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러종합대학

2002 10 08 火 : 에러 종합대학 University of Errors[ | ]

오늘 나는 며칠전 발견한 데이빗 앨런DaevidAllen의 밴드 에러 종합대학의 공연을 보기로 했다. WooRam은 이쪽 음악에 아무래도 관심이 덜하기 때문에 그 시간에 좋아하는 군바리 박물관들을 간단다. 즉 오늘은 둘이 따로 다니는게다. 나는 공연장에 가기 전까지 그동안 없애지 못한 CD를 해치우기로 했고. 사실 이런거는 나 혼자 가야 우람군에게 덜 미안하니 딱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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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아저씨 성당

일단 둘이 세계에서 두번째로 크다는 세인트폴 대성당에 가기로 했다. 이 바울아저씨 성당은 뽀대 하나는 확실히 난다. 그런데 이거 입장료가 너무 비싸네 그려. AFC일것이 뻔한데 그 돈을 내고 들어가기도 뭐하고 해서 겉만 찍었다. 이 성당 앞 계단은 비둘기와 사람이 정겹게 잘 지내고 있는데 비둘기가 잔뜩 똥을 싸둔 것을 보아 비둘기쪽이 주인인듯 싶다. 이 성당은 지금 공사중인데 공사장 인부들이 샌드위치를 까먹는데 아주 적당한 장소이다. 우람군은 AFC혼자 봐라 이러면서 가는척했지만 알고보니 성당 뒤쪽에서 싸모님께 열심히 전화로 충성서약을 하고 있더군. 여튼 이녀석도 완전히 잡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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튜브 승강장. 런던의 지하철 역은 좁고 꼬불꼬불한 것이 개미굴을 연상시킨다. 정말 모든게 튜브 분위기다.

지하철을 타고 노팅힐로 갔다. 영화 노팅힐의 그 노팅힐이다. 여기에 개똥같은 CD & Video Exchange의 분점이 있어서 나는 다시 한번 도전해본 것이다. 열심히 찾아갔는데 뭐 역시 꾀죄죄하다. 런던의 판가게는 정말 어디나 실망스럽다. 여기서 보여주었더니 열몇장을 보면서 현금 50P 교환 80P를 부른다. 캠든보다 더 짜다. 또 이런 가게가 없냐고 물어봤더니 포트밸로 마킷이라는 노팅힐의 시장통 쪽에 있다고 알려준다. 거기까지 열심히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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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트밸로 마켓. 싸보이지만 여기도 별로 안싸다.

가는 길에 재래시장이 열려있길래 토마토를 하나 사먹었다. 사실은 딸기를 먹고싶었는데 조금씩은 안파는 분위기라서 참았다. 별로 안친절하다. 사람 냄새가 조금 나긴 하지만 그리 매력적인 곳은 아니다. 여튼 간신히 그 가게를 찾았는데 여기서는 안산단다. 그러면서 또 다른 가게를 알려주네. 판가게 레이스를 시키는 건지 원. 이번에도 가라는 가게로 가봤다. 여긴 가보니 온리 LP다. 여기도 또 뭔가 가게를 알려주려 했는데 듣고 잊었다. 내 그가격에 파느니 이걸 길에 뿌리리라...부르르. 아 젠장 본전치기라도 해야겠다.

어딜 갈까 하다가 코톨드 미술관에 가보기로 했다. 여기는 조그만 미술관이지만 인상파 쪽이 많다는 소리를 들었다. 근처에서 한참 헤매고 있는데 왠 꼬마녀석 하나가 잔디밭에서 음악듣고 앉아있길래 물어봤다.

헤이 코톨드 미술관이 어디냐?
요기인데요.
그럼 내가 가려는 이 클럽은 어디에 있는거니? 주소지는 여기인데.
아 그건 파란거 타고 쭉 올라가면 있어요.
흠 고맙다. 너 어떤 음악 좋아하니?
너바나Nirvana하구 비틀즈같은거요.
다른건 안들어?
뭐 이것저것 들어요.
포크쪽은 안듣나 보구나. 내가 여기 판떼기 한장을 줄테니 한번 들어보렴.
뭔데요?
아르헨티나 포크인데 하모니가 죽인단다. 여기 내가 그냥 줄테니 들어봐.
(말을 잘 못알아들은듯) 얼마에 파시는거에요?
그냥 주는거야. 대신 듣고 나에게 감상을 적어 이메일을 하나 보내다오.
그럴께요.
잘있어라.

당시 나는 그 가격에 파느니 길거리에 뿌린다는 생각을 하고있었기 때문에 조금 낭만적인 생각이 들어 빠스또랄Pastoral의 Humanos앨범을 그녀석에게 주었다. 잔디에 앉아 열심히 음악 듣고 있는 것이 귀엽기도 하고. 그런데 이녀석은 아직까지 이메일을 보내지 않았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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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톨드 미술관의 분수. 아주 이쁘장하다.

여기 코톨드 미술관은 주로 인상파 그림들이 있고 그 외에는 루벤스나 그 외 오래된 탱화들이 있는데 뭐 다들 그게 그걸로 보인다. 루벤스가 분명 16, 17세기 고전주의의 최대 스타인 것 같지만 그의 미의식은 나와는 정말 안맞는다. 이후 루벤스는 어디 갈 때마다 보이는데 그것은 루벤스가 당대에 부를 거머쥐었고 그림 공장을 운영했기 때문이다. 도제식으로 애들 갈궈서 자기는 주인공만 그린다거나 뭐 그런 식이다.
의외로 반다이크의 그림들이 여기저기에 있구나. 반 다이크는 에딘버러나 더블린에서도 본 것 같다.
그나저나 조명을 바보같이 해서 빛이 반사되는 덕분에 그림 보는 것이 영 불편하다. 이것은 여기 뿐만 아니라 유럽의 전 미술관이 그모양이더라. 왜 그렇게 했는지 모르겠다.

  • 도미에의 돈키호테
  • 마네의 풀밭위의 식사. 그의 붓질은 크게 특이하진 않지만 다른 화가들보다 무채색을 더 사용하고 있으며 그 속에서 절제된 색채 사용으로 임팩트를 주고있다. Bar at Folie-Bergere
  • 드가의 두 댄서
  • 모네는 다른 인상파 화가들보다 더욱 질감이 두드러진다. 물론 고흐보다는 덜하지만 말이다. 역시 내가 받은 모네의 아방가르드적인 느낌은 틀리지 않았다. 나중에 테이트 모던 미술관에 갔는데 모네의 추상화에 가까운 수련 그림이 있었던게다.
  • 세잔은 다른 인상파화가들에 비해 좀 더 면에 가까운 붓터치를 보여주고 있으며 좀 더 정적이다.
  • 피사로쇠라적인 느낌으로 그림을 그린다. Quays At Rouen을 보라.
  • 쇠라는 가끔 점으로 프레임까지 만드는 괴 취향을 보여주는 엽기적인 화가이다. 쇠라는 너무 차갑다. 다른 인상파 화가들도 그다지 따듯하진 않지만 쇠라만큼 냉랭한 화가도 없다. 화장하는 여인을 보라.
  • 르노아르는 물감을 묘하게 뒤섞은 다음 붓터치의 방향으로 동물가죽 같은 느낌을 만들곤 하는데 이런 것들을 표현해내는 화가들의 손을 보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Portrait of Ambroise Vollard
  • 역시 고흐의 자화상은 인상적이다. 화면 배경에 일본 그림이 걸려있다. 그나저나 고흐는 정말 물감으로 떡칠을 해놓았다. 두꺼운 물감때문에 근처에 그림자가 생길 정도다.
  • 벨리니의 The Assasination of St. Peter Martyr같은 그림을 보면 성화를 가장한 그림들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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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트민스터 가는 길에 본 스티커. 무정부주의자 책잔치 초청이라. 이런거보면 영국은 멋진 나라이기도 하다.

웨스트민스터는 그저 큼직한 공동묘지일 뿐이다. 난 여기를 돌면서 내가 왜 이 친구들을 순례하고 있나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바닥에 깔린 돌들은 하도 사람들이 밟고다녀서 다 닳아버렸다. 물론 멋진 사원이긴 한데 그냥 멋있는 AFC라고 보면 된다. 별로 갈 필요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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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트민스터의 안쪽 사진. 여긴 사진을 잘 못찍게 한다.

여긴 여러 명사들이 묻혀있는데 무슨 기준으로 묻혔는지는 몰라도 이름 알만한 놈들도 꽤 있다. 하지만 조금 두고보면 종교가 국가 조직 안정화에 어떤 식으로 기여하는가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곳이 바로 이곳이기도 하다. 예를들면 무명용사의 무덤이 하나 있다. 이건 가장 뽀다구있게 만들어져있고 주변에는 항상 꽃이 있으며 옆에는 촛불을 하나 붙이고 죽은이의 명복을 비는 곳도 있다. 그런가하면 동인도 회사의 기념비도 있고 각종 깡패들의 무덤도 있다. 독일이 유대인 박해에 대해 참회한 적은 있었지만 영국이 식민지들에 참회한 적이 있었던가? 있었는지 없었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식민시대의 유산을 자랑스러워하는 것을 보건데 그다지 참회하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여기는 뭘했던 그저 국익에 충실했던 놈들에게 작위 하나 지어주고 묻어준 그런 곳이다.
그렇긴해도 이렇게 대형 사원을 지은 것은 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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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그저께 찍은 정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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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 한번에 안들어올 정도로 큼직한 나무. 영국에서 가장 부러운 것은 이 나무나 잔디같은 녹지들이다.ㅗ

다시 캠든의 빌어먹을 CD & Video Exchange로 갔다. 전에 가격을 부른 직원은 어디 갔는지 다른 넘이 나왔다. 여튼 보여주었더니 이번에는 10장에 현금 30P 교환 50P를 해준단다. 이놈들이 짜고 치는 것이 아닌지 심히 의심스럽다. 진짜 강도들이 아닌가! 두말없이 바로 나왔다.
진짜 전철역 앞에서 뿌릴까 하다가 아까 지하철 역에서 본 광고가 하나 생각났다. 다시 가서 확인해보니 렉클리스Reckless라는 중고판 가게로 이 근처다. 잘 기억해두고 물어물어 찾아갔다.
주인장이 말을 친절하게 한다. 다행이다.

안녕~
응. 나 씨디팔러왔다.
보자.
(좌르륵)
흠...(스무장을 집으며) 현찰로 100P 교환은 150P 어때?
(휴우...본전치기는 할 수 있겠군) 사실 나는 한국에서 배낭여행을 하러 온거고 이건 오는 김에 한번 가져온건데 너도 알다시피 이 판들은 꽤 품질도 좋고 희귀한 것들이야. 150에 200은 어때?
(고뇌한다.) 그래 알고있어. 하지만 우리로서는 이게 언제 팔려나갈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서 위험부담이 좀 크다구.
이것봐 샤이버Shiver같은 경우는 재킷 디자인을 기거가 했고 고블린Goblin같은 판은 여기서도 인기가 있으며 죤 세인트필드JohnStField같은 경우는 아주 희귀한 영국 포크의 명반인거 너도 알잖아.
하지만 나머지 판들은 아무도 모른다구. 그리고 죤 세인트필드도 사람들이 별로 안찾아. 네 말대로 고블린이나 샤이버는 아마 35P정도에 내놔도 금방 나갈거야.
그래 알겠다. 네 말도 일리가 있지. 그럼 내가 교환할테니 200P으로 하자.
(한번 더 고뇌하더니 씨익 웃으며) 180이다 어때?
오케. 그럼 나 판 고른다.

이렇게 거래가 성립했다. 그런대로 괜찮은 거래다. 그놈들 그거 다 팔면 적어도 600P는 받아먹을거지만 뭐 이거 내가 안고 죽을것도 없으니 그러마 하고 넘겼다. 장사는 남아야 하는 것이니까. 나도 모르는거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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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가게 렉클리스. 문닫기 직전이다.

이제 나는 CD를 열심히 뒤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별로 쓸만한 것들이 없었는데 계속 뒤지니 꽤 쏠쏠한 판들도 나온다. 한참 뒤져서 180에 맞추었다.
독일에서 나온 킹크스Kinks 종이재킷 시리즈도 있어서 좀 보여달라고 했다. 이걸 다 보여달라고? 흑인 녀석이 으쓱대더니 꺼내준다. 여기는 도난방지를 위해 재킷과 알맹이를 따로 보관하는지라 하나 꺼내는데 1분쯤은 걸린다. 폐가식 도서관이라고 생각하면 딱 맞다. 분명 그놈들은 보고싶으면 주인에게 말하시오라고 써놨었다. 그놈들이 열심히 꺼내온 것을 보니 영 꽝이다. 나는 됐다고 도로 넣으라고 했다. 그랬더니 갑자기 화를 낸다. 장난하냐고. 지금 얼마나 바쁜데 그러냐고. 나는 아 한번 봐도 된다해서 보여달라고 한 것 뿐이다. 물건을 고르려면 보긴 해야하지 않느냐.
계속 욕을 해대며 다른 것들을 찾는 동안 영업시간이 끝났다. 영업시간이 끝나자마자 이놈들은 갑자기 노골적으로 바뀐다. 오늘은 아주 힘든 날(비틀즈Beatles의 A Hard Day's Night은 이미 관용구이다)이라는 둥 우리는 아주 개새끼처럼 일하고 있다는 둥 두 놈이 아주 난리다. 주인장이 담배를 피려 하다가 궁시렁대는 것을 보더니 담배를 직접 물려주고 불까지 붙여준다. 뭐 하나를 물려놓으니 궁시렁이 끝났다.
내가 대충 계산해보니 17xP가 나왔는데 혹시 몰라서 다시 한번 세어보라고 하니 그 흑인 놈이 래퍼같은 말투로, 내가 왜? 이건 내 일이 아냐. 돈 세는건 네가 해야지. 이러는거다. 여튼 계산할 때 바코드로 하나하나 찍어보더니 정확하다고 엄지손가락을 들어준다. 방금 인상 썼던 놈이 말이다. 내 기가 막혀서. 3P짜리 머큐리 레브MercuryRev의 싱글을 하나 끼워서 마저 채웠다.
중고 씨디들에 일일이 번호를 매기고 바코드를 붙이고 폐가식으로 운영을 하다니 이거 보통 노동이 아니다. 이러니 중고 씨디들이 비싸지 않을 수가 없다. 정품과 별 차이가 없다. 여튼 매우 철저하긴 하다. 나중에 보게 될 스페인의 널널한 모습과는 확실히 비교가 된다. 하지만 씨디가지고 이럴 필요까지 있나 싶긴 하다.

앞서 예고했던 유럽 놈들의 노동관에 대해 잠깐 살펴보자. 방금 사례에서 봤듯 이놈들은 자기 일이 아니면 절대 안하고 정해진 노동시간을 넘겨서 일하는 것은 매우 매우 싫어한다. 영업종료6시에서 볼 수 있었듯 일이 있어도 일단 미루고 보며 절대 빨리 처리하지 않는다. 당연히 노는 날은 귀신같이 찾아먹고. 나중에 들은 바르셀로나 민박집 아저씨의 증언을 여기 미리 실어보자. 이 아저씨는 기타를 공부하는 분이다.

여기 옆에 외장공사 하고있죠? 이거 한국 사람들이 하면 일주일이면 끝나요. 그런데 지금 넉달째 하고있고 앞으로도 언제 끝날지 몰라요.
소포 보내시려구요? 여기 느슨해서 언제 도착할지 몰라요. 저라면 들고 한국까지 갑니다.

이것들로 종합해봤을때 유럽인들은 기본적으로 일은 최소한하고, 노는 것은 최대한 즐기자라는 것이 머릿속에 꽉 박힌 것 같다. 그리고 이네들의 매년 사는 패턴을 보면 축제를 즐기기 위해 항상 준비하고 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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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아저씨 성당 앞에서 늘어진 공사장 인부 아저씨들

사실 모든 것을 미루거나 하는 것은 당연히 문제가 있다. 5분이면 될 일을 3주나 걸려서 비싼 돈 내고 해야한다면 그것은 문제가 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내가 놀고싶으니 남들도 노는 것이 당연하다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정신도 분명히 있다. 유럽 애들이 파업할 때 불편해도 궁시렁대지 않는다는 것은 유명한 사실이다. 오늘도 뉴스를 보니 프랑스 트럭 운전사들이 파업해서 시속 3km로 고속도로를 기는 바람에 유럽 전역의 소통이 마비되었다고 나오더라.
그래도 이들처럼 늘어지게 살면서 나름대로 삶을 즐기는 것이 조선인들처럼 죽어라 일하다가 간암으로 쓰러지는 것보다는 나아보인다. 나도 이미 충분히 일을 많이 하고있다. 브라질의 룰라도 법정 노동시간 40시간 입법화를 하는 마당에 나는 60시간 이상을 뺑이치고 있는것이다. 이건 문제가 있다. 나는 유럽 애들에게 이런 멋진 점은 배우기로 했다.

어쨌거나 무거운 짐을 덜었으니 이제 공연을 보러 간다. 오프닝은 리쳐드 싱클레어RichardSinclair가 끊고 메인은 데이빗 앨런DaevidAllen이 리드하는 에러 종합대학University of Errors이다.

공연의 얘기는 공연기 DaevidAllen20021008를 읽으시면 되리라. 오늘은 여기까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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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이유럽서부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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