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춘

1 정태춘[편집]

/소개와가사 : 장문! 멋짐! 인터뷰 정태춘20030128

JeongTaeChun

1.1 # 92년 장마, 종로에서 : 정철[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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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춘은 그 중요성에 비해 사람들이 정말 몰라주는 음악인이다. 김민기, 한대수, 심지어 장사익은 알아도 정태춘은 사람들이 잘 모른다. 열거한 분들을 폄하하는 것이 아니라 정태춘은 그분들과 동급혹은 이상으로 대접받아야 하는 분임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못하다는 얘기다.
정태춘은 얼마전에 새 앨범 '다시, 첫차를 기다리며'(2002)를 내었다. 여기서 그는 밴드 구성을 갖추어 음악적 변화를 꾀했으나 그의 노래들은 여전히 힘이 있지만 왠지 이전만큼의 아우라는 느낄 수 없었다. 그것은 지난 앨범 '정동진/건너간다'(1998)에서도 느꼈던 아쉬움인데 이것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먼저 대외적 여건을 생각해본다면 김대중, 노무현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개혁성향 정권의 등장과 그에 따라 일어난 자연스러운 사회적 억압요소들의 감소를 들 수 있다. 나 자신에게서 이유를 찾자면 지금보다 감성이 훨씬 말랑말랑할 무렵 들었던 그의 이전 음반들이 더 살갑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정태춘의 인터뷰를 보면 그는 예전에 비해 무엇을 향해 싸워야 할 것인가에 대한 방향성이 조금 불확실해졌음을 말하고있으니 그는 지금 새로운 지향점과 문제의식을 찾고있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그의 음악여정을 세 부분으로 나눈다면 데뷔(1978)부터 초기시절을 정리하는 베스트가 나오는 1987년까지가 그 첫번째, 사회적 소명감에 눈을 뜨기 시작했고 사전심의 철폐 투쟁을 시작했던 시기인 '무진 새노래'(1988), '아 대한민국'(1990), '92년 장마, 종로에서'(1993)가 그 두번째, 그리고 그 이후의 시기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아직 현역 음악인이므로 세번째 시기에 대해 판단하기는 이른데 적어도 내 관점에서는 그의 두번째 시기야말로 가장 빛나는 시기라고 말하고 싶다.
'아 대한민국'은 그 음악적 태도에서 본다면 가요사에 있어 일대 테러라고 할 수 있는 수준이었고 그는 단번에 국내 저항 음악인의 상징처럼 떠올랐다. 이후 대학가를 비롯한 여러 곳에서 저항적인 활동을 하다가 여전히 존재하는 음반 사전 심의에 저항하는 의미로 다시한번 심의를 받지 않은 채 '92년 장마 종로에서'를 발매한다.

첫곡 '양단 몇마름'을 듣고 나는 너무 놀랐는데 이런 여성적 감성을 남자인 정태춘은 하나의 삽화처럼 간결하게 꺼내놓았기 때문이다. 72년에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72년은 그가 재수하면서 한참 방황하던 시기이다. 시골 새댁의 안스러운 정서를 이렇게 표현할 수 있었던 그였으니 데뷔앨범에서 그렇게 완성도 있는 곡들을 쏟아낸 것은 결코 놀랄만한 일이 아니었다. 동반자 박은옥에 의해 살아있는 곡이 되었으니 이 곡은 이십년 이상 불러줄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게다.
'저 들에 불을 놓아'와 '비둘기의 꿈'에서 그는 점차 사회적 약자가 되어가는 농민 그리고 청소년의 비애감을 절절하게 노래한다. 역시 박은옥의 처연한 목소리로 불리어져 듣는 이의 마음을 아프게하고 있다. 다음곡 '이 어두운 터널을 박차고'에서 정태춘은 앞으로 나아가자고 힘차게 노래하지만 그의 외침은 앞 곡들에서 노래한 절망적 현실과 병치되어 자조적으로 들린다. 그 자조적 여운은 '비둘기의 꿈' 연주곡이 흐르는 시간 내내 함께 있다가 턴테이블에서 바늘 올라오는 소리와 함께 끝난다.

앞면이 현실을 주관적 관점에서 노래했다면 뒷면에서 그는 타자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사람들'에서는 몇몇 재야인사들의 동향을 실명을 거론해가며 얘기하는데 87년 이후 점차 약해져가는 변혁의 시대를 하나의 컷으로 잡아 이렇게 부르니 조금은 비애감이 든다. 이런 정서는 'LA 스케치'에서 묘사되는 '서울시 나성羅城구'의 분위기에서도, '나 살던 고향'의 일본 관광객들의 행태 묘사에서도 이어진다. 마지막곡 '92년 장마, 종로에서'에서 그는 분명 한 시대는 지나갔고 새로운 희망이 우리들 앞에 놓여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개혁성향의 정권은 들어섰지만 아직도 '시청앞 광장에서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은 있으니 그의 소망대로 아직 세상은 바뀌지 않은게지. 2002년 여름 시청앞에서 우리는 광장의 의미를 되찾았으니 세상은 바뀐 것일까?

어떻게 들으면 정태춘의 이 앨범은 전작 '아 대한민국'(1990)에서 볼 수 있었던 그 가열찬 모습에 비해 지나친 패배주의적 정서라고 느낄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는 이 앨범에서 어떻게든 흘러가는 시대를 바라보고 있으며 그것은 분명 관망이 아니라 애정이다. 그 현실을 노래하여 정태춘은 동시대 사람들과 공명, 공감을 원하고 있으며 그것을 위해 현실을 때로는 있는 그대로, 때로는 자조적이거나 희화화시켜가면서 노래하고 있다. 그리고 그의 노랫말과 노래하는 방식은 절묘하게 결합되어 듣는이로 하여금 노래속의 희망과 자존을 발견하게 만드는데 바로 그 점이 이 음반을 명반으로 만들고 있다.
이 내용과 형식(가사와 곡 구조)의 적확한 결합은 주로 뒷면에서 드러나는데 '사람들'에서 정태춘은 노래와 나래이션, 장면삽입 등을 통해 이야기처럼 곡을 끌어가고 있으며 특히 실명을 나열하여 현실감을 살리고있다. 이런 효과는 'LA 스케치'에서도 동일하게 이어진다. 아무래도 그 신랄함이 가장 첨예하게 드러나는 곡은 '나 살던 고향'일 것이다. 그는 곽재구의 시에 곡을 붙여 노래하고 있는데 뽕끼어린 엔까풍으로 노래불러 듣는 이에게 쓴웃음을 짓게하는 동시에 아직도 일본의 그늘속에 있는 우리를 아프게한다.
이 앨범이 얻어낸 성취는 사회의식을 정제하여 가사에 담고 그것을 음악이라는 형식에 결합시킴에 있어서 미학적으로 어긋남이 없었다는 점이다. 그 이전과 이후의 어떤 포크, 민중가요, 펑크, 인디 음악에서도 이 정도의 완성도를 지녔던 음반은 없었다. 그는 음악인이다. 그가 아무리 저항적인 사고를 가지고 행동했다 할지라도 그것이 음악적 성취를 거두지 못했다면 그는 음악인이라기 보다는 운동가로서 평가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그는 자신의 본분을 다하면서 삶의 태도를 음악에 반영해왔으며 그 정점을 이 앨범에서 끌어내었다.

학부다닐 때 정태춘이 와서 공연을 한 적이 있다. 너무나 적은 수의 학생만이 듣고있어서 안쓰러웠지만 정태춘은 힘있게 노래를 했다. 나는 그에게 단 하나를 물어보고 싶어 사과쥬스를 사들고 무대 뒤로 들어으며 갈증을 느끼던 그에게 줄 수 있었다.

선생님께서는 음악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이 가능하다고 보진 않습니다만 해야만한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그 한마디를 들어서 가슴이 차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가 있기에 나는 외국의 친구들에게 한국에는 저항 포크가 있음을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 거북이 2003-4-1 23:22

1.2 # 92년 장마, 종로에서 : 석재열[편집]

석재열 {mailto:912weeks@hitel.net}

File #1 정태춘6.jpg (9.5 KB) Download : 0

Subject 정태춘, 박은옥 1996 06 92년 장마, 종로에서

{sep_str} 01 양단 몇 마름 02 저 들에 불을 놓아 03 비둘기의 꿈 04 이 어두운 터널을 박차고 05 사람들 06 LA스케치 07 나 살던 고향 08 92년 장마, 종로에서 09 비둘기의 꿈(Inst.)
{sep_str} 정태춘,박은옥 NO 심의음반 을 듣고....

우연히 학교 선배한테서 이번에 정태춘과 박은옥의 새 앨범의 마 스터 테이프에서 뜬 DAT 테이프를 얻어서,녹음해 와서 들어봤습 니다.정태춘씨가 나름대로 많은 것을 얘기하려고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번 앨범도 역시 지난번의 "아, 대한민국"처럼 날카로운 지적과 사건의 서술,보는 자가 아닌 직접 느끼는 자로서의 관점으로 본 현재 우리나라의 상황을 묘사한 가사가 일품입니다.사실 여지껏 이렇게 직설적으로 까대는(?) 가사는 없었기에 더욱 가슴에 와 닿는지도 모르죠.."아,대한민국" 앨범에 실렸던 "우리들의 죽음"
이라는 곡을 처음 들었을 �㎖의 충격은 아직도 잊을 수 없을 만큼 굉장했습니다.기존의 저의 노래를 듣는 시각을 바꿔 놓기에 너무 도 충분한 노래였으니까요.제가 대학에 들어가서 들은 노래 중에 서 저의 가슴을 가장 아프게 했던 곡이기도 합니다.그래서 노래패 공연에서 몇번 일도 돕게 됐고요.우선 이번 앨범을 듣기 전에 지 난번 앨범인 "아,대한민국"을 듣고 들으셔야 할겁니다.저번 앨범은 공윤에 심의를 올렸으나 통과하지 못하자,정태춘씨가 불법(?)으로 제작하여 발매한 앨범이고,(그것 때문에 수배도 됐다고 알고 있습 니다.)이번 앨범은 아예 공윤의 심의를 받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나 온 앨범입니다.약간 성격이 다르죠...참! 앨범이라고 표현해서 혼 돈하실지 모르겠지만,위에서 언급한 두 앨범 모두 LP로는 없습니다.
그냥 불법(?)제작 테이프만 나와있는 것으로 압니다.착오 없으시길....

1.양단 몇마름 : 박은옥 박은옥씨 혼자 부른 곡입니다.베이스 기타가 아주 매력적으로 들리는 곡이고,서글픈 분위기이고,박은옥 씨의 목소리가 애절합 니다.짧은 곡입니다.

2.저 들에 불을 놓아 정태춘,박은옥 두 사람이 부른 곡이고,간단하게 기타와 키보드 의 스트링으로 이루어진 곡입니다.서정적이고 두 사람의 화음도 좋습니다.가사 내용은 늙은 농부가 들에 불을 놓은 건데...불이 라는 것에 정태춘 씨는 의미를 두고 쓴 가사 인 듯 합니다.

3.비둘기의 꿈 : 박은옥 예전에 노찾사에서 활동하다가 지금은 혼자 독립해서 독집을 낸 "권진원"이라는 가수의 노래 "북녘 파랑새"와 분위기가 상당히 흡사합니다.비둘기는 평화의 상징인 것은 다들 아시겠죠...
진정한 평화와 자유를 꿈꾼다는 내용이고요,박은옥 씨의 감정이 잘 살아있는 곡입니다.

4.이 어두운 터널을 박차고 정태춘 혼자 부른 곡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랑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부르는데 누군지는 모르겠네요.아마 안치환이랑 노찾사 쪽 사람들인거 같은데...모두 함께 열차(물론 비유를 한 거죠)
를 타고 어두운 터널을 박차고 떠나자는 내용의 가사인데,뒷부 분의 합창부분이 아주 일품입니다.

5.사람들 사실 가사를 전부 쓰고 싶은 데,모두 받아 적어야 하기에 도저 히 엄두가 안나네요.하지만 가사만 제대로 올리면 제가 이렇게 따로 감상을 쓸 이유도 없을만큼 확실한데....쩝...가사를 안 적고 감상을 쓰려니 다른 사람들이 잘 이해를 못 할 것 같아서 안타깝네요.이 곡은 간단히 기타 아르페지오에 키보드의 스트링 으로만 이루어진 간단한 곡입니다만 역시 가사가 심오(?)하다고 할만큼 확실합니다.중간에 정태춘씨가 낮은 목소리로 읽는 멘트 가 있습니다.

"작년엔 만 삼천여명이 교통사고로 죽고,이천 이백 삼십여 명의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죽고,천 이백여명의 농민이 농약 뿌리다 죽고,또 몇백명의 당신의 아이들이 공부,공부에 치 어 스스로 목숨을 끊고....,죽고....,죽고....,죽고...., 지금도 계속 죽어가고...."

그리고 노찾사 공연장에 대한 가사도 나옵니다.이부분에서는 노 찾사의 노래가 서서히 페이드 인 되어서 오버랩이 된후에 노찾사 노래소리만 들리다가 한소절 정도만 하고 다시 정태춘의 노래가 시작됩니다.곡 앞부분에서는 "김영태씨는 처가에 가고"라는 가 사가 나오고(마치 누구를 일컫는 것 같음),"백선생은 궁금해 하 시고"라는 가사도 나옵니다.(역시 누구를 가리키는 말 같음)
박노해씨 이름도 나오고,계속해서 "뭐뭐하는 사람들"이라는 가사 가 나옵니다.압구정동 얘기도 나오고....미국 폭동얘기, 잠실의 프로야구 얘기 등등, 암튼 "사람들"에 대한 곡입니다.

6.LA 스케치 이번 앨범에서 가장 인상깊은 곡으로 지난번 "아,대한민국" 앨 범의 타이틀인 "아,대한민국"과 맥을 같이 하는 곡입니다."아, 대한민국"은 우리나라의 상황을 약간씩 돌려서 얘기하지만 상당 히 통쾌하게 꼬집고 있습니다만 이번 "LA 스케치"라는 곡은 제 목 그대로 우리 교민이 가장 많이 산다는 LA 의 상황을 정태춘 나름대로 얘기하고 있는데 LA에 못가본 제가 느끼기엔 사실감이 철철 넘쳐 흐름니다.처음에 사물놀이로 시작하다가 서서히 줄어 들고 곧바로 기타소리와 함께 노래가 나옵니다.가사 내용은 LA 이민을 간 우리 교민이 바라보는 LA 의 진짜 모습을 쓴 겁니다.
우리가 동경의 눈으로만 보던 미국의 또 다른 모습과 여러 편견 에 대해 쓴 가사입니다.공감이 갈만합니다.미국의 빈민들,지역 마다 다른 빈부의 격차,사회의 모습들,같이 동화될 수 없는 교 민들,불안하기만 한 밤거리.....
마지막 부분의 멘트와 노래 가사는 이렇습니다.

"백인들은 도대체 어디 있는거야? 미국에서 백인들은 잘 못 보겠..(총소리와 도망가는 발자국소리)"
"한국 관광객 질겁에 간 떨어지는 총소리,따당 따당땅 따당땅"

그리고 기타와 사물놀이가 믹스되면서 서서히 사그라 듭니다.

7.나 살던 고향은 이 곡의 가사는 열받게 만드는 가사입니다.일본놈들이 우리나라 를 풀코스로 3박 4일동안 돈을 펑펑 쓰면서 밤에는 우리나라 여 자 끼고 자고,특급호텔에 식사는 제일 비싼 음식으로 처 먹는 관 광에 드는 비용이 6만엔이라는 것을 쓴 가사입니다.일본에서 비 행기 타고 와서 갈때 까지 일본 놈들이 하는 일을 서술적으로 쓴 가사인데 솔직히 눈돌아 가더군요.마지막 부분에 "나의 살던 고 향은 꽃피는 산골..."하고 끝을 맺습니다.

8.92년 장마,종로에서(title 곡)
제목 그대로 상황은 92년 장마때 종로입니다.정태춘 씨가 나름 대로 그때 느낀 것이 있는지 가사를 썼더군요.대충 들어보면 비 유와 은유가 많이 쓰인 것 같네요.평화의 상징인 비둘기가 나오 고 서울은 장마권에 든다라는 표현도 보이고,모두가 우산을 쓰고 있다는 얘기,그리고 웬디스 햄버거 간판이라는 표현....신호등에 멈춰 있다는 얘기 등등....제대로 분석해 본다면 여러 가지로 해석이 분분 할 거 같네요.박은옥의 백보컬도 아주 뛰어납니다.
곡의 완성도를 한층 더 높여 주고 있습니다.
뒷부분의 정태춘의 목소리는 정말 설득력이 있도록 진실합니다.

"사람들은 모두 흐르고,우리들의 한 시대도 흘러간다."
"비둘기가 다시 날아 오른다.하늘높이..훨훠이훠훠이훠"

전체적으로 보면 지난 "아,대한민국"과 맥락은 같이하고 있습니 다.그러나 지난 앨범은 어느정도 선동(?)적인 가사가 표현되고, 과격하다고 할 수 있는 내용도(기존 노래의 가사에 물들어 있는 사람들에게는) 있었으나,이번 새 앨범은 현실 그대로를 서술하면 서 자신들의 하고픈 말들을 하고 있습니다.이제 우리나라도 이런 쪽의 노래운동에 대해 인정하고,이런 노래들이 계속 양산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저도 공윤의 심의에 불만이 많고요,그 쪽 일에 대해 불신이 많습니다.이런 상황에서 심의를 거부하고 나선 정태춘씨의 생각 을 높이 사고 싶습니다.전에 노영심의 작은 음악회에도 한번 나 와서 이번 앨범 타이틀 곡인 "92년 장마,종로에서"라는 노래를 부르는 것을 본 적이 있고요,심야토론 시간에 나와서 심의라는 주제로 얘기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암튼 이제 우리나라도 문화쪽에 대해서는 좀더 완화되고,수용하 는 사람들에게 권리와 함께 책임을 돌려주어야 할 때라고 생각합 니다.언제까지나 공윤에서 전 국민들이 나쁜(?) 문화를 접할까봐 걱정할 수는 없겠죠?
"사전심의! 꼭 없어져야 합니다.!"

? "I Do What I Do" 나인하프위크(912weeks) ?

{이 글은 하이텔 언더동 한국의 언더뮤직 게시판(under 15)에서 옮겨온 것입니다.
글의 저작권은 저자에게 있으며 삭제나 수정을 원하실 경우 mailto:정철zepelin@hanmir.com 에게 요청하세요.}

1.3 # 정동진/건너간다[편집]

제 목:[뽕] 정태춘 관련자료:없음 [429] 보낸이:최보영 (고요라침) 1998-10-12 15:43 조회:105

퍼온 글임다 나우누리 얼트바이러스

제 목:[감상] 정태춘, <정동진/건너간다> 올린이:본국검 (오상훈 ) 98/05/14 16:02 읽음:132 관련자료 없음

90년대를 홀로 짊어지고 가는 사람, 정태춘

정태춘, 그는 누구인가? 태춘이란이름에서 풍겨오는 촌티(?)와 함께 또한 태춘이란 이름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조직폭력배 서방파의 두목 김태춘과 같은 이름을 가진 사 람... 80년대 그를 기억하는 사람은 그의 노래 '시인의 마을촛불'과 그의 아내 박은옥이 부른 '봉숭아'그리고 박은옥과 함께 부른 '사랑하는 이에게'를 기억하며 포크가수로서의 서정적이며 시골냄새나는 향토적인 음악을 기억할 것이다. 그러나 90년대의 사람들은 '아 대한민국'이라는 불법음반을 만들어 정부와 의 되지도 않을 것같은 싸움을 벌이는 돈키호테같은 그리고 '시와 양심수' 의 공연에서 매년마다 고정출연하는 그를 기억할 것이다. 80년대와 90년대를 함께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정태춘은 쉽게 단정할수없 는, 알수 없는 사람이다. 정말로... 얼마전에 정태춘 박은옥의 새앨범 "정동진"이 나왔다. 이 음반을 사서 처음 들었을때 또 한번 느꼈다. 나의 좁은 지식과 감각으로 어떻게 그를 설명할 것인가? 이때까지 얼마되지않은 음반평을 썼었지만 정태춘에 관한 것은 솔직히 쓰 기가 그렇게 쉽게지 않을 것같다. 우리가 알고 있는 상업가수이면서도 또 한 민중가요계에서 큰형님격인 민중가수 정태춘을 내멋대로 빈정대는 투의 글발로 쓸수도 없고 그렇다고 무조건 '좋아 좋아'로 쓸수도 없고...남의 눈치 안보고 내멋대로 쓰기에는 나의 내공이 너무 낮고 특별히 꼬집을 만 한 부분도 발견할수가 없고... 그래도 난 내맘대로 쓸란다. 언제나 그렇지만 난 라커니까.... 정태춘을 생각할때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은 공산품 수출에 달아야하는 원산지 표시인 made in korea. 정태춘만큼 made in korea를 붙이고 자부심 있게 내놓을 만한 가수가 있을까? 우리말 가사를 옮조리지않고 허밍만으로도 이것은 made in korea라고 자신 있게 말할수 있는 국산이 아닌 토산품,문화재와 같다고 할까. 많은 가수들이 "무늬만 가요아니예요"라는 식의 수입된 음악양식으로 노 래를 부를때 그리고 우리 것이라는 것을 강조하기위해 국악을 중간중간에 도입한 어정쩡한 가요를 만들때 정태춘은 된장국 냄새가 구수하게 풍기는 꽹가리에 장구반주가 너무도 잘 어울리는 가요를 우리에게 선사했다. 내가 기타를 배우겠다고 한창 설치던 고등학생때 라디오 방송을 통해 들려나오는 그의 노래는 들국화와 함께 팝송의 빠다냄새의 느끼함을 가시게 하는 새콤 한 김치와도 같았다. 그의 노래들은 부르기도 쉬웠고 통기타반주가 딱딱 들 어맞아 기타연습의 교재와도 같았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것은 당시에 한창 헤비메탈을 들었던 친구들과 형들의 집에 쌓인 lp음반속에 몇안되는 가요앨범중에는 정태춘과 박은옥의 음반은 필히 한장씩은 있었다는 것이다. 가요라면 수준낮은 음악이라고 쉽게 치부 해 버리던 그때 가장 우리적인 정태춘의 음반이 있었다는 것은...글쎄... 아마도 음악성 못지않게 뛰어난 가사의 매력이 아닐었을까. '시인의 마을'에서부터 풍기는 시적인 매력, '애고 도솔천아탁발승의 새벽노래'들은 정말 신선한 매력이 아닐수가 없었다. 사랑노래만 판을 치 는 가요판에 고행의 수도승과같은 감각보다는 정신을 이야기하는 그의 노래 말에는 학교수업에 박제가 되어가는 학생들에게는 그들이 탈출하고픈 교실 밖의 세상에 대한 풍경을 보여주었다. 고등학생이었을 때는 왜 그리 시골 이 가고 싶었는지... 그런 그가 90년대에 들어와서 전혀 예상할수없는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 왔다. 대학에 들어와서 민중가요를 알고 민중가요가 녹음된 불법음반들을 들을때 그 불법음반중에는 정태춘 이라는 이름이 있었다. 그때의 놀라움이 란... 처음 정태춘의 '아 대한민국'이란 테잎을 처음 들었을때는 정말 충격이 아닐수 없었다. 과연 내가 아는 정태춘이 맞을까? 정말 의외의 일이었지만 한편으로는 그사람이 우리 편이었구나 역시 정태 춘이다하는 원군을 얻은 기쁨과 함께 ... 그러나 그 당시에는 정태춘의 '아 대한민국'은 즐겨부르지못했다. 민중가 요의 단순한 코드, 주법과는 틀리게 어려운 쓰리핑거의 '아 대한민국'은 내 실력으로 노래와 기타연주와는 연결이 잘 안되었으니 민중가요치고 정태춘 의 노래들은 좀 어려운 노래였었다. 당시로서는 민중가요중에 얼마 안되는 감상용 음악이었다고나 할까. 그리고 당시의 큰 집회때나 공연에서 듣는 정태춘의 노래들은 그렇게 친 근하고 쉽게 다가오지는 않았다. 그렇게 좋아했던 가수임에도 한동안은 그 를 외면했었다.그때 당시에 나는 한참 단순할 때 였음으로... 그러나 시간이 흘러 민중가요중에서도 유행했던 노래들이 이제는 한물 간 것처럼 느껴지는 지금, 다시 듣는 '아 대한민국'과 그의 노래들은 질리지 않는 감동을 여전히 전해준다. 언젠가 말지에 기고된 '자유'공연에 대해 평을 쓴 이영미씨의 글을 본적이 있는데 록 위주로 꾸져진 자유의 공연의 어설픈 저항정신을 비판하며 우리 시대의 록의 저항성을 올바르게 구현하는 가수는 록가수가 아닌 포크가수인 김민기와 정태춘이라고 쓴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동감이 가는 부분이었다. 자유공연을 볼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자유공연의 의미를 제대로 알고 무대에 서는 밴드들은 과연 얼마나 될까? 그리고 그의 미를 알고 공연에 오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될까? 사실 나도 잘 모른다. 의미는 있는 것일까? 그저 록음악이 좋아서 그곳에 갔던 것이고 의미보다는 음악에 더 치중하 였기에... 공연을 보고 나오면 무언가 부족하다는 것을 항상 느껴야했다. 일부로 의미를 찾는 것도 음악공연에서는 안좋은 일이지만 일단 의미를 달 았으면 그의미에 맞게 치뤄어져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록과 포크의 장르적인 문제일수도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 다. 가사전달이 보다 용이한 포크와 가사보다는 음악적인 파괴력이 뛰어난 록은 각각의 장단점이 있을 것일 테지만 아직까지 록은 여전히 아쉬운 것 이 많다. 중학생때부터 록음악을 듣고 컸지만 록음악은 우리 것이라기보다 는 남의 것이라는 느낌을 항상 짐처럼 지고 들어야하는 부담감도 별로 유 쾌하지만은 않다. 록의 저항정신을 말하는 록커들도 우리의 저항이 아닌 남의 저항을 말하는 것같은 느낌을 지울수가 없다. 마치 우리나라의 피터 지는 가두시위의 처절함보다는 피케팅을 하며 건물주위를 도는 미국식의 시위와 우드스탁처럼 낭만적인 저항이 연상되는 것 처럼.... 그런 가운데 정태춘의 노래는 피터지는 가두시위의 처절함과 단식투쟁의 결연함이 베어있다. 김민기의 노래가 그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지식인의 고 뇌를 그렸다면 그리고 지금은 한발짝 물러난 상태라면 정태춘은 아무것도 모르던 어린아이가 성장을 하면서 세상을 알고 분노하고 처절하게 싸우는 그리고 좌절하는 성장과정을 보여주었고 지금은 좌절하고 있으면서도 희망 을 쉽게 버리지못하는 우리들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또한 김민기의 노래가 민중가요가 생산되지않고 있을 시기에 민중가요적인 정서를 가지고 저항가요에 목말라 있던 대중들에게 이슬비와 같았다면 정태 춘은 이미 민중가요가 정착되어있던 시대에 벼락을 치는듯한 충격을 주며 정태춘식 민중가요를 정착를 시킨 소낙비가 같다고 할까 다시말해 김민기는 시대가 그의 노래를 민중가요로 만들었다면 정태춘은 자신 스스로가 민중가 요를 부르는 가수로 변신한 경우라고 생각한다.

이제 '정동진'얘기를 하자. '92년 장마,종로에서'이후 근 5년만에 나온 이번 음반은 그동안 하고 싶었 던 말도 참 많았을텐데... '정동진'은 글세 뭐라고 표현해야할까? 정동진 을 처음 듣고 느낀 것은 아직도 정태춘은 90년대로 부터 탈출하지못했구나. .. 그것이 아직 옆에 있다는 동질감보다는 90년대의 좌절과 고뇌를 아직도 벗어던지지 못한 안스러움이랄까... 그냥 바보처럼 잊어버리고 멍청한 미소 로 살아버리지...라는 말을 하고 싶을 정도로 정태춘은 다른 사람은 이미 벗어던지고 도망쳐버린 90년대의 멍에를 힘겹게 우직하게 메고 가고 있 다. 정말 바보처럼....그가? 우리가? '정동진'은 동전의 양면처럼 각각의 두가지의 개성들이 공존하고 있다. 첫 곡 '정동진'에서처럼 박은옥의 맑은 목소리는 80년대의 그들의 모습처럼 서정적이고 맑은 하늘을 보여준다 가사 또한 한편의 서정시와도 같다. 그러나 '민통선의 흰나비'처럼 정태춘 이 부르는 노래들은 90년대의 정태춘을 보여주는 것처럼 비가 추적추적 내 리는 우울한 날을 보여준다. 이 노래들을 들으면 이제는 된장국보다는 쓰 디쓴 소주가 먼저 떠오른다. 80년대 정태춘의 노래들은 한편의 풍경화를 보여주었다. 조용한 산사의 아 침을, 시골의 초가집의 이웃들을 한폭의 캔버스에 옮겨 놓은 듯한...앨범 '정동진'에서도 그런 풍경들을 보여준다. 첫곡 '정동진'에서는 보여주는 소 낙비가 지낸간 정동진의 풍경이 '민통선의 흰나비'에서는 철책을 사이에 두고 있는 민통선의 풍경이 그리고 '건너간다'에서처럼 멍청하게 한강을 건 너는 버스의 풍경이...그러나 90년대의 정태춘은 풍경을 캔버스에 옮기는 것이 아닌 카메라의 렌즈를 통해 보여준다. 어쩔때는 보도카메라를 멘 기자 처럼 또 어쩔대는 영화속의 찰영감독처럼 현실속의 풍경을 보여준다. 아무에게서나 이런 느낌을 받을수는 없다. 이런 느낌은 정태춘이기에 가 능한 것이고 정태춘만이 가능한 것이다. 정태춘은 가수이기 이전에 시인이 며 화가라고 생각한다. 음유시인이란 말이 있지만 그말은 정태춘에게는 어 울릴 것같지가 않다. 어쩔때는 시사프로의 리포터처럼 또 어쩔때는 농촌 의 한가로운 풍경을 보여주는, 이시대의 썩은 곳 그늘진 곳을 찾아다니는 카메라의 렌즈처럼 그가 보여주는 장면들은 결코 가벼울수가 없다. 반면에 박은옥이 부른 노래는 '정동진'을 제외한 '들국화' '소리없이 흰눈 은 내리고'는 보도카메라를 들고 이리저리 옮기며 찰영한 활동사진이 아닌 배경을 고르고 골라 찍은 예술사진 한 장같다나 할까. 정태춘의 식의 동적 인 풍경이 아닌 정적인 풍경을 렌즈에 담은 것같다. 이 곡들의 주인이 '전대협진군가'의 윤민석씨이니 당연히 그럴수도... 그 러나 또하나의 의문이 이어진다. 진짜 '그 윤민석 맞어?' 알게모르게 윤민 석은 '전대협진군가전사의 맹세'라는 명작들에 의해 대중들에게 판이 박 혀버렸다. 그 윤민석이 이렇게 서정적이면서 감미로운 노래를 만들었다니 어찌 보면 사랑하는 이들의 이별을 그린 것 같은 '소리없이 흰 눈은 내리 고'는 감옥으로가는 호송버스안에서 창밖에 내리는 눈을 보며 만들었다니.. .호박은 검은줄을 그어도 호박일 수밖에 없는 진리가 숨어 있다...나는 이 노래가 정동진 다음으로 가장 뜰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런데 사람들이 사랑 노래로만 알고 있다가 노래의 사연을 알게되면 반응이 어떨까...재미있다. 여기서 윤민석과 정태춘의 차이를 발견할수 있다. 아마 정태춘이 이 광경 을 그렸다면 은유가 아닌 직유로 보다 사실적인 풍경을 그렸을 것이다. 정태춘의 사실적인 표현은 '5.18'을 들어보면 확연히 볼수가 있다. 벌써 18년전의 광주를 오랜된 필름을 재편집하듯이 보여주는 '5.18'은 이제는 가벼워 질때도 된것같은 광주를 여전히 무거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기 존의 정태춘의 곡들의 단순한 악기편집이 아닌 가장 많은 악기들과 코러 스,구음,음향효과까지 보태어 노래의 무게를 실어주고 있다. 헤비메탈이라는 록의 한 장르가 있다. 무거운 금속이라는 표현처럼 무거 운 사운드로 일관된 음악,많은 민중가수들이 록을 도입하고 그룹들이 탄생 했다. 그리고 음악적으로 헤비한 사운드를 만들어 내고 있다. 그렇지만 아 직까지는 그들의 사운드는 정태춘보다 결코 무겁지가 못하다. 내공의 차이 가 일까? 앨범'정동진'의 마지막 곡인 '수잔리의 강'을 들으면 정말 오랜만의 듣는 그들 부부의 하모니를 들을수 있다. 그렇게 잘 어울릴것 같지도 않은 두 목 소리가 만들어내는 하모니란, 아름다움, 찬란하고 천박한 눈만 속이는 아름 다움이 아니다. 인생을 아는 세상을 아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가난하지만 소박한 삶이 있고 노동이 있는 아름다움이다. 이 곡을 듣고 있노라면 정희성 시인의 시'저문강에 삽을 씻고'가 생각나 는 것은 왜 일까? 일을 마치고 돌아오시는 우리네 아버지,어머니가 생각나 는 것은 또... 노래의 마지막에는 이 부부가 같이 합창을 하는 대목이 있 다. 실제로 목소리가 그렇게 잘어울리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귀로 듣는 것이 아닌 가슴으로 듣는 그들의 노래는.... 이것만큼 완벽한 하머니는 없 을 것이다.

흐르는 것이 물뿐이랴
우리가 저와 같아서
강변에 나가 삽을 씻으며
거기 슬픔도 퍼다 버린다
일이 끝나 저물어
스스로 깊어가는 강을 보며
쭈그려 앉아 담배나 피우고
나는 돌아갈 뿐이다
삽자루에 맡긴 한생애가
이렇게 저물고 저물어서
셋강바닥 썩은 물에
달이 뜨는구나
우리가 저와 같아서
흐르는 물에 삽을 씻고
먹을 것 없는 사람들의 마을로
다시 어두워 돌아가야 한다
-   < 저문 강에 삽을 씻고 > 정희성

뱀발: 끝맺음이 약간 부실하기에 시로 때웠습니다. 그리고 정태춘의 음반을 얘기하면서 음향에 대한 부분은 도저히 말할 엄두가 나지않아 음향에 대한 부분은 쓰지않았습니다.

lonesomecrow 가리스마★


98년 무슨 잡지에다 썼던 글인거 같습니다. 하드에서 놀길래...--;

나는 난감하다. 지금은 20세기 말이다. 인더스트리얼 사운드와 테크노의 물결이 넘치는 '98년에 중년부부의 새 음반에 대해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하는가... 이들은 우리들이 말하는 소위 '포크'가 수(한때는 '운동권 가수'라고도 하지 않았던가?)이다. 지금 이 시점에서 '포크의 음유시인'이라 는 호칭이 그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럼 여기에서 더 이상의 진전은 있을 수 없는가? 세 기말이라는 이유로 한국이라는 지역이 포크라는 음악장르가 제외되어야 할 이유는 그 어디에도 없는데...

정태춘, 박은옥 부부의 [정동진/건너간다]는 전작 ['92년 장마, 종로에서]가 나온 지 5년 만에 나온 새 음반이자 ([아! 대한민국]과 ['92년 장마, 종로에서]가 일반 레코드 점에 진열된 것 은 '96년이지만) 그들의 20주년 기념음반이기도 하다. 이들은 언제나 현재를 조망(perspective)하 여 그 이야기들을 노래 속에 담아왔다. 데뷔 시절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자세에서 벗 어난 적이 없다. [정동진/건너간다]역시 그러한 자세의 연속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전작과 똑같 은 음반은 아니다. 최성규의 세련된 리듬기타와 슬라이드기타위에 박은옥의 투명한 목소리와 차 분한 관악기의 울림이 실려 정동진에 서 있는 화자의 입을 통해 노래 '정동진(1)'은 시작된다. 이어 정태춘의 '민통선의 흰나비'는 민통선을 날아다니는 흰나비의 시각으로 바라본 세상을 이야 기한다. 세 번째 이야기 '들국화'는 박은옥이 이전에 들려주었던 '봉숭아'의 이미지를 회상하게 한다. 정태춘, 최성규, 이무하가 부르는 '가을은 어디'는 최성규의 편곡이 돋보이는 곡으로 정태 춘이 직접 연주하는 바이올린과 최성규의 클라리넷 소리가 어우러져 시니컬한 가사를 잘 감싸주 고 있다. (앨범전체를 통해 최성규는 이들 부부의 곡에 사운드적 변화의 시도를 가능하게 하는 커다란 역할을 하고 있다. 편곡은 물론이거나 와 다양한 악기의 연주를 도입함으로 이들의 곡 을 더욱 세련되게 만들어 내었다.) 박은옥이 부른 '소리 없이 흰눈은 내리고'는 들국화와 함께 윤민석의 곡이다. 정태춘의 계속되는 삶의 이야기 '건너간다'는 가라앉은 첼로소리와 함께 시작 한다. 그가 바라본 세기말에 대한 그의 이야기를 말하는 곡이다. 이어지는 곡 5.18은 '건너간다' 와 함께 그의 변치 않는 삶에 대한 자세를 잘 보여준다. 그 뒤에는 박은옥의 '정동진(2)'가 조동 익의 새로운 편곡으로 실려 있다.

하루일과가 끝나는 노을지는 저녁의 귀가를 담고 있는 '수진리 의 강'은 정태춘, 박은옥 부부가 함께 부른 마지막 곡이다. 한 곡 한 곡 교차하여 들리던 정태춘 과 박은옥의 목소리는 이 곡에서 하나의 화음을 만들어 내고, 저녁(시간적)과 강(공간적)이라는 서로 다른 대상이 하나의 지향점을 향해 모여든다는 새로운 공통이미지를 가지게된다. 이러한 전 체적인 앨범의 구성과 이 곡 자체의 구성은 매우 흡사하다. 하나 하나의 곡이 가지는 특징적인 부분도 무시됨 없이, 이러한 이중적 구조(곡과 음반의 구성)의 공통점을 통해 [정동진/건너간다] 가 하나의 완전한 앨범으로 보여지게 한다.

이들은 90년대의 변화한 세상을 바라보며, 무대를 통해 사람들과 만나 이 시대를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생각한다. 이들은 오랜 친구처럼 편안 한 마음으로 사람들을 만나 함께 노래 부르고 얘기하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아름답다고 생각하 는 세상을 위해 부지런히 밑그림을 그리는 작업을 해나가고 있는 이들은 언제나 같은 자세로 음 악을 부르고 있다. 이 음반에는 이러한 이들의 소망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자신들의 음악에 대 한 종합적 반성과 새로운 음악적 변화에 대한 시도가 담겨 있는 이 음반에서 표면적 분노는 찾 아 볼 수 없다. 그러나 삭제된 것, 가려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98년 우리 삶의 한 부분이 이 음반을 통해 시간이 지나도 살아 숨쉴 것이다. 당신은 이 곡들을 듣고 충분한 미적 감흥을 얻을 수있을 것이다. 만일, 당신에게 유행의 최첨단에 서고자 하는 강박관념만 없다면...

-- 장신고 2003-12-17 1:23 am

1.4 # 촌평[편집]

--  2004-5-19 5:40 pm

1년남짓 어슬펐던 대학1년생활을마무리하고.삼수를거쳐다시들어간대학시절
역시 노동운동이란틀에서 떨어질수는없었다.그러나나는고민하고있었다.
시대의흐름은 너무나빠르게변해간다는것.우리의고민과는다르게전혀무관하게
우리의행동과주장과는전혀 이질적으루.세상은변해가버린다는것이었다.
그해가을 평소 가끔이름을듣곤했던.정태춘씨가.대동제때 왔었다.
하지만.이러저러한.타이틀을가지고있었던지라.조용히 그자리에 경청할신세는
못되었다.마지막한곡을 겨우 들을수있었는데.주변에 한100여명남짓저물어가는
저녁해와함께.가슴에 다가올만큼.그이목소리에반했다.
그해가을을넘어서면서나의고민은 점점더해져.잠수만했다.
그의 저앨범을옆구리에끼구.죙일 노래만불렀다.저들에불을놓아..
겨울내내 저앨범만 듣구.이듬해 나는결국군대에가버렸다.. -- 양우 2004-1-15 4:56 am

양우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지못하나 치열하게 살고자 노력하신 분 같네요.
전 가끔 학생때 노동운동을 했던 사람들이 일상에서 그것을 어떻게 품에 안고 살아가는지에 대해 궁금해지곤 합니다. 실망스러운 사례들은 몇개 알고있습니다만, 긍정적인 사례는 별로 알지 못하기 때문이죠. 그냥 자신의 과거는 외면하고 살아가고있는 것까요?
남들과 똑같이, 아니면 남들 이상으로 속물적으로 변신한 예들을 보면 암울해지지요. 그들이 정태춘 노래를 듣게되면 마음이 아플까 안아플까도 궁금해져요.
뭐 저도 그다지 잘 살고있는 편은 못됩니다. :( -- 거북이 2004-1-15 12:41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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