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쓰메 소세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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夏目漱石(1867-1916)

1 # 작품연보

1881 : 15세 한학 공부. 그는 한시를 애송할 정도로 한학에 일가견이 있었음
1883 : 17세 영어공부에 열중
1891 : 25세 딕슨교수의 의뢰로 호조키 영역.
1895 : 29세 중학교 교사생활. 도련님의 소재.
1900 : 34세 영국유학, 2년간 국비유학
1901 : 35세 문학론 집필구상
1905 : 39세 나는고양이로소이다(吾輩は猫である), 런던탑, 칼라일 박물관, 환영의 방패
1906 : 40세 도련님(坊っちゃん), 풀베게(草枕), 취미의 유전; 목요회 시작
1907 : 41세 우미인초(虞美人草); 아사히신문사에 입사하여 전업작가가 됨
1908 : 42세 갱부, 문조, 몽십야, 산시로
1909 : 43세 영일소품(永日小品), 그후(それから), 만한기행(満韓ところどころ)
1910 : 44세 (門); 혼수상태 경험(슈겐지 대환)
1912 : 46세 피안이지날때까지(彼岸過迄), 행인(行人)
1914 : 48세 마음(こころ), 나의개인주의(私の個人主義)
1915 : 49세 유리문 안, 노방초; 키쿠치 칸, 아쿠타카와 류노스케가 문하생이 됨
1916 : 50세 명암(明暗); 사망
  • 어린시절 양자로 들어갔다가 다시 본가로 돌아온 경험있음
  • 형들과 자식들을 여럿 병으로 잃었고, 부인의 자살기도와 본인의 신경쇠약과 위궤양 등으로 고생했음.
  • 만한기행은 만주와 조선을 방문한 후 쓴 기행문인데 역사인식이나 시대인식이 조악한 졸작이라한다. 그의 연보상에서 거의 의미가 없는 작품이나 소세키라는 인물에 대해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위해 특별히 적어둔다. 하긴 식민지 총독이 된 친구 초청으로 놀러간 여행에서 무엇을 얼마나 얻을 수 있었겠는가. 소세키가 일본 근대의 한 초석을 닦은 사람일 수는 있으나 그는 동양에 대해 고민했다거나 하는 사람은 아니다. 신경질적인 위궤양 환자에게 그런 것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인 것이다. -- 거북이 2005-3-30 5:55 am
  • 작품연보(일어)
  • 동양적근대의창출 나쓰메소세키단편집

2 # 촌평

대학원생들이 이용한다고 들었는데요, http://home.naver.com/k6738157/ 의 자료방에 가셔서 찾아보세요. -- 한명숙 2005-7-1 12:02 pm


젠장 내가 소세키 연표까지 꼭 직접 만들어야 하나. -_- 도대체 일문과 사람들은 이런거 안하고 뭐하는겨. 만들었으면 어딘가에 공개좀 해놓던지. 그리고 왜 소세키같은 작가의 제대로 된 전집은 없고 몇몇 책들만 여러 판본으로 나오는 것인가. 뭔가 좀 집약적으로 했으면 좋겠다. -_-+ -- 거북이 2005-3-30 5:56 am

논문이나 단행본 뒤에는 종종 그런 게 붙어 있는데, 레포트가 돈되는 세상이 되다 보니 이제 그런 게 다 없어 지누먼...

의외로 http://www.soseki.co.kr/http://japanology.org/ 에도 별 쓸만한 정보는 없군 -_-;; 자네가 좀 조언을 날려 보시지?
글구 소세키 같은 작가의 전집을 내면 팔리는 책은 계속 팔리고 안팔리는 책은 계속 안팔리니까
출판사 수익성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역자 선택의 위험성도 분산되고 홍보도 별 필요없는 "중요작품"들만 찍는 게지. -- SonDon 2005-3-30 8:55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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