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적 근대의 창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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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제 : 루쉰과 소세키(魯迅と漱石, 1977)
  • 저자 : 히야마 히사오(檜山久雄, 1930-)
  • 역자 : 정선태
  • ISBN 8988375505, ISBN 4476030564

1 # 거북이[ | ]

일본과 중국을 거울삼아서 근대화는 무엇이며 우리의 근대화는 무엇인가에 대해 알아보는 흐름이 요즘에 여기저기에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 같다. 나에게도 역시 그런 의식은 자생적으로 생겨났으며 몇몇 사람들이 열심히 그런 관점으로 공부를 하고 있고. 이것은 아직 우리는 근대화되지 않았다라는 생각이 깔려있기때문에 하게되는 생각같다. 나는 우리 뿐만 아니라 인류는 그다지 근대화되지 않았다라고까지 생각하고 있다. 많이 양보한다고 쳐도 근대와 현대를 구분할 수 있는 기준은 없다고 생각한다.

뭐 이러한 관심사의 연속선상으로 고른 책이 정선태씨가 번역한 '동양적 근대의 창출'이다. 정선태씨는 수유연구실에서 열심히 일본의 근대화과정에 대해 공부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있었기에 선수의 쵸이스를 믿어보자고 생각했던 것이다. 동일한 의도로 골랐던 일본어의근대는 그다지 만족도가 높지 않았다. 그럼 이 책은?

이 책은 번역본 제목이 상당히 기만적이다. 원제가 '루쉰과 소세키'인데 이게 번역되면서 '동양적 근대의 창출'이라고 바뀌었고 솔직히 나는 책 제목에도 혹한 면이 있다. 슬프게도 이 책에서 루쉰과 소세키가 어떤 식으로 동양적 근대를 창출하고자 했는가에 대해서는 나와있지 않다. 어쩌면 그런 것은 처음부터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 둘이 일본과 중국에서 국민작가가 되었지만 국민작가가 되겠다는 생각도, 동양적 근대를 창출하겠다는 생각 따위는 있지도 않았을거니까 말이다. 루쉰은 중국 민중에게 충격요법을 주어 제발 식물상태에서 벗어나주길 바란 것 뿐이고 소세키는 양놈들 니들 알게뭐냐 하면서 내가 좋아하는대로 내 길을 가련다라고 생각했던 것 뿐이다. 그것은 근대화를 위한 각성일수는 있어도 근대의 창출이라고 말할 수 있는 성질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동양적 근대의 창출'이라는 말은 이 책의 서장 제목이다. 그러니까 역자가 만들어 쓴 제목은 아니다. 이 책의 서장에서 저자는 동양이라는 공간에서 근대성에 대해 만들어보려는 노력을 보인 유일한 일본작가는 소세키 외에는 거론하기 어렵다고 했다. 물론 소세키 역시 동양에 대한 몰이해를 드러냈던 사람이었지만 그는 영국유학중 '자기본위'라는 생각을 가지고 돌아와 모방문화에서 벗어나 내면의 감성을 표현하려는 문학을 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하고 있다.
나도 오늘 산책을 하면서 동양의 근대란 무엇일까에 대해 생각해보았는데, 결국 주체적인 태도라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더 꺼낼 수 없었다. 뭔가를 모방하더라도 우리를 기준으로 그들의 것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중요한 것이다. 근대화 초기에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나름대로 사치일 수도 있으나 지금은 그런 생각을 해도 되는 시기이고 베끼더라도 인프라가 될 수 있는 것을 베껴서 그것이 우리의 것을 만드는데 기여를 할 수 있게 하면 되는것이 아닌가 하는 단순한 생각 이상의 것은 할 수 없었다.
소세키는 영문학을 공부하면서 영문학과 한시/한적에 기반한 자신의 문학적 감성은 전혀 다른 것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동양의, 일본의 감성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으며 그것이 자기본위라는 생각이다. 저자가 말한 동양적 근대의 창출이란 이것을 말한것 같다.
그나마 일본은 자신의 것을 미련없이 버렸기 때문에 그정도의 근대화라도 이룰 수 있었다면 중국은 수천년에 걸쳐 쌓인 중화사상을 버릴 수 없었기 때문에 역사상 가장 굴욕스러운 치욕을 근대의 시기에 맛봐야했다. 루쉰은 그런 중국에 대해 각목으로 각성하라고 후려치는 임제선사 같은 사람이 되고자 했던것이다. 루쉰이 대안을 제시한 것은 아니다. 그는 충격요법이라도 써서 잠자는 사자를 일으켜보려고 했던 것 뿐이다. 사실 그 당시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있는 것이었을 것이며 루쉰은 소세키와는 또다른 면에서 동양의 근대를 만들어보기 위해 노력한 인간일 수도 있다.
뭐 어쨌거나 이 책은 루쉰과 소세키에 대한 논문을 모은 일종의 평전 스타일이고 텍스트 분석이나 연대기적인 접근 등을 하고있긴 하지만 집약적으로 한가지 주제에 대해 얘기하고있지는 않은 뭐 그런 책이다. 그래서 제목도 '루쉰과 소세키'정도면 무난하다. 하지만 두 작가를 통시적으로 다루고있고 그들을 종종 비교, 대조해주며 루쉰과 소세키의 시대적 공과에 대해 꾸준히 언급하고 있으므로 루쉰과 소세키의 책을 얼추 다 읽은 사람이라면, 읽고있는 도중이라도 꺼내서 참고할만은 한 책이라 생각된다.

번역이 매끄럽지 못한 것은 이 책에서도 여전하며 그 이유는 일본어의근대에서도 적었으니 굳이 적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 거북이 2005-3-20 6:00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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