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근대성 토론

후쿠자와유키치에서 길어지다. 근대성과 일본의 역사적 민폐(?)에 대해서.


2001년 천리안 락 동호회에서 그당시 역사 교과서 왜곡으로 우리나라가 시끄러울때 제가 생각나는대로 쓴 (생각나는대로 말하고 쓰는게 자신을 속이지 않는 최선 이라고 생각하므로)글 입니다. 여하튼, 갑자기 기억이 나서,,ㅎㅎㅎ, 언제 시간날때 근대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 싶기도 합니다. 정철의 우리나라는 근대화도 않된 미개국 이란 일본식 논리는 도대체 어떤 기준에서 나와서 우리나라를 그토록 비참하게 하대 하는지 좀 알려주실수 있는가. 나는 조선 후기를 이미 근대로 보는데..

도대체 저 위에서 어디가 우리나라는 근대화도 안된 미개국이라는 논리인지 한줄만 지적해보세요.
근대는 쉽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매우 여러가지 관점이 있을 수 있습니다.
제가 말한 것은 정치사적인 근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뒤를 돌아보고 있는가. 그리고 내 앞에 놓여있는 세계가 어떤 것인지 인식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있는가에 대한 태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동학농민운동이나 4.19혁명 같은 것은 근대성를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하지만 구한말 명성황후나 대원군이 보여준 세계에 대한 인식이나 아직도 자식들에게 기업 소유권을 넘겨주려는 재벌들의 행태는 그들이 여전히 몽매한 상태에 놓여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나마 구한말 지배계급의 행동은 민족 자주성의 발현이라고 옹호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을 근대적 인간이라고 말할 수는 없겠죠.
조선 후기를 근대로 얼마든지 볼 수 있습니다. 자본주의 맹아론 같은 것은 아주 대표적이구요. 정약용이나 최한기 같은 인물들이 가지고 있는 세계관과 학문 인식의 스케일은 오늘날의 어떤 학자들 보다도 원대한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자력으로 근대화를 이룰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제국주의 세력에 의해 강점당했죠. 아쉬운 일입니다.
제가 위에서 후쿠자와 유키치는 근대적 인간이고 유길준은 근대화되지 못한 인간이라고 말한 것이 아닙니다. 당시 일본의 지배층은 서구의 압박을 체험하고 그것에 기민하게 대응할 준비가 되어있었지만 우리의 지배층은 그렇지 못했다는 것을 말한 것 뿐입니다. 그것은 역사적 타이밍 때문이기도 하지만 일본과 우리가 겪은 근세사가 전혀 달랐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일본은 대륙으로부터 받은 본토침공의 위협이 원나라의 침략이 마지막입니다. 나머지는 내전이었죠. 반면에 우리는 중국와 일본 양쪽에서 계속 시달림을 당했구요. 일본은 서구의 압박을 스스로 대응하기만 했으면 되었습니다. 그리고 네덜란드로부터 지속적으로 받은 정보가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는 그 압박에 대한 대응과정에서 중국과 일본의 간섭만이 있었죠. 그렇기때문에 유길준의 서유견문은 후쿠자와의 서양사정만큼의 호응을 받아낼 수 없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 거북이 2003-6-19 11:58 pm

그럼 ' 여기서 사용한 근대는 나만의 근대 라는 용어 이다 내가 생각하는근대및 근대성은 어쩌구 ,,, ' 라는 전제를 깔고 했어야지,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일제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우리는 아직 근대화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런 결론을 앞뒤 배경도 없이 근대를 결정 해버리면 박노자식 선동이라고 볼수밖에 없다. 나는 스티브 툴만의 코스모폴리스 에서 이야기하는 근대를 전제 하는거다. 내가 조선후기를 근대로 보는 가장 큰 이유는 엘리트들의 원대한 이상 어쩌구 가 아니라 드디어 평민들이 " 아니 이양반이 !!" 라는 말을 하게 되었다는 거다. ㅎㅎㅎ. 무슨말인지 알거라고 믿는다.

일본놈들이 우리나라 기술복제수준이 엄청나게 좋은것을 알고 포루투갈이나 네델란드의 과학기술들이 조선에 못들어가게 하기위해 흡사 방파제처럼 전력을 다해 막아버렸다는것은 알겠지. 우리는 일본을 대륙의 세력들이 일본에 미치지 못하도록 방파제 처럼 막아주는 꼴이 되었고. 나는 우리나라 양반들이 일본 귀족보다 못하다고 보지 않는다. 내가 시완때문에 26 타이틀 막힌것을 모르는 이들은 나를 손가락질 하는것 처럼 왜국에 의해 서양의 발전된 문물이 끊임없이 막혀버렸다가 갑자기 개벽 하듯이 밀려 들어온다면 당연히 쇄국으로 나라를 지켜야 하는거다.

즉, 왜국 때문에 양반및 조선 백성들이 서양문물의 가치를 교육 받지 못했는데 그들을 탓할수는 없다. 나는 왜국도 탓하진 않는다. 우리가 지형도 드러운곳에 나라가 만들어진 죄다. 이른바 '운칠기삼' 이다. 이제부터라도 열심히 고쳐가면서 발전시켜야 겠지. 어쨌든, 왜국(일본)은 믿을 나라가 아니다. 게다짝 끌고 다니면서 귀화할 생각 없다면.. 절대로 믿을 나라가 아니지. 혼네가 틀린 민족성을 갖는 나라가 옆에 있다는것은 우리에겐 불행이지. ,

7세기 초 성덕태자가 수나라 양제에게 보낸 국서에 '일출처 천자가 일몰처 천자에게 편지를 드립니다.' 그래서, 왜국에서 일본 이라고 지들끼리 자긍심을 갖았는데 내가 보기엔 일본은 앞으로 100년 못간다. 그때 일본 이라는 국호와 동경 (극동의 중심) 이라는 명칭을 빼았아 버리고 싶은게 사실이나 그냥 자연히 도태 당하게 놔두자.. - FVI -

제 글을 읽으면 제가 어떤 맥락에서 근대성 부족을 얘기하는가에 대해 이해할 수는 있을거라고 생각했는데요...-_- 굳이 전제까지 달 필요는 없었지요.
'아니 이양반이!!'라는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분명 근대적 현상 맞구요. 하지만 그것만 가지고는 근대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동학농민운동같은 것을 일으켰다는 것 정도는 되어야 근대라고 할 수 있겠죠. 하지만 그것도 한가지 관점에서의 근대화일 뿐입니다.
일본이 포르투갈과 네덜란드 상인이 한반도로 들어가는 것을 막았다는 것은 전혀 모르고 있었어요. 어디서 보셨는지 알려주시면 읽어보겠습니다.
전 일본을 망해야 할 나라라고는 보지 않습니다. 한중일은 한자문명권이라는 공통된 정서를 가진 그저 이웃나라일 뿐이죠. -- 거북이 2003-6-22 1:30 am

그 이야기는 과거 KBS 역사물에서 하멜 이야기에 대해 나왔을때 언급되었었고 사학과 교수님인 윤내현 교수께 문의를 해서 같은 답을 얻었다. 서양인들의 역사가 뭐냐 엘도라도를 찾아 나선 탐욕스런 개척 아니야. 서양인들이 일본에 도착한후 그다음 땅을 향해 나아갈려고 했으나 여기가 끝 이라고 속여서 서양인들이 기나긴 항해에 지쳐서서 일본에 만족하고 끝낸거였지.

근대 라 . 쯔압, 난 출발점을 이야기 한건데 당연히 그건 부분이지 그게 전부이겄냐.. 난 동학을 결론적으론 좋게 안본다. 우금치 전투에서 패퇴함 으로 외세가 궁각에 군대를 주둔하게 만드는 빌미를 제공한 결론 . 동학이 서학의 반대말 이란것은 알고 있겠지.

언제 근대와 근대성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자. 현대사에 일본 때문에 발생한 문제 몇가지만 알려주지 .

1.남북 분단 : 아라사 군이 북한지역에 올때까지 기다렸다가 항복 선언. 일본 관동군(만주군)은 아라사군을 거의 무사 통과 시켜버림 .

2.경제발전 : 맥아더는 일본을 다시는 전쟁을 못일으키기 위해 철저한 농업국가로 바꿀 계획을 짰으나 한국전으로 인해 일본은 물자 산업기지화를 통해 엄청난 경제발전을 하였고 안보역시 몇푼의 국방비만 들이고 거의 무임승차로 70년대 폭발적인 경제 발전을 이루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함.

3. 한국 산업발전 기여도: 거의 기여 안함, 다까끼 마사오(박정희)가 대일청구권 포기하고 받은 5억달러도 장기 저리 채무로 빌려준거고 산업시설 이랍시고 준게 알고 보니 그때 일본서 논란이된 이따이 이따이 병 같은거 걸리는 자기네들은 필요 없는 공해산업들만 이전 시킴. 현재, 일본은 우리나라를 경제 파트너로 보는게 아니라 일본 제품을 수입해주는 상품소비국으로 취급해줄 뿐 임. 네가 한일은 운명 공통체 라는것은 너의 짝사랑일 뿐이고 그런 세계관을 가진 이들은 좀더 냉철하게 그리고 넓게 일본을 바라봐야한다.

나는 과거 궁각과 궁궐을 돌아보는 취미가 있었지만 우리가 세운 구중궁궐 그 빽빽한 전각들을 모두 해체해서 일본으로 가져가 요정집으로 재조립해서 쓰고 한그루에 요즘 시세로 몇백만원 하는 좋은 나무들을 모두 베어다가 한강에 나무를 뗏목 처럼 엮어 운반을 했는데 매일 같이 그 끝이 안보이게 산림을 벌채해 갔는데 그 비용만 해도 몇십조엥은 물어줘야 한다. 난 궁궐에 들어갈때마다 가슴이 아프더군.

예를 들어 :넌 내가 손손집을 강제로 털어서 5000만원을 가져갔다 그레서, 손손집이 폭삭 망해서 손손이 한 30년간 죽어라 열심히 일해서 나이 60에 겨우 수퍼마켓 하나 차려서 먹고 사는데 내가 벤츠 타고 와서 그때 내가 손손집 털어서 마련한 돈으로 나 이만큼 잘산다고 자랑하면서 그러면서 털어간돈의 일부인 50만원으로 우리의 은원 관계는 끝내고 내가 차린 김-MART에서 물건 떼가라고 한다면 손손 마음이 오죽 하겠냐. 의례적으로 미안하다고 하고 실질적인 사과및 배상은 안하고 손손은 수퍼마켓 수준에서 먹고 살게 유통쪽으로 은근히 신경을 써주고 하는 FVI를 자네는 좋은 이웃으로 대접해준다니 고맙군 그래 .

어쨌든. 자네의 세계관이니 간섭은 안하지만 이스라엘인들의 다짐만은 알려주지 : 독일에 대해서 " 용서는 하되 잊지는 말자" 부연 하자면: 옛 서독의 경우 나치 범죄자 1만 3천여명을 처벌했다. 서독은 1962년 이스라엘과 배상협정을 맺고 250억 마르크를 국가배상금으로 지불하는 한편 추가로 150억 마르크를 나치 피해자와 유가족에게 지급했다. 또 나치피해 보상법에 따라 국적에 관계없이 720억 마르크의 개별 보상금을 지급, 모두 합쳐 2000억 마르크를 배상금으로 지불한 셈이다. 그리고, 현재도 계속해서 건수만 나오면 무조건 배상 해주고 있지. 독일 정규군인 베르마르트의 전쟁중 나온 민간인 피해마저도 그들은 배상해주고 있지.

우린 뭐야,,, 이스라엘 에서 바그너 음악 들으면 목숨을 잃는다는거 아시는가?. 우리나라 사람들 착하다 못해 아예 잊어 버린것 같아서 나는 걱정이다. 이건 보통의 일본인이 아니라 그런 일본인들이 모인 일본을 이야기 하는거다. 앞으로 자넨 일본을 경쟁상대로 하는 산업및 자본업에서 일을 해야 그들이 집단으로 부리는 치사함을 알수 있을거야. - FVI -

일단 네덜란드 친구들이 일본 때문에 우리나라에 오지 않았다는 것은 말이 안됩니다. 일본과의 교역에서 충분한 것을 얻어갈 수 있었기 때문이겠지요. 일본은 막부시절 쇄국을 하면서도 테지마를 열어두고 네덜란드 친구들과 계속 교역을 해왔습니다. 일본은 다른 나라 친구들이 와도 우리는 화란과만 교역한다라고 정했었지요. 네덜란드도 그것에 고마워서 일본과만 교역을 했을 가능성이 높을거 같네요. 그 부분은 일단 확인해보겠습니다.
일본과 관계되어 꼬인 한국사의 문제들 당연히 존재하고 알고있습니다. 그리고 형 말대로 문제는 용서하되 잊지않는다gone but not forgotten라는 마음가짐을 당연히 해야합니다.
동학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느냐보다는 그것이 무엇을 지향했고 어떤 식으로 그것을 끌어갔는가라는 것이 중요합니다. 동학농민운동이 청일전쟁을 가져왔고 일본의 내정간섭을 유도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것들은 어차피 벌어질 일들이었다고 보는 것이 옳습니다.
그런데 왜 글의 후반부가 근대성에 관한 얘기가 아니라 일본에 대한겁네까? 근대성에 대해 적어주세요.
그리고 나는 어디서도 공동운명체같은 말은 쓰지 않습니다. 한자문명권을 공유하고 있는 이웃이라는 말밖에 안했죠. 제발 나를 박정희 또라이같은 인간으로 몰지 마시구려. -- 거북이 2003-6-22 3:38 pm

여하튼 ,자넨 뭐든지 나를 귀찬게 하는구만,,, 내가 뭐 박사과정 대학원생이냐 아님 시간강사급인가?. 요즘 대한민국 최초 CIP3에 의한 컴퓨터 잉크키 및 자동 댐프닝에 의한 정확한 디지탈 컬러 프루핑에 대해서 공부중이다. 요걸 아는 인쇄학과 교수도 없고 내가 직접 외국 논문을 찾아서 읽어어봐야 되ㅁ,로 나 괴롭히지 말거라잉...

화란 문제는 얼마든지 알아보게나 난 그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한 kbs 다큐멘터리를 정확하게 기억 하고 있다네. 일본은 도자기 사발도 제대로 못굽던 뒤떨어진 나라였는데 화란이 뭐가 좋아서 일본에 만족하겠나. 청견 이나 우리나라 도자기에 아마 환장 했을것 같은데. 다만 서울대 사학과 아해들 말은 믿지 말게,,, 친일 역사학자들의 터전 일세.. 맨날 당파싸움 하고 조선 천지에 탐관 오리만 날뛰는데 500년을 유지 했다?. 우리나라 사람들 독한거 알지., 데모도 진짜 불같이 하고 그런 민족기질을 가지고 있는데 500년 왕조 유지가 쉬웠을까?... 근대성을 결정 짓는 요소들은 물론 거의 무한이지. 문학 예술 정치 생활양식 사회 등등 각자 어떤것에 비중을 둬야 할지 여부의 주관을 갖는게 되려 나을거야.여기선 그냥 원론적인 이야기만 좀 하자면 근대성(modernity) 이라는 것이 서구에서 만들어진 개념 이고 3-4백년의 역사적 진화 과정을 통해 획득한 개념 이라서 참 애매한것 이기도 하지.

스트븐 툴민의 '코스모폴리스'라는 책에서 근대성은 1620년 전후로 새로운 사고 관념이 생기기 시작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30년 전쟁이후 성립되는 베스트 팔렌 조약 체제가 그 단초를 만들었다고 본다. 베스트 팔렌 조약이 만들어낸 가장 큰 의미는 nation state가 이루어졌다는거다. 그이전에는 종교가 같다는 이유로 다른나라 이민족들과 같이 이종교자들과 싸웠는데 이젠 국가별로 나뉘어져 종교보단 민복애 국가에 대한 중성심이 생겻지. 이건 신중심의 세계관에서 인간 그리고 사회로 세계관의 촛점이 바뀐거지. 거기서 이제 암흑기를 지나 근대사회로의 향하는 첫발자욱을 떼었다고 나는 본다. 거기다가 데카르트의 인식론이 철학적으로 서구사회에 근대성의 확산에 거름이 되어주었지.

다시말해서 그 이전에는 교회로 대표되는 종교가 정치.경제의 영역뿐만이 아닌 의료 등등 사회 전 분야에 걸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계몽주의 이래로 강조되기 시작한 이성에 대한 강조는 계시를 우선하는 종교의 영역을 급속도로 축소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이러한 현상을 자연의 탈마법화(disenchantment), 분화(differentiation) 라고 하지. 이건 천재 학자인 막스베버가 만든 설명인걸로 알고 있다.. 이렇게 탈마법화, 분화를 시작한 사회는 종교로부터 분리되기 시작하지. 이게 뭐 금방 되는것은 아니고 수백년의 시간을 들인거다.

이렇게 되어서 사회에 속한 우리 모두의 일상적인 삶의 틀이 종교 보다는 과학이나 정치·경제적인 논리에 의해 짜여지기 시작하는거지.,. 근대의 합리적인 세계관이 여러가지 장점들로 인해 이미 국력이 앞서있던 서구 국가들에 의해 전세계에 걸쳐서 이 근대성이 이식 되었고 많은 부작용을 낳았음을 안다. 대표적인게 재벌의 상속 문제 같은 전근대적인 불법 행위들,,,

우리나라의 근대성은 이기론을 비판한 다산 철학의 탈성리학 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보겠으나 문반의 철학은 백성과는 동떨어졌으므로 내 주관으로는 백성들의 시민계급으로의 성장을 보는거다. 즉, 백성들에 의해 이루어지는 자본의 성장과 귀족들을 바라보는 태도등의 변화가 탈성리학 보단 더 우선한다고 보는거다,

우리나라에 불어닥친 근대주의자 / 신여성 대부분은 친일파 들이지. 즉 일본에 기대서 잘먹고 잘산 인간들 이라는거다. 반일본 세력이 누구라고 보는가?, 두말할것 없이 한학을 했던 구세력들 이지. 그래서, 일본은 근대주의자/ 신여성 이라는 계층을 만들어서 이들이 엄청나게 멋지게 살고 있는 쇼를 보여주게 된다. 그래서, 우리나라가 그동안 가지고 있던 모든 문화 유산은 타파의 대상이 되었고 이 왜놈들은 우리나라의 유구한 문화들을 모두 파괴 말살 시키려 들게된다.

그리고, 정철이 좋아하는 오노요코는 1960년대 불어닥친 탈신화에 대한 이성적인 회귀. 즉 재마법화의 시기를 산 여성 인지라 그당시의 멋을 알지. 캘리포니아에서 발생한 히피라는 단어로 대변되는 반문화적 신비주의가 폭발적인 유행이었지롱 도가, 불교, 이교주의, 주술, 그리고 신비적인 관념에 흠뻑 젖은 캘리포니아의 분위기는 초자연적이고 컬트(cult)적인 절충물을 만들어 냈다

아도르노는 탈마법화에 따른 많은 부정적인 결과물로 봄으로써 " 계몽이 이룩한 인간의 신화로부터의 탈마법화는 계몽된 이성의 활용을 통해 다시금 야만적인 신화에로 되돌려 놓았다고 비판한 바로 그 지점에서 역설적으로 이성의 재마법화가 필요한 시대 이다 " 라고 주장 했지. 참 멋진 양반이야.... 아도르노가 좋건 싫건 히피의 아버지로 대접을 받아야 하는데,ㅎㅎㅎ

게임시간이라서 이만,, - FVI -

전 기본적으로 서구적 근대관 자체에 대해 동의하거나 부정하지 않습니다. 서구의 선형적 진보사관은 저와는 맞지 않기때문입니다. 제게 있어서 근대성이란 인간적이냐 아니냐, 혹은 윤리적이냐 아니냐라는 유교적인 것에 가깝습니다. 즉 공정하지 않은 게임은 규칙을 바꾸려 한다거나 같이 살 수 있는 형태, 재생 가능한 삶을 사는 인간이 바로 근대적 인간입니다.
전체적으로 저의 의견을 얘기해보자면 저는 후쿠자와가 실천적 지식인이면서 뒤를 돌아볼 줄 아는 인간이었다는 것을 높게 보고 있다는 점과 우리는 개발지상주의에 찌들어서 아직도 근시안적인 정책과 행동을 하고있다는 것입니다. 일본은 공동운명체다, 우리는 근대에 진입도 못한 미개국이다 이런 식으로는 단 한자도 쓴 적이 없으니 제발 앞으로 그런 얘기를 하시려거든 한번쯤 더 읽구 이눔이 진짜 이런 생각을 하는가 되새김해주시우.
아마 지금 시점에서의 근대화라고 한다면 박정희식 마인드에서 벗어나는 것이겠지요. 이것은 90년대 중반부터 서서히 진행중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종종 퇴행적인 모습들을 보여주어 짜증이 솟네요.
오노 요코는 제가 아주 싫어하는 언니입니다. 오노 요코나 야요이 쿠사마같은 예술가(?)들이 서구에게 어필한 것은 제가 보기엔 엑조티즘과 오리엔탈리즘이 뒤섞인 결과거든요. 레넌 형은 보편성이라는 것이 뭔지 알고있던 사람같은데 요코에게 맛이 간 것은 역시 불가사의한 일이죠. -- 거북이 2003-6-23 1:23 am

순환 반복을 원하는가?. 자네의 생각은 탈근대에 가깝구만. 같이 살수 있고 재생가능한 삶을 살기 위해선 의사소통이 무엇보다 중요할것 같구먼,.,.. 그리고, 자넨 에코 아나키스트 이군. 현재의 삶에 불만이 많은가?. 뭔가가 필요한가?. 아니면 포퍼가 말한 비판적 합리주의에 근거한 '사회공학 social engineering'을 이야기 하는건가?. 근대가 만들어낸 괴물 합리주의 말이야.

국가가 폭력을 독점 하는 '도구의 자율화' 에 대한 생각은 어떤가?. 즉. 국가가 그 자체가 생명체 처럼 자율적으로 움직이며 폭력을 행사하며 자기의 체제를 유지하는것 말이야. 자끄 데리다가 쓴 맑스의 유령들 이라는 책을 한번 읽어보시오,,,

현재 3연승 ㅎㅎㅎ. 다시 게임 타임 - FVI -

순환보다는 나선을 원하는 것 같지만 에코 아나키스트에는 가까울거 같네요.
국가가 폭력을 독점하는 것은 사실 하루이틀 된 얘기는 아니지요. 모르겠습니다. 집중과 분권이 어떻게 되어야 할 것인가에 관한 문제이기도 하기때문에 간단하게 얘기할 수는 없네요. 제가 국가를 싫어하는 것은 분명해요. -- 거북이 2003-6-23 1:54 am

서구인들이 왜 중국과 일본에 접촉했지만 우리에겐 접촉하지 않았는가에 대한 언급을 보았습니다. 남경태가 사학과 출신이 아닌고로 딱히 권위를 부여하진 못하겠지만 종횡무진동양사에서 근거있는 의견을 내놓았더군요. 그는 중국과 일본이 독자적인 외교적 군사적 노선을 밟고 있었으나 우리는 그 점에 있어서 중국에 종속되어있었기 때문이라고 언급합니다. 즉 서구인들은 우리나라의 존재 자체를 모르거나 알았어도 중국이라고 간주했다는 거죠. 중국은 우리나라에 대해 현실적인 종주권을 행사해왔기 때문에 분명해보이고 일본인의한국관에 따르면 일본의 지배층은 자신들을 천자의 나라라고 여겨왔기 때문에 중국과 동등하게 간주하여 우리나라를 대등한 국가로 인식하지 않았습니다.
아 그리고 일본이 테지마를 열어두고 쇄국을 하면서도 오직 네덜란드와만 교역을 해왔기 때문에 네덜란드도 일본에 여러가지 정보를 주면서 상호 독점적 무역을 전개한 것도 분명하더군요. 심지어 미국이 흑선을 이끌고 일본을 개항하려했던 사실도 몇년전부터 누차 경고해왔다고 합니다.
그리고 제국주의 국가들은 대체로 자신들의 영역이 분명했습니다. 영국은 중국과 인도, 프랑스는 인도차이나...이런 식으로 남이 찜한 것은 대체로 인정해주는 분위기였죠. 따라서 네덜란드도 일본에 대해 어느정도 우선권이 있다는 인식은 제국주의 국가들 사이에 퍼져있었다고 해요.

이것으로 볼때 열강이 우리나라까지 오지 않았던 것은 기본적으로 그들이 우리에 대해 무지하고 별로 관심이 없기도 했지만 다른 곳 땅따먹기만으로도 충분했고 우리를 건드리는 것은 청을 건드리는 것과 동일하게 인식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후발주자라서 어디 집어먹을 땅 없나 하고 돌아다니던 독일마저 청의 일부를 잠식하는 것으로 만족한거죠. 만약 그들이 조선을 독립국이라고 인식했다면 당연히 집어먹으러 왔을겁니다. 이후 러시아와 일본이 조선을 노리다가 결국 일본이 찜하게 되지요, 망할.
이런 상황에서 일본이 여기가 땅끝이오 하고 우리나라로 오는 것을 막았다고 인식하는 것은 문제가 있는 관점으로 보입니다. 그런 일이 있었을 수는 있지만 왠지 일본만 나쁜놈이라고 걸어넣는 듯한 느낌이 강하거든요.-- 거북이 2003-7-2 12:40 am

겨우 참고한 내용이 재미로 읽는 동양사 수준이라면 내 실망이네...시점이 어긋 나 있군, 유길준이던가 1860년 청나라에 가서 서쪽이 동쪽을 잡아먹는 서세동점의 상황을 보고와서 유대치 오경석과 함께 근대화에 박차를 가했던 시점, 거북바가 바라보는 시점은 19세기 인데. 거북이 찾아야 하는 시점은 일본의 해체신서(맞나? 조잡하게 베껴온 의학서/난학의 융성함을 알려온 명저 이기도함)가 나오는 시점로 잡아야 하네. 거북은 좀더 넓게 지식을 쌓아야 할듯. 바빠서, 짧게 설명을 하자면, 우리가 서양의 발달된 침략기술을 받아들일 여지를 대륙은 후금이 해양은 왜구가 막고 있었다는것을 알아야 된다는것이야. 특히. 일본은 조선 이라는 나라에 대한 불안감이 있엇다네 조선은 일본을 향한 비수 라는 말도 있었다네. 일본은 기다란 국토를 갖는지라 상륙할 지점이 지천으로 깔렸고 방어할 지점이 너무 많다라는 약점을 갖는 나라지. 그리고 길다란 국토형태를 가진 나라라서 종심(중앙부)이 너무 짧아서 적군이 상륙만 성공하면 금방 함락을 당할수도 있는 나라라서 막부간의 전쟁은 물론 외적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대부분의 성이 깍아지른 산에 숨어 있지. 자네가 방송국에 나온 역사만 파고든 학자의 이야기나 윤내현 교수와 내가 나눈 이야기의 fact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나는 어쩔수 없이 방송국에 나온 학자와 윤내현 교수의 의견에 비중을 둬야 하므로 자네 생각은 참고 할수 없음을 알리네. - FVI -

참고한 책이 아니라 내가 읽던 책이 그것일 뿐이었지요. 요즘 잡일들이 많아서 찾아볼 엄두를 내긴 어려웠습니다. 해체신서가 번역된 것은 1774년이지요.
그런데 조선이 일본을 향한 칼이래는 둥 그것과 제가 쓴 것과 무슨 관계가 있지요? 저는 서구가 한중일에 대해 어떤 인식을 가졌었는가에 대해 말했습니다.
그 방송에 나왔던 사람들이 어떤 의도로 얘기했는지 알 수 없으나 저는 왜 서구가 조선까지 건너올 생각을 못했는가에 대해 조선에 대해 무지했다, 조선까지 오지 않아도 얻을것을 충분히 얻었다 마지막으로 조선에 대한 중국의 종주권을 인식하고 있었다라는 이 세가지 측면에 대해 얘기했습니다. 그들을 더 믿고 안믿고는 자유지만 저는 제가 읽은 책들에 근거한 제 생각을 말한 것입니다.
그리고 일본이 조선에 대해 가진 불안감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일본인의한국관에 따르면 애석하게도 그렇게 생각하긴 어렵습니다. 최근 제가 읽은 한중일에 관한 책의 목록은에 나와있으니 제 억측이라고 생각되시면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 거북이 2003-7-2 4:11 pm

조선은 일본의 심장을 찌르는 비수 라는 이야기 역시 내가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지. 그리고, 난 일본의 한국관 을 이야기 하는걸세. 다시한번 이야기 하지만 조선이 서양과 교류를 하지 못한것은 대륙은 청이 해양은 왜 가 막았기 때문이지, 그나마 청은 한번 필터링 되어서 좀 이상헥 들어오기라도 했지만 제일 중요한 바다를 통한 직접 교류는 왜에 의해서 막힌거지, 서양이 중국의 속국이 조선 이라는 인식을 했다면 변방부터 치지 왜 중국 본토부터 쳤을까?. 정청가도 말이야,

어차피 지나간 역사이고 사람들은 원래 옳고 그른것을 떠나 듣고 싶은 말만 들으려 하니 내가 아무리 열심히 공부하고 연구한 재야 학자를 모셔도 이문제는 해결이 어려울듯 하니 더이상 내 토를 달진 않겠네. 그러나, 거북은 좀더 넓게 보길 바라네, 책한권에 중심이 흔들리지는 말게나. 그리고, 인덱스도 중요하지만 사람의 시각은 인덱스가 아니라 쌓이는 내공에서 나오는법. 나 역시 중학교때부터 소설을 쓰기 위해 시험공부도 않하고 읽어대었던 책들이 대학때까지 이어졌지만 현재 거의 다버렸고 기억나는것도 없지

그러나, 기억은 않날 지언정 시야는 넓어지는것을 느꼈지. 나랑 비슷하게 곡명이나 앨범명도 외우길 싫어하는 이승사장님이 PFM 의 곡명을 못 외웟다고 그를 초보로 단정 지울수 없듯이 말이야,

참고로 윤내현 교수는 단군은 대통령과 같은 리더로서의 직책명 이었고 고조선이 북경 근처 까지 올라감을 입증 하기 위해 부던히도 애쓴 현재 식민학자들이 주도하는 역사학계의 아웃사이더 할아버지중 한분이지. 그래서, 내가 사학과도 아니면서 수강을 신청 했던거고. 난 종횡무진 동양사 라는 책을 사서 볼 바엔 이할아버지가 쓴 책들을 읽어보길 권하네. 더 이상 자네의 인덱스에 내가 토를 다는 일은 없을듯. (-8 - FVI -

듣고싶은 말만 듣는다니 그런 멘트는 지워주시죠. 종종 하고싶은 말만 나오는 이야기들에서 전 논점에서 어긋나지 않으려고 노력했을 뿐입니다.
그리고 인덱스라고 적은 것은 뭔가요? 의도를 잘 모르겠슴다. '더이상 토를 다는 일은 없을듯'처럼 단정적으로 얘기하는 것은 너랑 얘기하기 싫다처럼 들려요. 그런 식으로 얘기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아도 말이죠.
내공 얘기가 나와서 잠깐 제 생각을 말해보자면, 내공을 믿고 아무것도 정리안하는 놈들 때문에 나라가 이모양입니다. 내공이 낮더라도 뭔가를 쌓아가는 사람들이 훨씬 사회적으로 의미가 있습니다. 그건 형두 아시잖습니까. 형의 장르에서 조금이라도 쌓아보려 노력하니까요.
윤내현 교수는 기억해두겠습니다. 앞으로도 한동안은 한중일의 근대사가 제 흥미거리일거거든요. -- 거북이 2003-7-2 4:59 pm

장 박사 말처럼 정철 와그러는고, 장박사 말대로 삐진거냐?. 세이클럽에 가서 오목이나 두자, 체코 유학생들 인터넷으로 세이클럽에서 오목 두는거 구경했는데 그땐 오목 엄 청 나 게 두고 싶었지 T.T 절대 양보 않하더군, 인터넷이 워낙 귀해서 말야ㅎㅎㅎ. 진짜 똥도 귀하면 먹고 싶어진다고 말이야 거들떠도 않보던 인터넷인데 세이클럽 가입하기 쉽다고 하더군,, 인덱스를 통한 지식 축적은 자칫 그 인덱스에만 있는 지식으로 모든걸 평가 하려 드는 당착에 빠지는것을 경고하기 위함이다. 토를 않단다는것은 내가 삐져서(삐지는게 뭔지도 모르지만) 너랑 말 않해가 아니라 네가 하는일에 말그대로 토(노친네들 간섭)를 달지 않겠다는 말이다. 넌 한국의 지도자 계층중 몇명이 내공이 쌓인 지식인 이라고 보냐?. 난 10%도 않될거라고 보는데.. 그리고, 좀 극단적으로 생각치 말고 중심좀 잡아라 이눔아.. 오뚜기는 영원한 오뚜기인법. 거시기만 빼고. - FVI -

누가 삐집니까. 형은 종종 오해사기 딱 좋게 쓰는 경향이 있소. 전 조선에 지도자라는게 있는지조차 심히 의심스러워 하는 사람입네다. 그리고 극단은 누가 극단...-.- 형은 항상 내가 하고픈 말을 합디다.
글구 문단쓰기는 언제쯤 배우시려오? : 이놈하고 한줄띄어가며 쓰기하곤 쥐약이라니께요...-_- -- 거북이 2003-7-2 5:24 pm

FVI의 글[ | ]

천리안 락 동호회에 여전히 있네요.그래서, 퍼왔습니다. 2001년 7월 14일 오전 11시 55분에 등록된었던 글:

강산이 한번 변할만큼의
전통있는 객지자취생활로 신문을
아예 않봐서 요즘 신문에서 지식인들이
뭐라고 써대는지는 모르지만

락동 친구들중엔 고등학생들이 많을것 같고
그래서 , 그들이  가치관 을 세우고 판단력을 기르는
가장 중요한 시기 이므로 한번 글쓴이의 깜냥으로
일본 교과서 문제를 잠깐 짚어보죠.
물론 저는 대학때 일본은 전혀 관심이 없었고

주로 미국정치와 유럽정치
쪽을 개인적으로 파고들었었습니다.
그래서, 글의 중심이 없을수도 있고
온라인상 에서 쓰는 글이므로 지리멸렬 할수도 있으므로
필요한 부분만 보셔도 됩니다.

무조건  쳐죽이자  교과서 불태우자
일본제품 쓰지말자,때려부수자 인 멸사반일본

난 일본이 좋아 난 일본이 하는거면 무조건
흉내내고 싶어 하는  수구 친일본 으로 나누는것은

말그대로 한국이 일본장단에 놀아나는 겁니다.

많은 이들이 일본교과서 역사왜곡에만 신경을쓰는데
그 저변을 봅시다,

일단, 일본이 끈질기게 근린국가 조항을 어겨가며
일을 벌이는 이유는 개헌파 들의 세력확대 입니다.

개헌의 요지는 현재 맥아더가 기초한 평화 헌법을
바꿔서 군대를 보유하고 천황을 명치시대처럼
실질적인 군주로  모시는 거죠.

그럼 이 개헌파 들은  왜 자꾸 아시아에서 저렇게
문제를 일으킬려고 하느냐 하면 그건 바로
황국사관과 황국 지정학론 에 바탕을 둔 차별의식 입니다.
유일한 현인신(인간세상에 내려온 신)인 천황을 모시는

일본 이고 독일 히틀러 시대에 나온 사회다윈이즘 에 따른
열등한 민족은 도태 당한다는 지정학 이론을 도입
일본은 아시아에서 가장 위대한 민족이고 아시아가 아닌

세계로 뻗어나가야 한다는 탈아론이 그들의
중심적 사상으로 지배 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우습게도 민족차별의식이 가장 강한 나라 입니다.
그들은 20세기초 중국및 조선을 침략했을때
이런 논리를 내세웠습니다.'자기나라를 방어할만큼
근대화를 이루지 못한 너희들은 침략을 당해도 싸다'.

즉, 깡패가 시비를 못걸만큼 힘을 기르지 못한 니가
나쁜놈 이라는 논리 입니다.

현재 일본의 가장 비싼 지폐인 만엥 지폐의 포상화는 명치시대의
위대한  사상가로 꼽히는 후꾸자와 유끼치의 초상이 그려져 있습니다.
이 사람은 중국및 조선을 보고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 어이, 너희들 빌려온 고양이 처럼 얌전히 있는데
실은 니들이 더 나쁜놈들이야!" 이른바 나쁜 친구 이론 이죠.
얌전한척 하는 내숭떠는 열등한 민족 들이라는 겁니다.

그럼,일본인들,즉 엘리트들이 아닌, 에겐 이런 의식이 없을까?.
없을수가 없죠. 있습니다. 그걸 더 확실하게 구체화 시키는게 자라나는
동량들에게 심어주자는 속셈 입니다.
그럼, 이 교과서 역사왜곡 사건에  왜이리 민감해야 될까요?.

파레토 라는 정치학자는 역사는 엘리트드르이 무덤 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배우는 역사의 대부분이 정치적 사건 내지 엘리트들간의
분쟁 이었음을 부인할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프랑스엔 아날 학파
라는 새로운 역사학파가 19세기 만들어 졌습니다.

간단히 이야기 해서 그나라 국민이 어떤의식을 갖느냐에 따라
역사가 만들어진다는 겁니다. 그시대에 그들은 어떤 의복을 입었느냐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았느냐 를 연구하는 거죠.
저는 이들의 역사관에 동의 합니다. 간단히 예를 들어서

우리는 중국이 종이호랑이로 격하된이유를 정치적 파벌 싸움으로
보지만 허핑티 는 중국의 인구라는 자신이 저술한 책 에서
그당시 풍요로운(1820년대 미국의 총생산력은 중국 총생산력의
4%밖에 않될정도로 중국은 막강했음) 먹거리 때문에 인구가
순간적으로 급격히 불어나  6억의 인구가 되었고

기하급수적인 중가는 멜써스 이론 처럼 중국을 급격하게
약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는 이론 입니다.
글쓴이는 이 이론을 지지 하므로 예를 들었습니다.

그러므로, 자라나는 동량들이 잘못된 역사속에서
반성할줄 모르고 인종차별 의식이 주입됨으로써
앞으로 미래에 다시한번 정명가도 , 대동아 황국전쟁
이 일어날수도 있다는 겁니다.

웃기는 소리 라고 반문 할지도 모르지만 역사는 돌고돈다는
역사의 수레바퀴 이론 처럼  일본국민들 마음속에
이런 의식이 파고든다면 다시한번 아시아에서
불행한 일이 벌어질수도 있다는 거죠.

끝으로 지금은 어떨런지 모르지만 1980년대
국사편찬위원회 는 이병도 라는 친일 역사학자와
그 패들이 꽉 잡고 있었습니다.

이병도 라는 진짜 나쁜 친일역사학자의
수제자인 이기백은 우리의 역사를 당파싸움과
소인배 정치로 얼룩지게 함으로써 우리 국민의
마음속에 각종  피해의식과   좁은 마음을 갖게 만드는데
일조를 했습니다. 우리의 교과서도 잘못된것이 많음에도

아직도 바른소리를 하는 사람들은 아웃사이더로
소외되어 있고 서울대 를 기점으로 과거 친일 역사학자들
이 배출해낸 역사학자들이 중심세력으로 아직도 남아 있다는것은
일본의 역사왜곡을 비난하기 전에 우리의 역사왜곡
처지를 개탄해야 할때 입니다.

기태,
M2U Records 청소부
부루르워 노예길드 구단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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