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철

1 김현철[ | ]

KimHyeonCheol 김현철 3집까지의 연대기

1.1 # 32℃ 여름[ | ]

<html><img src="http://www.ohmynews.com/down/images/1/zepelin_101180_3[1].jpg" align=left></html> 김현철은 90년대의 대표적 싱어송라이터 중 하나라고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봄여름가을겨울과 함께 한국에 퓨젼 재즈의 붐을 일으켰고 작사 작곡 프로듀싱 연주 노래 등 거의 모든 작업을 소화할 수 있었던 뮤지션이다. 다른 아티스트를 프로듀싱 해준 음반들도 완성도 높은 것들이 많아 프로듀서로도 인정받았으며 영화음악도 여러 편을 만들었고 게다가 인기도 상당히 높았으니 뮤지션으로 맛볼 수 있는 정점을 거의 다 맛보았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노래 '달의 몰락'처럼 음악적으로는 서서히 몰락해왔다. 벌써 8집을 냈고 영화음악이 석 장에 라이브가 하나, 프로젝트 음반이 두 개였으니 이 정도면 규모로 보아 중견 뮤지션이라고 할만한데 그의 음악적 정점은 길게봐도 3집 '횡계에서 돌아오는 저녁'(1993)까지, 단호하게 말하자면 바로 이 앨범 '32℃ 여름'(1992)까지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풋풋한 청년의 이미지에서 점차 느끼한 젊은이로 변하더니 지금은 왠지 뻔뻔하고 부자 아빠가 되길 원하는 직장인의 이미지로 변했다. 뭐 이건 개인적인 취향차이니 '현철이 오빠는 아직도 풋풋해!'라고 말해도 나는 할 말이 없다. 하지만 그의 이미지와 음악에서 점차 기름기가 많아졌다는 것을 부인하긴 어려우리라 생각한다.

김현철은 1집 'Vol.1'(1989)을 내고나서 동아기획을 이끌 기대주로, 그리고 80년대의 언더그라운드 청년문화 스타일의 음악을 90년대로 이어줄 다음 주자로 엄청난 호평을 받았다. 이 앨범에 담긴 '오랜만에', '춘천가는 기차'는 아직도 여러 사람들의 노래방 애창곡으로 남아있다. 그는 고작 나이 스물이었고 가능성은 창창했다.
그리고 곧이어 그는 조동익, 함춘호, 손진태와 함께 프로젝트 세션밴드 야샤를 결성한다. 이 멤버는 당시 음악계의 최고 세션맨들의 집합이라고 할만하다. 흔히 한국의 '토토'Toto라고 말했는데 개인적으로 토토보다 나았다고 생각한다. 조동익이라는 거물의 배려는 김현철의 성장에 큰 힘이 되었다.
이쯤되면 거의 젊은 천재라고 인정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하늘이 시기한 탓인지 그는 과로한 끝에 운전중 뇌혈전으로 사고가 나서 한동안 입원하게 된다. 그는 병상에서 신앙생활과 몸조리를 하면서 지내다가 1년쯤 지나 회복하였다. 회복후 야샤의 프로젝트 앨범을 내고 곧이어 두번째 앨범을 녹음하게 된다. 그는 병상에서 곡을 미리 써두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앨범의 곡을 모두 외운다. 그만큼 이 앨범을 좋아한다. 이유가 무엇일까하고 이 CD를 넣은 채 곰곰이 생각해본다. 여기서 적는 말들은 그의 1, 2집에서만 의미가 있다는 것을 미리 말해두고 싶다.
스캣으로 시작하는 첫곡 '32℃ 여름'부터 그는 이 앨범이 기존 가요 음반들과는 다를 것임을 넌지시 밝히고 있다. 그의 재즈는 훵키하고 합주보다는 독주에 가까운 연주들로 이루어져있으며 목소리를 받쳐주는 역할에 충실하면서도 틈틈히 귀에 들어와 박히는 그런 연주이다. 편곡과 프로듀싱에 재능이 없으면 이런 사운드는 결코 만들 수 없다. '그런대로'를 들으면 팻 매스니PatMetheny 분위기가 나는 신세사이저 연주가 주조를 이루는데 이것은 조동익의 영향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조동익은 어떤날 시절부터 이러한 연주를 즐겨 해왔다. '까만 치마를 입고'는 전형적인 발라드 풍의 곡이다. 이렇게 그녀와 헤어진 남자의 마음을 담은 곡 셋과 연주곡 '눈싸움하던 아이들'로 LP 앞면을 끝낸다. 지금 이 순간은 CD로 듣고있지만 나는 이 앨범이 나온지 1년쯤 지나서 LP로 들었었다.
'연습실에서'는 가벼운 피아노 터치와 색서폰을 배경삼아 느긋하게 부르는 재즈풍의 사랑노래다. 밤에 가벼운 블랙 러시안 한잔과 함께하면 딱 좋을만한 그런 분위기인데 김현철은 이런 분위기에 비교적 강하다. 마지막 곡인 '나나나'는 조규찬의 곡으로 김현철의 곡들보다 조금 템포가 빠르고 밝다. 조규찬도 얼마지나지 않아 데뷔앨범을 발표하게 되는데 김현철에 비해 조금 밀린 감은 있지만 그 역시 훌륭한 싱어송라이터로서의 자질을 이미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 조규천, 조규만, 조규찬 삼형제는 형제가 모두 음악적 재능이 뛰어난 편인데 그중 조규찬이 백미라 하겠다.

그의 가사는 대부분 자신의 체험을 소재로 적는다고 밝힌 적이 있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가사들은 진솔하다. 타이틀곡 '32℃ 여름'에서 어디를 봐도 자꾸만 떠오르는 그녀의 생각이 나고, '까만 치마를 입고'다니는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그녀에 대해 생각하는 모습은 내가 남자라서 그런지 나의 이야기처럼 들린다. 그는 그런 모습을 직설적인 편이지만 조금은 돌려서 표현하고 있어서 듣다보면 소설속의 한 장면처럼 이미지가 스쳐지나간다. '그런대로'는 결코 그런대로 살고있지 못하면서 항변하는 실연남의 마음을 잘 담고 있으며 무척 호소력이 있다.
김현철의 목소리은 별로 기교가 없다. 그는 결코 가창력이 뛰어난 가수라고 말할 수는 없으며 자신도 그것을 알기 때문인지 그의 곡들은 그다지 톤이 높지 않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맑은 편이며 그 목소리에 나직하게 감정을 실어서 전달한다. 이것은 그를 가수라기 보단 옆에서 연인이 노래해주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거리감이 적다는 말이다. 따라 부르기도 좋다.
그의 음악이 가진 가장 큰 미덕은 음악을 이루는 각 요소들이 가진 균형감이다. 그의 음악에서 중심을 이루고 있는 것은 분명 그의 목소리이지만, 이미지를 떠올리게하는 시적인 그의 가사는 그의 목소리에 의해 호소력을 얻어 감상자에게 전달된다. 그런가하면 목소리 뒤에서 각각의 연주들은 결코 튀지 않으면서 충분히 목소리를 받쳐주고 있으며 목소리이 쉬고있을 틈에 나와서 충분히 존재감을 알리고 있다. 이런 균형감이야말로 재능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런 프로듀싱, 뮤직 디렉터적인 능력은 결코 흔히 찾아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김현철은 예전에도 그랬지만 음악가로서의 활동보다는 사업가 혹은 방송인으로서 활동을 더 많이 하는 것 같다. 물론 그는 TV에 얼굴을 비친다거나 하진 않는다. 그리고 요즘 여러 중견 가수들은 사업가로서 활동을 많이 하고 있으며 그것은 후배들과 공존하는 하나의 방법이기도 하다. 그래도 그가 90년대 초반에 보여주었던 빛나는 감성을 생각해보면 아직도 그에게서 음악적으로 일말의 기대를 하게된다. 지난 듀엣 곡 모음집 '...그리고 김현철'(2002)에서 별다른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음에도 말이다. -- 거북이 2003-3-16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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