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메지와 고베

(히메지와고베에서 넘어옴)

1 2006.05.17 : 히메지와 고베[ | ]

햇빛공격 때문에 조금 일찍 일어났다. 창문으로 햇빛이 새어들어와 내 얼굴을 싸악 스캔해주면 일어나지 않을 수가 없다. 이불 속에서 좀 더 뭉개보지만 소용없다. 7시 정도에 일어났다. 어제는 아침을 먹지 않고 움직인 덕에 아주 고생을 한지라 일단 우동집에 가서 요기를 했다. 아줌마가 친절하게 공기밥까지 주셔서 싹 비우고 나왔다. 역시 요시노야보다는 이런 로칼 우동집같은 곳이 더 좋다.

Tjp2:DSCN5520.jpg Tjp2:DSCN5519.jpg

  • 동네 우동집

히메지성까지는 상당히 멀다. 히메지의 장점(?)은 한번만 다녀와도 간사이 스룻토 패스의 본전치기를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어제 일기를 다 적고도 시간이 남아서 눈을 좀 붙일 수 있었다. 이 전철은 순전히 히메지를 위해 뚫린 것 같다. 중간에 몇번 서지도 않는 급행열차가 있고 간다. 히메시성이 있는 시는 이름이 히메지시일 정도이니 성 하나가 시 하나를 먹여살리는 듯한 느낌이다.

Tjp2:DSCN5521.jpg

  • 히메지에 도착하니 아줌마들이 백화점 개점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런 인류 공통(?)의 장면들을 보면 재미가 있다. 하긴 우리 어머니는 마트의 할인행사를 노려 계란 한판을 1800원에 사오는 드라마틱한 경지를 보여주기도 하셨다.

어차피 패스도 있겠다 역에서 내려 버스를 타볼까 하고 할머니께 여쭈었더니 걸어가도 금방이랜다. 할머니 왈 "버스가 더 좋아?" 순진한 물음에 할말을 잃고 그냥 걸어올라갔다. 왠지 그 할머니의 체력에 대한 자신감이 느껴졌다.

Tjp2:DSCN5522.jpg

  • 걸어가다가 발견한 괴 청동상

히메지성에 들어왔다. 히메지성이 유명한 것은 축조당시의 모습 그대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고, 그 모습 그대로일 수 있었던 것은 전쟁을 겪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히메지성은 제 역할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에 지금도 여러 사람을 먹여살리고 있는 것이다. 묘한 아이러니다. 지우히메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히메는 공주라는 말이고 귀한 이미지가 담겨있다. 여기서 살았던 모 공주는 행복했다고 하던데 정말 행복했을까 싶기도 하고 뭐 그런 저런 생각을 하며 걸었다. 그 공주에게는 그다지 넓은 곳이 아니었을것 같기 때문이다.

Tjp2:DSCN5525.jpg

  • 히메지성은 부지가 상당히 커서 외성과 내성사이의 거리도 꽤 된다.

Tjp2:DSCN5523.jpg Tjp2:DSCN5524.jpg

  • 일본 성들에는 꼭 해자가 두개씩 있더라. 성 안에 공터가 있었는데 여기는 무슨 공연장 같은 것으로 활용을 하는지 좌석을 셋팅하고 있었다. 좋은 일이다.

다행히 비가 그쳤다. 어제처럼 우산 사고 그쳤으면 정말 광분했을것 같다. 혼자 여행을 다니면 아무때나 흥이 날 때 이렇게 주저앉아서 그 느낌을 적을 수 있어서 좋다. 대학다닐때 쓸데없는 지질학 공부는 일찌감치 집어치우고 일어와 중국어를 열심히 했어야 했는데 아직도 너무 아쉽다. 언어만 되면 교양은 자연히 쌓을 수 있는 것이다. 유럽의 근대 지식인들이 그 어린 나이에 수많은 지식을 쌓을 수 있었던 원인 중 하나가 바로 그들이 열심히 공부한 이웃의 언어들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Tjp2:DSCN5529.jpg Tjp2:DSCN5530.jpg

  • 소금창고가 하나 있었는데 여기는 회칠이 되어있었다. 아무래도 회벽을 보면 낙서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지 일본어로는 낙서하시면 아니되삼이라고 써있고 한자로는 엄격하게 낙서엄금이라고 적혀있는게 재미있다.

Tjp2:DSCN5531.jpg Tjp2:DSCN5532.jpg

  • 총구멍이 네모, 세모, 사다리꼴로 재미있게 나있다. 비가 오는데 함께 나온 꼬마애들이 참 귀엽기도 하고.

비는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다. 천천히 천수각을 둘러보고 내려왔더니 신발벗고 들어갈 수 있는 건물이 하나 더 있다. 여기는 할아버지 한분이 신발관리를 하시는데 상당히 엄격하다. 일본 할머니들 상당수가 그 할아버지의 쿠사리를 먹어가며 신발을 주섬주섬 챙기고 있다. 오늘은 어제 그제보다는 그래도 널널하게 다니는 편이다.

Tjp2:DSCN5533.jpg

  • 천수각. 여기 내부는 목조로 완전하게 보존되어있다.

Tjp2:DSCN5534.jpg

  • 신발을 담는 비닐봉지. 이게 새걸 쓰는게 아니라 계속 재활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엄격한 할아버지께서 감시(?)중이시다. 사회의 어른들께 이런 일을 드린다면 그 또한 좋은 일일게다. 고령사회에 대해서도 우리는 일본으로부터 배울게 많다.

올라가다가 잠시 구석진 곳에 앉아서 일기를 쓰고있었다. 내 옆에 어떤 시골청년이 비실비실 졸고있었는데 뭐랄까 지하철에서 졸고있는 나같다는 느낌이 들어 혼자 웃고만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 청년이 우당탕 하면서 앞으로 쓰러졌다. 졸다가 그만 앞으로 고꾸라진 것이다. 사태를 수습하고 옆에있던 나를 보더니 멀뚱하게 웃더군. 나도 멀뚱하게 웃어주었다. 오르는 길에 계속 마주쳤는데 민망하더라. ㅎㅎ

Tjp2:DSCN5537.jpg Tjp2:DSCN5538.jpg

  • 기와중에 고려와라고 있나보다. 여튼 한일관계는 주고받은 것들이 은근히 많다. 미우니 고우니 해도 이웃이다.

Tjp2:DSCN5539.jpg Tjp2:DSCN5540.jpg

  • 지붕 기외에 회를 발랐고 기와지붕은 깃털같은 느낌이 있으니까 밖에서 보면 흰 깃털로 덮인 느낌이 든다. 그래서 히메지는 날아오르는 백로로 비유된단다. 웃기는 표정의 달마도가 있어서 한번 찍어봤다.

Tjp2:DSCN5543.jpg Tjp2:DSCN5542.jpg

  • 이런 옷을 입은 녀석들이 요런 총을 들고 정한론을 외치곤 했을거라는 생각을 하면 그닥 기분이 좋은 것은 아니다.

Tjp2:DSCN5544.jpg Tjp2:DSCN5545.jpg

  • 워낙에 대화재를 많이 겪은 나라라서 그런지 목조건물 보호를 위해 여기저기 철저하게 소방시설을 갖춰두었다. 천수각의 가장 꼭대기에는 오사카베 신사가 있는데 이건 원래 이 성을 지을 때 이 근처에 있던 것을 치웠다가 재앙을 두려워 해서 다시 안으로 들여온 것이라고 한다.

Tjp2:DSCN5547.jpg Tjp2:DSCN5549.jpg

  • 천수각 꼭대기에서 바라본 풍경이다. 천수각은 7층이던가 8층이던가를 계속 올라가야 하는데 올라가는 길에 이렇게 유물을 계속 배치하여 지루하지 않도록 돕고있다.

Tjp2:DSCN5551.jpg Tjp2:DSCN5554.jpg

  • 히메지성의 구조를 축소한 것. 일본의 목조기술은 상당히 뛰어났던 것 같다. 히메지성의 해체복원 공사를 할 때 나왔다는 게다짝들. 이것을 신었던 사람들이 결국 이 성을 쌓은 것이다. 우리 시대의 노동자들은 이런 것이라도 남길 수 있을까.

Tjp2:DSCN5555.jpg Tjp2:DSCN5556.jpg

  • 니시노마루라는 건물로, 이 성의 주인공인 센히메 공주가 거주하면서 다른 시녀들과 함께 지냈던 곳. 별로 볼 것은 없는데 연인끼리 오면 몰래 키스할만한 장소가 많다. -_- 저런 문이 비상구라니 재미있다.

나왔더니 히메지성 근처에 히메지시 인포메이션 센터가 있었다. 여기를 좀 일찍 봤다면 우산을 빌린다거나 뭔가 정보를 더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나는 식당을 물어보기 위해 들어갔다. 한국인이라고 하니 대뜸 한국말을 한다. 물어보니 한국 드라마를 보면서 일주일에 한시간씩 한국어 공부를 하고있다고 한다. 그 아주머니의 한국어보다 내 일본어가 좀 나아서 그냥 일본어로 얘기했다. 자기들이 자주 가는 곳이라며 추천해주었는데 나는 그곳 보다는 다른 사람이 추천해준 음식점을 한번 찾아보기로 했다. 그런데 정말 한참 헤맸다. 그냥 그들의 추천을 따를걸 괜히 많이 걸어다니며 고생했다. 역시 어디든 선수의 추천이 좋은 법이다. 여기서는 무료로 자전거를 빌려주기도 한다니 참고하시라.

Tjp2:DSCN5558.jpg Tjp2:DSCN5559.jpg

  • 인포메이션에 써있던 한글 간판. 한글을 쓴 것이 아니라 그린 것처럼 붙여놓은게 너무 웃긴다. 역시 관서지방은 전반적으로 엉성하긴 한가보다.

고베까지 왔는데 아직도 비가 안그친다. 이진칸이고 뭐고간에 나가서 빵이나 사먹었다. 스윗 오븐이라는 산노미야 역에 바로 붙어있는 빵집이었는데 아주 조그마한 곳이었지만 사람들이 줄을 서있길래 맛있겠거니 했고 정말 먹어보니 맛이 있었다. 고베의 빵집은 다 맛있다는 뻥을 믿어도 될것 같다. 내 보기엔 고베뿐 아니라 일본은 전체적으로 빵이 맛있다. 우리나라는 요즘 뚜레주르와 파리바게트가 빵집업계를 평정하고 있는데 일본 빵집들은 가게들마다 고유한 맛을 지켜나가는 느낌이다. 난 비싼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인데 일본 빵집수준만 되면 그 가격 내고서라도 먹을 생각이 있다.

Tjp2:DSCN5562.jpg Tjp2:DSCN5563.jpg

  • 아리마 온천가는 길목. 귀여운 콩 그림이 있는 광고에는 '배려의 기분이라면 차안도 쾌적한 공간'이라고 써있고 오른쪽 광고에는 '치한, 폭력, 파괴는 범죄입니다'라고 써있다. 치한이 갈 곳은 경찰서밖에 없다는 광고가 유치해서 재미있다.

Tjp2:DSCN5568.jpg Tjp2:DSCN5569.jpg

  • 아리마 온천으로 들어가는 지선 전철. 한 량짜리 꼬마 열차가 왔다갔다한다.

고베에서 뭔가 구경하려고 했던 것이 비가와서 모두 꽝난 이상 몸이나 풀자 하고 아리마 온천을 골랐다. 가는건 좋은데 아리마 온천까지 다녀오면 정말 오늘 네시간 이상 전철을 타는거다. 게다가 산노미야에서 아리마 온천까지 전철로 가는 것은 상당히 안좋은 코스다. 3번을 갈아타야 갈 수 있다. 어쨌든 열심히 갔는데...그만 비가 또 그쳤다. 비가 와서 온천으로 골랐더니 비가 그친게다. 아무래도 이진칸인지 머시기인지는 나와 궁합이 안맞는것 같다. 그래도 아리마 온천 가는 길은 시골길이라서 밖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Tjp2:DSCN5565.jpg

  • 부탁 : 종이를 변기에 뭉쳐서 넣지 말아주세요. 막히는 원인이 됩니다. 어디나 마찬가지인가보다.

Tjp2:DSCN5566.jpg

  • 관광지라서 이것저것 해둔게 많다. 근처에는 우표박물관도 있고 뭐 그런것 같더라만, 비오고 귀찮아서 안가봤다.

올라가는 길에 역시 인포메이션이 있었는데 뭔가 정보가 있나 싶어서 들어갔다. 우산꽂이에 비닐우산 하나가 꽂혀있었다. 어제 산 우산을 음반점에 놓고나와서 또 사야하나 하던 나는 어디 공짜 우산 하나 없나 하고 있었던게다. 그런데 들어가보니 여행자가 아무도 없었다. 그 말은 그게 주인없는 비닐우산이라는 뜻이다. 나는 정보가 적힌 팜플렛 몇개를 챙긴 뒤 나오는 길에 그 비닐우산을 집어나왔다. 드디어 한풀이를! -_- 시원한 기분을 안고 나는 몸을 풀 수 있었다.

일본의 온천이란 대부분 옴팡 비싼 곳인데 책자에 소개된 금탕이라는 곳은 너무 싸다. 물가를 고려하면 딱 우리나라 목욕탕 레벨로 예상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6백엔짜리 목욕탕이었다. 목욕탕 점원 아줌마, 날 보더니 자기들끼리 '스룻토 간사이다'라고 맞춰버린다. 패스 안에는 할인권이 포함되어있었던게다. 나는 아줌마들에게 '바로 맞추셨습니다. -_-' 하며 열쇠를 받아 올라갔다.

Tjp2:DSCN5567.jpg

  • 내가 들어간 금탕

한가지 신기했던 것은 그 물이 진짜 금색이었다는거다. 뭔가 황 성분이 들어가서 뉘리끼리한 색이 되지 않았나 싶긴 한데 여튼 물 자체는 특이했다. 의도치않게 일본 목욕탕 문화를 체험하게 되었는데 남탕과 여탕은 벽으로 막혀있었지만 탕 자체는 연결되어 있었다. 벽 한가운데에 시계가 있어 남탕에서도 여탕에서도 그 시계 하나를 보게되어 있었다. 그 외에 절수형 수도꼭지가 우리랑 좀 다르게 생겼고 치질환자용 플라스틱 의자가 따로 있던 것이 인상적이었다. 비도 오고 들어가서 늘어져있으니 좋더군. 그런데 왠지 모르겠으나 오래 있자니 피곤했다. 금방 나왔다. 그리고 수건이 셀프다. 나에게 수건이 있었을 리가 없으니 나는 물을 대충 걷어내고 선풍기에서 몸을 말려야 했다. 나와 함께 벗고있던 일본 총각들은 뭔가 이상한 녀석이라는 식으로 나를 보았을게다. 그 와중에 할머니 한분이 스윽 들어오신다. 나는 허걱 하고 드라이하는 곳으로 가 숨었는데 할머니는 묵묵히 청소를 하신다. 아줌마들이 남자화장실 청소하시는 것은 많이 봤지만 목욕탕은 좀 쇼킹했다. 나는 할머니가 나가실 때까지 꼼짝없이 숨어있었다.

여기서 바로 오사카의 우메다까지 가는 버스가 있긴 한데 그건 간사이 패스가 되지 않는다. 하는수없이 온 길을 한참 돌아나가는 전철코스를 택했다. 세번씩 갈아타면서 움직이는 것은 솔직히 싫다.

Tjp2:DSCN5570.jpg Tjp2:DSCN5571.jpg

  • 고베에는 나름 의도를 가지고 이쁘게 지은 건물들이 많았다. 용빌딩이라고 이름짓고 건물 위에 용모양의 청동상을 만든 것은 건축주의 소박한 감성이 느껴져서 좋았다.

고베에 다시 왔는데 아직 시간이 있어서 이진칸을 한번 보러가기로 했다. 역시 그냥 양눔들의 집이다. 여자애들이라면 관심을 가질법도 하지만 나는 이런거에 관심이 없다. 어떻게 할까 하고 커피 음료수를 뽑는데 누가 한국분이시죠? 하고 부른다. 나는 오늘 Red's go together라고 써있는 뻘건 옷을 입고 있으니 알아보긴 쉬웠다. 몇가지 얘기를 하다가 고베에서의 몇시간을 함께 다녀보기로 했다. 그들은 남매지간이었는데 대학 축제기간을 틈타 1주일정도 간사이 여행을 온거라 했다. 나름 진취적인 학상들이다.

Tjp2:DSCN5572.jpg Tjp2:DSCN5574.jpg

  • 육갑목장이라는 목장 이름이 웃기는 소프트 아이스크림 광고. 오른쪽은 이진칸 중 하나다. 이진칸은 '다른 넘들이 살던 집'이라는 뜻으로 외교관이나 상인들이 일본에 거주하면서 유럽풍으로 지은 집들을 말한다. 다수가 문화재로 지정되어있다. 꽤 아기자기하게 만들어진 집들로 고베라는 항구도시에 세련된 느낌을 주는 요인중 하나인 듯 싶다. 물론 나에겐 AFC -_-

중화가와 해안가를 함께 갔는데 비가 죽어라 내리는 가운데에도 남동생은 씩씩하고 누나쪽은 털털하게 다니는 것이 보기는 좋았다. 학생들이 무슨 돈이 있겠나 싶어서 중화가에서의 밥값은 내가 냈는데 여기 중화가는 뭔가 가격대 성능비가 상당히 나쁘다. 여튼 그들은 아리마 온천의 료칸에서 잔다고 하여 내가 길을 알려주었다. 알고보니 상당히 뺑 돌아서 왔다갔다 했길래 내가 이용한 단거리를 알려주었더니 너무 좋아했다. 뭔가 보답을 하고 싶다며 집에가서 먹으라고 빵을 몇개 사서 들려주더라. 아이들의 마음씀이 고맙다. 아까 사진도 두어장 함께 찍었으니 보내주겠지. (그런데 아직 못받았다. -_-) 그러고보니 지난번 중국여행때도 한국 아이들에게 뭔가 먹을걸 사준 기억이 난다. 외국에서 우리나라 애들을 보면 뭔가 먹이고 싶어지나보다.

여튼 고베는 빵맛을 빼면 나에겐 참 별로인 곳이었다. 지나가다가 LP가게도 간신히 하나 발견했는데 아이템도 많지 않았지만 CD옆에 라벨을 모두 카타카나로 써서 붙여놓는 바람에 내가 살펴볼 수 없었다. 어쨌든 이렇게 엄청나게 정리를 해놓은 것은 참 놀라운 일이다. 음반점의 정리벽에 대해서는 나중에 적어보겠다. 어쨌든 이 나라 국민성을 드러내주는 단면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나저나 금요일까지 비가 온다는 슬픈 소식을 들었다. 오늘은 하루종일 하루오미 호소노를 들으며 다녔다.

1.1 촌평[ | ]


봄비내리는교토 <= 히메지와 고베 => 첫번째폭주

거북이일본여행

문서 댓글 ({{ doc_comments.length }})
{{ comment.name }} {{ comment.created | snstim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