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횡무진 동양사

(종횡무진동양사에서 넘어옴)

1 개요[ | ]

종횡무진 동양사

 

2 책 소개[ | ]

보통 '동양사'라 하면 중국사가 내용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이 책은 좀 다르다. 다루고 있는 범위는 중국, 인도, 일본. 각 나라에 대한 분량의 차이는 있지만 수위는 고르다. 일본과 인도를 동양사의 범위에(그것도 동등한 수준으로!) 넣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 의문이 생긴다면 우선 저자의 설명을 들어보자. 저자 또한 동양사의 중심 기둥이 중국이라는 것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인도와 일본 모두 중국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역사를 이끌어왔고 현대에 들어와서도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기에 두 나라를 중국과 더불어 동양사의 세 축으로 설명하는 데는 별 무리가 없다는 것.

저자는 이러한 전제를 바탕으로 세나라의 개별적인 역사와 주변국과의 교류 과정을 찬찬히 읽어나간다. 전체 3부로 이뤄진 이 책 1부에서는 중국, 인도, 일본의 역사가 시작된 과정을 살펴보고 2부에서는 세나라가 나름대로 독자적인 성장과 발전을 해온 과정, 그리고 제3부에서는 그들 역사가 세계사 속에 통합되고 편입되는 과정을 살피고 있다. 300여장의 도판들은 이 책을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3 의견[ | ]

이 책은 그가 스스로의 사관을 재정립하기 위해 쓴 듯한 느낌이 든다. 여러가지 독창적인 해석을 가하고있긴 하지만 그것은 그가 역사를 2차적으로 접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즉 그가 사학 전공자이고 일차자료 확인 등에 시간을 많이 사용했다면 이런 식의 과감한 언급을 하긴 어렵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어쨌거나 여러가지 도발적인 언급이 많으므로 머리속의 문제의식을 리프레쉬하긴 적당한 책이다.
적어도 이 사람은 냅다 베끼진 않았다. 베낀다면 이런 식의 명료한 논리는 꺼낼 수가 없다. 이해든 오해든 자기가 받아들인대로 그는 서술하고 있다. 조금 마음에 안드는 점은 그가 조선의 대외관계와 군사권이 철저하게 중국에 종속되었다고 인식하고 있는 점인데 일단 그것은 사실 확인을 좀 해야겠다. 그리고 그것이 사실이라 할지라도 그 속에서 우리가 만들어낸 독자적인 문명은 어떻게 가능했는가를 인식해야 한다. 어차피 사실 확인은 필요한 듯.

아래는 근대성토론에서 FVI에게 한 답변이다. 이 책을 보면서 몇가지 힌트를 얻었다.

서구인들이 왜 중국과 일본에 접촉했지만 우리에겐 접촉하지 않았는가에 대한 언급을 보았습니다. 남경태가 사학과 출신이 아닌고로 딱히 권위를 부여하진 못하겠지만 종횡무진동양사에서 근거있는 의견을 내놓았더군요. 그는 중국과 일본이 독자적인 외교적 군사적 노선을 밟고 있었으나 우리는 그 점에 있어서 중국에 종속되어있었기 때문이라고 언급합니다. 즉 서구인들은 우리나라의 존재 자체를 모르거나 알았어도 중국이라고 간주했다는 거죠. 중국은 우리나라에 대해 현실적인 종주권을 행사해왔기 때문에 분명해보이고 일본인의한국관에 따르면 일본의 지배층은 자신들을 천자의 나라라고 여겨왔기 때문에 중국과 동등하게 간주하여 우리나라를 대등한 국가로 인식하지 않았습니다.
아 그리고 일본이 테지마를 열어두고 쇄국을 하면서도 오직 네덜란드와만 교역을 해왔기 때문에 네덜란드도 일본에 여러가지 정보를 주면서 상호 독점적 무역을 전개한 것도 분명하더군요. 심지어 미국이 흑선을 이끌고 일본을 개항하려했던 사실도 몇년전부터 누차 경고해왔다고 합니다.
그리고 제국주의 국가들은 대체로 자신들의 영역이 분명했습니다. 영국은 중국과 인도, 프랑스는 인도차이나...이런 식으로 남이 찜한 것은 대체로 인정해주는 분위기였죠. 따라서 네덜란드도 일본에 대해 어느정도 우선권이 있다는 인식은 제국주의 국가들 사이에 퍼져있었다고 해요.
이것으로 볼때 열강이 우리나라까지 오지 않았던 것은 기본적으로 그들이 우리에 대해 무지하고 별로 관심이 없기도 했지만 다른 곳 땅따먹기만으로도 충분했고 우리를 건드리는 것은 청을 건드리는 것과 동일하게 인식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후발주자라서 어디 집어먹을 땅 없나 하고 돌아다니던 독일마저 청의 일부를 잠식하는 것으로 만족한거죠. 만약 그들이 조선을 독립국이라고 인식했다면 당연히 집어먹으러 왔을겁니다. 이후 러시아와 일본이 조선을 노리다가 결국 일본이 찜하게 되지요, 망할.
이런 상황에서 일본이 여기가 땅끝이오 하고 우리나라로 오는 것을 막았다고 인식하는 것은 문제가 있는 관점으로 보입니다. 그런 일이 있었을 수는 있지만 왠지 일본만 나쁜놈이라고 걸어넣는 듯한 느낌이 강하거든요.

자꾸 서구 열강의 시대가 나오는데 그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조사를 해야 정답을 찾을수 있을거야, 고려땐 아라비아 상인들도 우리나라에 왔었는데 서구인들이 우리에 대해서 무지 했다 라는 추론은 서구의 보통시민 으로 한정 지은 다면 수긍하지. 내 이름이 걸려서 내가 생각을 아주 잛게 이야기 하지:

1.쇄국정책: 읿본도 쇄국 정책을 했다는것을 알겠지.그 이유는? 천주쟁이 서학쟁이 양산을 막기 위해서였지,그럼 화란은? 화란은 천주교 전파를 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일본과 교류를 시작 했었지,그리고, 무기류들은 포르투갈 상인들에 의해서 구매및 기술복제가 서서이 이루어 졋고.

2, 우리나라는: 조선중기 만 해도 우리의 제조기술은 서양 못지 않았네. 청에서 가져 왔다는 자명종을 최천약(확실한 이름은 모름)이라는 기술자가 한번 쓰윽 분해해 보고 더 뛰어난 자명종을 몇개나 만들어서 임금에 바칠 정도로 대단 했고 스케일이 작아서 그렇지 선박 건조기술도 대단했지(상판은 나무못과 나무망치로 나무사이를 못을 박아 연결 하고바닥은 나무와 나무의 끼움만으로 방수가 가능했던 현재도 재현못하는 최첨단 기술). 그런데, 문제는 문명 이라는것은 교류를 통해 서로간의 유무를 상통 해야만 발전 하는건데 우리나라는 고립무원의 신세가 되었다는것이야. 우리나라와 청의 관계는 명 때완 비교도 않되게 않좋았었지. 청 즉 후금은 오랑캐들 이라고 우리는 아예 업신여길 정도니 청이 열받아서 두번의 조선정벌을 하지 않았는가. 그걸 우리는 오랑캐놈들의 난 이라고 역시 왜놈의 난 처럼 전쟁에 지고서도 하대 하고 말이지. 우리가 청과 왜에 의해 문명의 교류가 막히면서 우리나라는 정체되었다고 나는 보네. 그래서, 오랑캐 놈들이라 분하지만 청이 들여오는 신문명을 배우자 라는 북학이 나오지만 북학이 천주쟁이로 빠지는 통에 어쩔수 없이 제거 당할수밖에. 그당시 동양에 오는 천주교 신부는 침략의 교두보를 확보하는 스파이 였다는 것은 거북도 알겠지.

3, 우리나라는 청의 속국 ? : 헤게모니(헤지머니)라는 용어를 만든 이탈리아의 천재 학자(이름은 공부를 통해서 알아보게나^^)의 의도와 상관없이 아무때나 쓰는데 헤게모니의 듯은 동의에 의한 지배 일세,.그것도 자발적인 동의,, 무력에 의한 지배는 절대 헤게모니를 잡은게 아니지. 우리는 왜란때 명이 우릴 도왔다 라는 신의 때문에 후금과 명간의 전쟁때 명을 도왔지. 그러나, 후금이 중원을 장악하자 박정희가 임금 이었다면 얼른 후금 만세를 외쳤겟지만 우리 줏대 있는 선비들은 목숨을 내놓을 지언정 한입으로 두말 안하지. 그래서, 병자/정묘 호란이 일어났고, 임경업 장군이 이끄는 남한산성 수비대는 수없이 몰려오는 적군을 무찔렀지만 물량에는 장사 없다고 항목선언문을 만들게 되지. 그때. 항목선언서에 신하신 자가 들어가자 격분하여 그걸 찢어 버렸고 최명길은 그걸 주어서 다시 이어붙였네. 훝날 사가들은 최명길을 죽일놈 이라고 한게 아니라 최명길은 자신의 자존심을 굽혀서 종묘와 사직을 구했고 김상헌은 기개를 지켜서 조선의 300년을 지켰다 라고 평가를 내리지. 청과 우리나라는 적대관계 였다네,, - FVI -

4 같이 보기[ | ]

문서 댓글 ({{ doc_comments.length }})
{{ comment.name }} {{ comment.created | snstim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