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은 어째서 프로그레시브 록을 좋아하는가

1 개요[ | ]

일본인은 어째서 프로그레시브 록을 좋아하는가
  • 카도가와 무크지, 프로그레시브 록이 일본인에게 사랑받는 이유 (2012년 9월)
세계적으로 보더라도 프로그가 장르로서 인지되고 있는 나라는 없다고 한다. 어째서 일본인은 프로그를 좋아하는 것일까? 어떻게 수용되어 왔는가? 다른 세대의 애호가들이 모여 이 문제를 검증했다.
이와모토 코이치로[1], 마쓰오 타카노리[2], 다케우치 타츠토[3], 마쓰이 타쿠미(좌담회 진행)[4]
번역 일본 프로그레시브 록 가이드북 편집진

2 세대별로 변화해가는 프로그레시브의 이미지[ | ]

마쓰이: 오늘 함께 자리해주신 여러분은 세대도, 평소 음악에 대한 접근법도 다르기 때문에 프로그레시브 록의 인식방법도 조금씩 다를거라 생각합니다. 어떤 형태로 프로그라는 것을 인식하고들 계신가요?

마쓰오: 저는 지금 40세여서 아마도 프로그가 장르로서 완전히 확립된 지금의 젊은 세대와 가까울지도 몰라요. 철이 들 무렵에는 가요곡, 지금은 Jpop이라 불리고 있습니다만 그것이 평범하게 흐르고 있고, 다만 동시에 경제가 안정되면서 문화적으로도 여러가지 정보를 확실히 입수할 수 있게 된 시대이기도 합니다.

아무래도 미국 차트 위주입니다만 FM 프로그램이 충실하여 음악 청취의 폭이 넓어졌습니다. 뉴웨이브나 하드록, 메탈, 소울, 펑크라든지 디스코라는 것도 있죠. 그것이 대체로 80년대 중반 경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가운데 상업적으로 성공한 프로그 음악가도 있었죠.

이와모토: 프로그가 팝화해간 즈음이네요. 확실히 80년대는 70년대와는 다른 의미로 무엇이든 있었죠.

마쓰오: 그렇습니다. 그래서 가요곡에서 느낀 반감으로 보다 어른이 감상할만한 음악을 듣고싶다고 생각해서(웃음) 처음에는 하드록이나 메탈에 빠져든데다, 나아가 테마적으로 무거운 킹 크림슨이나 반더그라프 제너레이터 같은 헤비한 부분이 이어지면서 그쪽으로 나아갔다는 느낌입니다.

마쓰이: 80년대에 헤비한 크림슨과 만났다는건 시대를 거슬러 올라간 느낌이네요.

마쓰오: 동시대에 실시간으로 들었던 사람과는 10년 정도 갭이 있는데요. 하지만 20대 정도라면 기호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좋아하는 장르 이외의 음악을 듣는다는건 거의 하지 않아요. 프로그를 호기심에서 새로이 듣는다는건 힘든거거든요.

3 예스도 핑크플로이드도 메인스트림의 음악이었다[ | ]

마쓰이: 힘들다는건 어둡다든지 그런 뜻인가요?

마쓰오: 뭐 장르구분의 폐해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제법 선입관을 지니고 있네요.

이와모토: 저는 프로그가 팝음악의 정점에 있을 무렵 들었기 때문에 그 감각은 잘 몰라요. 왜냐면 70년대초에 프로그는 굉장히 잘 팔리고 있었으니까요. 미국에서도 차트의 탑10에 들어있었고요. 저는 비틀즈 세대는 아닙니다. 그들이 해산된 이후에 '리볼버'를 샀거든요. 그래서 비틀즈적인 것의 속에서 하드 록, 글램 록, 그리고나서 프로그레시브 록이 점차 생겨났어요. 그러니까 '프로그라고?'라고 생각하기 전에 이미 그곳에 존재해 있었던 겁니다.

확실히 하드 록이라든지 컨트리 음악이라든지 그밖에도 잘 팔리던 음악은 잔뜩 있었어요. 그래도 내 안에서 프로그가 남았다는 건 어째서일까? 하고 생각해보면 첫번째로는 록을 듣기 시작하던 때보다도 더 어린시절에 클래식 음악을 들었다는 건 있어요. 다만 실은 이것은 음악만으로 완결되는 이야기는 아니거든요. SF소설을 좋아했다든지 그밖의 분야에 관해서도 록에 있어서의 프로그와 비슷한 경향을 지니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마쓰이: 이와모토씨 같은 사람이 70년대 일본에 많았나요? 저도 간신히 70년대 문화는 접해 온 편이지만 확실히 SF는 문학 속에서 지금 이상으로 커다란 장르였다는 느낌이 듭니다. 인기에 비해 문단에서의 자리매김이 특수했던 부분까지 록에 있어서의 프로그와 닮아 있었습니까?

이와모토: 다소 특수한 부분은 있었는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그런 특수한, 사람과는 다른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 당연했던 시대였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여러가지 것이 나왔고 존재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4 일본 만큼 프로그에 다양성을 지녔던 나라는 없다?[ | ]

다케우치: 프로그란 일본에서 잘 팔렸나요?

마쓰오: 음. 디스크유니온의 데이터로 보면 솔직히 시장규모는 크지 않아요. 다만 극단적으로 줄어든 적도 없어요.

다케우치: 예컨대 미국이라면 (핑크 플로이드의) 광기라든지 The Wall이라든지......

마쓰오: 그렇죠. '광기'는 확실히 741주간 빌보드 차트에 들어있었습니다. 다만 이것은 일본과 미국의 프로그에 대한 인식의 차이도 있어요. 그쪽에서 플로이드라 하면 메인스트림의 록이었으니까요. 반대로 일본에서 잘 나갔던 킹 크림슨은 미국에서는 초 마이너 그룹이었어요. 일본에서 프로그의 정점이라고 하면 틀림없이 킹 크림슨을 꼽는 이들이 많지만요.

이와모토: 플로이드나 제네시스는 이미 프로그라는 인식은 없었죠, 미국에선. 이글스라든지 그러한 아레나를 관객으로 가득 채우는 록. 그러니까 미국에서는 프로그를 장르로 부르지는 않는다고 생각해요. 반 헤일런이나 비지스와 같은 인기있는 팀이었던 거죠.

마쓰오: 그러니까 로버트 프립은 프로그로 취급받는 것을 꺼렸지만 미국에서도 보통 프로그로서의 이미지를 갖고 있는 것은 5대 밴드 중에서도 킹 크림슨 정도 뿐이지 않을까요? ELP도 제네시스도 예스도 모두들 아레나 록이고 플로이드는 그 가운데서도 각별한 존재이지요.

마쓰이: 일본에서는 피터 가브리엘이 있었던 시기와 필 콜린즈가 전면에 나선 뒤와는 완전히 평가가 다릅니다만 미국에서는 어떻습니까?

마쓰오: 미국에서도 완전히 구분되어 있어요. 뭐랄까, 일반적인 음악팬은 가브리엘이 있었던 제네시스? 그게 뭐야? 라고 반응할거라는게 정확하겠죠.(웃음)

마쓰이: '댓츠 올'이라든지 '인비저블 터치'의 제네시스 만을 떠올린다는 말이군요.

이와모토: 미국에서 프로그레시브 록이라 하면 가장 떠올리기 쉬운 것은 저먼 록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북유럽인들 사이에서는 프로그를 사회적인 메시지를 띠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죠. 일본에서는 장르로 놓고 보면 어느 나라보다도 그 분류 속에서 다종다양한 음악이 뒤섞여 있어요. 그것이 복잡하단 말이죠. '스트레인지 데이즈'의 젊은 독자들로부터도 "프로그를 듣고 싶은데 무엇부터 듣는게 좋을까요?" 라는 질문이 때때로 날라옵니다. 여기서 제가 파우스트를 추천할까 제네시스를 추천할까 고민하게 되는데(웃음) 어떤 것을 추천하느냐에 따라 그들에게 있어서의 프로그의 풍경도 꽤 달라질거라 생각합니다.

5 타인과는 다른 음악을 찾으려 할때 그곳에 프로그가 있었다![ | ]

마쓰이: 그러면 일본인에 있어서의 핵심적인 프로그라면 어떤걸 들수 있을까요?

다케우치: 이 책의 타이틀인 '일본인에게 사랑받는 이유'라는 것은 대단히 재미있다고 생각하지만 앞서 말씀드린 해외와의 대비가 하나의 힌트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우연히 얼마전 롤링 스톤지를 읽었는데 인기투표의 프로그 부문 1위가 드림 시어터였어요. (웃음) 그리고 러시라든지. 러시는 줄곧 좋아해왔지만, 아 프로그로 분류되는건가 하는 생각에 조금 놀랐습니다.

마쓰오: 국민성이 드러나는 군요.

이와모토: 세대차도 있는거 같아요. 우리들 세대는 러시도 드림시어터도 프로그로는 인식하지 않으니까요. 그것을 프로그로서 받아들이는 사람은 현재의 하드록형 프로그나 프로그 메탈은 전부 먹힐거라 생각합니다.

마쓰오: 저까지라면 아슬아슬하게 드림시어터는 먹힐거라 생각해요. 왜냐면 역시 그건 동시대적으로 들어와 있었기 때문이겠죠.

이와모토: 50대는 프로그가 73~74년 경에 한차례 완결된 것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면 드림시어터를 프로그로 인정하긴 어렵거든요.(웃음)

마쓰오: 단지 해외에서는 젊은 세대에게 다시 유행이 돌아오는 경우가 있어요. 첫째, 70년대적 요소를 도입한 양질의 젊은 밴드가 늘었고 둘째로는 베테랑 그룹이 재결성한다든지 해서 분투중이기 때문입니다만 그 점에서보면 일본 쪽이 아직 특정세대에 한정되어 소비되고 있달까요.

이와모토: 70년대에 서로 믹스테이프를 만들어 돌려듣는 것이 유행했었죠. 지금 그걸 다시 들어보면 그 테이프의 첫번째곡이 아마치 마리이기도 하고 그래요.(웃음) 음악을 듣는다는 행위가 그정도로 메이저는 아니었을지 몰라도 마니악한 것도 아니었어요. 아마치 마리와 제플린이 공존했던 것이 70년대였죠.

다케우치: 저는 조금 뒤의 세대입니다만 무슨 말인지 잘 와닿아요. 점점 가요곡에 질리는데 그렇다고 포크 세대도 아니고 지금처럼 멋진 일본 록밴드도 거의 없었거든요. 그러고 있자니 친구가 ELP의 '전람회의 그림'과 예스의 'Fragile', 핑크 플로이드의 'Animals'를 빌려주더군요. 부모님은 클래식만 듣는 분들이어서 록 따위는 바보취급한단 말이에요. 그러던 참에 프로그를 접하고는 이건 클래식에도 이길 수 있겠다고 생각한 것이 당시의 솔직한 심정이었어요.

이와모토: 5대 1이었달까요. 반에서 프로그를 듣는 비율 말이죠. 한 학년에서 5분의 1은 듣고 있었어요. 교내방송에서 'Atom Heart Mother'를 몇번이나 틀었단 말이죠.(웃음)

다케우치: 중2 시절이었는데, 이야 이거 대단한데라고.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없어요.

이와모토: 현실로부터 도피하고 싶다..는 것도 있었죠. 거기에 공상적인 프로그에 빠져들고 읽는 책도 그러한 경향이 점점 나타났고요.

마쓰이: 음악과 책, 어느쪽이 먼저란건 아니고 말이죠.

이와모토: 복합적이었어요.

6 서양문화에 대한 동경이 백인음악 기호로 발전[ | ]

마쓰이: 프로그를 듣고 책을 읽고 싶어지는 감각이란 일본인 특유의 경향인걸까요?

이와모토: 물론 해외에도 있죠. 그러니까 에드거 앨런 포나 레이 브래드버리(화성연대기)가 프로그 작품의 테마가 된다든지 하는거죠.

다케우치: 아 프로그와 SF는 연결되어 있는거네요. 브래드버리 작품은 몇번 읽었는지 셀수도 없어요.

이와모토: 다만 일본의 것으로 표현하자면, 정신세계를 향해 가려고 해도 프로그라든지 SF 같은 것들이 대상이 되는 것은 일본인에게는 서양에 대한 근본적인 컴플렉스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메이지 정부가 내걸었던 '탈아입구'. 바로 그것이지요.

마쓰이: 이야기가 커져버리는거 같네요. (웃음)

이와모토: 서양적인 것에 대한 동경이 어딘가에 있었다고 생각해요. 아시아의 프로그가 있었어도 듣지 않았죠. 일본에도 제법 실력있는 밴드가 있었지만 해외 밴드보다 조금 낮춰보고 있었단 말이죠.

마쓰이: 오히려 손이 닿지 않는 것에 대한 동경인지도 모르겠네요. 아까 뭔가 다른 것을 찾는다고 하는 걸 겹쳐서 생각해보면 말이에요.

이와모토: 맞아요.

마쓰이: 거기서 미국이 아닌 영국이란 것은.

이와모토: 미국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은 건축에 빗대 말하자면 두꺼운 기둥이 네 귀퉁이에 튼튼하게 짜여진 견고한 건물을 좋아하는 타입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많은 일본인은 견고하다기 보다는 섬세해서,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완전히는 성숙되지 않은 것에서 아름다움을 찾아낸 거라고 생각해요. 일본인도 영국인도 화가라면 터너 풍의 모호한 것을 좋아하잖아요.

마쓰이: 영국인이 멜로트론을 처음으로 록에 도입하였고 그것을 세상에서 가장 사랑한 것은 일본인이었으니까요.

이와모토: 필 이하트(Phil Ehart)가 72년 경 영국에 유학했을때 거기서 프로그레시브 록에 충격을 받았죠. 그래서 우리도 그걸 해보자고 마음먹고 귀국하여 캔사스를 결성하잖아요. 하지만 거기서 나오는 소리는 결코 영국과 같은 것이 아니에요.

마쓰오: 다르죠. 설사 같은 음을 낸다 하더라도 미국에서는 안팔리겠죠.

이와모토: 영국의 프로그 밴드 중에서 미국에서 잘나갔던 건 Asia나 80년대 제네시스, 'Owner Of Lonely Heart'의 예스 정도인데 그조차도 어딘가 미국적인 느낌이 나죠. 그건 영국인이 만든 미국음악이란 말이에요.

다케우치: 그들은 실력있었으니까 그런 것까지 가능했던 것이죠. 하지만 일본인의 감성에는 영국 특유의 프로그레시브 록 쪽이 더 잘 맞아요. 예스의 'Tales from Topographics Oceans' 같은 곡은 정말로 아름다운 곡이라 생각하거든요. 장장 30분 가까이 계속 연주하고 있어도 그 정도로 아름다운 음악이라면 전혀 질리지도 않을 뿐더러, 사랑받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해요.

이와모토: 제가 좋아하는 프로그도 우선 아름다운 멜로디를 가지고 있을 것. 다만 록이라는 전제는 깔려있어야 하니까 순수한 클래식 심포니가 아니라 역시 비트는 있었으면 해요. 하지만 댄스 뮤직은 아니어야 하죠.

마쓰오: 전에 그렉 레이크의 인터뷰를 읽었는데 프로그레시브 록의 정의에 대해 말해달라는 요청에 '그것은 백인의 음악'이라고 대답했더라고요. '나는 흑인처럼 연주하고 싶어서 블루스도 소울도 해봤지만 아무리해도 본고장의 뮤지션에게는 이길수 없었다. 그렇다면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을 하자고 생각했다.'고 하더군요. 흑인과 같은 리듬 센스를 지닌 이들은 그렇게 많지 않은거 같아요.

이와모토: 60년대 영국에서는 미국 뮤지션을 그리 많이는 부르지 않았어요. 그래서 스스로가 그 흉내를 내려는 것이었으니까 어떻게 하더라도 진짜가 될 순 없었죠. 그러니 이번에는 그 짝퉁이 아예 짝퉁으로서 영국의 독자적인 음악이 되어가는 거죠. 거기에서 클래식과의 결합같은 것도 생겨나고 드디어는 프로그의 형성으로 이어졌다고 봅니다. 일본인이 고집하는 프로그도 대부분은 백인 풍의 록 뮤직이었다고 생각해요.

7 정신적인 것의 본질을 볼것인가 스타일로서의 프로그인가[ | ]

이와모토: 존 웨튼은 말이죠. 그 Starless를 3분의 곡으로서 만들었다고 해요. 그래서 반드시 히트할 거라고 생각했대요. 그런데 로버트 프립은 그걸 10분의 곡으로 만들어 버렸어요. (웃음) 웨튼의 생각은 알겠지만 프로그 팬으로서는 역시 전후 파트도 필요하다는 생각이거든요. 그러니까 웨튼은 ASIA에서는 자신의 곡을 3분인 채로 발표한 것 뿐이라고 말했었죠.(웃음)

다케우치: 프로그의 또 하나의 매력이란 서서히 지속적으로 좁혀오는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지속적으로 다가오는 감각이라는 건 그리 기분좋은건 아니죠. 하지만 그렇게 긴 음악을 스테레오로 마주 대하며 그대로 들어버리게 돼요. 이것은 과학적인 연구로도 밝혀진 것입니다만 어떤 종의 음악을 들으면 인간의 뇌는 도파민이라 불리는 물질을 활발히 분비한다고 해요. 도파민은 인간이 살아가는 중에서 매우 중요한 신경전달물질이기 때문에 이것은 실로 획기적인 발견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물론 어떤 음악을 들어야 도파민이 나오는가 하는 것은 개인차가 있고 그 중에는 라틴 음악을 들었을때 도파민이 나오는 사람도 있겠죠. 하지만 적어도 일본인인 저에게는 핑크 플로이드나 예스 쪽이 도파민이 많이 나올거라고 생각해요.

이와모토: 어째서 10~30대가 가장 프로그를 듣지 않는 걸까요?

마쓰이: 그 길이에 생활의 스타일이 맞지 않는 건 아닐까요?

다케우치: 핑크 플로이드는 걸으면서 듣긴 그렇죠. (웃음) 지금 유행가라면 프로그 팬들에겐 기승전결 중 전결만 나오는 것같은 음악이니까요.

마쓰오: 테크노는 꽤 긴 곡이 많은 것 같더라고요.

다케우치: 미니멀은 또 다른 쾌감을 주지요. 그 반복되는 리듬에는 대단히 강한 작용이 있다고 생각해요.

마쓰이: 테크노는 프로그와 본질적으로 가깝다는 느낌이 듭니다만. 정신세계와 연결되어 우주적인 소리를 만들고 있어요. 일본인의 프로그관은 심포닉 풍의 것이라는 게 지금까지의 흐름이라 생각합니다만 한편으론 오브(The Orb) 같은 그룹은 핑크 플로이드의 세계관을 앰비언트 테크노로 표현한 것이라 받아들일 수도 있겠죠?

이와모토: 무슨 말씀인지 알겠어요. 다만 어려워요. 70년대의 프로그를 들어온 사람으로서는 말이죠. 정신적인 부분에서는 오브나 앰비언트 테크노를 프로그라 불러도 좋다고는 생각합니다. 하지만 받아들일 수 있을지 없을지는 또 다른 이야기죠.

마쓰오: 육체성이 있는가 없는가가 아니잖아요. 테크노와 프로그의 차이라는건 말이죠. 프로그는 고도의 음악이지만 기계에는 절대로 지고말테니까요. 크라프트베르크 역시 인간이 '기계화' 한다는 개념이 우선 재미있단 말이죠.

마쓰이: 기자재의 차이도 있어요. 아날로그와 디지털.

이와모토: 무조건 있죠. 그 부분은 정신적인 부분에도 있습니다. 70년대까지의 영국 판타지는 Jethro Tull의 '마더 구스'였다든지 제네시스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였죠. 하지만 헤비메탈이나 고딕메탈에 가까워지는 프로그라면 미국 그래픽노블이 되어가는 느낌입니다. 제네시스의 잔혹우화까진 좋지만 전기톱으로 피튀기는 느낌까지 가면 별로입니다. 특촬과 CG의 차이와도 같아요. 특촬의 로봇에는 사람이 들어가 있지만 지금은 CG잖아요? 그런 것이 인간성의 유무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합니다.

다케우치: 더욱이 지금부터 어떻게 되어갈까 하는 것에는 아직 대답이 나와있지 않다고 생각해요. 우리 집 아이를 예로 들면 2살때부터 아이폰을 쓸 줄 안단 말이죠. 가상현실이 현실로 되어 가고 있어요.

8 작품성 높은 프로그는 클래식처럼 계속해서 들려질것[ | ]

마쓰이: 그러면 마지막으로 한정된 시장에서도 뿌리깊게 살아남은 프로그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 하는 이야길 한번 해보죠.

이와모토: 70년대 프로그 마지막 현역세대가 지금 60세 전후입니다. 마이크 올드필드, 스티브 해킷, 에디 잡슨...... 위로는 70세 전후쯤 되겠죠? 현실적인 문제로서 그들을 라이브로 볼 수 없게 되었을때 어떻게 될 것인가.

마쓰이: 어느정도로 스튜디오의 음을 라이브에서 재현할 수 있을까, 하는 것도 프로그의 묘미니까요.

다케우치: 런던 올림픽의 개회식에서 마이크 올드필드가 연주했던 것에는 정말 감동했어요. 2000년 경에 미국에서 본 로저 워터스의 라이브에서는 그밖에 핑크 플로이드의 다른 멤버 하나 참가하지 않았지만 'In the Flesh'의 기타는 데이비드 길모어의 완벽 재현이었어요.(웃음) 그래서 관객들이 1만5천명이 모여들었죠. 그야말로 어린 아이부터 노인까지. 이미 고전의 재해석 조차 필요없었어요. 그자체로라는 것도 또하나의 존재의의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와모토: 클래식이 태어난지 500년. 록은 아직 원작자의 이름이 중요하지만 클래식에 필적할 정도의 작품성도 있어요. 그러니까 지금 콘서트 기획으로 생각되어 지는 것은 오리지널 멤버가 한 사람도 없더라도 레코드의 소리를 완벽히 재현할 수 있는 젊고 실력있고 멋진 뮤지션들이 스테이지에서 연주한다면 어떨까 하는 것이죠. 제1부는 예스의 Close to the Edge를 2부에서는 핑크 플로이드의 Echoes를 연주하는거죠. 'Larks' Tongues In Aspic'을 내놓았을 당시 킹 크림슨은 일본을 방문하지 않았어요. 물론 크림슨에 로버트 프립이 언제까지나 있으면 좋겠지만 혹시 그렇지 않더라도 멋진 멤버가 나름대로의 Aspic 연주를 들려준다면 그것은 오리지널 멤버의 스테이지 보다도 굉장할 지도 몰라요.

마쓰오: 핑크 플로이드의 커버밴드 중에서 정말로 실력이 뛰어난 그룹은 이미 영국에서도 대형 콘서트장을 가득 채우고 DVD까지 내놓기도 하니까요.

마쓰이: 음악을 만드는 쪽도 그것을 듣는 쪽도 모두가 그런 것을 받아들여 즐길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한 것 같네요.

  1. '스트레인지 데이즈' 편집장 이와모토 코이치로(岩本 晃市郎) 1958년 도쿄 출생. 80년대부터 '뮤직 스테디' 'IND'S' 'POP IND'S' 등의 음악잡지 편집에 종사. 현재는 '스트레인지 데이즈' 외에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음악문화의 우수성을 전하고 있다.
  2. 디스크 유니온 프로그레시브 록 담당 마쓰오 타카노리(松尾隆憲) 1972년 야마구치현 출생. 서일본을 전전하다 인연이 있어 관동거점의 음악,영상종합숍 디스크 유니온에 입사. 현재 프로그레시브 록 담당 스태프로서 근무.
  3. 일본여자대학.인간사회학부교수 다케우치 타츠토(竹内龍人) 1964년 미국 출생. 프로그를 각별히 사랑하는 심리학자. 도쿄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 취득후 캘리포니아대학 버클리캠퍼스 심리학부 등을 거쳐 현직에 이름. 지각, 인지심리학을 연구
  4. 음악비평가.편집자 마쓰이 타쿠미(松井巧) - 좌담회 진행 1966년 도쿄 출생. 서적.잡지 편집을 거쳐 음악사, 레코드 리뷰 등의 집필활동을 폭넓게 수행. '스트레인지 데이즈'에 칼럼 '홍차 나라의 재즈', 계간 '아날로그'에 '방형의 우주'를 연재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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