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mnote bot (토론 | 기여)님의 2018년 4월 5일 (목) 22:37 판 (Pinkcrimson 거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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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감독:구로사와 아키라(1985)
  • 출연:나카다이 다츠야, 테라오 아키라, 네즈 진파치, 류 다이스케 등

1 # (펌)줄거리[ | ]

  • 줄거리 :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을 일본 시대극으로 옮긴 작품. 한 늙은 영주가 세 아들에게 영토를 나눠주기로 결심한다. 큰 아들과 둘째 아들은 그 얘기를 듣고 매우 기뻐하지만 막내는 그의 형들이 서로 싸우게 될 것이라고 예언한다. 70대의 구로사와가 만든 은 그 스스로 자신의 남아 있는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부었다고 말한 그런 영화이다. 여기서 구로사와는 우선 스크린 위에 장대한 비주얼을 만드는 데 많은 노력을 들였고 그 결과 표현주의적 작품에 가깝다고 할 만큼 시각적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영화를 만들어냈다. 다른 한편으로 은 하늘에서 인간의 어리석음과 그 조건을 내려다보려는 야심찬 시도를 행한 영화로도 유명하다.

2 # 자일리톨[ | ]

나에게 '세익스피어'는 어머니의 모습으로 남아 있다. 어머니를 생각할 때마다 애틋한 감정을 지우기는 어려운데, 그 이유는 무엇이든 읽으며 공부하는 걸 좋아한 어머니였지만 당시 어려운 집안 때문에 고등학교만으로 배움의 기회를 접어야 했기 때문이다. 어머니야 형제분들 모두가 그러셨으니 그러려니 말씀하시지만 말이다.

당시 책 외판원 아저씨들이 우리 동네에 참 많이도 드나들었다. 물론 우리집 앞에서도 지나치지 않고 초인종을 눌렀는데, 그 책값이 무척 비쌌다. 당신이 책을 많이 보지 못하고 자랐다는 후회 때문이었는지 어머니는 자식들이 책을, 아니 무엇이든 읽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을 좋아했다. 그때 외판원 아저씨가 내미는 카탈로그를 바라보면서 참 많이도 망설이셨을 것이다. 당신의 어린시절을 뒤돌아보면, 그리고 아이를 위해서는 사줘야겠는데, 책값이 너무 비싸니... 당시 어렸던 나조차 어머니의 얼굴에 가득찬 망설임의 흔적을 찾는 것은 쉬웠다. 그러던 중, 거듭 우리집 공략에 실패하던 한 외판원 아저씨가 머리를 쓴 것이 무조건 책을 가지고 우리집에 찾아오는 거였다. 자기가 책을 팔러 왔는데, 도저히 책들이 무거워 다시 가져가기가 어려우니까 일주일 후 자기가 여기에 다시 올 때까지 맡아달라고 했다. 그때 두고 간 것이 삼성출판사에서 펴낸 세계문학전집 50권짜리였는데, 지금 생각하기에도 그 빼빼 마른 아저씨가 그걸 혼자서 어떻게 날랐는지 이해가 가지를 않는다. 참 고생했을 것 같은데... 암튼 일주일동안 어린 우리들은 밤새도록 책을 몇권씩 읽어댔고, 그 모습을 지켜보시던 어머니는 모종의 결단을 내려 일주일후 아저씨에게 책 구입의사를 밝히셨던 것이다. 그런데 그때 어린 우리들만 그 책을 읽었던 게 아니었다. 당시 어머니도 몇권씩 빼서 같이 책을 읽곤 했는데, 지금 여렴풋이 기억나는 어머니의 모습은 '세익스피어 이야기'를 읽는 모습이다. 그래서 나는 '세익스피어'라는 단어를 들으면 책을 읽던 어머니의 모습이 떠오른다. 이거 이야기가 샜다. 그것도 옆길로 많이도 샜다.

영화를 보기전 세익스피어의 리어왕을 각색한 작품이란 말을 듣는 순간 김이 팍 샜다. 줄거리가 너무 뻔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정말 이 영화는 세익스피어가 쓴 리어왕의 플롯을 충실히 따랐다. 결말까지 내 예상과 정확히 들어맞았다. 세 딸들이라는 소재가 세 아들들로 바뀌고, 중간중간에 일본적인 소재를 차용한 정도만 다르다고 할까? 그렇지만, 3시간여의 영화를 보면서 왜 세익스피어라는 작가가 널리 추앙되는지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어릴 적에 세익스피어를 읽었지만, 세익스피어는 6살도 안 된, 그것도 남자아이가 완전히 이해할만한 작가는 아니었다(요즘 나는 여자아이가 조숙하다는 말을 처절하게 인식하며 살고있다). 이 영화을 통해 다시 보게 된 세익스피어이지만, 그 속에는 인간세계의 비정함과 잔인함, 무모한 사랑, 그리고 탐욕과 배신, 인생의 허망함이 총체적으로 녹아있기 때문이다.

또한, 극 중에서 볼 수 있는 일본의상과 건축물, 당대의 전쟁씬도 굉장한 볼거리다. 현재의 일본의상은 중국 당나라 시대 의복문화가 화석화된 것이라고 하는데, 중심부에서 변경지역으로 갈수록 종교나 문화가 도그마화 된다는 것의 실례라고는 하나 너무나 아름다웠다. 물론 입는 사람들은 고역이었겠지만 말이다. -- 자일리톨 2004-4-21 12:23 am

3 # 거북이[ | ]

아껴두었던 보람이 있는 영화였다. 카게무샤를 1998년 개봉했을때 봤었는데 그 때야 뭐 십년전이니까 어리버리했었고 아키라의 영화를 별로 본 바가 없었으므로, 당연히 즐길수도 없었다. 그의 대하 사극은 거미집의성, 카게무샤 그리고 란을 들 수 있는데 앞의 두 작품은 란을 찍기 위한 습작이었다 해도 결코 과장이 아니다. 거미집의 성에서 노라는 극형식을 차용하여 훌륭하게 소화했고 카게무샤에서 칼라로 대하 사극을 찍었는데 란에는 그 모든 것이 녹아들었기 때문이다.

아키라는 플롯을 아주 과감하게 짰다. 처음부터 뒤를 암시하는 인상적인 대사를 넣더니 곧이어 바로 사태는 악화된다. 이 대하 서사극은 두시간 반이라는 러닝타임을 대부분 관계를 묘사하는데 보낸다. 큰 스케일의 전투장면들이 종종 나오지만 그것은 시간적으로 그리 길지 않다. 비정한 부자관계, 팜므 파탈에 녹아나는 사내들, 왕과 광대, 군주와 신하의 관계들이 한참 나온다. 그 사이사이에 시적인 대사가 등장하는 것은 물론이다.

이 영화가 모든 것을 성취할 수 있었던 것은 아키라가 70대에 만든 주제에 자기 자신의 아집에 빠지지 않고 예전의 시행착오를 철저히 극복해나갔기 때문이다. 여전히 라는 극형식을 보여주지만 그것은 거미집의 성처럼 단조롭지 않다. 같은 서사극이었지만 지루함을 피할 수 없었던 카게무샤와는 달리 광대를 넣어 극적 효과를 노렸고 그 광대는 전체적인 비장미를 무너뜨리지 않고 오히려 살려낸다. 아키라는 이 영화에서 고증은 고증대로 하되 굳이 불필요한 곳까지 고증해가며 구성하지 않았다고 하니 일본에 그런 광대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필요한 부분은 꽤 고증을 한 것 같다. 영화에 나오는 성은 언젠가 가보았던 히메지성과 꼭 닮았다.

셋째아들 역을 미후네 토시로가 했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다. 미후네 토시로가 없는데도 아키라 영화에는 그의 그림자가 남아있는거 같았다. 춤추는대수사선의 오다 유지가 주연하여 쓰바키산쥬로가 리메이크되었다는 정보를 보았다. 궁금하다. 그는 미후네 토시로를 극복할 수 있을까. -- 거북이 2007-7-25 9:23 am

4 촌평[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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