하는 시점에서 우리가 그들을 얼마나 존중해가면서 통일과정을 밟을것인가 생각하면 암담해진다.
그 아저씨의 마지막 대사는 이거였다.

공부 열심히 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어라.

일단 학생으로 봐주셔서 고맙고, 저 마지막 멘트로 아 역시 한국인이구나 하는 동질감을 느끼게 해주셔서 고마웠다. -_- 조선의 어른들은 누구나 공부 열심히 해라로 얘기를 끝맺는다.

Tjp2:DSCN5581.jpg

  • 전철역으로 바로 연결되는 북오프 출구

츠루하시 시장에서 나오는데 북오프가 있었다. 어떻게 생겼나 하고 좀 들어가봤는데 탐날만한 아이템은 아예 없거나 가격이 싸지 않았다. 어쨌거나 뭔가 신나는 음악을 들어볼까 하고 C&C Music Factory의 리믹스 앨범을 하나 사서 CDP에 넣고는 바로 오사카성까지 자전거로 달렸다. 오사카성 앞의 공원은 공원이라기보다는 숲이다. 오사카성 내부는 시멘트로 바른 박물관이라길래 그냥 안들어가고 그 근처만 배회했다. 밥을 먹으면서 꼬마들 소풍온 것을 구경하니 그것도 나름대로 재미있었다. 유치원 애들을 데리고 다니는 선생님들이 하나같이 깃발을 들고 애들을 인도하고 있어서 웃겼다.

Tjp2:DSCN5589.jpg Tjp2:DSCN5587.jpg

  • 깃발든 선생님. 화단은 동네 중학생들이 꾸민 것을 가져와 전시한 것이다. 이런 소박한 전시가 여기저기 상당히 많았는데 귀엽고 보기 좋더라.

Tjp2:DSCN5583.jpg

  • 오사카성 앞의 공원 진입로

난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도시계획은 일본때문에 잘못되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우리는 일본만큼 고민을 안한 채 일본의 건축기술만 얼치기로 배워 도시를 만들었기에 서울이 지금처럼 엉망인 도시가 된 것이다. 적어도 도시의 밀집도라는 면에서 오사카는 서울에 비해 훨씬 낮았다. 잘은 모르겠지만 여러 부도심으로 밀도를 흩어놓았고 바로 옆에 교토, 고베, 히메지, 나라 등 색깔있는 도시들이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분산이 된 듯 싶다. 서울도 여러 부도심을 만들고 있고 그중 분당은 강남 못지않은 집값을 형성하고 있는데 이게 그럼 좋은 현상인가. 그건 모르겠다. 강남이 증식할만큼 증식해서 또다른 강남을 낳고있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분당 정자역 옆의 세칭 짝퉁 프랑스 거리라는 유럽분위기의 거리가 있는데 여기의 공식적인 이름은 정자 로데오 거리다. 그 위의 서현역에는 서현 로데오 거리가 있다. 이런 이름들은 아직도 우리 사회가 근대화조차 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일게다.

Tjp2:DSCN5584.jpg Tjp2:DSCN5586.jpg

  • 오사카성의 해자. 오사카성은 확실히 히메지성이나 니조성에 비해 규모가 컸다.

Tjp2:DSCN5588.jpg

  • 오사카성의 일부. 안에 들어가진 않았다.

Tjp2:DSCN5592.jpg Tjp2:DSCN5593.jpg

  • 요도가와강 주변에는 자전거 도로가 조성되어있어서 열심히 달렸다. 그런데 가다보면 길이 끊긴다. -_-

Tjp2:DSCN5595.jpg

  • 강 주변에서 꽃 전시회를 하고 있었다.

오사카성에서 국제미술관으로 이동하는데 한참 고생했다. 물어도 사람들이 어딘지 잘 모르더라. 어쨌든 열심히 찾아냈다. 무슨 과학 박물관이랑 함께 있었다. 시그마 폴케(Sigmar Polke, 1941-)라는 인물의 특별전을 하고 있었는데 값이 좀 세긴 했지만 그냥 가서 봤다. 추상표현주의라고까지 말하기엔 좀 뭐한 형태의 추상화를 그리는 양반이었는데 글쎄 문외한인 내 눈으로는 좀 무성의해보였다. 현대미술을 기본적으로 사기라고 바라보는 사람이 하는 말이니 진지하게 듣지는 않아도 된다. 그 외에 일본 현대작가들의 작품이 상설로 전시되어있다. 폴케처럼 역시 그저 그랬다. 오히려 건물 자체가 볼만했다. 장애인들을 위한 섬세한 배려를 보면 그들의 꼼꼼함에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다.

     
  • 폴케의 작품들. 그닥 신통한 작가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소재주의적이고 인상주의적이라고나 할까나.

Tjp2:DSCN5598.jpg Tjp2:DSCN5599.jpg Tjp2:DSCN5600.jpg

  • 미술관은 건물쪽이 더 인상적이었고 그중 내겐 시각장애인을 위한 아래의 보도블럭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대충 봤으니 이제 판가게나 갈까 하여 아래쪽(아메리카 무라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아무 생각없이 가다보니 우쓰보 공원이라는 작은 공원이 나타났다. 난 여기서 숨이 턱 막혔다. 동네 공원이 이렇게 예뻐도 되나 싶어서. 이 공원은 오사카 가이드 어디에도 안나오는 그렇고 그런 동네 공원인데 나에게 가장 충격을 준 곳은 여기였다. 내가 지자체장이라면 꼭 재임중에 이런 공원을 한두개 만들것이다. 지역에는 다른게 필요하지 않다. 이런게 필요하다. 물론 지속가능한 형태로 만들어야지 한두번 하고 끝낼거면 그건 전시행정 이상이 아니니까.

Tjp2:DSCN5601.jpg Tjp2:DSCN5602.jpg Tjp2:DSCN5603.jpg Tjp2:DSCN5604.jpg Tjp2:DSCN5605.jpg Tjp2:DSCN5606.jpg

  • 우쓰보 공원. 정말 예쁜 공원이었다.

어쨌든 여기에서 기분이 참 좋아졌다. 왔다갔다 하다가 일기나 쓸까 하고 앉았는데, 옆자리에 계신 할아버지께서 말을 거신다. 역시 외국에서 외국인에게 말을 걸어주는 사람은 아가씨가 아니라 아저씨(혹은 할아버지!)다. 아가씨가 이방인에게 말을 걸어서 따듯하게 맞아주는 것은 영화에나 나올법한 일인게다. 물론 다른 경우도 있다. 아까 보니까 양키눔 하나는 여고생들인지 여중생들인지에 둘러싸여 하이~ 하와유? 따위의 얘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이건 동양인의 비애다. 유럽여행을 함께갔던 친구 우람 왈, "동양 남자는 유럽에선 2급 장애인이여~ -_-"

Tjp2:DSCN5607.jpg

  • 나와 얘기를 나누신 할아부지. 장롱에 칠하는 것을 업으로 평생 일하셨다고 한다.

Tjp2:DSCN5609.jpg

  • 음반점 내부. 이 광경을 보고 흥분된다면 당신도 나와 비슷한 종족일 것이다.

또 한참 헤매다가 드디어 아메리카 무라로 왔다. 첫날 잠시 들렀던 킹콩이라는 음반점에 가기 위해서다. 이번에는 본점에도 가보기 위해 일찍 왔다. 알고보니 킹콩은 오사카에만 지점이 네개나 있는 나름 큰 중고음반점이었다. 일단 지점에 가서 1장에 100엔짜리와 3장에 500엔짜리를 열심히 골라서 한쪽에 짱박아두었다. 나는 외국인이니 들고가는 것이 걱정되었지만, 뭐 어떠냐 넘치면 배로 보내지 하는 생각에 내 욕망을 충실히 추구하기로 했다. 이어서 본점으로 이동했는데 본점에는 염가음반이 생각보다 적었다. 고르고 고르다가 염가반 아닌 것들도 몇장 사기로 했는데 그 와중에 멤버 사인이 들어간 요 앨범을 보게 되었다. 이거 천엔도 넘는거였지만 뭐 한번 질러주기로 하고 계산에 포함시켰다. 그래서 계산을 하는데 가격이 이상한 것이다. 왜 그러냐고 물어봤더니 초록색 라벨이 붙은 것은 70% 세일이라고 한다. 난 그말을 듣고 이성을 분실했다.

춋또 맛떼 쿠다사이!

  나를 폭주하게 만든 문제의 LP : Gorky's Zygotic Mynci Bwyd Time(1997)

바로 초록색 라벨이 붙은 아이템을 뒤지기 시작했다. 미친듯 고르고 골라 한 백장은 집은것 같다. 여기에는 비틀즈의 Abbey Road와 존 레넌의 Mind Games의 일본 초반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 본점은 8시까지 한다고 하여 일단 여기서 계산을 하고 9시까지 하는 지점으로 옮겨가 다시 폐점시간까지 열심히 골랐다. 결국 이 두 가게에서만 한 30만원어치는 산거같다. 도쿄의 니시 신주쿠까지 갔을때 과연 나는 자제할 수 있을것인지 벌써부터 걱정이 된다. 일본에 다녀와서 적은 존 레넌 앨범 정리.

   
Beatles Abbey Road(1969) John Lennon Mind Games(1973)

숙소로 돌아오는 길은 험난했다. 백여장의 LP를 분산하여 박스에 담은 뒤 자전거 앞뒤로 싣고 중심이 흔들리는 자전거에 올라타 슬슬 가기 시작했다. 게다가 저녁조차 못먹고 판가게를 뒤지던 나였기에 더더욱 그랬다. 방에 일단 음반을 두고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 돗톤보리로 갔는데 뭐가 맛있는 집인지도 모르니 대충 유명하다고 알려진 긴류라멘집으로 갔다. 껄쭉한 일본라면이었는데 이게 천엔이나 주고 사먹을만한 맛인지는 악의 혀를 가진 나로서는 알 수가 없었다. 단 밥을 서비스로 주므로 배부르게 먹을 수는 있다.

여행에서 맛난 것을 찾아먹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맛난 곳을 찾느라 너무나 많은 에너지를 소모해야 한다면 그건 뭔가 앞뒤가 바뀐 것이다. 맛도 중요하지만, 적당히 그동네 주민이 맛있다고 칭찬하는 것을 먹는다면 그것 역시 좋은 일이다. 내 보기엔 뭐 다 그게 그거다. 오전에 츠루하시에서도 맛집을 찾으려다 실패했지만 결국 맛난 오코노미야키를 먹을 수 있었던 것도 그러하고 어제 아침으로 먹은 300엔짜리 우동은 저 긴류라멘보다 하나도 못할것이 없었다. 그 우동집은 쿠로몬 시장에 있는 흔한 우동집 중 하나였다.

방에 왔으나 풍성한 수확물에 흥분한 나머지 잠을 잘 수가 없었다. 1시까지 하나씩 꺼내보고 내용물을 살폈다. 아마 간사이 지방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 아니었나 싶다. 아까 산 음반들을 보면서 일본의 60년대에 태어났어도 꽤 좋았을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공투가 있었고 경제성장이 있었고 동시대의 음악이 있었고 컴퓨터가 없었으니 어찌 살만하지 않았겠는가. 나에게 컴퓨터는 축복이자 저주이다. 마치 언어가 그러했던 것처럼.

1.1 촌평[ | ]


히메지와고베 <= 첫번째 폭주 => 우메다에는매실이없다

거북이일본여행

문서 댓글 ({{ doc_comments.length }})
{{ comment.name }} {{ comment.created | snstim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