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타쿠들의 재회

2002 10 30 水 : 한일 유로 락 매니아들의 재회[ | ]

깨워서 일어났다. 기내식을 주는군. 뭐 먹긴 했지만 화난다. 나는 더 자고싶었다. 어제는 버스간에서 자는 통에 설쳤는데 또 잠을 방해받으니 매우 화가 난다. 뱃속에 먹을거를 집어넣으니 다시 잠도 안온다...갸오~
여튼 이런 식으로 이틀을 보냈으니 일본에서 잠 가뿐하게 자고 바로 시차적응이 끝나겠구만.

지금 나리따의 현지 시각은 오후 한시쯤이라니 지금쯤 카즈상이 날 만날 준비를 하고있을지도 모르겠다. 카즈상은 오늘 나랑 놀아주기 위해 회사를 하루 째기로 했단다. 카즈상은 내 일본인 친구로 나와는 음반을 교환하며 지낸다. 매우 유쾌한 양반이고 지난번에 한번 한국에 와서 내가 가이드를 해주었다. 그 전말기는 한일락매니아들의만남에 있다.

아 비행기 타고 돌아가는 길은 참말로 지루하구마잉. 가는 길에는 그래도 고전적 형태의 채팅을 할 수 있어서 재미가 있었는데 오는 길은 그런 운도 없고 잠도 안오고 아주 지루하다. 심지어는 일기쓰기도 싫다.

입국심사하는데 역시 또 시간이 걸리고 있다. 아 정말 비행기 환승을 이렇게 복잡하게 하다니, 이눔의 자본주의와 국가주의는 이런저런 불필요한 프로세스를 너무 많이 만드는 경향이 있다. 제발 그런걸로 고용창출좀 하지 말아줘~
줄 서있는데 런던으로 어학연수 떠나는 여자애 둘을 만났다. 도대체 이놈의 영어는 조선 인민 사천만을 모두 옥죄고있는거 같다.
여튼 같이 니코 나리따 호텔로 왔는데 나는 금방 열쇠를 받았지만 그들은 좀 오래걸리고 있다. 알고보니 다른 호텔인데 여기로 온거더구만. 출발전부터 고생들 한다. 행운을 빌어주었다.
이 호텔에는 이미 나 말고 다른 한국인들도 잘 준비를 하고있었는데 그들은 모여서 뭐할까 하다가 함께 근처 상가로 쇼핑을 나갔다.

나는 카즈상에게 전화를 했다. 전화했더니 그는 놀란다. 내일 아니에요? -_- (참고로 그는 한국어를 배워 조금 한다.) 여튼 그는 사무실의 일을 정리하고 곧바로 오겠다고 했다. 왜 그는 내일로 알고있었을까. 내가 나중에 일정을 한번 바꾸었는데 그는 내 처음 일정만 굳게 붙잡고 있었던거다. 여튼 그덕에 그는 노는 날을 하루 얻었고 부인인 모모(복숭아)상과 함께 재미있게 보냈다고.
카즈상이 올때까지 나는 컵라면(2500원이다 우씨)을 하나 사먹고 유카타를 입어보았다. 별로 좋지는 않다. 잠옷치곤 불편한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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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식 잠옷인 유카타浴衣를 입은 자화상.

잠옷을 입고 TV를 조금 보다. 얘네 TV는 우리의 그것과 정말 비슷하다. 뭐 우리가 베낀거겠지. 얘들도 그다지 발전은 없다. 나날이 감각적으로 되어가는 녀석들을 보면 거 참 이놈들은 극단적이기도 하지라는 생각이 또 한번 든다. 뉴스를 보니 북일수교가 최대 이슈이고 그 외에 요미우리 자이언츠가 우승한 것이 그만큼 큰 이벤트다. 하하 북한 대사가 실수로 일본 기자의 차에 탔다가 뻘쭘해하며 나온다.

카즈상이 왔다. 모모상과 같이왔네. 모모상과 카즈상은 친구같은 부부라서 보기가 좋다.
일단 나는 여행에서 받은 느낌을 간단하게 얘기했고 공Gong의 공연을 본 것에 대해 마구 자랑했다. 이런거 자랑하면 부러워해주는 사람들은 이런 사람들 뿐인지라 신나게 자랑했다. 그가 부러워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자기도 예전에 런던에 가서 피터 게이브리얼PeterGabriel의 공연을 본게 기억난다고 얘기한다. 훌쩍. 피터 게이브리얼이라니...내가 피터 형의 공연을 죽기전에 볼 수가 있을까? 심지어 나중에 일본에서 본 공연보다 런던에서 본 것이 훨씬 스케일도 크고 좋았다고 비교까지 해준다...크흑.
내가 유럽에서 업어온 씨디들을 대충 보여주었다. 얼추 150장쯤 된다. -_- 그는 내가 집어온 것들을 보더니 한참 웃는다. 그리고 자기 얘기를 해주었다. 그가 영국에 갔을때 꽤 싸구려 판가게들을 찾을 수 있었는데 너무나 싸고 너무나 희귀한 NWOBHM계열의 음반들이 있어서 그것 마구 집다가 그만 80장이나 사고 말았단다. 그는 그것을 양손에 들고 입국했다고 하네. LP 80장이 얼마나 무거운지 들어본 사람은 안다. LP는 표준 무게가 180g이고 좀 가벼운게 125g이다. 재킷 빼고. 이 말을 듣고있던 모모상은 옆에서 자기 남편을 가리키며 스뚜피드~ 크레이지~ 등을 연발한다. 분명 나를 보면서 너도 똑같은 놈이야 라고 말하는거다. 하하 그래 우린 미쳤다...-_- I am, You are, We are CRAZY!
(NWOBHM은 New Wave of British Heavy Metal의 약자인데 아이언 메이든IronMaiden같은 정말 보기만해도 웃음이 나오는 메틀의 하위장르 되겠다. 카즈상은 지금도 메틀 광이다.)

카즈상에게 물어봤다.

유럽은 인구가 결코 적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인구 분산이 잘 되어있는 편이라 삶의 질에서 서울보다 월등히 좋다우.
도쿄보다는 더더욱 좋겠군요.
수도권에는 이천만이 살고있어 집값이 너무 비싼 것이 문제이고. 집값만 따지면 일본과 별 차이 없다면서요?
그럴까요? 도쿄와 근교가 아무래도 더하면 더하겠죠. 그 덕분에 제 방은 아주 좁다오.
그 많은 판떼기들을 다 어디에 짱박아두슈?
그래서 더욱 방이 좁지요. 한쪽벽에는 CD탑이 있고 다른쪽에는 LP들이 쌓여있고 반대쪽에는 구질구질한 오디오와 맥이 있지요.
오오 내 방과 비슷한 구조일거 같은디?
그래서 지진이 제일 무서워요. 지진 한번나면 음반도 음반이지만 제가 죽어요.
지진 다발지역인가요?
도쿄와 근교지역은 다 그렇죠. 가벼운 지진은 일년에 한두번쯤은 있어요.
작은 지진이 있다는 것은 괜찮은 일입네다. 지진이란 장력이 많이 축적되었다가 그것이 갑자기 작용하면서 그 진동이 커지는 것이니까요. 작은 지진이 있으면 그 텐션을 완화시켜주죠.
흠 나는 지진도 안나는 나라에서 씨디장이 무너져버린 경험이 있다오.
하하하.
씨디장이 조금 기울어진 것은 알고있지만 뭐 괜찮아보여서 한동안 방치해두었지요. 그런데 어느날 돌아와보니 씨디장이 더 기울어져서 씨디 200여장이 방 위에 나동굴고 있더군요. 그 밑에서 자고있었으면 정말 죽을뻔했죠.

이런 경험을 공유하는 것은 뭐랄까 이루 말할수 없는 즐거움을 준다. 우리는 서로를 너무나 잘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나라에 살고있지만 뭔가 비슷한 것을 함께 추구하고 있다는, 그 멀고도 가까운 인연이 존재하는 것은 정말 축복이다.

나는 일본에서 공항세를 내야한다는 소리를 들어 출국할때 만엔정도 환전했었다. 그런데 알고보니 안내도 되더만. 그래서 엔이 굳을거 같아 미리 카즈상에게 부탁했었다. 나는 당신을 믿으니 당신 맘에 드는 것으로 중고 음반 만엔어치만 사두시라고. 사실 원래 내 계획은 카즈상의 가이드를 받아 중고 음반 시장의 메카인 니시西 시부야에 가는거였다. 카즈상은 판 구하는데 선수중 선수이기때문에 그의 가이드라면 정말 확실한 즐거움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거였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보니 각종 수속들 때문에 나리따에 떨어지는 시간이 그리 이르지 않고 나리따에서 시부야까지 가는 시간만 한시간 이상 걸리므로 현실적으로 당일치기로 다녀오는 것은 무리였다. 정말 애통하다 젠장. 내 일본으로 씨디 헌팅을 꼭 가리라! 그래서 꿩대신 닭이라고 카즈상에게 그런 부탁을 한 것이다.
여튼 카즈상은 내가 부탁한대로 만엔어치 각종 씨디들을 사다주었다. 그리고 선물로 피터 게이브리얼의 UP과 레드 제플린LedZeppelin의 4집시절 싱글인 Black Dog의 일본반을 주었다. 아 카즈상은 정말 나를 생각해주는 사람이다. UP이야 내가 미리 구해달라고 언질을 주었던 것이지만 레드 제플린의 싱글은 나이가 나보다도 오래된 놈인 것이다. 무척 귀한 것인데 그런 것을 구해서 나에게 준 것이다. 나는 그래서 좋은 우리 음악이 보일때마다 항상 카즈상도 좋아할까하고 한번쯤 더 생각해본다.
나는 유럽에서 일본어 브로셔가 보일때마다 꼬불쳐두었다가 모아서 한번에 주었다. 돈도 없는 주제에 같잖은 선물을 주는것보다는 내 정성이 나름대로 담긴 그런 선물이 좋을거 같았다.
모모상은 옷을 꽤 센스입게 입고나왔다. 이런 생각이 들 때는 주저하지말고 립서비스를 해주는 것이 좋다. You looks elegant with your suits today. 아 역시 기뻐하는군 :) 그녀는 웃기도 잘하고 말도 조리있고 위트있게 잘 하는 센스있는 여자다. 그런 부인을 둔 카즈상은 내가 겪어보기도 했지만 역시 좋은 남자일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은 음악과 그 외 여러가지 것을 공유하는 멋진 부부이다. 가우디 관련 브로셔를 보여주니 구엘공원에 가보고 싶다 한다. 나는 바르셀로나에 가면 씨디 헌팅할 것도 많다고 펌프질을 한번 해주었다.
우리는 만나면 서로의 나라에 대해 종종 이야기한다. 나는 일본인들이 가지고있는 정리의 일상화를 매우 높게본다고 말했다. 모모상은 일본인들이 오지게 공부 안한다고 말한다. 으윽, 내가 일본의 번역문화와 학문의 심도에 대해 부러워하는 멘트를 날려줬더니 정말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몇명 있긴 하지만 그건 한국도 그렇지 않냐고 묻는다. 그것보다 일본의 젊은이들은 너무나 서구만을 맹목적으로 좋아하는게 문제인것 같다고 말했다. 뭐 그래 한국에도 열심히 하는 사람들 있다. 하지만 아무래도 너희들과는 숫자 규모가 다른거 같다. 우리에게는 근대화 자체가 아직 목표다. 나는 어서 서구가 동양에 대해 정말로 알고싶어하고 동북아시아가 세계사에 기여할 수 있는 순간이 오길 바라고 곧 올것이라고 말해주었다. 아무래도 내가 이런 말을 할 때 그것은 대부분 나에게 보내는 격려의 메시지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은 내가 병역특례로 군을 마쳤다는 것을 알고있다. 그러면서 한국 군대는 아주 파워풀한거 같다고 손가락을 쳐든다. 그러면서 자위대 군바리들은 날라리라고 표현하더구만. 이야 우리는 조선 군바리들을 양아치로 여기고 자위대 애들은 돈 빵빵한 테크노 군인들 정도로 인식하고 있으니 정 반대다. 그를은 자위대가 오직 돈으로 바른 장비 뿐이라고 말하더라. 나는 조선에는 땅개 숫자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해주었다. '를 알 수 있을까?'
그들은 차 떨어지기 전에 돌아갔다. 더 많은 얘기를 하고싶었지만 뭐 이 아쉬움은 다음 기회로 미루자. 이 흥미롭기 짝이 없는 나라를 내 언제 한번 진지하게 둘러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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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봅시다 친구들 :)

잠이 잘 온다. 아싸~ 시차적응 오케이구마.

라고 생각했는데 새벽 두시에 깼다. 우라질레이션! 왜 이시간에 깨버린거야. 스페인 시간으로 생각해봐도 오후 6시면 아침이 아니자네. 왜 깨버린거지? -_- 여튼 이제 잠자긴 글렀다. 아 따증나~ 유럽 갈때는 시차적응 금방 했는데 여기서는 금방 안될거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할일이 없어 씨디들 부클릿을 보다가 TV를 다시 켜보다가 여튼 별짓 다 했다. TV에서는 왠 양아치 같은 놈들 4놈이 나오는 B1('베스토 원'이겠지 뭐)이라는 쇼프로를 하는데 다리모델, 손모델 등등을 볼러다가 품평회를 가지는 성상품화 프로그램이다. 다리 모델들을 불러다가 스타킹, 루즈삭스 등을 신겨가면서 다리를 꼰다거나 걷는다거나 등등을 시키고 그것을 보면서 탄성을 지르고 품평을 하는 것이다. 양아치 한놈은 한 여자의 발쪽으로 가더니 그녀의 하이힐 밑에 볼따구를 쳐박고는 헤에~ 이런다. 자꾸 조선은 이런것만 배워서 문제다. 그리고 누가 일본 TV야하다고 했는감? 야한 것은 절대 안해주는데? 한가지 놀란 것은 한국 관련 프로그램을 엄청나게 많이 해준다는 거다. 다큐멘터리, 뉴스 등등. 평소에도 이렇게 한국에 관심이 많은가? 생각보다 노인들이 많이 나오는 것도 독특한 점이다. 우리나라는 어린애들이나 바보짓을 하지 노인들도 바보짓에 참여하진 않는다. 고작해야 조형기나 신구 수준이다. 하지만 여기 노인들은 나와서 젊은애들과 똑같이 바보짓을 한다. 뭐랄까 참 이질감이 느껴진다. 으악 세상에 이런 엽기적인 프로가 있나. 배경으로 산과 강의 풍경이 나오면서 한시를 읽어주는 프로그램이 있다. 우와~
흠. 아 역시 PDA가 아쉬워. 여행에서 수시간 단위의 이동은 일상 다반사이고 특히 유럽같은 경우는 초장거리 운행이 포함되기 때문에 PDA에 책을 담아뒀더라면 아주 유용했을 것이다. 아 물론 가장 좋은 것은 옆자리의 여자를 꼬셔서 이것저것 대화하는 일이지만 당신이 영어도 잘하고, 잘생기고, 옷도 말쑥하고, 바디랭귀지 표현력이 풍부하고, 적극적인 사람이 아니라면 꽤 어려운 일이다. 옆자리에 여자가 앉아야 하고 그나마 매력적인 여자가 앉아야 할 마음이 들거고. 이거 지금 당장 확률적으로 생각해도 0.5^7 정도 되니까 고작해야 1%가 채 못된다. 따라서 PDA에 책을 담아오는 것은 꽤 고려할만한 선택인 것이다.
아까 카즈상과 얘기할 때 나는 저녁으로 2500원짜리 컵라면을 먹은 상태여서 앞의 피자를 안먹었는데 이거 지금은 배가 고프네. 이시간에 깨있을거라고 생각이나 했어야지 원. 아웅 출출해. 두시간만 참으면 식사시간 개시다. T_T
시간이 남고남아 드디어 전화기 밑에 깔려있는 재팬 나우라는 관광책자를 펴기 시작했다. 감수를 이마무라 소오헤이 감독이 했더군. 거장이지. 이놈들도 관광입국 따위의 같잖은 구호를 써둔거 보면 별로 나은것도 아니지 싶다. 니들은 이제 그만 벌어도 되지 않니? -_- (물론 자본의 속성상 어려운거 내도 안다 마.) 재미있었던 것은 일본의 박물관에 대해 적어둔 것들이었다. 죤 레넌 박물관이 일본에 있는 것은 그의 부인이었던 오노 요코가 일본인이었으니 그리 부자연스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명화의 모작들로만 채워놓았다는 오츠카 미술관이나 하코네에 있다는 어린왕자 박물관 따위가 왜 있는지 모르겠다. 하긴 조선에도 로뎅미술관 같은 같잖은 미술관이 있긴 하다. 그래도 일본같은 문화 대국이 이렇게 서구를 동경하는 것을 보면 아직도 근대화의 끝을 보진 못했나보다. 뭐 근대화라는 것에 끝이 어디있겠냐만 정신적으로 홀로서기를 할 수는 있을텐데 그게 아직 부족한거다. 뭐 조선이야 그런거 요원하다.

왜 여기서 끝이냐고? 잤냐고? 아니다. 이 시점에서 밥시간이 된 것이다. -_-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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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이유럽서부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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