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옥

1 개요[ | ]

Yong-Ok Kim, Do-ol ( 1948 - )
金容沃, 檮杌
김용옥, (호, 필명) 도올
  • 한국의 철학자, 사상가, 한의사, 대학교수

 

2 # 거북이의 논평[ | ]

당대의 논객 한명에 관한 찬반양론이 단행본으로 5-6권이나 나와있다는 것 만으로도 김용옥은 분명 걸출한 인물이다. 결과적으로 나의 이 글은 김용옥에 대한 비판적 지지일 것 같은데, 어쨌거나 나를 만들어나가는 과정에서 김용옥이라는 텍스트는 꽤나 유용했기 때문이다.

2.1 먼저 칭찬부터[ | ]

김용옥은 지식을 엮는데는 정말 프로다. 그는 지적인 유희, 지식과 지식간의 연결(hyperlink!)이라는 부분에서 참으로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었다. 그가 내놓은 수많은 책들에는 정말 동서고금의 내용이 다 들어있으며, 그가 쓴 글은 시/서예/시나리오/문학번역/경전번역/의학/종교/철학 등 인간이 만든 대부분의 텍스트 장르를 포괄한다. 그는 스스로를 종합예술인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다. 어쨌거나 그 저서들 안에는 수많은 지식들이 촘촘하게 짜여져있다. 그가 좋아하는 표현을 써준다면 그의 글은 지식의 산조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진실성과 완성도는 조금 의심스러운 면도 있지만 적어도 재미는 있다. 코믹하기도 하고.

이 재미라는 것이 참 얻어내기 힘든 것이다. 그는 옛날로 치면 정말 무지렁이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TV 앞에 앉아 도덕경이니 논어니 하는 고리타분한 얘기들을 한시간 이상 매주 듣게 만들었다. 이 장심이사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술자리에 앉아 노자가 어떻고 공자가 어떻고 다들 한마디씩 던지며 떠들었다. 지식 엔터테이너라는 측면에서 이정도의 흡입력을 가진 사람을 나는 김용옥 이외에 들어본 적이 없다. 그는 정말 독보적이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경지에 올라가있다. 그에게 위대하다라는 표현을 쓸 수 있다면 바로 이 부분에서다.

재미있다는 것은 지식을 쉽게 풀어낸다는 말이기도 하다. 여기서 적어도 우리 학계는 두가지를 김용옥에게 배워야 한다. 하나는 김용옥만큼 이해하고 쓸 수 있는 학자가 얼마나 있느냐 하는 것이다. 김용옥은 내용의 진실성이나 논리의 일관성이라는 것을 떠나서 적어도 자기의 언어로 얘기해왔다. 김용옥의 책들이 그가 만들어낸 순수한 창작물이 아니라 여기저기서 가져온 지식들이라 할 지라도 최소한 스스로 이해하고 조합하여 떠들었다는 말이다. 한국에서 가장 좋다는 학교 두 곳에서 수업을 들어본 결과 나는 한국의 교수들과 박사들의 70% 이상은 자기가 이해하지 못하는 내용으로 떠들고 있다고 여기게 되었다. 나에게 있어 김용옥은 나머지 30%에 속한다.

그리고 또 하나는 김용옥이 한국어를 제대로 말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가 어려운 글을 쓰고 있더라도 그 글들은 대부분 이해 가능한 한국어였다. 사실 우리 학계의 학자들이 써대는 글들을 보면 이것이 한국어인가 싶을 정도로 앞뒤가 안맞거나 비문이거나 너무 길어 산만한 것들이 많다. 그런 글이 나오는 이유는 그들이 한국어를 제대로 쓰지 못하고 계속 영어의 어휘나 영어식 문법, 영어식 사고방식으로 한국어를 쓰기 때문이다. 아니면 한국어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의 지식에만 관심을 가진 나머지 되는대로 한국어를 쓰기 때문일 수도 있다. 나는 그들의 불구에 가까운 한국어를 듣다보면 그들이 학자적 자질 이전에 기본은 있는 사람인가라는 의심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영어 이전에 우리 학계를 지배한 언어는 일본어였고 지금도 우리 학계는 일본어와 영어의 잔재를 조금도 벗어던지지 못하고 있다.

한국어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는 사람이 수업시간에 수업을 제대로 할 수 있을리가 없다. 그런 교수들은 교수법을 익히지 않는 사람인 것이고, 학생을 가르치는 일이 자신의 업 중 하나라면 그들은 생업을 나태하게 하는 나쁜 직장인인 것이다. 수업에서 학생들과 교감하며 얻는 피드백을 무시하고, 교수법 익히는 것을 소흘히 하여 월급을 주는 물주인 학생들을 수업시간에 졸게 만드는 것은 서비스업자로서의 자세가 틀려먹었다고 볼 수 있다. 즉 그들은 자본주의에 적대적인 존재라는 얘기다. 자신들의 철밥통에 안주하여 학생들과 교감을 하지 않는다. 그 점에서도 그들은 김용옥을 따라가지 못한다. 김용옥은 아침에 자기 똥싼 얘기를 하면서도 충분히 재미있게 얘기를 한다.

김용옥의 미덕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김용옥은 번역과 용어 정의의 중요성, 외래어 표기법의 필요성 등등 학문이 가져야 할 기본적인 것들에 대해 '동양학 어떻게 할 것인가'(1985) 이후 20여년간 일관성있게 떠들어왔다. 그가 지적한 우리 학계의 문제점들은 아직도 계속 그 문제를 가지고 있다. 그는 한국, 대만, 일본, 미국의 좋은 대학들을 돌아다니면서 다양한 지적 자산을 흡수해왔는데 그는 지적 자산을 흡수하는 방법론 또한 배워온 것이다. 그곳에서는 상식에 가까운 그 방법론이 너무나도 무시되고 있는 한국의 지적 토양에서 그는 먼저 그 방법론을 설파했다. 그 당연한 행위를 해왔던 학자들이 적어도 김용옥 이전에는 거의 없었다는 점에서 그는 대한민국의 지성계를 근본부터 흔든 사람이라 할 수 있다. 다른 것은 몰라도 김용옥의 이런 선구적 주장은 학계에서 인정해야 한다.

2.2 이제 비판을[ | ]

이러한 수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동안 김용옥을 마음속으로 선생님이라 생각한 적이 거의 없었다. 그것은 내가 도올서원을 다니면서 보았던 그의 속물적이면서도 권위적인 모습, 그리고 권력자들과 언론의 앞에서 눈에 띄기 위해 알랑거리던 가벼운 모습, 수없이 글을 써대지만 개론서와 자기 똥싸는 얘기 등을 제외한 제대로 된 자기만의 사상적 저술이 단 한권도 없다는 사실들 때문이다. 그를 언론에서도 보고 실제로도 본 나로서는 김용옥에게 존경하는 마음을 가질 수가 없었다.

일단 나는 그다지 김용옥을 철학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철학자는 어떠한 사람인가라는 문제가 바로 생기는데 뭐 모든 박사는 철학박사(Ph.D : Philosophy of Doctor)이고 또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사람이라면 당연히 철학을 가지는게 맞으니까 세상에는 박사의 숫자만큼 철학자가 많이 있야야 하겠지만, 세상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어쨌거나 지금 내가 말한 점에서 김용옥은 그닥 일가를 이룬 사람이라고 생각되진 않는다. 적어도 본인이 생각하는 것처럼 사상가로서 말이다. 나는 김용옥 책의 80%는 읽은 것 같은데 김용옥의 사상이 뭔지 모르겠다. 김용옥의 사상이 하나 있다면 우리 공부 제대로 하자 정도? 그는 자신의 공부방법에 대해 어디서나 얘기하고, 애기들을 위한 논술강의를 하였으며, 도올서원을 꾸려나갔고, 각종 언론플레이 및 기자생활 등으로 항상 누군가를 가르치려 해왔다. 그런데 이런 사람이라면 선생님이지 사상가는 좀 아닌 것 같은데. 하지만 김용옥처럼 지성계를 흔들었(나? -_-)으면 그것만으로 대단한 사상가 아닌가 싶기도 하고, 뭐 여튼 판단이 참 애매하다.

김용옥은 앞뒤 안맞는 얘기를 할 때가 참 많다. 팬이 많은만큼 안티팬도 많기 때문에 많은 비판서가 나왔고 그들은 하나같이 김용옥의 주장이 오락가락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런 비판에 대한 김용옥의 대답이 걸작이다. 지금 정확한 출처가 기억나지 않는데(아마 금강경강해일 듯) 그 요지는 내 텍스트가 거시적으로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가 중요하지, 자구 하나하나에 연연하면 내 텍스트를 이해할 수 없다, 텍스트는 맥락에 따라 바뀌는 것이다, 정도였던 것 같다. 애석하게도 김용옥의 책들이 고전을 넘어 경전의 경지에 올라갔으면 후학들이 그렇게 읽어줄 수도 있겠다만 지금 김용옥은 해석자의 입장이므로 그의 말 하나 하나는 정확해야 하는데 사실 그렇지 못하다. 어쩌면 저서가 50여권에 달하는 사람에게 이정도 요구를 하는 것이 무리일 수도 있겠다. 그는 뱉어내는 것을 우선시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조금은 이해가 되기도 한다. 그의 말대로 일단 지르는 것을 방법론으로 삼고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의 책들이 매우 산만한 것이야 뭐 그렇다 쳐도 책 본문보다 서문이 더 긴 것은 참 읽을 때마다 황당했다. 요즘 출간되는 책들은 서문이 짧아졌거나 없어졌거나 해서 다행인데, 예전 책들은 서문이 정말 길었다. 더욱 황당한 것은 본편보다 서문쪽에 더 쓸만한 내용이 많게 느껴졌던 것이었다. 그래도 그건 서문을 자신의 개인적인 저널처럼 활용한 특이한 케이스다 정도로 이해해 줄 수 있다.

더욱 당혹스러웠던 것은 스스로가 남긴 도덕경에 대한 두가지 번역이다. 하나는 1989년에 내놓은 '老子 ― 길과 얻음'이고 또 하나는 99년에 나온 '노자와 21세기'인데 이 두 책의 번역이 전혀 다른 것이다. 고전은 그때 그때 다르게 해석되어야 한다고 주장할지도 모르겠지만 기왕 1989년에 근본적으로 다른 번역을 시도했다면 그대로 밀고나가는 것이 더 멋있을 뻔 했다. 아니라면 99년 책에서 다시 다르게 번역하게 된 계기에 대해서 말해주거나. 도덕경에 대한 이해가 십년만에 그렇게 바뀌었다는 것을 해명하지 않는다면 도가적인 것에 많은 것을 빚지고 있을 기철학에 대해 신뢰를 가질 수가 없다. 거의 모든 책에서 번역의 중요성을 언급하고 있는 김용옥인지라 이 부분은 꽤 중요한 문제이다.

2.3 이제 마무리로[ | ]

얼마전에 김용옥의 '기독교 성서의 이해'(2007)를 사보았다. 나는 종교가 없는 사람이고 기독교에 대한 이해가 전무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성서라고 불리우는 바이블이라는 책은 당연히 인간이 쓴 것이고, 그것이 정립되기까지는 수많은 권력투쟁이 존재했을 것이다라는 생각을 어릴때부터 해왔다. 그런데 그런식으로 생각하는 기독교인을 거의 만난 적이 없었다. 내가 아는 기독교인들 중 단 두명만이 바이블은 인간이 쓴 것이라고 답했으며 그중 한명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야훼가 그렇게 상황을 만든 것이라는 천지창조 스타일의 답변을 했었다. 그런데 김용옥은 저 책에서 바이블의 각 편들이 가지고 있는 특성과 바이블 정립의 역사를 소상하게 설명해주고 있었다. 그는 그저 신학계의 상식을 소개하는 정도라고 했는데 나는 김용옥 이전에 이정도로 심플하게 초기 기독교와 바이블에 대해 설명한 책을 본 적이 없었다. 김용옥의 책들은 거의 5-6할 정도가 나에게 유익했을 정도로 타율이 높은 편인데. 이 책도 역시 안타성이었던 것이다.

내가 짜증나는 것은 김용옥이 아니다. 김용옥의 책들은 좋은 교사이기도 하면서 반면교사가 되기도 하는 결과적으로 좋은 글들이다. 김용옥의 책들은 가려서 읽기만 한다면 매우 도움이 되는 양서이고 이것은 실제로 판매고와 팬들의 숫자로 증명이 된다. 인문학에서 이정도의 사회적 영향력을 가지는 인물을 찾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런데 김용옥 비판하는 책은 많이 내면서 왜 김용옥처럼 번역하는 사람은 없는 것인지, 왜 기독교든 도가철학이든 사서삼경이든 김용옥보다 더 재미있게 풀어내는 사람은 없는지가 짜증나는 것이다. 그리고 많든적든간에 김용옥에게서 영향받은 사람은 적지 않을 것인데, 김용옥에게서 이런 것들을 배웠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찾기 쉽지 않다.

적어도 지금의 나를 만드는데 가장 지대한 영향을 끼친 책 한두권을 들라면 김용옥의 책이 끼긴 어렵겠지만, 전체적으로 가장 생각해볼 텍스트를 많이 공급한 사람 한명을 들라면 김용옥을 들 수 밖에 없다. 나에게 밥통같은 서양철학에 비해 동양철학이 훨씬 배울만한 것이다라는 것을 알려준 사람도, 논어와 도덕경을 읽으려면 한국어 영어 한자 원문 이렇게 세가지 이상의 텍스트를 놓고 보라는 것을 알려준 사람도, 번역이 얼마나 중요하고 일본어 번역어가 어떤 과정으로 성립되었는지를 알려준 사람도, 외래어 표기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려준 사람도, 김용옥이다. 결과론적이긴 하지만 학문에 있어서 용어의 정립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알려주어 결국 내가 인생을 사전에 걸게 만들게끔 영향을 준 사람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제 김용옥을 더이상 부정하지 말고 그냥 나의 선생님으로 인정하는 수 밖엔 없을 것 같다. 지금까지 김용옥을 많이 부정하면서 지냈는데 '기독교 성서의 이해'를 읽고나서 95년 이후 김용옥의 책을 내가 어떻게 소화해왔는가를 생각해보니 이런 결론을 내릴 수 밖에 없었다. 더이상 학력세탁을 하지 않기로 했다. 하하. 물론 앞으로도 그의 조악한 행동들에는 조소를 날리겠지만 어쨌든 그는 참으로 멋진 선생님 중 한명이다. 그가 정말 자신의 기철학을 집대성하는 제대로 된 저작 한권을 꼭 쓰길 바란다. 그러면 정말 존경하는 선생님으로 모실 수 있을 것 같다. 1948년생이니 이제 환갑이다. 워낙에 건강관리를 잘하는 양반이고, 또 요즘 60청춘 90환갑인 시대이니 앞으로도 여러 저작을 내놓을 것이다. 그는 이제야 만년에 들어섰다고 볼 수 있다. 어쨌든 만년에 들어섰으니 꼭 쉽고 제대로 된 기철학 책에 매진했으면 좋겠다. 그 정도 되는 지식인이 나중에 그저 훌륭한 지식 엔터테이너였고 탁월한 구라꾼이었다 정도로 기억된다면, 슬플 것이다. -- 거북이 2007-11-24 2:04 am

3 같이 보기[ | ]

4 참고[ | ]

문서 댓글 ({{ doc_comments.length }})
{{ comment.name }} {{ comment.created | snstim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