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사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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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 ]

翻訳史のプロムナード
번역사 산책

 

 

2 책 소개[ | ]

번역은 단순히 한 언어를 다른 언어로 옮기는 작업이 아닌, 시대와 공간을 넘어서는 문화의 전달 창구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저자의 의도를 생생하게 되살리며 원작에 빛을 더하는 번역가와 번역작업은 그동안 제대로 주목받지 못해왔다. <번역사 산책>은 그 동안 책의 뒤켠에 조용히 머물렀던 번역과 번역가, 그 둘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책이다.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근현대 유럽의 번역사와 번역가의 흥미진진한 일화를 엮은 이 책에서 저자는 먼저 번역이 언제, 누구에 의해서 시작되었는지를 살핀다. 최초의 기록언어 문화를 세웠던 수메르인의 번역, 중세 아랍 문화권에서 행해진 그리스 고전의 번역, '번역의 르네상스'였던 16세기 프랑스, 부실한 번역이 판을 쳤던 17, 18세기, 그에 대한 반동으로 19세기 초반에 나타난 축어역(원문과 번역문의 단어를 일대일 대응시키는 번역) 등 책은 번역의 변화양상을 중요 번역가들의 삶과 함께 설명해 나간다.

특히 16세기 프랑스에서 일어난 번역 붐이 근대국가의 기초가 다져진 시기와 일치한다는 사실을 통해 번역의 중요성을 이끌어낸 점은 주목할 만 하다. 저자에 따르면 국어의 확립은 근대 국민국가의 근간을 이루는 것이기 때문에 프랑스어가 국어로서 확립되기 위해서 번역은 필수불가결한 요소였다는 것.

이 외에도 책은 문명 논쟁으로서 번역 논쟁을 주도한 안 다시에, 다윈의 <종의 기원>을 소개한 여성 번역가 클레망스 루아이에, 작가이면서 번역에 정열을 불태웠던 앙드레 지드와 발레리 라르보, 사회적으로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던 번역가들의 실상, 그리고 그들의 입장을 드러내기 위해 조직한 번역가협회와 번역학교의 현황 등 번역과 번역가의 뒷이야기들에 대해서도 흥미롭게 다루고 있다.

3 # 거북이[ | ]

번역의 역사를 다룬 책이 있다는 것을 보자마자 나는 일단 찜을 해두었다. 내가 최근 가장 관심가지고 있는 것은 언어라는 코드가 어떤 식으로 문화를 담아왔으며 그 양상이 어떻게 변해가는가에 대한 것인데 번역은 분명 그 한가운데에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번역과일본의근대에서 볼 수 있듯 일본은 자신들의 근대문명을 번역을 통해 세운 나라이고 따라서 번역에 대한 일본인의 관점을 접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도 있었다. 그리고 이 책은 그 입문서로서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이 책을 지은 쓰지 유미라는 (아마도) 여자는 분명 번역가들이 너무나 부당한 대우를 받고있다는 것에 대해 분개하고 있다. 사실 번역가는 양쪽 문화에 정통한 교양을 가지고있지 못하면 할 수 없는 매우 고밀도의 지적 노동자인데 그들은 정말 어둠속에서 사명감만으로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번역가들의 역사를 역추적하여 번역가라는 존재의 의미를 다시한번 생각하게 하고 이후 번역가들은 어찌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고 있다.

머릿말에서 젤레니스키라는 정력적인 폴란드 번역가를 소개하여 흥미를 돋군다. 그리고 종교 경전 번역으로 대표되는 고대 번역시기, 아랍어로 번역된 것이 다시 라틴어로 번역되면서 만들어낸 르네상스 시기, 프랑스 르네상스라고 부를 수 있는 다양한 불역문화가 꽃피는 시기, 그리고 프랑스에서 있었던 번역 논쟁을 소개하여 간단하게 번역의 역사를 짚는다.
뒤쪽은 개개의 인물을 열전식으로 소개한다. 프랑스 번역사의 유명한 번역가들을 소개한다음, 세명의 여성 번역가를 소개하여 다른 분야에 비해 특히 번역에 있어서는 여성의 역할이 두드러졌음을 밝힌다. 그리고 마지막에 번역가의 권리를 찾기 위해 번역가 조직을 만든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글을 마치고 있다.

인상적인 장면은 몇가지 있지만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번역가의 마음에 관한 것이다. 오역을 지적당한 번역가가 얼마나 자존심에 상처를 입는지, 지적당한 번역가는 금새 상대방의 오역을 통렬하게 지적해주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된다는 것을, 그리고 그런 충동을 가지게 되는 것은 그만큼 자존심이 걸린 작업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말하는 부분이다. 확실히 번역이라는 것은 그런 면에서 진검승부라고 할 수 있는 것이며 당연히 번역가의 이름은 책과 함께 따라나와야 한다. 나도 이제부터는 서평(?)을 쓸 때 꼭 번역가의 이름도 함께 적어주기로 했다.
솔직히 권위있는 책 한권을 제대로 번역한다면 나는 그 사람에게 박사학위를 줘도 된다고 생각한다. 자본론같은 책을 번역하려면 얼마나 방대한 백그라운드가 필요할 것인가 말이다. 그런걸 해낸 사람의 책이라면 교수들이 충분히 검토한 뒤 박사학위 정도는 줘도 될 것이다.

번역 논쟁도 인상적인 장면이다. 의역이냐 직역이냐는 결코 피할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100% 의역도 100% 직역도 있을 수 없으니 역시 잘된 번역이 좋은 번역일거다. 심지어는 영화 자막을 만들어서 돌리는 인터넷 번역 조직들도 의역파와 직역파가 있다고 하니 알만한 일 아닌가. 나는 개인적으로 직역이 기본이 되어야 하되 문장이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도록 다듬는 의역이 옳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 짓을 해보면 얼마나 시간이 많이 걸리는지... 참 힘든 것이다.

맨땅에 헤딩하는 식으로 번역가 조직을 만들어나간 사람들도 참 멋있다. 당연히 있어야 하는 것을 만들기 위해 수없이 노력한 그들의 정열을 읽고있자니 사전도 없이 '해체신서'를 번역한 스가타 겐파쿠나 백과전서를 출판해낸 디드로가 연상되어 조금 숙연한 기분도 들었다. 항상 사람만이 희망이고, 굴복하지 않고 집요하게 파헤치는 자 만이 조금이라도 열매를 맛볼 수 있다.

볼테르와 불같은 연애를 했던 '프린키피아'의 불역자 에밀리 뒤 샤틀레라는 여인의 이야기도 참 기억에 남는다. 역시 지적인 여자는 매력적이다.

저자는 '세계의 번역가들'이라는 책도 썼고 '도서관에서 놀자', '젊은 손자와 늙은 할아버지 이야기' 등의 책을 쓰는 등 주로 번역 관련 책과 지적 유희의 고고학(?)이라고 할만한 에세이를 주로 쓰는것 같다. 물론 유명한 프랑스어 번역가이기도 하고. 언제쯤 일어로 저런 책을 술술 읽을 때가 오려나...-_-

그나저나 이 책의 번역가는 독문과 졸업자이다. 이 책도 중역이 아닌가 조금 걱정된다. 모든 책에는 중역인지 번역인지 명확하게 밝혀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 것은 김석희가 5개국어로 된 책을 번역했다는 것을 알았을 때부터, 이미도가 수많은 영화번역을 하고있음을 알았을 때부터 들었던 걱정이다. 이런 행동들은 번역가의 지위를 스스로 떨어뜨리는 행동이 아닐까. -- 거북이 2004-9-22 1:26 am

4 같이 보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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