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벽 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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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09 29 日 : 절벽 구경[ | ]

아일랜드에서의 마지막 날이다. 8시 정도에 알람으로 깨어나 B&B의 두번째 B를 맛보다. 헴에그와 식빵, 시리얼, 우유, 커피 등인데 아주 푸짐하다. 식당(?)이 정원을 마주보아 이뻤다. 너무 잘 먹어 배탈이나 나지 않을까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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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식당과 맛진 식사

여튼 요즘처럼 아침을 매일 챙겨먹는 것은 정말 고등학교 졸업하고 처음 있는 일이라 뱃속이 놀라지 않을까 싶다.

이런 젠장 일요일에는 절벽Cliff of Mohr으로 가는 버스가 없다고 한다. 어제 체크를 확실히 했어야했는데 실수다. 앞으로의 일정은 직접 하나하나 체크를 해가며 해야겠다. 제일 중요한 것중 하나를 놓치게 되는구나.
모어 절벽은 듣기론 세계에서 가장 높게 깎아지른듯한 절벽으로 배를 깔고 가지않으면 강풍에 날아가버릴지도 모르는 곳이라고 한다. 그나마 아일랜드에 볼거라곤 고작 이거밖에 없는것 같던데 이런 불상사가 생겨버리고 말았다. 여기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관광상품을 기피하지 말아라'이다. 터미널이나 역 주위에는 여행사들이 바글바글 있고 주요 명승지를 돌아봐주는 관광상품이 있다. 물론 나는 그런 상혼을 질색하기 때문에 쳐다보지도 않았다. 하지만 생전 처음 가봤고 영어를 쓰는 곳이라고는 하지만 내 영어라곤 전혀 통하지도 않는 곳에서 매번 물어가며 버스를 타고 헤매는 것은 너무나 많은 시간낭비를 낳는다. 이럴 때는 과감하게 여행상품 하나를 골라 그쪽의 버스를 타고 돌아다니는 것이 현명할 수 있다. 이것은 사실 패키지 상품들에게도 맞게 해당되는 얘기다. 그런 상품들이 결코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얘기다. 여튼 나는 그것을 몰랐고 그렇다면 준비라도 철저했어야 했는데 그것도 느슨해서 그만 이렇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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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웨이의 운하

더이상 골웨이에서 볼일은 없었기 때문에 적당히 더블린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아일랜드를 횡단하면서 이동네의 시골을 봤으니 뭐 그리 손해본 느낌도 아니다.
네시간이나 가는 길이기때문에 중간에 한번 쉰다. 애슬론Athlon이라는 동네다. 시골 차부같은 곳 하나 있는데 여기가 이 도시로 들어오는 버스 터미널이다. 정말 소박한 동네라고 할 수 있겠다. 여튼 여기서 십분쯤 쉬는데 난 갑자기 마음이 동했다. 우리는 시간도 있으니 여기서 쉬어가자고 동의했다. 내려서 아저씨에게 물어보니 다음 버스가 왔을때 자기에게 말하면 된다고 한다. 사람들이 예정에 없이 내려 노는 것이 그렇게 좋다고 하더니 사실이다. 땡길 때 쉬어주는 기분.
시내 중심가로 가는 것은 금방이다. 대도시도 그런데 이런 소도시 쯤이야. 안내에 아일랜드의 심장부The Heart of Ireland라고 써있지만 그것은 아일랜드 한가운데라는 위치때문에 나온 말이지 완전 깡촌이다. 하여간 여기나 저기나 구라들은 한구라씩 한다. 가운데에 섀년Shannon강이 흐르고 뭔지모를 AFC가 하나 있는것 빼곤 땡인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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섀넌강에서의 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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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C

하지만 이 섀넌 강이 아주 마음에 든다. 이 강은 아일랜드에서 가장 긴 강으로 이것이 점차 커지면서 대서양쪽으로 흐른다. 이쪽은 수원에 가까운 쪽이라서 아직 작지만 그래도 더블린의 리피강보다는 넓다. 역시 섀넌강의 물도 검다. 미네랄이 많이 들어있는걸까, 바닥이 검은걸까. 여기서 WooRam과 나는 강변을 걷다가 앉아서 강을 바라보다가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역시 이런 한적한 시간이 좋다. 다시한번 말하지만 우리는 노인 휴양관광을 나온 것이고 그것에 충실한 것 뿐이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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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적하게 걷기 좋은 섀넌강가

버스정류장 옆에는 기차역도 있지만 다니지도 않는듯 하고 버스 티케팅도 운전기사가 손으로 쓱쓱 적어서 표시해주는 것이 다일만큼 엉성하다. 이 광경은 나중에 스페인에서도 볼 수 있었다. -_- 달리 말하면 그만큼 조선에 비해 빡씨지 않은 나라라는 말이다.

다시 버스를 탔다. 아까 꼬불쳐두었던 오렌지를 까서 우람에게도 주고 내 옆에 앉은 코쟁이에게도 주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그 코쟁이 친구와 나는 영어로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이 친구는 독일인으로 마르부르크Marburg 대학에서 화학을 공부하는 친구인데 지금 40일 정도 여행을 하고 돌아가는 길이란다. 화학과라고 하길래 나는 그때 입고있던 주기율표 티셔츠를 보여주었다. 좋아하더라. ^^ 독일인이니까 아무래도 지난 월드컵 얘기와 독일 통일에 대한 얘기를 했다. 아웅 3국인들끼리의 영어 대화에는 처절한 그 무엇이 있다. 서로 발음이 구려서 종종 필담으로 간신히 의사소통이 가능했다. 그는 내 글씨를 보고 한국인이라고 생각했단다. 자기는 동독인이라서 서독과는 조금 갭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의 독일에 만족하는 것도 아니지만 과거로 돌아갈 수도 없다고, 동독은 분명 실패했다고 말했다. 나는 마르크시즘은 휴머니즘이지만 현실 사회주의는 파시즘이었던 점이 비극이라고 답했는데 이것이 전해졌을지 심히 의심스럽다. 어쨌든 이메일을 주고받았다.

다시 더블린이다. 나는 우람에게 혼자 다녀보겠다고 했고 이녀석은 먼저 들어갔다. 먼저 조이스 센터에 갔다. 학생 3.5E. 오오 그래도 제임스 조이스면 20세기 현대 문단의 최대 거물중 하나인데 그 센터라는 곳이 이렇게 꿀꿀하다니 장난이 아니다. 거의 아무것도 없다고 보면 좋다. 브로셔 몇개만 들고 나왔다. 내가 '율리시즈'를 읽었다면 블룸이 걸었던 거리를 따라 더블린을 한바퀴 다녀보련만 그것도 아니니 조이스는 이걸로 마치기로 했다. '더블린 사람들'과 '젊은 예술가의 초상'이나 다시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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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스의 캐리커쳐를 배경으로 찍은 자화상. 그리고 조이스 동상.

아 생각해보니 나는 우람의 집 주소도 모르고 어떻게 가는지도 아련하다. 버스정류장 앞에 텍사코Texaco라는 주유소가 하나 있었다는 것과 16번 버스를 타면 된다는 것 밖에. 설마 어처구니없이 미아가 되진 않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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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정류장 앞에 있던 우체국 건물. 더블린의 중심지인 오코넬 거리에 있다. 영화 마이클콜린스에서 마지막 저항장면의 배경이 된 곳이기도 하다.

이래저래 눈에 익은 건물들이 지나가는 것을 보면서 간신히 도착했다. 난 버스에 있는동안 내내 창에서 눈을 떨 수 없었다. 텍사코가 지나가면 안되었기에...-_- 우람이놈의 방에 들어오니 긴장이 풀려서 메가데스Megadeth의 Rust in Peace를 틀고는 침대에 널부러졌다. 익숙하지 않은 일상에서 지내는 것은 인간을 한없이 겸손하게 만든다. 나는 여기서 힘없는 이방인이기에 항상 조심하며 움직여야 한다. 다른 사람에게 묻지 않으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메가데스 따위의 익숙한 것을 즐기며 안도감을 느끼는 것도 지금뿐이다. 내일 에딘버러로 가면 완전히 단절된 일상이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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