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시 신주쿠에 가다

1 2003 07 17 : 니시 신주쿠西新宿에 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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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인지 불행인지 어제 전시회가 워낙에 형편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별 부담없이 차에 탔다. 오다이바에 가서 전시회나 조금 보고 오후시간을 즐길까 했었던 것이다.
우리는 잠깐 오다이바 해상 공원에 내렸다. 아침이라서 별다른 감흥은 없었지만 밤에 오면 꽤 운치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곳이었다. 물도 깨끗하고.
벤치에서 비둘기 두마리처럼 서로 기대어 자고있는 양키 아베크족(홈리스? -_-)들이 있었다. 보기좋다기보단 쓸쓸해보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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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인보우 브릿지와 자유의 여신상은 마치 이곳이 샌프란시스코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정말 이나라의 서구 열등감이라는 것은 엄청나게 뿌리가 깊다. 자유의 여신상은 자기네가 만든것이 아니라 역시 프랑스에서 뭔가를 기념해 준 것이긴 한데, 애처롭기까지 하다. 일본처럼 문화유산이 많은 나라가 굳이 저런 식으로 열등감을 표현할 필요가 있을까.

근처에 조이 폴리스라는 곳이 있다. 세가가 운영하는 테마파크인데 뭐 잠시 들렀다. 여기는 많은 것이 가상현실이다. 내가 탄 것은 아쿠아 노바(심해여행)과 와일드 정글(정글여행)이었는데 아쿠아 노바는 편광을 이용한 3D였고 와일드 리버는 거의 270도에 가까운 스크린에서 화면을 쏘는 거였다. 화면에 맞추어 의자가 흔들리는 식인데 소리를 지를만큼 꽤 리얼한 부분도 있었다. 이런 식으로 가상현실이 조금씩 구현되는 거겠지. 아쿠아 노바보단 와일드 리버쪽을 추천한다.
그 외에 스피드 보더(청룡열차같은 것)와 하프파이프 캐년(스케이트 보드를 흉내낸 것)을 탔다. 스피드 보더는 의자가 돌면서 움직이는, 꽤 정신없는 놈이었는데 뭐 이건 그저 그렇다. 정말 식겁하게 만드는건 하프파이프 캐년으로 반원형의 레일위에서 보드가 왔다갔다하고 그 사이에 내가 발을 움직여서 턴을 하는 그런 놈이다. 바이킹의 변형이라고 할만한데 휭하면서 돌면 소리가 절로 나온다. 내리니 목이 쉬었더만...아 쪽팔려.
한번 타는데 칠천원이나 하는 겁나게 비싼 놈들이라 모두 비추지만 굳이 들어가겠다면 이 하프파이프 캐년은 타길 권한다. 여긴 입장료만도 오천원이다. 마이클 잭슨과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왔다갔다고 여기저기 적혀있다.

친구 카즈상이 두시까지 호텔로 오기때문에 나는 먼저 나왔다. 여기서 호텔이 있는 시나가와까지 가려면 길이 안좋다. 뭔가 버스도 있을거 같고 관통해가는 철도편도 있어보였지만 다들 추천하는 안전한 코스를 타기로 했다. 유리카모메라는 모노레일스러운 사철을 타고 심바시까지 갔다가 심바시에서 JR선으로 시나가와로 가는거다. 보니까 한 오천원 드는군...-_-+ 하여간 여기 교통비는 런던만큼 살인적이다.
유리카모메선은 지상위를 달리는 조그마한 전철인데 무인으로 운전한다. 밖이 잘 보이기 때문에 관광용으로도 사람들이 추천하는 모양인데 강가를 달리고 레인보우 브릿지를 지나가긴 하지만 강추라고는 할 수 없다. 심바시에서 갈아타기 위해선 밖에 나와야 한다. 우리나라처럼 환승역이 연결되어있다면 좋겠지만 일본의 국철/사철시스템에서 그런 것을 기대할 수는 없다. 환승할 때마다 표를 사야 하므로 돈이 훌렁훌렁 나간다. 심바시도 어지간히 큰 곳이더군. 일본의 번화가는 대충 다 비슷하게 생겼다. 심바시도 신주쿠도 그랬고 사진으로만 본 시부야나 뭐 그런 곳들도 마찬가지다.
빌딩숲.
도쿄의 전체적인 인상은 큼직한 서울이라고 할까. 테헤란로같은 번화가가 JR 야마노테선 안의 도심을 따라 쪼로록 널려있다. 아 그러고보니 워낙 일정이 급해서 어디가 야마노테였고 어디가 시타마치였는지 확인해본다는 것을 못해봤군...-_-
JR선은 우리나라 국철과 똑같다. 젠장 일본눔들이 지어둔 것을 그대로 쓰고 그대로 베껴다 만든 것이니 당연히 똑같겠지. 이런 것들을 볼 때마다 일본사회와 우리사회가 좋던 싫던 너무나도 유사한 점들을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것이 새삼 느껴진다. 왜 우리는 이런 좋은 벤치마킹 대상이 있는데 맨날 알지도 못하면서 쪽바리 쪽바리 욕이나 하는지 모르겠다. 욕하는건 좋지만 일본 사회의 깊이라는 것을 본다면 쉽게 욕이 나오진 못할것이다.

호텔로 들어오기 전에 요기를 위해 편의점에 들렀다. 삼각김밥과 요구르트만 샀는데 오천원 돈이다. 물가비교를 위해 적어본다면 삼각김밥이 1500원, 알로에 요구르트가 역시 1500원. 커피우유가 1000원쯤 했다. 씨디가 2 5000-3 0000원 정도 하니까 일본의 물가는 열추 한국의 2-3배라고 이해하면 될 것이다. 그것에 비해 전철 비용은 조금만 멀리갔다하면 거의 열배 가까이이기 때문에 살인적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고 반면에 집값은 서울과 별로 차이가 없는 편이라고 한다. 물론 평수에 있어서 일본이 한국에 비해 형편없이 적으니 살인적인 것이겠지. 일본에서 실평수 20평이면 거부에 속한다고.
아까 전철을 타러가면서 호텔 부페에서 훔쳐온 삶은 계란을 까먹었다. 일본에서는 흰계란만 판다. 우리나라도 예전에는 모두 흰 계란이었는데 어느날부터 갈색 계란 외에는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이유가 뭘까. 지식인에게 물어볼까? -_-

호텔에서 밥묵으며 기다리니 카즈상이 왔다. 서울나리타에서 만났었으니 벌써 세번째다. 역시 반갑게 맞아준다. 만나자마자 하는 말이 '니시 신주쿠에 갑시다!' 지난번 일본을 경유해 유럽에 갔다왔을 때 신주쿠에 가지 못해 한이 맺혔었지. 드디어 푼다.
카즈상이 나에게 주었던 정보를 보면 이 신주쿠라는 곳은 판돌이들의 천국이라고 할 수 있다. 니시 신주쿠와 히가시 신주쿠 양쪽을 합쳐 근 50군데의 음반점들이 있고 이중에는 건물 하나를 통채로 쓰고서도 분관을 낼만큼의 대형 판가게인 디스크 유니언을 비롯해 온갖 판가게들이 몰려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디스크 유니언은 오챠노미즈에도 이정도 규모의 분점을 두고있으며 이런 정보들을 모아 일본 판가게 총람이 매년 발간될 정도로 음반 산업이 발달해있다. 난 카즈상이 가져온 그 총람 2003년판을 구경했는데 솔직히 눈물나게 부럽더라. 카즈상은 종종 그 책을 길잡이삼아 판뛔기 헌팅을 한단다. 이미 신주쿠의 판가게들은 다 알고있다고.

당연히 디스크 유니언 프로그레시브 락 분관에 제일 먼저 갔다. 들어가자마자 카즈상은 중고는 여기 새거는 여기 LP는 여기 하면서 섹션들을 갈쳐주었고 우리는 곧 말이 없어졌다. 나는 당연히 중고 CD쪽을 스캔하기 시작했고 카즈상은 이런 족속들의 성격을 잘 알기에(자기도 그러니까...-_-) 나를 위해 아무말도 않았던 것이다. 역시 이나라의 중고 컬렉션은 서울과는 댈바가 아니다. 정말 안보이는 판들이 잔뜩 널려있더라. 물론 가격이 싼 것은 아니었지만 이런 아이템들을 중고로 만져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것이다. 나는 싼 것들로 꺼내기 시작했다. 꺼내다보니 이미 나는 폭주하고 있었고 두시간쯤 후에 나는 예산을 확인한 후 상당수를 도로 꼽아야 했다. 여기 씨디들 중에 가장 만족스러운 것은 에노BrianEno의 근작인 The Drop이었다. 이거 일본반에만 보너스 씨디가 한장 들어있었는데 그게 만원쯤 했던 것이다.
LP섹션을 보고 나는 또 놀라버렸는데 LP값이 엄청 쌌기 때문이다. 보통 5-6000원, 좀 싼건 1000원짜리도 있었다. 일본에서 보통 LP를 듣던 사람들은 음악듣기를 포기했거나 CD로 바꾸었고, 이제 남은 LP애호가들은 원반 선호자들 뿐이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영국반같은 것은 값이 더 오르고 나머지 일본발매반이나 미국, 호주등에서 나온 염가반들은 값이 떨어지는 추세라고 한다. 또 되는대로 고르다가 무게를 생각해서 열장정도만 골랐다.
젠장 여기서만 이러면 다른 가게는 어떻게 가...하고 암담해하고 있었는데 사실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다른데 갈 시간도 없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신주쿠 판가게를 하루에 쓸겠다는 택도없는 생각을 한 것이 잘못이다. 신주쿠의 판가게는 3박 4일 테마여행감이다.
어쨌거나 메이저 밴드들 따로, 국가별 따로, 프로그 책 따로, 영상물 따로 분류해놓은 것이 프로답다는 생각을 들게 만든 가게였다. 요즘 일본 발매반들은 대부분 종이재킷이다. 요즘은 전통적인 브리티쉬락 명반들과 유라이어 힙UriahHeep이 나오고 있더라. 만엔 넘게 구매했더니 자체 제작한 네온 레이블이 찍힌 유리컵도 하나 주었다. 하여간 일본인들은 아기자기하다. 기념품으로 동전지갑을 주길래 받았다. 이건 내일 유용하게 써먹게 된다.

낑낑대며 들고나오는데 카즈상이 걱정한다. 앞으로 한참인데 괜찮겠어요? 다이죠부, 다이죠부 이러면서 디스크 유니언의 80년대 섹션과 월드뮤직 섹션으로 갔다. 확실히 요즘 프로그레시브 락이 인기가 없는지 이쪽이 더 비싸다. 다행히 살만한 것이 많지 않아서 조금만 샀다. 월드뮤직 섹션이 큼직해서 감동적이었다. 소외되는 음악까지 들어줄 여유가 있는 이나라 사람들의 풍요로움은 참 부럽다.
다음으로 간 곳은 Dust N' Dream으로 부틀랙과 프로모, 싸인 음원들만 파는 전문 가게다. 여기는 비싸니 눈요기만 하라고 해서 들어갔는데 정말 개당 3-40000원이 보통인지라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눈요기밖에 할 수가 없었다. 부틀랙만으로 이정도 규모를 만들다니 이 가게의 주인은 도대체 어떤 인간인지 황당했다. 지미 페이지가 일본에 오면 꼭 여길 들려서 레드 제플린LedZeppelin부틀랙을 사간다고 하던데 정말 그럴만하다. 심지어 킹 크림즌KingCrimsonConstrucKtion of Light의 재킷이 찍힌 양초도 있더라. 나야 부틀랙에는 별로 관심없는 사람인지라 신경 안쓰지만 그런거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살고싶을듯. 요즘엔 영상물 부틀랙이 DVD로 발매되어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시간이 없어서 마지막 가게는 잠깐 들렸다. JNR이라는 곳으로 여기는 크라우트락/일렉트로닉스/인더스트리얼 전문 가게다. 저 세 장르는 독일다운 정서가 뒤섞여있는 나름대로 연관성있는 장르이다. 구질구질한 오피스텔 건물 한칸을 차지하고 있는, 정말 오타쿠들이나 알것만 같은 가게이다. 주인은 우리가 오던말던 신경도 쓰지 않는다. 역시 비싸서 구경만 했는데 정말 이름도 못들어본 음반들을 잔뜩 놓고 팔고있었다. 과연 손님이 올까. 바로 옆에는 핑크색 만화를 간판으로 삼은 가게가 있었는데 카즈상 말로는 여고생 속옷파는 가게라고...-_-a
이 세 가게를 살짝 둘러보니 세시간이 훌렁 지나갔다. HMV나 가든 셰드 등은 가보지도 못했다. 히가시 신주쿠는 밟아보지도 못한거다. 아 다음을 위해 남겨두마, 기다려라 판가게들! 어쨌거나 이 세개의 판가게를 가 본 결과 일본의 판가게 수준은 카즈상 본인의 표현대로 세계 최고이며 언제 와도 살만한 아이템들이 뒹굴고 있는, 판돌이들에겐 환상의 공간이라고 할 수 있었다. 가게들이 대체로 특화되는 경향을 보인다. 신주쿠 역에서 바라보면 과연 어디에 그 판가게들이 있을까 싶지만 조그맣게 촘촘히 자리하고 있는 그런 공간들을 가보면 정말 다른 세계가 펼쳐져있다. 디스크 유니언의 안내쪽지를 하나 가져왔는데 여기는 중고씨디 구매처(판매처가 아니다!)만 3군데이며 판매처가 30군데 이상 적혀있다. 정말 어마어마한 규모다. 어떤 지도를 보니까 힙합 매니아들을 위한 공간들만 표시해놨던데, 그런 식으로 얼마나 많은 전문적인 가게들이 신주쿠와 하라주쿠, 간다의 여기저기에 놓여있을 것인가.

모모상을 만났다. 모모상이 이 시간에 온 것은 한가지 이유때문. 바로 판가게 순례가 싫어서이다. 난 그 마음을 조금은 알고있다. 예전에 여자친구와 판가게를 갔다가 같이 저녁에 차를 마시고 식사를 했는데 뾰루퉁해있더라. 왜냐고 했더니 내가 자기를 바라볼 때보다 씨디를 바라볼 때 눈이 더 초롱초롱해보였다고 하더라. 그때 이후로 우리는 결코 함께 판가게를 가지 않았다. 여튼 모모상도 음악은 좋아하지만 우르르 몰려가 판들 고르는 것은 싫어하나보다. 꼭 같이 나오는 것을 보면 카즈상은 가정적인 사람인듯.
어쨌거나 우리는 함께 공연을 보러갔다. 아사쿠사에 있는 아사히 맥주 빌딩의 아사히 스퀘어 A라는 공연장에서 키도 나츠키의 공연이 있었기 때문이다. 키도 나츠키鬼怒無月는 본디지 푸룻BondageFruit의 리더로 일본 최고의 기타리스트중 하나다. 이 공연은 Yen Calling이라는 공연이었는데 유명한 보컬(이라고 하데)인 후쿠오카 유타카福岡ユタカ가 메인이고 나머지 멤버들은 백밴드가 되는 프로젝트 그룹이었다. 이 후쿠오카라는 아저씨의 별명이 옌짱이라서 공연 이름이 저렇게 붙은거라네. 나는 돈내놔~ 뭐 이런 의미인줄 알았다.
공연 안내 쪽지에 '음식:Happy Food'이렇게 써있어서 이게 뭐여 했는데 알고보니 공연 시작 전에 식사가 나온다. 요상한 만두와 더 요상한 떡과 뭐 그런 아방가르드한 식사였다. 그리고 아사히 맥주 건물인만큼 맥주가 있었고. 음식과 함께하는 공연이라니 꽤 공감각적이다.
공연장을 잠깐 묘사해보자면 그리 크지않은 공간에 잘 정리된 스테이지가 있고 그 앞에는 직각삼각형 모양의 테이블이 줄을 지어 서있다. 내부는 청남색으로 칠해져있고 테이블이 검은색이었는데 분위기가 아주 깔끔했다. 모던하다는 생각이 딱 들었는데 원래는 전시회장으로 쓰는 곳이라고 하는군. 이 모던함은 블루톤의 벽과 천장에서만 나오는 것도, 직각삼각형의 검은 테이블이 가지런히 있다는 것에서만 나오는 것도 아니다. 블랙 & 블루라는 차갑고 무거운 톤으로 질서정연하게 구성되었지만 묘하게 비대칭인 느낌 전체가 이곳에 모던함이라는 느낌을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화장실이 아주 독특하다. 다들 고속버스 휴게실의 남자 화장실이 어떻게 생겼는지 아실것이다. 철판 하나가 있고 그 앞에서 모두 소변을 보는 그런 스타일이다. 그 철판은 보통 가슴께부터 아래로 내려와있고 그 위에서 물이 흐르는데 이 화장실은 천장부터 그 철판이 깔려있고 천장에서부터 물이 내려왔다. 아주 엽기적인 발상인데 더럽다는 느낌이 들진 않았다.
옌 콜링은 두개의 파트로 나누어져 있었다. 중간에 이십분간의 쉬는시간이 있고. 각 파트마다 한번도 쉬지않고 연주를 했으니 엄청 긴 대곡을 연주한 셈인데 두시간 가까이 후쿠오카는 노래를 했다. 이게 노래인지 창인지, 스캣인지 잘 모르겠는 스타일인데 모르긴해도 가부키나 노오 따위의 일본 전통 악극방식에서 영향을 받은듯 하다. 어쨌거나 이 아저씨가 노래를 하면서 배경에는 지난시절을 생각나게 하는 흑백 영상이 나오고 백밴드가 연주를 하는 방식이었다. 영혼을 울린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그는 자기 스타일을 확립한 뮤지션이라는 것은 확실했다. 이 영상과 후쿠오카의 노래가 주는 느낌은 살풀이 같다라는 것이었다. 종종 무당처럼 웅얼거리기도 했고. 후쿠오카는 여러가지의 감정을 섞어가며 흥얼거렸으며 그것은 미풍같기도 했고 태풍같기도 했으니 말이다. 마그마Magma의 공연을 보고싶다는 생각이 갑자기 든다. 혹시 후쿠오카의 공연에 관심이 있다면 8월 23일 어딘가(읽을 수가 없다...흑)에서 일본 전통 악극단과 함께 하고 9월 27일에는 아키하바라의 클럽 굿맨에서 공연이 있다니 체크해보시는 것도 좋으리라.

내가 관심있었던 사람은 역시 키도 나츠키였는데 아 이사람도 루인즈Ruins의 요시다처럼 사무라이같은 느낌을 주는 사람이었다. 절도있는 자세로 박자를 넣어가면서 기타를 쳤는데 여린 연주부터 격렬한 연주까지 아주 폭이 넓은 기타리스트였다. 거참 안광이 빛나는 연주자들을 보면 얘들은 연주를 즐기는 걸까하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어쨌거나 귀는 만족스럽다.
카즈상은 여기서 팔고있는 키도 나츠키의 씨디를 보았느냐고 물어서 같이 보러갔다. 솔로작을 추천하길래 이중 솔로작이 제일 나으냐고 물었더니 그것보다는 본디지 푸룻의 5집인 Skin(2002)이 제일 좋다고 하네. 처음엔 어떻할까 했는데 내가 주저하는 것을 보더니 카즈상 선뜻 '푸레젠토!'이런다. 어이구 나는 되었다고 하면서 그냥 Skin을 사려고 했더니 그럼 그의 솔로작도 들어야 한다며 둘다 선물로 주겠다고 한다. 너무 미안해서 사양하다가 한장만 선물로 받고 한장은 샀다. 카즈상의 호의는 항상 고맙다. 일본인들이 모두 좋아한다는 마른 김을 사서 주었더니 아주 좋아하더라. 물론 그도 나에게 CD와 MD를 선물로 주었다. 그들은 항상 선물을 준비한다. 나 역시 그들을 만날때는 선물을 준비하게 되는데 이렇게 서로 배려하면서 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꽤 좋아보인다.
이날 들은 키도의 연주는 오늘 카즈상의 추천으로 구입한 협연작(Akihisa Tsuboy & Natsuki Kido : Era, 2002)에 담긴 연주와 유사한 것이었다. 어쿠스틱인데도 파워풀한 휭거링이 인상적이다. 서울와서 들어보니 쯔보이 아키히사壷井彰久의 바이올린도 아주 좋았다. 반면에 Skin은 예상보단 좀 별로였는데 키도는 밴드 연주로 마치 심포닉을 만들어보고싶어하는 것 같다. 물론 심포닉 락과는 전혀 다른 광폭한 스타일이다. 하지만 나는 본디지 푸룻의 초기 스타일을 더 좋아한다.
수많은 브로셔중에 한국영화제 안내가 있었다. 하고많은 영화중에 태양은 없다, 묻지마 패밀리, 몽정기, 중독을 하더라. 오아시스와이키키부라더스니 좋은 영화들도 많은데 언놈이 골랐는지 참...-.- 난 카즈상에게 이건 모두 개똥같은 영화들이라고 말해주었다.

공연이 끝나고 카즈상은 지하철 노선도를 살펴보더니 계획을 세운다. 일본 지하철은 일본인들도 갈때 어떻게 가는게 좋을까 하고 계획을 세워야 한다...-_- 어쨌거나 그는 나를 시나가와까지 바래다 주었다. 혼자 갈 수도 있었는데 말이다. 모두 함께 시나가와에 내렸더니 카즈상의 막차시간까지는 약 30분 정도가 남는다. 지하철에서 얘기를 하긴 했지만 당연히 부족했기 때문에 우린 잠깐 호텔 로비에 가서 얘기를 했다. 역시 요즘 듣는 음악얘기가 주종이었고 그는 15기가짜리 mp3 플레이어인 iPod를 가지고 논다고 했다. 서투른 일어와 영어 그리고 그의 한국어가 왔다갔다하는 대화였지만 역시 언제나처럼 재미있었다. 그는 나때문에 일도 조퇴하고 오는데 두시간이나 걸리는 도쿄까지 와준거다. 항상 그의 두터운 호의는 고맙다.

오늘도 사실은 일본에 대해 되새김은 못했다. 혼자 느긋하게 길을 걸으며 가게에 들어가 더듬거리며 물건을 사고 사람들을 구경하며 지내야지 나의 느낌을 가지게 되는 것인데 나는 카즈상 따라다니기에 바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본의 문화적 깊이는 충분히 맛볼 수 있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판가게가 이정도면 다른 문화를 이들이 얼마나 열심히 즐기고 만들고 있을 것인지 안봐도 비디오다. 그러고보니 나는 카즈상에게 보내주었던 뮤지컬 박스가 어땠는지 아직 물어보지 않았다. 내가 봤던 어떤 잡지들 보다도 훌륭한 잡지이지만 깔끔하고 예쁘게 만든 일본의 '스트레인지 데이즈'나 '유로 락 프레스'같은 칼라 잡지들에 비해 더 훌륭하다고 그가 알아주었을까? 난 그에게 우리에게도 이정도 수준이 있다고 자랑하고 싶었다. 우리가 그런 수준의 것들을 계속 만들 수 있었으면 좋겠다.
호텔에서 오늘 산 판떼기들을 흐뭇하게 정리하면서 나는 만족감 반 부러움 반의 묘한 마음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1.1 촌평[ | ]


거북이일본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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