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의 새벽 20주년 헌정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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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 ]

노동의 새벽 20주년 헌정 공연
  • CD:2299621
  • ISBN:8991418007

2 # 거북이[ | ]

 

SonDon과 노동의 새벽 20주년 기념공연을 보러갔다. 요즘 자꾸 삶이 압박을 해서 공연도 잘 못챙기고 그러는지라 가끔 손군이나 다른 사람들이 챙겨주면 같이 가려는 편이다.
95년 내가 동아리에 들어가자마자 동아리 선배형으로부터 받은 책이 '노동의새벽'이었다. 오윤의 판화가 인쇄된 무거운 표지, 그 자체로 강렬한 제목은 책을 받았을 때 슬쩍 펴본 이후 지금까지 펴보지 않게 했었다.
이번에도 아무 생각없이 사람도 안많을거 같고 멤버도 뭐 나쁘지 않겠거니하고(난 싸이 놈이 나올줄은 몰랐다...-_-) 그냥 보러 간거다. 나야 민중운동권이나 인디의 푸어함은 거부감이 들기보단 좋아하는 편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6시간의 릴레이 회의와 식사를 마치고 늦게 간 공연장에서는 노동자 노래패가 노래하고 있었다. 다들 오른손에 빨간 천조각을 묶고 전투적인 모션을 취하고 있었다. WTO가입국가(푸훗!)에서 아직 저런 노래가 나오고 또 몇몇 사람들이 그것에 호응할 수 있다는 것은 꽤 놀라운 일일지도 모른다. 일본같은 나라에서는 30년 전에 이미 상황종료였던거 같으니까. 어쨌거나 러시아 행진곡풍으로 흘로나오는 '대결'은 나를 흥분시켰지만 실내에서 불러지는 운동가요란 역시 박제같다는 느낌을 지울수는 없다.

끝나고 나온 장사익. 이 아저씨도 어지간히 특이한 캐릭터같다. 마흔 일곱에 첫 앨범을 녹음한 이래 지금까지 꾸준히 활동하고 있는데 날카롭고 묘하게 맑은듯 쉰듯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른다. 민요풍이 섞인 그의 창법은 소리꾼으로서의 그의 색깔을 분명하게 해주고 있다. 평소에 수줍게 말씀하시는 그것과는 다르게 처절하게 뱉어내는 소리를 들으면 금새 빨려들어가게 된다. 그가 '이러다간 오래못가지~'라고 부를때 그는 정말 노동자의 목소리를 내고있었다.

이후 손병휘와 김현성, 윤선애 등이 나왔다. 윤선애와 함께 일렉트릭 사운드를 깔아준 모하비의 연주를 듣다보니 언젠가 그의 CD를 사고 피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떠올랐다. 벌써 테크노는 한물 간 장르같던데, 난 아직 한국의 일렉트로닉스에서 수준작을 들어본 기억이 없다. 달파란강산에의 리메이크 앨범 '하루아침'에서 깔아준 것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리아도 나왔는데 목청좋은 이 아가씨가 자기 경력을 밴드생활로 시작했다면 나름대로 괜찮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처음부터 솔로로 시작한 탓에 지금은 조금 무게가 덜 나가는 기분이다.
Ynot이라는 인디밴드가 나와서 방방 뛰고 들어갔는데, 거 참 힘이 좋더라. 개성은 아직 모르겠지만 연주력은 있었기 때문에, 이후 자기들 스타일을 만들어 내길 기대한다.
언니네이발관의 이석원이 나왔다. 자기 빼곤 밴드 멤버들이 노동의 새벽을 처음 접했다는 발언을 해서 역시 그닥 예의바른 총각은 아니라는 것을 과시하고 들어갔다.

이주노동자 밴드인 StopCrackdown은 꽤 파워있는 연주를 보여주었다. 그들 뿐 아니라 가끔 나온 이주노동자들의 모습을 볼 때마다 그들도 한국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 코러스에 we make Korea라는 부분이 있었는데 한국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한국인들과 함께 호흡하려 한다면 그들이 한국인이지 뭐 다를게 있나. 우리는 아직도 이웃과 함께 지내는 것에 그닥 익숙하지 못하다.

가장 인상적인 곡은 황병기와 소리꾼 전인삼의 그것이었는데 그 일렉트릭 사운드가 황병기의 것일거라곤 전혀 생각지 않았다. '미궁'(1975) 이후 별다른 외도를 하지 않았던(혹은 내가 들을 수 없었던) 그가 몸을 한번 비튼것일까. 솔직히 그 결과물의 수준은 황병기급은 아니었다고 생각되지만 그 연배에 그런 움직임을 보여준다는 것 자체가 놀랍고 멋질 뿐이다. 그는 자기류의 산조를 완성했고 꾸준히 가야금 곡들을 창작해왔으니 존재 자체가 국악계의 자존심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인데 그러한 인물이 저렇게 실험을 하는 것은 다른 이들도 자극할 것이기 때문이다. MiledDavis가 그러했던 것처럼. 이제 일흔 근처라고 하시던데 꼭 앨범을 내셨으면 좋겠다. 당신의 연주로는 침향무의 일부를 들려주시고 들어가셨다.

오늘의 개그쇼는 NExT와 싸이가 해주었다. 넥스트가 나온다기에...이야 '현세지옥'을 라이브로 하려나...하고 그 유치함에 몸을 떨기를 은근히 기대하며 있었는데, 붉은 완장에 양복에 선그라스에 빵모자를 뒤집어쓰고 나온 해철이형은 예상과는 좀 다르긴 했지만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정치적으로는 파시스트를 싫어할거 같은데 하는 짓이나 이미지는 파시스트이니 참 웃긴 넘이다. 어쨌거나 싸이하고 나와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데 싸이는 강남에 8학군이라고, 자기에게 '노동의 새벽'을 읽고 울먹거리며 전화했다고 이죽거렸다. 아무래도 싸이녀석을 씹어보려고 같이 나온 것이 아닌가 싶은데 뭐 어쨌든 해철이는 그 시니컬함 때문에 그래도 좀 귀여운 구석이 있다.
그리고 확실히 해철이는 영악한 놈이며 그것은 오늘 연주한 두 곡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하늘'이라는 곡은 싸이의 어설픈 랩이 끝나면 넥스트가 최루성 코러스를 해주는 것이 반복되는 곡이다. 이 최루성 코러스는 해철이가 전매특허처럼 쓰는 것인데 '우리앞의 생이 끝나갈때'나 '그대에게' 등에서 그 효력은 이미 검증되었다. 어쨌거나 이 곡에서 이미 빠순이들을 집결시킨 넥스트는 바로 다음 곡에서 아니나 다를까 '그대에게'를 불러서 열광의 도가니로 만들었다. 아 정말 뒤에서 코러스를 따라부르던 넥스트 멤버들(해철이형 빼고 다 애들인듯)이나 다른 스텝들도 싫었을거다. 분위기 업을 위해 아직도 저 고리짝 노래들을 불러야 하나하고 말이다. 어쨌든 보는 내가 민망할 정도로 뻔뻔하게 스테이지를 달군(?) 해철이형은 몇몇 오빠부대를 남겨두고 무대를 떠났다. 골수 빠순이들은 해철이형과 함께 떠났다.

다음을 이어받은건 한대수다. 한대수는 언젠가 이제 죽을것같다고 하면서 마지막 콘서트를 한 이후 제 2의 전성기, 아니 그의 음악 여정을 살펴볼 때 생애 최고로 정력적인 활동을 벌이고 있다. 물론 내면적인 힘이야 젊었을 때보다 못하지만 음악도 매우 파워풀하다. 게다가 지금 밴드에는 항상 김도균, 이우창이 도와주는 바람에 사운드 자체도 최고 수준이다. 그리고 어떻게 연결되어 한대수 밴드에 참여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브라질 출신의 발치노는 다채로운 퍼커션을 연주해주고 있어서 좀 더 다채로운 사운드가 되었다.
아까 남은 오빠부대 일부는 파워풀한 연주를 기대하며 앞쪽에서 방방 뛰고있었는데 한대수 밴드가 긁어주니까 계속 열광해주었고 그 덕에 우연찮게 한대수와 김도균은 여성동지들의 환호를 받게되었다. 한대수는 열심히 노래하느라 별로 신경을 안쓰는거 같드만 김도균은 므흣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오빠부대 앞에서 열심히 기타 묘기를 보여주었다. 백두산이후 지금까지의 음악여정 중에서 가장 소녀팬들을 많이 모아 기뻐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러고보면 소녀팬들의 존재는 뮤지션에게 참 중요하다. 한대수의 근작 '상처'(2004)에는 한대수가 입원했을 때 간호사들과 찍은 사진이 담겨있다. 뭐 피카소도 죽을때까지 여색을 탐닉했으니 뭐 오빠부대 정도는 귀여운거다. 음 횡수가 길어지는데 결론은 뮤지션에게 오빠부대는 꼭 있어야 하는 소중한 존재라는 것이다...-_-
어쨌든 한대수는 근래에 자주 연주하는 뻔한 레퍼토리를 연주했고 마지막은 '행복의 나라로'와 '물좀주소'로 끝냈다. 나는 내심 '호치민'을 듣고싶었는데 이건 절대 안하더라. 한대수도 자신이 남긴 최근 세장의 앨범중에 가장 뛰어난 곡이 호치민이라는 것을 모르진 않을텐데 말이다. 생각해보면 황병기(37년생)에 비해 한대수(48년생)가 그렇게 젊은 것도 아닌데 정력적인 활동을 보이는 것을 보연 한대수는 그것만으로도 대접받아야 한다.
이 자리에서 한대수가 특별했던 것은 아마 그의 중간자적인 성향 때문일 것이다. 그는 한국에서 최초로 포크의 물꼬를 튼 사람중 하나지만 군사독재가 이후 그의 생활무대를 미국으로 만들어버렸고 그는 그 이전에 이미 어린시절을 미국에서 보냈다. 그래서 그는 종종 한국어와 영어를 섞어 쓸 정도로 (이게 재수없는 그런 것이 아니라 생활에 가까운 형태였으니 비난하고 싶진 않게) 반쯤은 미국인이었는데도 그의 음악은 지극히 한국적이었다. 그의 첫번째 부인인 김명신도 인터내셔널하게 산 사람이고 그의 두번째 부인 옥사나는 모스크바 출신의 몽고인인가 그렇다. 그렇게 중간자로 평생을 보냈기 때문에 외국인 노동자들에게는 그에게 동질감을 느꼈는지 우르르 몰려나와 꽃을 주고 갔다.

어쨌거나 이 공연의 개인적 의의가 있다면 나에게 '노동의새벽'을 다시 펴보게 했다는 것일거다. 만 스물 일곱의 노동자에게 저런 언어를 토해내게 만든 그 시대의 아픔이 살떨리게 다가왔다. 그리고 그때로부터 이십년이 지난 지금은 여전히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답안나오는 미래를 불안해하며 시달리고, 외국인 노동자들을 가학적으로 착취하는 그런 현실이다. 굶어죽는 사람은 그때보다 확실히 줄었으니 조금은 나아진걸까. 스무살의 나는 노동의 새벽을 읽기엔 어렸는지도 모르겠다. 치열하게 살았던 젊은 박노해의 흔적을 접하니 너무 나태하게 살고있지 않나라는 생각을 지울수가 없어서 쓸쓸했다. 이런 쓸쓸함은 싸이와 넥스트가 웃겨준다고 풀어지지는 않는다. -- 거북이 2004-12-12 12:50 am

3 # 촌평[ | ]

잘 읽었습니다. 저는 지금 경북 구미에 출장 와 있는 중인데 여기서도 틈만 나면 인터넷에 들어와 태업을 하네요. 후후. 마지막 출장이라 좀 열심히 해 보고 싶은 생각도 '잠시'(아주 잠시) 들긴 하지만 아, 제대 말년에 이 정도면 훈장 감이지 싶죠. 전태일 열사 동생이신 전순옥 선생(퍼슨웹이랑 인연이 있으신)도 저 앨범 녹음에 참여하셔서 [시다의 꿈]을 부르셨는데(신해철이 직접 전화걸어 부탁하더랍니다), 공연에도 출연하라는 제안을 받았으나 그것까지는 싫다고 거절하셨다네요. 이런 공연평 같은 거는 퍼슨웹에도 올려 주세요. 아직 거북 님은 젊고(많이 젊지 않을지는 모르나 여전히 젊습니다) 앞으로 살아갈 시간이 많으니 쓸쓸함을 만회할 여백은 충분할 겁니다. 나중에 뵙죠! -- 공 2004-12-22 2:26 pm

On Second Thought, 거북 님은 아직 '많이' 젊어요. 꼭 이 말을 해 드리고 싶네요. 이 팍팍한 사회가 젊은이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더 이상 젊지 않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젊다/안 젊다의 대립항이 주는 의미란 것도 참. 아, 영화 마이제너레이션은 봤나요? 매우 우울하고 정직한 영화지요. -- 공 2004-12-22 2:49 pm

고맙습니다. 생각난 김에 퇴고를 좀 했습니다. 저녁에 뵈어요~ :) -- 거북이 2004-12-22 4:01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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