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록개론서/서문

나에게 새로운 자극을 심기 위해 먼저 서문을 적어보기로 한다. -- 거북이 2003-4-19 1:21 pm

서문[ | ]

원래 성격이 고약해서 일단 시작하면 어느정도 끝을 보는 성격이라 여기까지 간신히 오게 되었지만 역시 이 기획은 조금 무모했던 것 같다. 나에게서 얼추 2년이라는 시간을 앗아갔다.
나는 단지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고 이제 음악들은지 10년이 된, 선수들에 비하면 턱없이 짧은 경험을 가지고 있다. 어쩌다보니 프로그로 들어와 이쪽 음악을 듣게되었지만 사실 집에 있는 음반들 중에서 프로그가 차지하고 있는 비중도 30%정도밖에는 되지 않는다. 국내 프로그의 붐을 이루었던 80년대 말과 90년대 초반을 공유하지도 못했다. 그 끝자락에 간신히 막차를 얻어탔고 내가 탄지 얼마 지나지 않아 프로그는 사람들이 외면하는 음악으로 변해갔다.

국내 프로그의 흥망성쇠는 국내의 여느 동네가 크게 다르지 않듯 왜곡되었다. 모든 경로가 닫혀있을 무렵 몇몇 '전도사'들에 의해 라디오를 타고 프로그는 알려져갔다. 그들의 존재는 이런 진지한 음악이 발붙일 수 없었던 곳에서 오아시스같은 존재였고, 사람들은 새벽 두시까지 잠을 설쳐가며 그들의 방송을 들었다. 하지만 그들은 개인적 취향에 크게 의존적이었고 국내 애호가들은 라떼 에 미엘레LatteEMiele가 에머슨 레이크 앤 파머ELP보다도 중요한 그룹인 것처럼 여기게 되었다.
그 와중에 국내에도 프로그의 붐이 뒤늦게 일어나 수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음악을 원하게 되었고 전도사중 한명은 레코드점과 음반사를 만들어 그 갈증을 풀어주었다. 이 수요와 공급은 환상의 궁합이었고 말로만 듣던 음반들이 이백여 타이틀이나 우리 앞에 놓여지게 되었다. 이렇게 대상은 우리앞에 놓여졌고 우리는 그 실체를 접하면서 신화를 현실로 바꾸어갔다. 어떤 음반들은 팬들에 의해 재평가되었고 어떤 음반들은 과평가되었음이 드러났다. 이 과정에서도 음반의 보급은 그 전도사의 취향에 의해 정해졌는데 그것이 점차 청자들과 어긋나기 시작했다. 라디오로 허덕허덕대던 팬들은 음반을 접하게 되어 보다 여유있고 현실적으로 평가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도사는 구태의연했다. 프로그의 붐은 오래가지 못할 것임이 분명했고 당시는 좋은 음반들을 천천히, 하지만 꾸준히 발매해서 국내 청자들을 프로그에 안착시켰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던 것이다. 허영심있는 팬들은 곧이어 차인표의 색서폰에 의해 불어닥친 재즈붐을 타고 재즈로 흘러갔고 프로그 시장은 급속히 위축되었다. 게다가 mp3의 활성화 덕분(?)에 국내 음반 시장 자체가 급속도로 축소되어 조만간 핸드폰 음악 다운로드 시장보다도 음반시장이 작아지는 엽기적인 사태가 곧 초래될 전망이다.

시장이 이런 식이니 당연히 제대로 된 책자가 있을리 없다. 십여년간 전도사가 찍어내던, 선구적이었지만 점차 품질이 저하되던 계간지(였으나 실은 연간지)가 거의 유일했으며 간헐적으로 단행본과 잡지들이 나왔으나 대부분 아마츄어 수준도 못되는 조악한 것이었다. 그 모든 것중에 유일하게 수준을 갖추었던 것은 뮤지컬 박스라는 잡지 하나 뿐이었으나 역시 경제성 문제로 단명했다. 음악 팬들은 일본의 잡지를 보던 중이었으므로 그런 책자들도 감지덕지였다. 오죽했으면 한 개인이 일본의 프로그 백과사전을 혼자 번역하여 책에 오려불인다음 제본해서 돌려봤겠는가. 결국 의지가 있는 개인들은 인터넷을 통해 힘겹게 영어를 해석해가며 읽고 있으며 나머지 사람들은 지나가듯 프로그를 듣거나 아니면 안듣거나 하는 식으로 변해갔다. 그나마 프로그를 듣고싶어하는 극소수의 사람들도 이미 절판된 옛 잡지를 구할 길 없어 무엇을 들어야 할지 귀동냥해가며 듣고있다.

이런 척박한 환경에서 프로그 동호회인 아일랜드를 꾸려가던 나는 결국 기본적인 책자가 하나 필요하다고 여겨 무지를 노가다로 메워가며 하나 써보기로 했다. 이것은 뮤지컬 박스라는 걸출한 잡지를 보고 열광했던 내가 그 잡지의 단명을 보고 너무나 안타까웠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 잡지는 절반을 아티스트의 알파와 오메가를 담고, 나머지 절반을 기존 잡지의 포맷을 차용한, 디스코그래피와 바이오그래피를 통한 체계적 접근을 시도했었기 때문에 매우 훌륭한 가이드 역할을 해줄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뮤지컬 박스를 선배로 삼아 이 책을 구성하면서 몇가지 기준을 정했다.

먼저 디스코그래피를 구축한다. 작가가 책으로 얘기하듯 음악인은 음반으로 얘기한다. 공연이라는 경로도 있지만 20년 전에 전성기가 지난 이들의 공연을 지금 접하는 경로도 흘러간 라이브 음반 뿐이니 말이다. 그 작가의 일대기를 말하는 것은 당연히 연대기적으로 쌓인 음반 목록이 기본이 되어야 하며 그것을 순차적으로 살펴보아 그 작가의 변화를 파악하는 것이 옳은 접근방식이다. 물론 방대한 작업이며 따라서 몇몇 중요한 작가 외에는 시도하지 못했다. 일단 덜 중요한 작가들일지라도 디스코그래피를 확보하는 것에 일차적 목적을 두었다.
거목을 먼저 살펴본다. 프로그는 6-70년대를 통해 전 세계를 풍미했던 음악이며 따라서 매우 많은 음악인들이 있다. 게다가 프로그라는 말은 음악의 장르를 말하기도 하지만 음악인들의 진보적 태도를 의미하기도 하므로 실험적인 음악인들 상당수를 프로그라고 주장할 수도 있기 때문에 그 숫자는 어마어마하다. 그중에는 단명한 음악인들도 있고 오래 살아남은 음악인들이 있다. 기본적으로 오래 살아남은 음악인들이야말로 시대적 변화를 음악에 반영하고 있으며 그들의 태도와 변화를 살펴보면 프로그의 시대를 어느정도 파악할 수 있다. 하지만 그리고 그들의 주 활동무대는 유럽이었으며 특히 락의 본고장 영국이었다. 따라서 오래 살아남은 음악인들 중 영국에서 열 다섯, 유럽에서 열 다섯을 어렵게 추려 이 책에 싣게되었다.
일관성있는 리뷰를 추구한다. 디스코그래피에 맞게 리뷰를 쓰면 그 아티스트에 대해 중복적으로 쓰는 내용들이 적어져서 리뷰의 양이 줄어든다. 다신 그 바이오그래피적인 내용들은 디스코그래피에 섞여들어가야하며 또 관점이 일정해야 각 음반들은 일관성있게 평가받을 수 있다. 따라서 가능하면 한 사람이 한 아티스트를 맡아서 그들의 알파와 오메가를 다루는 것으로 하였다. 어쩌다보니 내가 쓴 부분이 너무나 많아져버리긴 했지만 처음의 기획은 그런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인상비평을 배제하지 않는다. 이것은 논란의 거리가 좀 있다. 지금까지 전도사들이나 여타 다른 평자들이 해왔던 가장 아마츄어적인 단점은 그들이 인상비평에 머물러있었다는 점이다. 그들의 리뷰는 온갖 미사여구로만 차있어서 공허했다. 물론 여러가지 정보를 담고있는 것들도 있었지만 본질적으로는 미사여구 뿐이었다. 따라서 음악적 분석이나 가사 분석, 시대적인 평가를 자료에 입각하여 치밀하게 재구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지만 이 책은 음악을 치밀하게 듣고자하는 이들을 위한 것이 아니며 처음에 어떤 음악인들을 어떻게 접해야할까를 고민하는 음악경력 2-3년 정도의 애호가를 위한 것이다. 즉 길잡이로서 적합한 책이 되어야하며 이를 위해선 직관적인 인상비평 역시 과도하지만 않다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사실 음악이란 영화나 문학에 비해서도 매우 추상적인 예술이므로 객관화되기는 어렵다. 모든 비평의 본질은 (근거에 입각한) 인상비평일 수 밖에 없다.

인구 5천만이고 이중 2천만이 수도권에 몰려있는 곳에서 프로그 음반을 제대로 구비해놓은 음반점이 신촌, 홍대에 있는 두세군데에 불과하다. 우리는 주변에서 기초체력이 부족하다는 말을 수없이 듣고 또 말하곤 하는데 음악 감상 부분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피터 게이브리얼PeterGabriel이나 로버트 와이엇RobertWyatt의 전기가 출판되는 서양권까지 갈 필요도 없이 옆나라 일본인들이 정리해놓은 방대한 자료는 서양인들이 와서 참고할 정도로 치밀하게 구축되어있다. 무엇을 하더라도 우리는 기본을 만들지 않고는 아무것도 쌓아갈 수가 없다. 그중 이 작업이 그 기본 토대의 벽돌 한장이 될 수 있길 바라며 이 책을 시작한다. -- 거북이 2003-4-19 1:21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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