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병기

1 개요[ | ]

HWANG Byungki ( 1936 ~ 2018 )
황병기
  • 국악 작곡가, 가야금 연주가
  • 창작 가야금을 시도하고 현대음악과의 접점을 고민했던 음악인

2 앨범[ | ]

  • Vol.1: 《침향무 (沈香舞, Chimhyang-moo)》(1974)
  • Vol.2: 《비단길 (The Silk Road)》(1977)
  • Vol.3: 《미궁 (迷宮, The Labyrinth)》(1979)
  • Vol.4: 《춘설(春雪, Spring Snow)》(1997)
  • Vol.5: 《달하 노피곰(Darha Nopigom)》(2007)

3 재발매음반 리뷰[ | ]

2001 08

격월간 스테레오 뮤직 9, 10월호 예정 지면관계상 일부 짤렸네요.


국악 음반의 보급과 재발매에 관해서는 한국 고음반 연구회의 정창관[ http://www.gugakcd.pe.kr/ ]만큼 잘 아는 사람도 별로 없을것 같은데 그의 말 중에 인상깊은 것이 있었다.

"국악음반에는 명연은 있으나 명반은 없다." 이것은 아직 국악 레코딩 수준에 문제가 있어 그 사운드스케이프를 현장감있게 잘 잡지 못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여기에 월드뮤직[ 서구인의 관점에서 국악은 하나의 전통음악traditional music이고 제 3세계의 음악인 월드뮤직world music이다. 서구인의 편향된 관점이 투사된 단어이지만 대안이 없기에 사용한다. ]과 프로그레시브 락 애호가인 허경은 WOMAD(World of Music, Arts & Dance)라는 월드뮤직 축제와 월드뮤직 전문 레이블 리얼 월드Real World레이블에서 발매한 레코딩에 관해 다음과 같은 요지의 견해를 남겼다.

'리얼 월드에서 발매된 한국 연주자의 단독 녹음은 92년의 컴필레이션 A Weekend in the Real World Part.1의 13번 트랙인 김덕수 사물놀이의 동살풀이 변주곡Variations on TongSalPuri(Eastern Exorcism) 뿐이다. 이 곡은 아일랜드 포크 그룹 클라나드Clannad[ 엔야Enya를 배출한 가족 그룹 ]의 멤버 폴 브레넌Pol Brennan이 프로듀스를 하고 크리스 로슨Chris Lawson이 엔지니어링을 맡았다. 여기서 폴 브레넌이 만든 이 한곡의 녹음에는 다른 국내의 사물놀이 녹음들에서는 찾기 힘든 아우라aura가 살아있었다. 최고수준의 장비를 사용하긴 했지만 사물놀이라고는 전혀 모르는 이 벽안의 젊은이가 촉박한 레코딩 일정에 �기며 만든 소리가 압도적으로 좋았다는 것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물론 지금 우리는 사운드 스페이스Sound Space와 같은 수준있는 전문 국악 음반 제작 집단까지 가지고있긴 하지만 여전히 국악 레코딩이 최고수준의 연주를 실감나게 잡아내기에는 갈 길이 멀다 하겠다.

이런 시점에서 국악계의 팝 스타인 황병기(1936-)의 음반이 C&L에서 모두 리마스터링되어 재발매된 것은 무척 고무적인 일이다. 게다가 한, 영. 불, 일어 이렇게 4개국어로 상세하게 소개된 책자와 귀티나는 하드커버는 기획자가 무척이나 세심하게 작업했음을 느끼게 한다.

책자에는 황병기의 음악, 가야금과 그 주법, 황병기가 쓴 음악론과 곡목해설 � 약력등이 사진자료들과 함께 가지런히 정리되어있다.

여기에 담긴 사진과 커버 디자인은 이 음반의 품격을 높여주기에 더할나위 없을만큼 잘 되어 있으며, 악기해설은 간결하면서도 무척 충실하게 적혀있다.

하지만 이 재발매는 백점을 주기에는 뭔가 미진한 점도 몇가지 있다.

먼저 오리지날 음반의 재킷이 포함되지 않았다. 보통 많은 재발매 음반들에서 이런 우를 범하는데 이는 각각의 음반들도 역사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아쉬운 일이다. 오리지날 재킷에는 앨범 발매 당시의 사진들이 담겨있으며 특히 {미궁}의 LP재킷은 음반의 성격을 잘 드러내주는 걸작 재킷이었다. 이번에 새로 추가된 {가야금}만이 오리지날 재킷을 담고있다.

그리고 글의 필자와 역자가 명확하지않다. 제대로 적혀있는 글들도 있지만 LP로 나왔을 때 해설을 쓴 박용구의 해설이 그대로 담겨있으면서도 그의 이름이 적혀있지 않다. 악기 해설도 누가 썼는지 적혀있지 않으며 이 글들의 번역 역시 역자가 적혀있지 않다. 이런 것들은 소소하면서도 간과해서는 안될 일들이다.

우리나라가 부실 덩어리가 된 이유중 하나는 자신의 작업에 대해 이름을 밝히는 전통을 어느순간 잃었다는 것이다. 이름을 적는다는 것은 작업에 대해 긍지를 드러내는 것이며 또한 자신의 작업에 책임을 지겠다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동일한 글이 다섯 앨범에 모두 들어있다. 물론 좋은 글들이지만 각 음반에 맞는 시대적 분석이 담긴 글이 각각에 음반에 들어있다면 이 음반의 품격이 더욱 높아졌을 것이다. 나처럼 5장의 음반을 모두 가진 이에겐 아쉬운 일이다.

그래도 음반에 지적할 점이 고작 이 세가지라는 것은 이 음반들이 얼마나 훌륭한가를 반증하는 일이기도 하다. 국내음반들은 말할것도 없고 해외 재발매 음반들도 욕먹을 구석들이 너무나 많아 나처럼 소위 '음반대하는 것을 여성대하듯 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차라리 내가 만들고싶다라는 생각이 들게하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이번 재발매에 맞추어 작곡가 나효신이 황병기와 나눈 대화를 수록한 책 {황병기와의 대화}(2001)도 도서출판 풀빛에서 함께 출간되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같은 출판사에서 94년에 나온 그의 글모음 {깊은 밤, 그 가야금 소리}(1994)라는 책을 더 추천한다. 그의 인간됨과 생각, 음악등이 무척 맛깔스럽게 담겨있는 책이다. 그의 음악론이 보여주는 수준은 왠만한 전문서적의 수준을 가뿐히 넘어서는 것이고 그의 일상과 생각을 보여주는 글들은 최고의 수필가들 저리가라이다.

황병기에 대한 사이트는 http://bkh.bestmusician.co.kr이 있으나 조금 부족하다.

황병기는 여러 선배 연주자들에게서 사사받아 곡들을 발전시키기도 하였지만 창작 국악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받고있으며 또 그래야 한다. 사실 국악은 대를 이어오면서 조금씩 변화하고 어느 대에 이르러 집대성하면 그것이 어떤 류流로 인정받는다. 이런 방법은 좋은 옛것을 놓치지 않는 훌륭한 방법이지만 자칫하면 교조적으로 빠지기 쉽고 혁신적인 발전으로 나아가기는 어렵다. 창작국악은 국악을 현재진행형으로 만들고 당대의 조류나 사회상 등을 담을 수 있으며 국악이 정체되지 않도록 젊은 피를 수혈하는 무척 좋은 방법이다. 황병기와 같은 대가가 창작국악을 먼저 시도하여 후학들이 나아갈 길을 수월하게 닦아놓았다는 것은 후배 연주/작곡자들이 크게 감사할 일이다.

사실 이 정도가 아니다. 그는 전통적인 연주의 틀에서 벗어나도 한-참 벗어난, 현대음악에 가까운 혁신적인 작품 [ 미궁 ](1975)까지 내놓을 정도로 열려있는 사람이며 선각자이다.

CD:2237119

이번 재발매가 더욱 즐거운 것은 그의 최초 레코딩인 미국반 {가야금}The Kayakeum-Music from Korea(1965)까지 함께 이번 시리즈에 포함되었다는 사실 때문이다. 이 음반 앞면에 수록된 세 곡은 다른 연주로 그의 첫번째 작품집 {침향무}(1978)에 수록되었지만 뒷면의 가야금 산조는 이 음반에서만 들을 수 있는 것이다.

이 앨범의 녹음은 마스터링을 다시하긴 했지만 확실히 첫번째 앨범만은 못하다. 그래서인지 연주도 첫번째 앨범에 비해서 단정한 맛은 좀 덜하다는 느낌이다.

반면에 뒷면의 가야금 산조는 그의 자유분방함이 여지없이 느껴지는 아주 좋은 연주이다. 단정함과 격렬함이 함께 살아있는 이 연주에서 나는 다시한번 국악의 정수는 산조와 같은 즉흥연주free improvisation에 담겨있음을 느낀다.

황병기는 98년에 자신의 꿈인 황병기류 가야금 산조를 완성했다. 내가 비록 조예가 깊지못해 이 65년도 녹음이 어떤 류인지 이번에 완성된 정남희제 황병기류는 어떤 역사적 맥락에서 형성되었는지 알지 못하나 가장 어려운 경지중 하나인 자기 류의 산조를 완성했다는 사실, 특히 황병기처럼 자기 예술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사람이 그렇게 했다는 사실은 거장들이 사라져가는 이 시대에 황병기와 같은 거목이 확실한 뿌리를 내렸다는 것을 반증한다.

CD:2237115

황병기의 첫번째 작품집인 {침향무}(1978)는 국악 역사상 최초로 창작된 작품인 [ 숲 ](1962)이 담겨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황병기 초기의 오랜 시간동안 섬세하게 작곡된 작품들이 처음으로 대중에게 선보였다는 점에서 역사적인 음반이다. 이미 여기엔 황병기가 고전적 연주자이면서 무척이나 근대적이고 내적 혁신을 추구하는 연주자인지를 보여주는 요소들이 있다. 바로 [ 침향무 ](1974)의 존재가 그것이다. 침향무沈香舞는 우리나라에서도 귀족들이 널리 사용해왔던 인도의 유명한 향인 침향속에서 춤을춘다는 뜻으로 곡에서는 범패에 기초를 둔 음계와 인도음악적인 주법을 사용하여 서역적인 분위기를 묘사했다.

만약 황병기가 가야금으로 프랑스 여행의 분위기를 묘사하려 했다면 실패했을 가능성이 훨씬 높았을 것이다. 하지만 인도라면 조금 다르다. 인도는 같은 아시아권 국가이면서 우리의 종교중 하나인 불교가 생성된 곳이다.

이렇게 변화를 시도하면서도 무리한 변화를 꾀하지 않는 것, 이것이 진정한 보수이자 혁신이다. 우리사회에서는 수구세력들이 스스로를 보수라고 지칭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들은 먼저 국어사전을 읽어보는 것이 좋을 것이며 다음으로 황병기의 [ 침향무 ]를 들어 볼 일이다.

CD:2237116

최초 레코딩 이후 13년만에 음반이 나왔으니 그동안 쌓인 곡들은 많았고 그 힘으로 바로 이듬해에 두번째 작품집인 {비단길}(1979)이 나올 수 있었다.

황병기의 곡들에는 대개 제목이 달려있다. 이러한 표제음악적 요소나 악장 형식으로 구분되어있는 것은 얼핏보면 서구의 클래식적인 것으로 비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창작국악을 시도함에 있어 제목이 들어가는 것은 근대를 지나 현대에 살고있는 우리들에게는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고 악장형식으로 구분하는 것도 사람의 감정을 표현하는데 있어 자연스럽게 도입되는 것이다. 이미 전래곡들도 각각의 주 장단에 따라 곡이 나뉘어졌었다.

이러한 요소들이 서구의 형식과 유사하다는 것은 국악의 세계화에 있어 오히려 강점이다.

[ 전설 ]이나 [ 영목 ]과 같은 분위기의 곡들에 제목이 달려있음으로 해서 그 어두운 분위기에는 한국적 무속sacred의 이미지가 들어갈 수 있고 감상자는 자신이 가진 배경 이미지와 함께 음악에 몰입될 수 있는 것이다.

CD:2237117

그의 첫 두 음반이 고전적 분위기에 충실한 곡들이 담겨있다면 세번째 앨범에서 그는 드디어 '파격'을 시도한다. 이미 75년, 즉 첫번째 작품집을 내기도 전에 초연했던 충격적인 작품 [ 미궁 ](1975)을 가다듬어 담은 음반 {미궁}(1984)을 발표한 것이다.

그가 [ 침향무 ]에서 시도한 혁신이 내적인 것이라면 [ 미궁 ]에서 시도한 혁신은 외적인 것이다. [ 미궁 ]과 같은 작품이 처음 등장할 때 이렇게 높은 완성도를 가지고나왔기 때문에 이후 많은 연주인들이 또다른 혁신을 시도할 길이 닦인 것이다.

최근 인터넷상에서 여고생들 사이에 '자살충동이 생기는 곡'이라며 납량(?)음악으로 회자될 정도로 괴기스러운 이 작품은 사실 매우 문명비판적 작품이면서 인류 구원의 메시지를 담은 작품이다.

이는 서구에서도 한국의 현대음악 작품으로 당당히 인정받고 있는 매우 완성도 높은 작품이기도 하다. 내가 개인적으로 외국의 친구들에게 이 음반을 추천했을 때 그들은 진심으로 이 음반을 좋아했다. 그들은 다들 최소 15년 이상 음악을 진지하게 들어왔던 숨은 대가들이며 스스로에게 솔직한 사람들이다.

사실 현대음악 작품들 중에는 진짜 혁신적인 것들도 많지만 예술적 사기에 불과한 것들도 많으며 그 작품들은 듣는이를 기만한다. 하지만 황병기의 작품은 무척이나 진실하며 이는 홍신자의 목소리 그리고 그에 담긴 우리말 메시지때문에 우리에겐 더욱 직접적으로 다가온다.

앞면이 너무 강렬하여 뒷면에 담긴 두 곡 [ 국화 옆에서 ](1962)와 [ 산운 ](1979, 1983)이 간과되기 쉽다. [ 국화 옆에서 ]에는 전통 가곡 형식으로 미당 서정주의 시가 낭송되는데 이러한 새로운 시도가 그의 첫 작곡에서 시도되었다는 사실 또한 황병기라는 대가에 대해 말해주는 것이다.

CD:2237118

그의 최근작인 {춘설}(1993)에서 그는 다시 고전적인 연주로 돌아왔다.

이는 아마도 다시 기본에 충실한 연주를 하여 스스로를 갈고닦으려하기 위함이라고 여겨진다.

사실 그의 작품집들은 매우 다양한 시기의 작곡들을 담고있는지라 음반들만으로 그의 음악세계를 추적하기는 어렵다. 작곡 시기와 초연 시기들을 따라가야 비로소 그의 음악적 연대기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어쨌거나 혁신으로 나아간 뒤에 다시 기본으로 돌아오고 또 다른 혁신으로 나아갈 내적 영감이 충실해질 무렵 조심스럽게 다른 혁신을 시도하는 황병기의 모습을 보면 그를 우리시대의 사표라 부르고 싶어진다.

나는 이 황병기 음반들의 재발매가 국악의 세계화를 위한 또 하나의 발걸음이 되면 좋겠다.

황병기를 비롯한 여러 연주자가 세계 순회공연을 돌면서 국악의 단아함과 넘치는 힘을 널리 알리고, 사물놀이와 레드 썬Red Sun이 작업한 일련의 음반들처럼 다른 음악과의 접목을 시도하고, 사운드 스페이스처럼 국악을 재해석과 더불어 고품격으로 내놓으려는 노력을 하고...이런 발걸음에 한걸음 더 나아간 작업이 되면 좋겠다.

더 나아간다면 국악음반을 제작할 때 실황live, 여러 연주자들의 기획음반Various Artists, 편집음반 compilation, 독집album 등으로 명확히 구분하고 그 연주의 종류genre, 발매년도와 녹음년도, 음반제목album title, 참여 연주자들의 목록과 역할position등을 자세하고도 체계적으로 적어 소비자들이 음반을 찾는데 무리가 가지 않도록 해야한다.

그리고 현재 정창관 등 몇몇 선각자들이 하고있는 고독한 데이타베이스database 작업을 조금 더 체계적으로, 조금 더 대규모로 진행하여 문화적 기반cultural infra를 만들어야 한다. 인프라가 없으면 아무도 더 나아갈 수 없다. 계속 비생산적인 작업들을 반복할 뿐이다. 후학들이 딛고 올라갈 인프라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세계화를 위한, 아니 세계화까지 부르짖지 않아도 우리가 더욱 우리답기 위한 초석이 되는 것이다.

만점에 가까운 이 황병기 재발매 음반들이 그런 초석중 하나가 되면 정말 좋겠다.

4 같이 보기[ | ]

5 참고[ | ]

문서 댓글 ({{ doc_comments.length }})
{{ comment.name }} {{ comment.created | snstim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