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리메리쫑

2002 09 30 月 : 워리 메리 쫑[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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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람의 집 창문에서 내다본 주택가. 이쁘다.

어제 준비를 다 해놓고 잔데다가 오늘 6시도 안되어 일어났다. 머리도 감고 마저 준비를 한 다음 비행기 표를 확인하니

엥? 내일이다. -_-

이런 젠장. 아일랜드에 와서 친구네 집에 있다고 너무 느슨해있었다. WooRam이 월요일이라고 해서 그냥 아무 생각없이 믿고있었는데 알고보니 화요일이었던 거다. 녀석은 그렇다쳐도 그것을 확인한번 안하다니. 아 느슨한 넘. 그래 뭐 아일랜드까지는 느슨해지자. 하지만 에딘버러 이후로는 이런 식으로 빈둥대다간 큰코다칠거다. 엉성한 나라에서 어지간히 엉성하게 지내다가 나간다는 생각이 든다.
그나저나 이럴줄 알았으면 골웨이에서 하루 더 묵고 모어 절벽이나 뭔가 다른 것을 봤을텐데... 역시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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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표가 내일이라는 것을 확인한 직후 홧김에 조그만 위스키를 병채로 마시다. 이거 마시고 일어나다가 천장에 머리를 찧어 정말 죽는줄 알았다. 우람의 말에 의하면 집이 울렸다고.

오늘은 우람군 학교에나 가서 함 구경이나 하고 인터넷좀 쓰다가 못다한 시내구경을 좀 하려한다. 날은 쨍쨍한데 비가 올듯말듯 계속 왔다갔다한다. 이것이 아일랜드의 정통 날씨라는군. 그나마 쨍쨍한건 며칠 되지도 않는다고 하네.
우람의 학교까지 걸어갔는데 역시 유럽의 주택가는 이쁘장하다. 여기저기 공원들이 있는것도 보기 좋고. 비가 와서 공기도 맑고. 이런 주거환경의 어처구니없는 차이는 언제쯤이나 극복될 수 있을지 암울해진다. 학교에 갔지만 하필 공사중이라서 인터넷을 못쓰게 되었다. 가는날이 장날이군.

호스Howth라는 해안가로 나갔다. 다트DART라는, 아마도 더블린에 있는 것들중에 가장 새것임에 분명한 경전철을 타고갔다. 수도주제에 더블린에는 지하철이 없다. 2010년도 더 지나서야 완공할 계획이 있다고는 하는데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한다. 이 경전철이라는 것은 더블린이라는 해안도시와 그 주변의 다른 해안마을들을 연결하기 위한 것으로 우리나라로 치면 수원이나 인천쪽으로 이어지는 전철을 생각하면 되겠다. 물론 그것에 비해 훨씬 짧은 구간이다. 좋았던 것은 몇몇 전철역이 숲속에 있었다는 점이다. 수풀을 지나가니 숲속에 떡하니 역이 하나 있고 그 다음에 숲을 지나간다. 운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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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스의 다트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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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스에서 먹은 피쉬 앤 칩스 가게에 놓여있던 고객만족 카드. 귀여운 디자인이다. 아무래도 이 가게는 체인점인 모양.

호스는 그냥 조그만 어촌인데 그래도 바닷가는 볼만하다. 여기는 바람이 참 많이 부는데 그림같은 풍경이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그 그림은 왠지 쓸쓸하다. 그림같은 풍경이었음에도 유럽이 주는 왠지모를 무료함의 흔적을 지우진 못했다. 아마 내가 정붙인 곳은 이곳의 땅이어서 그런지 유럽은 어디나 남의 동네와 같은 느낌이었다. 바닷바람을 맞아가며 한가롭게 시간을 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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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 바람이 많이 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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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적한 풍경. 보고있으면 나른해진다.

오는 길에 강아지 한마리를 보았다. 우람이 늑대라고 표현할만큼 덩치 큰 개들이 이동네에는 천지다. 다들 외로운지 그렇게 개를 많이 키운다. 스페인인가 어딘가에서는 개 세마리를 끌고가는데 그 세마리들이 제각기 가려해서 당황해하는 아줌마도 봤다. 여튼 이놈은 주인이 어딜 갔는지 혼자 돌아다니는 놈이었는데 혹시나해서 메리, 워리, 쫑 중 하나를 부르면 맞겠거니 하고 불러봤더니 온다. 쓰다듬으면서 나좀 보라고 하니까 진짜 고개를 돌리더니 아주 벌렁 드러눕는다. 이녀석은 내 말을 알아들었다. 뭐랄까...기뻤다. 나는 우리말로 했는데도 내 말을 알아듣다니, 이런 순진한 교감때문에 사람들이 개를 키우는 것일게다. 그 교감이 너무나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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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와 거북.

다시 더블린으로 돌아와서 어제처럼 우람을 보내고 나는 다시 시내구경을 나섰다. 며칠전 금방 나와버렸던 아일랜드 국립 미술관을 다시 갔다. 이번에는 2층을 보기로 했다. 역시 애써 온 보람이 있다. 네개의 고야와 세너개의 램브란츠 그리고 하나의 엘그레코다비드가 있었다.
고야의 작은 그림중 수면이라는 제목의 그림이 있었는데 아주 좋았다. 자연스럽게 몽롱한 상태를 그려내었다. 잠든듯 엑스터시인듯. 서양 그림들에는 뭐랄까 억압속에서 삐져나오는 욕망이 종종 읽힌다. 큐피드와 비너스의 에로틱한 그림들 뿐 아니라 종종 보이는 춘화스러운 그림들에서도 물론이다. 이런건 요즘 읽고있는 혜원 신윤복의 그림들에서도 마찬가지이고. 물론 신윤복이 훨씬 위트있다 :)
램브란츠는 역시 빛의 화가이다. 그는 빛과 그림자가 만드는 드라마틱한 순간에 서 있는 인간을 그려내려 노력한다. 아 어떤 그림을 봤는지 적어왔어야 했다. 기억이 안난다...-_-+
그 외 오래된 이탈리아 그림들이나 프랑스 그림들은 별로였다. 하긴 다 똑같은 풍인데 좋게 느껴질리가 없다. 그런것들보다는 근대성이 느껴지는 네덜란드나 아니면 아주 개성적인 스페인쪽이 내 맘에 더 든다.
좀 더 보다가 예이츠 가문의 그림을 더 보고 가려했는데 5시가 되니 문을 닫는다. 조그만 미술관임에도 불구하고 이만하면 뭐 만족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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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국립 미술관

바이올린을 연주하면서 자기들 CD를 파는 놈들이 있었는데 연주를 꽤 잘하더라. 여기는 길 폭이 좁아서 연주하면 잘 울린다. 그래서 운치가 있다. 곡 끝나면 박수와 함께 동전을 주곤 하는데 그 여유가 부럽다. 조선에서는 돈 몇푼 주려고해도 괜히 앵벌이 조직만 키워주는 것 같아 맘편하게 자선(?)조차 하기 힘든것에 비하면 참 다르다.
어차피 하루종일 타도 되는 데이 프리 패스이니 내렸다 탔다 해가며 이것저것 봤다. 지나가다 봤던 재래시장 같은 분위기의 시장도 가봤지만 별로 재래시장도 아니었고 값도 비싸더라. 한참 헤매고 있는데 우연찾게 HMV를 발견했다. 당연히 들어갔는데 역시 살만한 것은 없었다. 의외로 XTC의 4장짜리 BBC세션이 싸게 있어서 그것만 하나 사왔다. 혹시 이거 런던에 가면 똥값에 팔고 그런거 아냐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이후 처절한 기우로 밝혀진다.
다들 무단횡단을 한다. 그 수준이 어떤가 하면 무단횡단을 안하는 놈이 바보로 느껴질만큼이다. 전 도로의 인도화다. 이후 런던이나 뭐 다른 곳에서도 비일비재했지만 역시 최고는 더블린이다. 횡단보도가 있기는 하지만 다들 눈에 안보이는듯 하다. 곧 나도 익숙해졌다. 미술관 근처에서 역시 자연스럽게 무단횡단을 했는데 바로 앞에 여경이 있더라. 헉 하고 식겁했지만 그들은 내가 있는지조차 관심을 안가지고 농담따먹기를 하고있었다. 역쉬~ 하면서 나는 가던 길을 마저 갔다.

들어와서 너구리 한마리 끓여먹다. 내일은 진짜 진짜 여행이다. -_-


절벽구경 <= 워리 메리 쫑 => 영업종료6시

거북이유럽서부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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