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카탕

1 2006.05.20 : 도카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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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날이 맑다

아침에 일어나니 날이 맑다. 어제 돌아다닐 때는 비가 오다가 오늘은 이동하려니 날이 맑다니, 역시 이번 여행에서는 날씨와 운이 안맞는다. 짐을 챙겨서 나오는데 팔이 빠지는 줄 알았다. 그정도의 짐이 이렇게 무거울 줄이야. 택시가 다닐만한 큰길까지 낑낑대며 끌고가서 택시를 잡았는데 짐을 트렁크에 실어주시던 택시기사 아저씨가 가까운데 리무진 버스 승강장이 있고 그정도 거리는 걸어갈만 한데 한번 가보는게 어떠냐고 하신다. 내가 가난한 고학생이라는 것을 간파하신듯. 그리하여 다시 열심히 내려서 끌고가기 시작했다. 정확한 장소를 모른 채 열심히 물어가며 끌고다니다보니 톨스토이의 단편 하나가 생각났다. '사람에게는 얼마나 많은 땅이 필요한가?(Много ли человеку земли нужно?, 1886)가 그것이다. 해질때까지 걸어서 돌아올 수 있는 넓이의 땅을 주겠다는 부자의 말을 들은 청년 빠흠은 하루 종일 미치도록 걸어서 결국 시작한 곳으로 돌아올 수 있었지만 장하다는 부자의 찬사를 듣지도 못하고 지쳐 죽어버렸다는 얘기 말이다. 나는 더 욕심많은 빠흠이 되기 위해 이제 도쿄로 가고있다.

어쨌든 팔이 빠지기 전에 공항버스 승강장을 찾을 수 있었다. 이제 안심이다. 공항버스까지 오면 이제 짐을 들 일이 거의 없다. 짐을 보내고 힘들어서 야채음료 하나 사들고 의자에 앉아 퍼져있는 참이다. 기다리는 동안 밖을 봤더니 비가 다시 내린다. 잠시 날이 맑았던 것은 LP가 젖지 말라고 오사카의 하늘이 나에게 배푼 마지막 친절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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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타미 공항에는 김치파는 가게가 있었다. 확실히 관서쪽이 우리랑 더 맞나보다. 도쿄의 하네다 공항에서는 이런 가게를 찾아볼 수 없었다.

비행기에서는 바로 잠들었다. 비행이 생각보다 오래걸려서 한시간 반정도 잔 것 같다. 그리고 다시 리무진을 타고 신주쿠로 나갔으니 신주쿠에서 내리면 다시 고생 시작이다. 지나가는 아저씨를 붙잡고 전화를 걸어달라고 하여 어딘지 알아낸 다음 택시를 타고 숙소를 찾아갔다. 이 무거운 짐은 정말 사람을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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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잘 왔구나 내 LP~ 도쿄의 날씨는 맑았다.

오사카와는 다른 도시니까 당연히 여기서는 모든 것이 리셋이다. 어디를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전혀 모르겠다. 오늘은 여기 일찍 도착했으니 열심히 머리를 굴려서 동선을 짰다. 도오에이선으로 가서 1000엔짜리 프리패스로 돌기로 했다. 하루 교통비가 지하철만 8500원이니 이게 적은 돈이 아니다. 서울 지하철 60회 패스가 35200원인데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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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무 배가 고파서 일단 도시락을 산 다음 근처 신사에 쭈그리고 앉아 얼른 먹어치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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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양이의 고통이 느껴지는 것 같다. ㅎㅎ

지나가는 길에 한국인 살인범의 수배 포스터가 하나 붙어있었다. 일본어 문구 뿐 아니라 김**라고 한글로도 써있어서 참 마음이 안좋았다.

일단 나카노의 레코민츠라는 CD점에 갔다. 보니까 프라모델과 음반 등 다양한 오타쿠 취향의 아이템이 모인 상가에 자리잡은 음반점이었는데 이 상가의 음반점 몇개를 흡수했는지 5-6개의 지점이 하나의 상가에 장르별로 자리잡고 있었다. 꼬마 디스크 유니온이라고 하면 되겠다. 여긴 꽤 훌륭한 가게로 음반도 많고 가격도 비교적 합리적이었다. CD를 사려고 한다면 단연 여기를 추천한다. 염가반 위주로 샀는데도 꽤 많이 사버렸다. 다음에는 여러 사람들의 욕망을 모아 그 아이템들을 사오는 행사를 한번쯤 가져보는 것도 좋으리라. 여기는 재미있는 쿠폰제를 시행하고 있었다. 꽤 고급스러운 용지로 된 쿠폰을 나누어주고 그것은 다음에 현금처럼 쓸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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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레코민츠 옆의 중고판 가게 : 애니메이션, 팝송 등으로 장르가 나뉘어있다. 레코민츠는 더 컸는데 씨디 고르느라 사진 찍을 생각을 못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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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사쿠사다. 무지개가 보이길래 찍어봤는데 사진으로는 잘 안찍히네. 오른쪽의 건물이 오늘의 공연장인 아사히 맥주 홀이 있는 아사히 빌딩. 위에 달린 금 장식은 누가 똥이라고 부르더라만. -_-

시간이 넉넉치 않아서 KBB 공연에 바로 갔다. 리더인 아키히사 츠보이는 상당히 진중한 스타일을 가진 인물로 소박한 얼굴을 한 주제에 나름대로 카리스마를 가진 바이올린 주자다. 연주하면서 종종 한쪽다리를 들어 마치 크라프트베르크의 공연에 맞춰 춤을 추는 듯한 댄스를 선보였다. 물론 연주도 매우 훌륭하다. 바이올린 주자가 리더인 그룹이라면 대릴 웨이의 울프정도가 고작 떠오르는데 이 울프보다는 훨씬 연주 지향적인 플레이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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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주를 기다리는 관객들. 왠지 다 좋고있는 느낌이다.

츠보이는 연주 종종 농담따먹기를 하는데 반도 채 못알아듣는 나였지만 그가 썰렁하다는 것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_- 알고보니 그는 오사카 출신이라서 발음도 도쿄 발음이랑은 좀 다르고, 또 원래 오사카쪽이 좀 썰렁하다고 한다. ㅎㅎ 어쨌거나 그는 이번에 니어 페스트(Near Fest '06)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출연진에 키스 에머슨도 있어서 매우 떨린다고 한다. 키스 에머슨이 자기들 연주장면 사진을 찍게 하는게 목표라고 너스레를 떨더군. 그 옆에서 베이스 주자가 "그냥 사진 한방 찍어주세요~ 하고 부탁하면 되잖아!" 이건 거의 만담이다. 이런 만담 분위기는 공연 끝날때까지 계속되었다. 중간중간에 CD 사주세요 하고 구걸아닌 구걸 하는 것은 당연한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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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만담중인 츠보이

또다른 만담도 있었다. 신나게 연주하고 곡을 마무리하더니, 역시 락 밴드는 마무리가 중요하죠 하고 말을 한다. 그는 도카탕이라고 표현하던데, 보통 신나게 연주한 곡은 왜 두구둥~하고 마무리를 하는 경우가 많지 않은가. 그래서 그동안 이 도카탕을 많이 연습해왔다면서 여러가지 도카탕을 선보인다. 그러자 키보드가 "에이~ 이런 마무리를 해야지" 하고 신세사이저로 짜잔 하고 끝내니까 이 아저씨 왈 "그건 딥 퍼플이나 하는거야~" 여기 찾아온 사람들은 음악을 다들 많이 들은 사람들이니 한참 깔깔대고 웃는다. 외국의 공연에 와서 함께 웃을 수 있다니 감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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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심히 연주중인 KBB. 사진이 엉망이다.

2부까지 시원한 연주를 듣고났더니 역시 CD를 사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3천엔이나 했지만 뭐 할수없지. CD한장을 사서 열심히 싸인을 받았다. "한국에서 일부러 이 공연을 보기위해 왔다. 정말 너무나 파워풀하고 감명깊은 연주였다."라는 칭찬으로 멤버 네명의 싸인을 모두 받을 수 있었다. 화장실 갔던 멤버가 오자 굳이 불러서 싸인을 받게 해주더군. ㅎㅎ 츠보이와 잠시 대화를 나누었는데, "한국에는 루인즈를 비롯해 일본 뮤지션들이 와서 꽤 여러번 공연을 했다. 오면 어떠한가?"하고 말했더니 불러만 주면야 가고싶다고 답을 한다. 내가 가서 사람들에게 열심히 퍼뜨리겠다 했더니 꼭 좀 그래달라며 웃는게 참 보기 좋았다. 츠보이의 동생분이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하여 같이 사진도 찍었다. 뭐랄까 이런 음악을 듣는 사람들 층이 그리 두텁지 않아서 그런지 뮤지션과 관객들이 서로 상당히 친하다. 하긴 설문지에 "어떻게 알고 오셨나요?"라는 문항이 있었는데 그 선택지에는 '멤버의 소개로'라는 것이 당당히 자리잡고 있는 것을 보면 여기나 저기나 비슷한 것일게다. 어쨌든 이런 그룹이 이렇게 활동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참으로 부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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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주하거나 말할때는 표정이 좋더만 사진찍을때는 표정이 뚱하다.

열심히 공연을 보고 뭔가 더 할게 없나 찾다가 그냥 근처에서 밥을 먹기로 했다. 파출소의 순경아저씨에게 어디가 맛있냐고 물어보니 좀 당황하다가 길건너 소바집이 괜찮다고 했다. 그래서 믿고 갔더니 그다지 괜찮지 않았다. -_- 원주민이 배신을 때리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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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맛없는 소바를 먹고 오늘은 끝. -_-

1.1 촌평[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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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이일본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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