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코드페어

2002 10 06 日 : 레코드 페어 Records Fair[ | ]

아침에 느즈막히 일어나서 밥을 먹었다. 이 민박집은 밥 하나는 끝내주게 해준다. 10P에 아침 저녁을 상당히 다양한 메뉴로 내주는데 이것은 주인장들이 규모의 경제를 실현시켰기 때문에 가능해졌다. 이런게 노하우다. 런던에서 10P로는 어설픈 밥 두끼가 채 안된다.

자 오늘의 목표는 레코드 페어에 가서 밀수해온 M2U의 음반을 비싼 값에 팔아치우고 그 돈으로 비싼 런던의 시디를 사가는 것이다. FVI가 운영하는 M2U레코드는 희귀음반(이면서 당연히 들을만한 음반) 전문 재발매 레이블이라 나는 FVI에게서 시디를 도매로 떼어 8배 정도의 이윤을 바라보고 런던까지 왔던게다.

버스 패스가 튜브 패스보다 싸고 그걸로도 런던을 다닐만하다는 말을 들어서 일단 1주일 버스패스를 끊었다. (아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T_T) 이 민박집은 2존 치고는 꽤 외곽인 섀드웰Shadwell에 있어서 버스정류장에 가면 버스가 대기하고 있다. 종점인가보다. 버스가 문을 열어주길 기다리며 룰루하고 있었는데 이놈이 우리를 안태우고 그냥 떠나버렸다. 아무래도 악의가 엿보인다. 자기도 흑인이면서 노랭이라고 놀려먹는다 이걸까? 나쁜 녀석. 우린 당황해서 욕을 하며 그 다음 버스를 기다렸다.
D3라는 버스가 오길래 냅다 잡아탔다. 이건 더 외곽쪽으로 나가는 것 같다. 우리는 큰 길로 나가서 중심가로 나가는 버스를 타면 되겠거니 한 것이다. 조금 나가니 무슬림 차림을 한 양반들이 우르르 내리는 것으로 보아 무슨 날인가보다. 혹시 몰라서 우리도 따라 내렸다. -_-a 아까 비교적 큰 길을 봤는데 아무래도 그것이 제일 큰 길일지 모른다는 불길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올라가보니 진짜 그게 큰길이더라. 거기서 우리는 목표지인 캠든Camden Town으로 가는 버스를 찾았다. 캠든은 젊은이들의 거리로 유명한 곳이다. 그런데 어느 방향으로 가야할지 몰라 어리버리하고있다가 착해보이는 양키친구에게 물었더니 길건너서 타라고 한다. 이 나라는 일방통행과 양방통행이 뒤섞여있어 잘 모르는 사람들은 머리에 쥐난다. 여튼 믿고 탔는데 가다보니 3정거장 가니까 종점이라고 내리랜다. 아웅 바보 양키놈 모르면 갈쳐주질 말던지. 얍실한 눈을 가진 아랍계 운전사가 '쪼다놈들'하는 눈초리로 우릴 쳐다본다. 하는수없이 내려서 다음에 오는 반대방향 버스를 탔는데 또 아까 그 얍실한 기사다. '찐따녀석들'하는 표정으로 우릴 또 본다. 아마 우리를 진짜 바보들로 여겼을게다.
여튼 버스야 성공적으로 탔지만 이 버스 진짜 뱅뱅 돈다. 지하철 탔으면 캠든까지 30분이면 뒤집어 썼을거 같은데 한시간도 넘게 걸린거 같다. 아, 이거 진짜 쥐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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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든

간신히 캠든에 도착해서 시장가 쪽으로 가는데 애들이 버글버글하다. 대부분 옷을 사러 나온 애들같다. 런던판 밀리오레쯤 된다고 보면 되겠다. 그 와중에 판가게가 몇개 보이더라. 내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개중 싸다고 알려진 곳이 CD & Video Exchange이다. 하지만 여기도 결코 싸지 않다. 중고가 여차하면 10P대이니 말이다. LP도 비싸다. 나는 2P쯤 하는 LP들이 산더미같이 있을거라고 생각했는데 완죠니 착각이었다. 여튼 온김에 내가 들고 온 밀수 CD들의 가격을 파악해보기 위해 물어봤다.

이거 얼마쯤 살래?
일단 신분증 좀 보자.
(여권을 준다)
어라 너 주소가 여기 없구나.
응 왜?
훔친 것을 파는 경우가 많아 주소지가 확인되지 않으면 살 수가 없어.
이건 진짜 괜찮은거야. 그리고 영 뭐하면 내 한국 주소라도 알려주지.
그래 여튼 보자.(주변 사람들과 꿍얼꿍얼 한다.)
(13장 정도를 집으면서)현찰로 가져갈거면 현찰로 80P 물건으로 가져갈거면 100P 쳐줄께
(간신히 원가자너...-_-) 이거 엄청 귀한거고 좋은거 니들도 알자너.
나 간다. (띠바~)

장사꾼이란 당연히 이런 거지만 이놈들은 너무한다 싶다. 여튼 나는 이따가 레코드 페어에서 장당 40P정도에 팔아볼 생각이다.

캠든은 확실히 활기가 있는 곳이다. 역시 어딜가나 사람이 최고의 컨텐츠다. 사람이 많아야 뭔가 일도 생기고 볼거리도 있고 먹을것도 있고 그러다가 시장이 생기고 문화도 생기고 하거든. 너무 정신없기도 하고 가격이 비싸 내가 살만한 것도 별로 없으니 캠든은 적당히 이쯤 하고 레코드 페어가 열리는 킬번Kilburn으로 갔다. 나보다 늦게 떠났지만 런던에서 이미 정착한 어학연수생 우경군이 킬번에 있다고 하니 얼굴이나 보고 가기로 했다.

레코드 페어 찾는 것 역시 쉽지 않았다. 지도가 있지만 어려웠고 어디로 가라는 표지가 조그맣게 붙어있었지만 별 도움 안된다. 그리고 가는 길이 너무 조용하다. 왠 웨슬리 스나입스 분위기의 흑인 하나가 우리쪽으로 가길래 그 녀석을 따라갔다. 역시 그놈도 판사러 가는거였다. 하하. 이런 도착해보니 건물 한칸쯤 빌려서 조그맣게 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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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코드 페어장

레코드 페어에 들어가서 일단 분위기 파악을 한번 해봤다. 헉. 재즈, 소울, 훵크, 힙합 만 취급하는 흑인음악 페어다. 완전 망한거다. 그나마 CD는 거의 없고 온리 LP분위기다. 아 젠장 완전히 망했네. 인터넷에는 흑인음악 페어라는 말은 없었단 말이다. T_T
여튼 호스트에게 말하고 자리를 폈다. 실내 노점상으로 변신한지 30분이 지나도록 한명도 안온다. 나려면 구경이라도 한번 하겠는데 구경조차 오지 않는다. 50명 정도가 바글바글 있지만 다들 LP꺼내서 상태 보고 잡담하고 그런다. 이상하게 돈이 전혀 왔다갔다 하지 않는다. 지나가다가 영어발음 좋은 일본인 하나가 오더니 오 이거 한국에서 만든거냐고 물어보면서 신기해한다. 이거 한국에서도 CD를 만드냐라는 분위기다. 여튼 이놈 외에는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한시간만에 한장도 못팔고 손을 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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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점상 정씨

실망한 우리는 밥이라도 먹자 싶어서 우경군에게 전화를 했다. 역시 만나는 것 또한 쉽지 않다. 한 30분은 헤맨 다음에야 만날 수 있었다. 우리는 런던에 헤매러 왔나부다. 만나서 먹거리를 좀 산 다음 우경군의 자취방에 갔는데 뭐 그런대로 깔끔하게 하고산다. 이녀석은 온지 이틀만에 방을 구해버렸다고 한다. 하지만 이 방 하나에 룸메이트와 함께 사는데도 월세 300P라니 너무한다 싶기도 하다. 카레에 와인에 요구르트까지 먹으니 푸짐하다. 여럿이 조선말로 농담따먹기하면서 먹으니 밥맛도 좋고.
아직 펍에 못가봤으니 같이 펍에나 가자고 한다. 한번 가봤다. 예의 기네스를 한잔 시키고 앉아있으니 뭐 괜찮다. 평소에 맥주 마시고싶다라는 생각은 절대 안하는 타입이지만 지금 기네스를 구경하기 조차 힘든 서울에 오니 가끔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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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린 디옹처럼 노래하느라고 다소곳하게 분위기를 잡던 처자. 하지만 이 노래는 누가 불러도 지겹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 펍은 꽤 웃기는 곳인데 갑자기 분위기를 조성하더니 스테이지에서 전국 노래자랑을 시작한다. 밖에 수요일 일요일은 가라오케의 날, 상금 얼마 뭐 이런 멘트가 있었는데 그걸 지금 하는가보다. 화면 배경이 영국이고 가사가 영어라는 것 외에는 조선 노래방과 별 차이가 없다. 셀린 디옹CelineDion의 My Heart Will Go On, 로버타 플랙RobertaFlag의 Killing Me Softly는 여자애들이 불렀고 프랭크 시나트라FrankSinatra의 My Way를 처절하게 부른 할아버지가 있었는가 하면 UB40의 흥겨운 레게곡 Kingston Town을 멋들어지게 부른 총각도 있었다. 아주 재미있었다. 특히 마이웨이를 부른 할아버지에게서는 신구정도 레벨의 기품이 느껴졌다. 별 기대도 없었는데 이런 즐거운 공연(?)을 보니 참 흡족하다. 아까 판떼기 못판 꿀꿀한 기분은 어느새 사라졌다.
이곳의 노래방 시스템은 아주 엽기적인데 어떠냐하면 신청곡을 받으면 사람이 열심히 CD를 찾아 끼운 다음 플레이를 해야하는 것이다. 이거 진행자는 아주 빡씨다.

돌아오는 길도 당연히 버스였지만 아까만큼 헤매지는 않았다. 노하우가 조금 생겼기 때문이다.
런던의 버스는 어딜가든 최소한 1-2회는 갈아타게끔 되어있다. 우리나라처럼 노선이 길지 않다. 도시 자체도 복잡해서 라인을 쪼개는 것이 현명할거 같기도 하다. 대신 버스들이 시간을 잘 지키는 편이고 빠닥빠닥 올만큼 편수도 넉넉한 듯 하다. 하지만 역시 지하철이 최고다. 주말에 오면 일단 주말권을 끊고 넉넉히 있을거면 7일권을 끊어라. 그것이 마음의 평화를 잃지않는 최선의 방법이다.
런던에는 버스가 두종류 있다. 앞이 뚫린 넘이 요즘거고 뒤가 뚫린 넘이 옛날거다. 뒤가 뚫린 넘은 문이 없이 뻥 뚫려있다. 구형 버스는 안내군(?)이 있어서 티켓이 있나없나 일일이 아직도 확인한다.

 \\ 뒤가 뚫린 버스


런던콜링 <= 레코드 페어 => 뫄인더갭

거북이유럽서부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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