뫄인더갭

2002 10 07 月 : 뫄인 더 갭 Mind the Gap[ | ]

오늘은 생각보다 일찍 일어나서 테이트 미술관로 나섰다. 그런데 버스를 갈아타느라 또 헤맨거다. 내일부터는 반드시 전철을 타고 다니리라 결심을 했다.
글쎄 지금의 나에게 런던은 녹지가 많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부럽지 않은 도시가 되어버렸다. 왠지 뉴욕이나 동경에 가더라도 비슷한 생각을 할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외국에 그렇게 나가고 싶어했던 것에 비하면 매우 당혹스러운 느낌이다. 내가 그동안 느껴왔던 간접체험들이 오히려 지금의 직접체험보다 훨씬 매혹적이다. 물론 지금의 직접체험은 언제나 나의 오감을 긴장시키고 있지만 그것이 나의 간접체험을 몸으로 확인시켜주고있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내가 원하는 그런 체험을 하기 위해서는 돈도 시간도 많아야 할 것 같다. 물론 간접체험도 지금보다는 훨씬 많이 필요할 것이고. 여기서 살지 않는 배낭족이 체험할 수 있는 것이란 한계가 명확하다.

오늘은 테이트 미술관이다. 제당업으로 돈을 엄청 번 헨리 테이트 라는 양반이 지었다는데 역시 돈은 어떻게 버느냐보다는 어떻게 쓰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 중요함을 보여주는 사태라 할 수 있다. 개같이 벌어 정승같이 썼다. 제일제당에서 미술관을 지을 수 있으리라곤 결코 생각되지 않으니까 말이다. 이 테이트 갤러리는 영국 국립 미술관을 제외하면 영국에서 가장 잘나가는 미술관일 것이다. 이쁘기도 하고 그 컬렉션이 매우 훌륭하다. 그리고 다른 어리버리 미술관과는 다르게 온라인으로 모든 그림을 감상할 수 있다. 심지어는 전시중이지 않은 소장작품들까지도. 느린게 흠이다...-_-a
죠지와츠라는 화가는 관능적인 면을 매우 잘 잡았을 뿐만 아니라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영국 특유의 뽀사시 질감으로 잘 살려내고 있다. 솔직히 나는 그동안 영국 미술에 대해 매우 회의를 품고 있었다. 터너밖에 없는거 아냐? 이랬었다. 스코틀랜드 국립 미술관과 테이트 미술관에 오면서 그 생각은 완죠니 바뀌고 말았다.
사실 터너의 뿌연 그림들은 조금만 보다보면 아주 식상해지지만 이 압도적인 그림을 보고나서 역시 이 양반은 훌륭하군이라는 생각을 아니 할 수 없었다. 수장-평화 따위의 그림들보다 백배는 낫다. 하지만 터너의 풍경화들은 너무 테마들이 비슷비슷하다는 느낌은 든다.
죤밀레오필리어는 역시 강렬하다. 오필리어의 모델이 되었던 아가씨는 이 자세를 취하느라 욕실에 하도 널부러져있어서 그만 감기에 걸리고 말았단다. 나중에 이 처자는 로세티의 부인이 되었단다. (라파엘전파의 러브스토리는 오야붕님이 잘 써주구 기시니 참고하시라.) 여튼 이 그림 오필리어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은 명백한 사체애necrophilia이다. 아 서구 놈들도 야소교에 너무 억눌려서 애들에게 하나같이 변태적 욕망이 꿈틀댄다. 특히 미술에서 우리는 그 증거를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다. 여튼 죤 밀레의 색채 감각이란 원색을 많이 사용하면서도 품위를 잃지 않는 훌륭한 것이다.
그러고보니 죤밀레의 유명한 석방명령도 여기에 있다. 이 그림의 여인은 감옥에 간 남편을 위해 간수장쯤 되는 양반에게 몸을 바쳤다. 꼬리치는 강아지와 안겨있는 아기, 그리고 고개숙이고 나오는 남편 앞에서 석방명령서를 내놓는 이 여인의 눈빛은 뭐랄까 처연한 구석이 있다. 한국 여인들의 눈빛과 비슷하다.
그리고 좋았던 밀레의 그림은 랄레이에서의 어린시절이라는 그림이다. 그림을 직접 보면 꼬마녀석 눈이 반짝반짝 빛난다.
로세티가 고풍스러운 여인을 잘 그렸다면 번죤스는 중세풍의 그림을 잘 그렸던 것 같다.
근처에 헨리월리스의 유명한 그림인 채터튼이 있다. 이 그림 역시 오필리어처럼 사체애적인 느낌이 아주 강한 그림인데 역시 라파엘전파에 속한 양반이라 그런지 근처에 있다. 이 그림에 붙어있는 해설지가 죽인다. 여기에는 소년이 무척 에로틱하다는 둥 모델의 자세가 아주 죽여준다는 둥, 페티쉬즘적인 색감과 질감을 표현했다는 둥 아주 가지가지의 멘트가 적혀있다. 이거 어떤 놈이야 하고 봤더니 그 평의 필자는 말콤 맥라렌MalcolmMcLaren이다. 이녀석은 섹스 피스톨즈SexPistols의 매니저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바로 그 놈이다. 전직이 옷장사였다고 하던데 요즘도 이쪽과 관계있는 일을 하나부다. 직함이 스타일 대가Style Guru라고 적혀있네. 웃긴 넘. 여튼 이 놈은 이 채터튼이라는 꼬마가 19세기의 시드 비셔스SidVicious라는 송아지 썬텐하는 소리를 지껄이고 있다. 이 넘도 이 넘이지만 이런 넘의 글을 실어주는 미술관의 저력이 바로 영국의 문화적 힘일 것이다. 조선에서는 이런 일은 죽었다 깨어나도 일어나지 않는다.
스코틀랜드 국립 미술관에서 보지못한 윌리엄 블레이크의 그림이 여기 많이 있다. 이중 Ghost of Flea라는 작품은 눈에 익다. 길가메쉬Gilgamesh라는 밴드의 Another Fine Tune You've Got Me Into(1979)라는 앨범 재킷으로 쓰였기 때문이다. 블레이크의 그림은 어딘가 삽화스러운 면이 많다고 느꼈었는데 역시 그는 바이블의 욥기와 신곡의 삽화를 그린 적이 있다. 사실 나는 이 인간이 뭐가 대단한 아티스트인지 모르겠다. 이 인간의 문학을 내 유심히 보지 않아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조금 성급한 것이 되겠지만 적어도 그림에서 느껴지는 감성만 두고보면 이 녀석은 마초적 남성상을 신화적 모티브에 집어넣어 조금 만화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여튼 이녀석은 다른 작가들과는 달리 캔버스에 템페라화를 그린다거나 특이한 질감을 만드는 등 실험적인 면모도 있었던 것 같다.

 

푸셀리라는 화가가 맘에 들었는데 그의 그림 자체가 맘에 들었다기 보다는 그의 감성이 맘에 들었다고 해야 옳을게다. 그의 그림들은 고야를 연상시키는데가 있는 아주 어두침침한 그림들이다. 고야의 검은 그림들이 가진 그 원시성은 못따라가지만 세익스피어의 희곡을 주제로 삼은 그림으로는 나무랄데가 없어보인다.
베이컨이 영국 화가인줄은 몰랐었다. 이 인간은 너무 우울해서 좋아할 수가 없다. 20세기 초의 많은 그림들이 이렇게 파괴적이다. 미쳐버린 자본주의와 함께 정신도 황폐했던 시기임이 분명하다.
그에 비하면 헨리무어는 같이 우울해도 훨씬 부드럽다. 그는 둥글둥글한 이미지를 많이 만들었거든. 그리고 시기적으로 보아 베이컨보다는 뒤의 사람이기도 하고.
아마 영국에서 진정 자랑해도 좋을 화가는 터너보다는 호가스일 것이다. 특히 이 아저씨의 Before and After라는 작품은 무척 진솔한데 남녀관계라는 것은 정말 이런 것인지도 모른다. 여튼 영국의 김홍도라고 해도 좋을 호가스의 작품들에는 웃음짓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무엇이 있다. 당대에 부를 거머쥔 사람이었지만 자기 하인들 초상화까지 그려줄 정도로 진솔한 화가이기도 하다.
나다니엘댄스라는 화가의 풍속화같은 민화들도 있다. 전업작가 생활을 그만두게 되면 화가들이 이런쪽으로 빠져드는 것 같다. 고야도 부에서 멀어진 만년이 되어서야 이런 쪽으로 눈을 돌리지 않았는가.
그나저나 배낭메고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특히 삼각대까지 달고 돌아다니는 여자도 봤는데 정말 괴력의 소유자라는 생각이 든다. 무거울텐데...흠.

테이트를 나와 바로 앞의 템즈강변에서 머리를 식혔다. 늙었는지 조금만 움직이면 피곤하다. -_-
WooRam의 카메라가 맛이 가서 옥스포드 써커스로 가서 하나 샀다. 그리고 뮤지컬 예매하는 곳을 찾아 뮤지컬 위윌락큐We Will Rock You를 예매했다. 인기 만땅인 맘마 미아Mamma Mia!를 볼까 하다가 값도 비쌀 뿐더러 위윌락큐가 아무래도 퀸의 음악을 다루었기 때문에 훨씬 다이나믹할 것이라 판단 이것을 예매했다. 첫날 런던에 오자마자 눈에 띈 간판이 바로 이 위윌락큐였고 이후 눈에 계속 걸렸다. 그리고 퀸 노래야 대충 다 알기때문에 지루하지도 않을 것 같았고. 이 선택은 후에 큰 상처로 남게된다. -_-a
여튼 여기서 티켓팔던 친구는 브레드 피트를 닮았는데 말하는 투는 좀 게이스러웠다. 이 친구가 위윌락큐도 괜찮다면서 꼬셨는데 이녀석 말이 사실 자기도 안봤지만 인기 폭발이고 곧 세계시장으로 나갈거라네. 일단 믿었다.
이번에는 타워레코드로 갔다. 5장에 10P짜리가 있어서 재쑤!하고 뒤지기 시작했다. 세 줄을 뒤지는 동안 아는 것이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 어떻게 이럴수가 있나. 내가 그래도 음악 들은게 십년이 넘고 그동안 내 취미 1순위는 음악이었다. 그런데 내가 아는 것이 한장도 없었다. 어떻게 이렇게 궁극의 똥판들만 모아두었는지 원. 1P짜리 싱글 두어장 사들고 나왔다. 역시 타워는 인간이 갈 곳이 못된다.
역시 HMV에 가니 그나마 살만한 것이 몇장 있다. 정말 싸구려 CD들로 6-7장 정도 집었다. 갑자기 왠 처자가 한국어로 말을 건다.

한국인이시죠?
네. 어떻게 저를? -.-a
그래보여서요. 오래 계시나요?
아뇨. 곧 여기 떠나서 스페인에 갑니다.
아 그러시군요. 유학생이시면 같이 성경공부를 하시면 좋을텐데요.

아아, 여기서 나는 한국 기독교의 진수를 맛봤다. 학교다닐때도 그렇게 피해다니던 네비게이터들을 여기에서도 만나다니 어처구니가 없다. 난 한국 기독교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내가 유럽에서 슬슬 다니며 AFC에서 본 것들이나 일요일에 교회 앞에서 왔다갔다 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들은 이미 신앙을 생활로 만들었고 삶을 옥죄는 그것처럼 느끼지는 않는 것 같다. 물론 나야 겉으로만 봤으니 실상은 모른다. 하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한국처럼 빨간 십자가가 달린 교회가 고개 돌리면 5, 6개씩 보이는 그것과는 전혀 다르다는 거다. 적어도 내 눈에는 그들의 종교가 그들의 삶 위에서 군림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 뫄인 더 갭-, 이 웅장한 톤은 한번 들으면 잊기 힘들다. -_-a

오늘 가장 땡겼던 것은 바로 뫄인 더 갭~ 팬티였다. 이 뫄인더갭Mind the Gap이란 뭐냐하면 튜브 역에서 차가 들어올 때 나오는 멘트이다. 여기는 차량과 승강장 사이가 한국보다도 더 넓기 때문이다. 조선 지하철에도 나오는 멘트이기도 하다. 여튼 이 멘트는 런던 튜브의 가장 상징적 멘트 중 하나가 되었는데 이 것이 브라와 팬티에 같이 찍혀있는 놈이 있었던거다. 팬티만 14P가 되는 엄청난 가격이었지만 그 아이디어가 재미있다. 틈새에 주의하라는 말 아닌가~

영국은 확실히 듣던대로 광고에 강한 나라다. 여기 광고들은 대체로 한번씩 더 음미할 만 했는데 예를들면 이런거다. 컨설팅 회사 광고였는데 다이어리 옆에 따듯한 커피가 담긴 종이컵이 하나 덜렁 놓여있다. 그리고 종이컵에 '나는 언제까지나 기다리지는 않아요. I won't be hot permanently.'라고 써있다. 아이디어는 식기 쉬우니 빨리 돈내고 컨설팅을 받으라는 말이다. 이 외에도 여기저기 유쾌한 광고들이 눈에 많이 띈다.

Tep:PA070416.jpg
오늘 찍은 유일한 사진인 옥스포드 써커스 쪽의 번화가. 옷가게밖에 없다. 우람은 또 찍히고 말았다.

헤매는동안 이상한 동네(아무래도 소호 뒤쪽이었던 거 같은데 잘 모르겠다)도 지나왔는데 뭐 그다지 요란하진 않다. 호객행위를 조금 하긴 하지만 그냥 다들 나와서 얌전하게 언니 찾는 남자들이 있나 구경들을 한다. 주위에 섹스샵들이 조금 있고. 아무래도 이건 너무 약하다. 아마 정말 본격적인 곳은 다른 곳에 있으리라 추측된다.

그리고 들어왔다. 조금만 헤매면 하루는 홀랑 날아간다. 내일부터는 멋진 튜브를 타고 빡씨게 돌아다니리라. 바보같은 런던 버스 안녕~

 \\ 이층버스. 한국 운전기사들은 이층버스를 절대 몰 수 없다. 한국식으로 몰면 커브길에 바깥쪽으로 넘어지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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