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털리 버털리

2002 09 26 木 : 어털리 버털리 Utterly Butterly[ | ]

여기 친구네집에 오니 이미 가을이 서울보다 훨씬 깊다는 느낌을 받았다. 상당히 쌀쌀하다. 도심에서 고작 15분 떨어져있는 이곳에서 이런 자연적, 전원적 느낌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은 한없이 부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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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를 기다리며. 전화박스 안에 있는 녀석이 우람.

WooRam의 말에 의하면 아일랜드는 EU통합되면서 득을 많이 봤다고 한다. 아무래도 경제가 통합되면 어느정도 격차가 적어지면서 경제력이 떨어지는 곳의 부는 오르고 반대의 경우는 좀 떨어지고 할 것이다. 여전히 영국이 강한 파운드를 고수하는 것도 그 이유일 것이다. 대신 아일랜드나 스페인, 포르투갈같은 조금 빈한 친구들은 경제력 상승을 경험했을 것이고. 2002년이 시작되면서 EU국가들간에 유로화가 전면적으로 시행되었는데 아일랜드는 그날 완전히 축제분위기였다고 한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맥주를 퍼줄정도였다니 말 다했다.
그리고 아일랜드는 유명한 감자 대기근 이래 수많은 사람들이 호주와 미국으로 이민을 갔고 지금은 아일랜드계 미국인과 호주인들이 무려 7천만쯤 된다고 한다. 지금 아일랜드의 인구는 고작 5백만정도다. 그들은 지금 할아버지네 나라로 와서 투자를 하거나 여러가지 교류를 하고있어 볼거라곤 정말 기네스 맥주 하나밖에 없는 아일랜드 경제성장의 원동력이 되고있다는 얘기다. 우람왈 이나라가 영어를 안썼으면 정말 아무것도 없었을거라고. 요즘은 사방에서 몰려드는 어학연수생으로 꽤 짭짤하다고 한다. 우람도 아일랜드에서 열심히 사투리 영어를 익히는 중이다.
다인종이 지지고볶으며 사는 유럽이나 미국에 비하면 동북아시아는 확실히 너무 폐쇄적인 것이 아닌가싶기도 하다. 우리나라가 특히 심한듯.

ToDo 아일랜드의 특성

아침을 토스트로 때웠다. 1kg은 되어보이지만 고작 2E밖에 안하는 염가 버터인 어털리 버털리를 발라먹었는데 요것이 아주 오묘한 맛이 있다. 조금 짭짤하면서 유럽 유제품 특유의 고소함이 잘 섞여있어 계속 혀를 잡아끄는 그런 느낌이 있는 것이다. 땡겨서 무려 세조각이나 발라먹었다. 유럽은 유제품이 그나마 싸다. 우유가 물보다 싸니까. -.-

 \\ 감동을 준 어털리 버털리.

아일랜드 국립 박물관에 들어갔다. 정말 별로 볼것은 없었는데 이나라는 너무나 오랫동안 유럽의 깡촌이어서 그랬는지 아니면 영국놈들이 모두 집어가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오래된 물건들은 태반이 정말 보잘것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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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해서 한번 찍어 본 모 장승. 유리창에 비친 것은 디카 초보인 거북.

아일랜드국립미술관은 바로 옆에 있어 금방 들어갔다. 여기는 그래도 좀 볼만하다. 나중에 갔던 영국국립미술관이나 프라도미술관에 비하면 깜찍하지만 그래도 18세기 이후의 유럽 그림들이 좀 있다. 하지만 그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여기 있는 것중에서 마음을 잡는 것은 예이츠 일가가 이루어놓은 풍토이다.
가장 유명한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는 시인이지만 그의 동생 잭예이츠Jack B. Yeats나 딸 앤 예이츠Ann Yeats같은 이들은 모두 화가이다. 이중 잭 예이츠는 서양 미술사의 일부에도 머리를 내미는 꽤 비중있는 아티스트인것 같은데 그의 그림은 구상의 형태를 야수파적으로 붕괴시킨 추상화들이다. 잭예이츠/촌평을 보시라.
그 외 몇몇 화가들의 그림들이 있었지만 별로 많은것을 느끼지 못했다. 그림이 많아 찬찬히 음미할만한 여유가 없고 이것저것 적을 틈도 없다. 그리고 메이저에 가까운 그림이 아닌 것들까지 알고있을만큼 나에겐 미술사적인 지식이 없다. 그나저나 큰 미술관 가면 어떻게 보나 걱정이 들었다.
이후 내 미술관 관람은 몇몇 작품들 외에는 철저하게 나 중심적인 감상으로 바뀌게 된다. 몇가지 사적으로 중요한 그림들은 일단 봐주고 나머지 그림들중에 루벤스 류의 (내 눈에는) 진부하기 짝이없는 그림들과 각종 기독교 탱화들, 그리고 따분해서 입을 쩍쩍 벌어지게 만드는 풍경화 마지막으로 어떤 넘인지 내가 알게 뭐냐라고 말하고싶은 초상화들 대부분 아웃이다.
여튼 화가의 섬세한 눈과 그것을 그대로 그려내는 잔인한 손이라니 참 대단하다. 그들은 의도했던 아니던 이미지라는 수단을 통해 시대를 기록하고 있다. 이것은 확실히 도판보다는 큰 그림에서 느껴야 하는 것이다. 극장과 비디오의 차이쯤 될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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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린 풍경. 트리니티 대학 근처.

트리니티 대학을 한바퀴 둘러봤다. 아일랜드에서 제일 좋은 학교라고 하는데 학교 자체는 도심 한가운데 있고 그리 크지도 않다. 수도사들이 만든 엄청나게 오래된 학교다. 여기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바이블 필사본인 켈스의 서가 있다는데 기다리는게 싫어 관람을 관뒀다. 사진 하나 박고 오다.

버거킹에서 햄버거 세트로 점심을 때우다. 5.5E 특이하게도 케찹과 소금을 함께 준다. 이네들은 감자에 소금을 뿌려먹는다고 한다.

우람은 어학연수생이다. 학원에 등록해서 비자를 연장받아야하는 홀대받는 유학생 신분이다. 그때문에 같이 이민국에 다녀왔는데 역시 이놈들 이민자를 엄청 피곤하게 한다. 다들 밖에서 두시간이상 번호표를 들고 기다리는 것은 예사다. 고작 비자연장으로 이렇게 까다롭게 구는 것은 뭐냐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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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참하게 기다려 주민증(손을 주시하라) 비스무리한 것을 받아낸 두 이민자. 왼쪽이 우람. 오른쪽은 조금 어린 우람의 동거인. 배경은 아일랜드 이민국.

새로 입사한 회사에 브라이언이라는 호주 친구가 하나 있다. 이 친구도 1/4 아일랜드계인데 호주가 따분하다고 작렬(?)중인 동북아시아에서 일해보려 한다. 여튼 이 친구의 취업비자때문에 회사가 아주 고생하고 있다. 이래저래 복잡한 것이 많다네.
그런거보면 남의나라 이민국 욕만 할 것은 아니지만 뭐랄까 조금 관용이 필요한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나도 외국인에게 내 직장을 빼앗기면 배타적이 될까? -_-

기다리는동안 근처의 세인트 스테판스 그린이라는 공원에서 뒹굴다. 1663년 개장이다. 이나라는 집들도 기본적으로 백년 이백년이다. 이후 다녀보니 아마도 전 유럽이 모두 이모양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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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에서 뒹굴다.

여튼 이 공원 상당히 이뿌다. 조그마한 꽃밭과 잔디밭 그리고 바깥쪽의 나무, 사이사이의 오솔길, 작은 호수들. 깔끔할 뿐인데 그것만으로 충분히 이쁘다. 여튼 도시 전체가 우리가 생각하는 전원주택 그것이다. 꽤 번화가에도 10층 이상되는 건물 찾기 어렵고 고작 4-5층이다. 지랄같은 네온사인 홍수와 뿡뿡거리는 최신 유행가가 흘러나오는 가게들도 당연히 없다. 이곳은 건물들은 채도가 낮고 광고는 조금 채도가 높되 눈을 아프게하지 않을정도로만 화려하다. 길거리에서 흘러나오는 음악들은 거리의 악사들이 연주하는 것이다.
서울같은 메트로폴리스에서 26년째 살고있는 나는 당혹스럽다. 이들은 이정도로도 충분한걸. 어제 히드로에 내리면서 봤던 런던의 느낌도 그랬다. 레고마을을 보는 느낌이었다. 미쳐버린 서울은 사람들을 잡아먹고 잡아먹고 잡아먹어 그렇게 비대해져버렸다. 천박한 네온사인의 홍수를 보고있으면 내 마음은 딱 그 화려함만큼 초라해진다.
공원에 널부러져서 농담따먹기를 하다가 다시 이민국에 들어오다. 아직도 30분은 기다려야 한다. 조금 더 불만을 적어보자.
미술관과 박물관도 그렇다. 여기의 그것들은 솔직히 그다지 훌륭하지 않다. 하지만 그들은 끊임없이 스스로를 캐릭터화하고 이미지화하고 정리한다. 반면 우리는 너무나 우리를 꾸미지 못한다. 우리의 현대미술관은 사람들과 유리된 채 과천에 덩그렇게 놓여있다. 그곳에 있는 작품들은 그다지 미술사적으로 정리가 되어있지 않다. 몇몇 훌륭한 작품들이 당연히 있지만 그보다는 왜 있는거지 싶은 작품들이 훨씬 많다. 그 당혹스러운 미술관의 효용은 그나마 고즈넉한 건물과 공원이 있다는 것 뿐일것이다. 그나마 왜 놀이동산이 그 옆에 있는 것이지?

우람이 집 계약문제를 해결해야 해서 집에 일찍 들어왔다. 녀석이 그래도 최고참이라 나이도 있고 영어도 개중 나아 각종 해결사 및 대빵노릇을 하고있다. 집주인들이 오는데 이들은 집을 여러 채 세주고 놀고먹는 노친네들이라고 한다. 한달에 한번쯤 잘 살고들 있는지 집은 깔끔하게 쓰는지 순회공연을 돈다네.
오호 이놈 영어하는 것 보니 돈 퍼부은 보람은 좀 있나보다. 꽤 괜찮다. 그러나 이후에는 이 유창한 영어실력이 별로 쓸 곳이 없었으니 스페인에서는 영어가 하나도 안통했다. -_-

한집에 살고있는 여러 동거 어학연수생들과 함께 저녁을 먹었다. 그래도 손님이라고 여기서 차려줄 수 있는 가장 거한 음식들이 나왔다. 여기를 벗어나면 못먹지싶은 육개장 국물이 있어 싹 비웠다. 너무나 졸려서 9시도 되기전에 잠들었다. 아직 시차적응이 안되었나보다. 뭐 알게뭐냐. 나는 어차피 휴식을 위한 보신 노인 여행을 나온걸.
이상하게 글쓰는데 팔목이 아프다. 이거 아무래도 직업병같다. 나중에 병원이라도 함 가야하나.


가장긴하루 <= 어털리 버털리 => 미래를위해예스를

거북이유럽서부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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