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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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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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책소개 (알라딘)[편집]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초판, 2003)의 출간 10주년 기념 개정신판.

당대의 천재이자 대문호였으나 현대인에게는 아득하기만 했던 연암 박지원을 웃음과 우정, 노마드의 달인으로 새롭게 조명했을 뿐 아니라 들뢰즈의 사상으로 연암의 역작 <열하일기>를 재해석해낸 참신한 독법으로 ‘지금-여기’의 고전에 목말라하던 독자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아온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이 출간 10주년을 맞아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났다.

이 책을 쓰며 ‘고전평론가’를 자임했던 지은이의 재기발랄한 문체와 시각은 이 책을 “아직도 현장에서 싱싱하게 살아 있”게 한 저력이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연암과 <열하일기>를 읽고 싶고, 알고 싶게 만든다. 지은이는 2003년에 이어 지난 2012년 다시 열하에 다녀오면서(이에 대한 여행기와 사진이 개정신판에 부록으로 추가되어 있다) “아주 낯선 열하”를 체험했다고, “누구도 같은 길을 두 번 지나갈 수 없음”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독자들에게는 이번 개정신판이 연암과 <열하일기> 그리고 고전으로 가는 ‘아주 낯선 길’이 되어줄 것이다.

3 #[편집]

아직 리라이팅 클래식을 이 한권밖에 읽지 않아서 뭐라고 할 수 없지만 이런 책에 리라이팅 클래식이라는 야심찬 제목을 단 기획자들의 만용에 난 조금 당혹스럽다. 이 책은 열하일기 감상문에 불과하다. 적어도 나는 이 책을 보고 출판사인 그린비, 시리즈인 리라이팅 클래식, 그리고 저자인 고미숙과 그가 수장으로 있다는 연구공간 수유에 모두 -10점씩 주게되었다.

리라이팅이라는 표현을 쓰고싶다면 적어도 책의 저자와 당시 시대상, 그리고 해당 작품에 대한 총체적 재해석 능력과 뛰어난 현대어 구사능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책은 기 출간된 열하일기 번역, 해설서들을 놓고 자신의 생각보다는 아!라는 감탄사만 달아놓았다. 이 감탄사 오남용은 김용옥에게서 배운 나쁜 버릇으로 보이는데 문맥의 오버때문에 읽는이를 책에서 자꾸 이탈하게 만드는 주 요인중 하나이다.
그리고 몇몇 보기싫은 들뢰즈-가따리의 용어들이 난무하고 있는데 솔직히 조악한 언어유희 이상으로 보이진 않는다. 설마 연암을 노마드라고 말하는 것이 '리라이팅'이라고 생각하지는 않겠지. 연암은 노마드가 아니라 단지 자유인일 뿐이다. 노마드라는 어감으로 연암이라는 조선인을 표현할 수 있겠는가? 의미는 가능할지 몰라도 문맥으로는 택도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저자는 연암의 자유분방한 글쓰기에 압도당했다고 적고있으면서도 자신은 연암을 자유분방하게 재해석할 생각조차 못하고 있으니 아무래도 저자에게 연암에 대한 묘비명을 쓸 자격은 없어보인다.

열하일기를 완독해보지 못하고 파편적으로만 접했던 나에게도 사실 호질과 허생전같은 경우는 충격의 연타였는데 아마 열하일기를 완전한 텍스트로 읽는다면 더욱 놀랄것이라고 생각해보면 기대가 부풀기는 한다. 게다가 지금 읽고있는 북학의역시 박제가의 안목에 감복하면서 보고있으니까 북학파들의 저서들을 좀 읽어보면 조선의 근대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을것 같아 기분이 좋다.

열하일기에 대해 알고싶다하더라도 이 책을 처음에 읽지는 않길 권한다. -- 거북이 2003-9-19 1:23 am


여기 한번 보시게. 나는 나와 같은 생각을 한 지식인들이 세상에 꽤 있다는 사실을 최근에 알아서 상당히 기뻤다네 그려. -- 거북이 2004-4-18 1:27 am

ㅋㅋㅋ...아주 적절하게 지적하고 있구면 :-)

수유 뭐시기의 전도에 앞장서고 있는 고미숙판 '열하일기'의 장난 글은 밥맛만 떨어지게 했다. 연암에게는 금기시한 것을 말한다고 하는 분명한 전선이 있었으나 고미숙의 염두에는 전혀 불온하지 않은, 유쾌한 글을 원하는 타겟 독자만 있었을 뿐이다. & 자신의 삶도 연암의 삶도, 자신의 글도 연암의 글도 죄다 이 세 단어로써 규정하고 있다. 아는 단어가 그것밖에 없나. 아니면 그 세 단어면 세상의 모든게 규정가능한가. & 문체반정기의 소품문을 흉내내다보니 오버 문체의 극치가 구사되고 있다. 등은 적확한 표현이지 싶으이. 나도, 적어도 이 책만큼은, 분명 고전 다시 쓰기 시리즈니 고전이 널리 읽히기 시작하면 사라져야 할 책이리라. 분명 얼마 지나지 않아 잊혀지리라.에 한표 던지는 바이네. 접 때도 말했지만, 고미숙 씨는 어처구니없게도 연암 그룹과 수유+너머를 동일시 하다 못 해 연암과 자신을 동일시하며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이입의 극치를 보여 주고 있다고 생각하네. 물론 당사자들에게는 그것이 어처구니가 달린 맷돌일 수 있겠지만. 연암과 고미숙 씨의 차이점은, 전자는 시대가 얽맨 경우고 후자는 시대에 얽매인 경우라는 거가 아닐까 싶은데. post-marx 이후 일종의 공황 상태에서 유목민처럼, 뜯어 먹을 만한 풀을 찾아 헤매이다 우연히 발견한 오아시스에 몇 년 눌러 살다 보니, 이제는 그 자리에 아이파크를 세우고 살고 싶어하는 격이랄까.

나처럼 밖에서만 바라보면, 내가 그 집단의 성원이라도 실제로 그들은 정주민처럼 커져버린 자신들의 집단을 유지하기 위해 아주 많은 노력을 할 것이다. 말로는 유목인데 하는 짓은 콘크리트 건물 짓기인 셈이다.라는 지적을 반박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기도 하거든. 다양한 주제들을 두루두루 섭렵하는 것과 생존을 위해 유목하는 것은 그 진실성과 성실성에서 살토 몰탈래의 간극이 있지. 안에서야 얼마나 치열한 자기 반성이 진행 중인지 알 수 없으니 내가 왈가왈부하기에는 거시키니 하지만. 그래도 나오는 성과물들로 그들을 바라 보자면 한국 사회에서 그들은 여전히 유의미한 단체라 생각함. 문제는 성원의 수가 증가하면서, 예의 그 절대 능력치 불변의 법칙이 적용되어, 그리고 생존을 위한 규모를 확보하기 위해 퀄리티 컨트롤을 포기하는 바람에, 내부에서 퇴물화 경향을 보이는 사람들이 등장한다는 거겠지. 그 사람들도 먹고 살아야 하니 자기 복제의 물량 공세 시스템을 구축한 거고.

암튼, 이제는 불란서 거시기가 나오면 대부분의 신문 기자들이나 잡지사에서 일단 수유+너머 출신의 사람들을 물색한다 하지 않던가. 문제는 좀 더 능력있는 사람들은 좀 더 매진해야 한다는 거지, 그 선택이 잘 못 되었다고 생각지는 않는다네. 그리고, 자네도 그렇겠지만, 제 2 외국어를 처음 배울 때 어느 정도 입에 붙고 쉬운 글을 읽을 수 있을 때가 되면 그 언어로 자꾸 얘기하고 싶고, 그 언어와 우리 말이 비스무레한 게 있으면 재미있어 하고, 그 언어로 글도 쓰고 그러고 싶지 않나. 그 단계를 넘어 서야 단순히 제 2 외국어를 구사하는 것 뿐만 아니라 그 언어로 체득할 수 있는 다른 문화와 사상을 심도있게 고민할 수 있는 거고. 아직은 그 동네를 들락거리는 많은 사람들이 외국어 공부하는 사람들이려니 하고 있지. 하지만 적어도 일부는 그 단계를 넘어, 심도있는 공부에 매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네. 그럼에도, 많은 수의 수유+너머 구성원들이 아직 오믈렛을 오무라이스로 만들거나, 포크 커틀릿을 동카츠로 승화시킬 만한 자신감이나 미각이 결여된 것은 사실이지 싶으이. 내가 카페 트랜스 한 구석에서 준비 중이었던 마이도스 재고 LP 싹쓸이 기념 김믹 퍼레이드를 애처롭다고 느낀 것도 그런 게 아닌가 싶어. 압축해서 말하자면, 많은 수를 차지하는, 열심히는 하지만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기에는 그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 사회가 굴러 가기 위해 불가피하게 존재해야 하지만, 누구와도 교체될 수 있는 부속품. 물론, 열심히 하니 순정 부품으로 팔리기는 하겠지. 그래서 당연히 나처럼 게으른 무능력자보다는 훌륭하겠지만, 그렇게 때문에 그들이 더 애처로운 거지. 가끔씩은, 나는 타인에게 애처로운 느낌을 주지는 않으니 내가 그들보다 더 바람직한 인간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기도 한다네 :-)

불쏘시개는 장작에 불을 붙이는 역할로 자기 일을 다 한게 아닌가, 신문지 찢어 말아 만든 불쏘시개가 밥지을 화력을 못낸다고 힐난할 필요는 없지. 다만, 불쏘시개가 장작을 동경하다 자기도 장작인 줄 알고 자기 흥에 혼자서 파르륵~ 타올라 버리면 좆되는 거지. 내 생각에 고미숙 선생의 열하일기는 사우디아라비아에 떨어진 신문지가 아닌 가 싶네. (좆된다고 하니 생각나는데, 정태춘 박은옥의 나 살던 고향에서 제일 끝에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던 산골~ 나니나니나~가 원래는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던 산골~ 좆돼부렀다~였다고 그러더군.)

그건 그렇고 강유원 씨 책을 함 읽어 보고 싶구려, 상당한 사람일 것 같은데 :-) -- SonDon 2004-4-18 11:30 am


  • SonDon  : 지금까지의 감상으로는, 김용옥 아류라는 레떼르를 떼기 힘들 것 같더군...정보 전달의 측면면에서도 좀 떨어지는...끝까지 보고 나면 나도 코멘트를 남기도록 합지 :-) - 2003-10-14 12:36 pm
  • 김기태 : 모 케이블 티브이에 자신이 고문학 전문가중 전문가로 이야기 하던데,, 아주 어렵게 공부했다고 하더구만.. - 2003-9-25 10:22 pm

4 참고[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