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집의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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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Throne of Blood
蜘蛛巣城
거미집의 성
  • 1957년 일본 영화
  • 장르: 액션, 스릴러, 판타지
  • 감독: 쿠로사와 아키라
  • 상영시간: 110분

Throne_of_Blood_Japanese_1957_poster.jpg

2 줄거리[편집]

전쟁에서 이기고 성으로 돌아가던 와시즈는 산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가 마녀를 만난다. 마녀로부터 새 영주가 될 것이라는 예언을 들은 와시즈는 갈등에 휩싸이다 결국 영주를 죽이고 권력을 차지하는데...

3 # 노영아[편집]

오손 웰즈와 로만 폴란스키의 작품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세익스피어의 희곡 와 구로사와의 <거미집의 성>만 비교해보면, 둘다 각자 갖고 있는 매체의 특성을 충분히 살렸다는 점을 높이 평가하고 싶습니다. 는 상당히 단순한 이야기입니다. 군주를 죽이고 권력을 얻었지만, 그 죄책감과 자신도 똑같이 죽을지 모르는 두려움에 괴로워하다 결국 파멸하고 마는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단순한 이야기를 희곡에서는 다면적인 캐릭터와 시적인 대사(특히 독백,방백)로서 재밌게 이끌어가고 있으며, 영화에서는 연극적 미장센이란 외피를 갖고 영화적인 카메라 움직임과 생략을 통해 힘차게 진행시키고 있습니다.

<거미집의 성>은 일본 전통 연극인 노와 가부키(사실 두 가지를 명확히 구분하지 못합니다. 다만 주인공의 아내 분장은 가부키 여배우 같았습니다.)를 보는 것 같은 미장센과, 컷팅이 많지 않고, 카메라의 움직임이 많지 않다는 점에서 연극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카메라로 보여지는 공간도 주인공의 방과 마당처럼 한정된 공간이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이야기의 주요 전환점이 되는 장면에서 조용히 숨죽이고 있던 카메라는 느리지만 자유롭게 움직입니다. 주인공의 방 안에서 그의 아내가 군주를 죽일 것을 종용하는 장면이나, 그가 죽인 친구의 유령이 나와 그를 벌벌 떨게 하는 장면에서 카메라는 앞뒤좌우로 방 안을 자유롭게 트랙킹합니다. 특별한 사건도 없고, 대사도 많지 않지만 그의 결정적인 심리 변화를 카메라의 움직임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또한 거미숲에서 그에게 군주가 될 것이라 예언했던 유령의 집이 사라지게 할 때도, 카메라가 앞으로 움직여 화면안에는 없지만 화면밖에는 있으리라 생각했던 유령의 집이 관객의 예상을 깨고 뒤로 움직이는 카메라에서는 사라지도록 하는 기법을 썼습니다. 친구의 유령이 방안에 나타날 때에는 반대의 방법을 썼구요. 이처럼 구로사와는 카메라의 움직임과 그로 생기는 내화면과 외화면의 변화를 이용하여 더 극적인 이야기 흐름을 만들었습니다. 하나 더 예를 들면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라 할 수 있는 주인공의 최후 장면도 활을 쏘는 부하들의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고(한 컷 정도 있었던 것 같네요.) 엄청난 양의 활을 맞고 맞으면서도 몸에 박힌 활을 뽑고 피하는 그의 모습만 계속 보여줍니다. 이것은 권력의 무상함뿐만 아니라 피할 수 없는 운명, 즉 잘못된 인간 욕망의 끝(그는 결국 온몸에 무수히 많은 활을 꽂힌 채 부하들 앞에서 고꾸라집니다.)을 더욱 적나라하게 꼬집는 것입니다.

<거미집의 성>은 느리고 지루한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이야기에 인물도 평면적이고 사건도 없고 대사도 컷도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영화 마지막에 나오는 노래 가사처럼 인간 욕망의 허망함을 보여주는 것으로서는 매우 경제적인 영화였다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에서 불필요했던 컷은 정말 찾기 힘듭니다. -- 노영아 2005-5-3 8:54 pm

4 # 거북이[편집]

쿠로사와는 '거미집의 성'에서 맥베드를, ''에서 리어왕을 번안하여 세익스피어에 대한 애정을 보여준 적이 있다. 거미집의 성을 본 느낌으로 거친 결론을 내리자면 세익스피어에 대한 해석으로는 오손 웰즈쪽에 한표를 주고싶다. 웰즈의 '오델로'를 보고 나는 세익스피어에 대해 완전히 다시 생각해보기로 마음먹었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때까지 나에게 세익스피어는 고리타분함의 대명사였다.

하지만 거미집의 성이 보여준 재해석은 결코 실패라고 말할 수는 없다. 전체적으로 원작에 충실하게 스토리를 이어나가고 있으며 스토리의 진행은 연극적이다. 사실 원작이 희곡이니 연극적인 것도 어찌보면 당연한 것일 수도 있는데 중요한 것은 연극적으로 해석하면서 이들의 전통 연극 형식인 를 차용했다는 점이다. 배경을 에도시대의 일본으로 놓고 노를 차용해서 번안다운 번안을 했다는 것이 이 영화의 강점이다. 영화의 처음과 끝을 장식하는 노래도 뭔지 모르는 일본전통악곡이고 전체적으로 어색함이 없다. 특히 마지막에 장군이 활에 맞아 죽는 장면은 집요하게 묘사하고 있어 권력의 무상함을 잘 드러내고 있는데 아주 섬뜩하다.

쿠로사와는 이런 영화들에서 유머러스한 면을 전혀 보여주지 않는다. 거미집의 성이나 카게무샤같은 영화들이 그런 작품들로 아직 그의 영화를 몇편 못봤지만 이런 영화들 역시 하나의 흐름을 가지고 있을것 같다. -- 거북이 2004-4-3 1:39 pm

5 참고[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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