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위해 예스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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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09 27 金 : 아일랜드의 미래를 위해 예스를 Vote Yes for the Ireland's Future[ | ]

자다가 두번이나 일어나서 화장실에 갔다. 두번째 화장실을 다녀오니 잠이 다 깨버렸다. 거실로 내려가 실비언과 프립DavidSylvian & RobertFripp의 The First Day를 들으며 일기나 끄적거리고 있다. 이건 내가 아일랜드에서 음악에 굶주리고 있을 WooRam을 위해 구워서 보내준 음반이다. 역시 내가 좋아할만한 음악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커피나 담배가 동반자라면 나에게 그것은 음악이다. 이번엔 그것을 과감히 두고왔다. 소음을 들어도 여기 소음을 듣자는 생각때문이었다. 아직 금단현상은 없다. 이후 금단현상은 계속 없었지만 뭐랄까 이 경치에 이런 음악이 있으면 얼매나 좋을꼬 하는 생각을 지속적으로 하게된다. 그리고 CD를 사면서도 계속 듣고싶다 듣고싶다는 생각을 했고 말이다.

어제는 지나오다가 중고판 가게가 있어서 들렸었다. 싱글 CD 2E, 7인치 싱글 1E, CD 8-10E, LP 6-8E 이건 매력도 제로다. 그정도 구질구질한 컬렉션으로 그 가격을 붙이다니 아주 실망이다.
WooRam이 아일랜드의 첫인상을 물었었다. 나는 그저 그렇다고 답했는데 우람은 나에게 아주 정확하게 봤다며 칭찬아닌 칭찬을 했다. 확실히 이 나라의 도시는 별다른 매력이 없다. 낙농업과 구리수출을 빼면 산업다운 산업도 없는 나라이고 IT강국이라는 소문이 있지만 조선땅에 비하면 우습다.
아 오자마자 실망이라니.

요즘 사방에 예스를 찍으세요, 노를 찍으세요 각종 플랭키드가 난무한다. 외국인 이민자들에게 직업을 내줘도 되는가에 대한 국민투표가 있을 예정이라고 하네. 이나라는 골수 카톨릭이라서 이미 낙태합법화도 국민투표를 통해 부결된 나라다. 덕분에 많은 미혼모들이 영국에 가서 애를 떼고 온단다. 여튼 "아일랜드의 미래를 위해 예스를"이라는 구호가 마음에 든다. 어제 박물관에서 마이클콜린스의 옷을 사진찍었는데 그 인간이 살아있었으면 부르짖을 구호일지도 모르겠다. 공부를 좀 더 하고올걸이라는 생각이 엄청나게 밀려든다.

아침에 우람이 라면을 끓여주어 먹고가다. 싱가폴 산이라고 하는데 맹숭맹숭하지만 먹을만은 했다. 하지만 역시 라면은 매워야...-_-
여기서 어학연수중인 처자 하나가 뭔가 상의할 것이 있는지 우람의 집에 놀러왔다. 알고보니 상계동에 살았고 용화여고 출신이라고 한다. 무릇 상계동에서 용화여고 출신이라고 하면 세칭 용녀라하여 일대에서는 다들 알아준다. 왜 알아주는지 알 수가 없지만 그냥 알아준다. 뭐 좋은 대접을 받거나 하는것은 아니다. -_- 여튼 바이킹들이 만들어둔 이 이역만리 먼 곳에서 용녀를 만난다는 것은 재미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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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니티 칼리지에 있는 고목. 이런 큰 나무들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몇백년이라는 절대시간이 필요하다.

도심으로 나와 어제 못본 트리니티 칼리지로 가서 켈스의 서를 보았다. 가이드 포함 8E. 이거이 정체가 뭔고하면 옛 수도승들의 바이블 필사본이다. 이나라는 골수 카톨릭이라 수도승들을 엄청나게 배출한 나라라 그런지 이런 것이 국보급 대접을 받고있다. 중세 유럽에 수도승들을 많이 공급했다고 한다. 이나라에서 본 몇안되는 문화재스러운 것이다. 하지만 8E는 너무나도 비싼 가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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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의 기록형태. 돌에 선을 세개 그으면 A 뭐 이런 식으로 무식하기 짝이 없게 기록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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켈스의 서에 사용된 것과 같은 장식적인 글씨들. 이 책은 그야말로 노가다의 결정체라 할 수 있다.

바로 붙어있는 옛 도서관이 훨씬 인상적이다. 책 삭는 냄새가 알싸하게 나는 그곳에서 베케트가 책을 읽곤 했단다. 아 이 냄새는 코에 익은 그것이다. 학부다닐때 양서부와 한서부의 큰 차이가 있었다면 바로 이 냄새였다. 오직 양서부에서만 나는 그 뽀송한 곰팡이 냄새. 종이 질의 차이때문에 그렇다고 한다. 조선의 책들, 특히 70년대에 찍은 책들은 그 종이 질이 빈하기 이를데 없어서 종이들이 금방 맛이 간다고 한다. 하지만 오히려 그보다 오래된 책들이 더 오래가는 경향이 있다고 하네. 여튼 이 냄새를 맡으면 도서관에 있다는 느낌과 책을 읽어야지 하는 의욕이 솟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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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니티 칼리지 도서관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가이드해주는 꼬마 양키놈은 여기 공대를 다니는 재미있는 녀석이었다. 머리를 쫙 붙이고 염색을 얌시럽게 한 친구인데 말하는거나 표정은 장난스러운 것이 보고있다보면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작 하는 설명이라곤 여기는 몇년도에 지어진 도서관, 여기는 몇년도에 지어진 법대건물 뭐 이런거였는데 종종 유머를 섞는지 사람들이 웃곤했다. 말이 너무 빨라서 좀 느리게 말해달라고 했건만 이녀석이 알았다고 그래놓구 또 빨리 말한다. 상처를 받았다...-_- 여튼 이 대학 건물들은 얼추 오백년가까이 된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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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니티 공대생 가이드

나와서 요구르트를 사먹었다. 엄청 크다. 500ml인데 1E도 안한다. 역시 유제품은 싸군, 기뻐하며 먹고있는데 우람이 말한다. 이거 유전자 조작인걸. 유전자 조작식품은 organic이라는 표시를 하는가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건 유기농일때 쓰지 않나? -_- 여튼 그럼 그렇지 이거라고 쌀 리가 있겠어 하면서 조금 더 걸었다.
엽서를 부치다. 57C * 3.

더블린 성에 갔다. 그냥 조그만 AFC다. 역시 시골 영주스러운 성이라고나 할까. 요즘은 동네 주차장으로 쓰고있는 모양이다. 음악회같은 공연이 붙어있어 봤더니 현악 사중주단이 공연한다는 것이었다. 뭐 이런 것은 부러운 일이다. 너무 시골스러운 성이라 뭐 볼게 있으랴 싶어 안들어갔다. 3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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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장으로 쓰이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

바로 옆에 더블린 시청이 있다. 시청 박물관도 있다. 이것도 안봤어야 했는데 왜 들어갔는지 이해가 안된다. 학생할인 1.5E. 시의 역사를 보여주는 곳이다. 여기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번호를 누르면 설명이 나오는 가이드를 준비해놨다는 것. 사실 알고보니 다른 유럽의 미술관이나 박물관들에도 다들 있더라. 나야 귀가 먹통이니 별 도움은 안되지만 이런 것은 배워야하지 않나 싶다.
이동네 유적들은 항상 출구쯤에 기념품 가게가 있다. 그 유적의 이미지를 로고화해서 티셔츠, 악세사리, 엽서 등을 만들어 판다. 뭐 아기자기하고 이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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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회 성당

예수회 성당으로 갔다. 여기도 한 천년은 묵은 곳이다. 학생할인 1.5E. 스테인드 글래스와 높은 천장이 있는 교회로 지금도 미사를 진행하는 곳이다. 사실 유럽에서 볼 수 있는 대부분의 성당이 지금도 다들 미사보고 있는 곳들이다. 왠 꼬마놈이 파이프 오르간을 연주하고 있길래 오 훌륭하군이라고 생각해주었지만 계속 삑사리가 난다. 역시 아일랜드는 유럽의 시골스럽다. 별다른 곳이 없는 AFC였고 유물만 따로 모아 또 돈을 받는 그 상혼이 인상적이었다. 야소형 당신이 시키셨수?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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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회 성당에 있던 수많은 스테인드 글라스 중 하나

걷다가 중고판가게를 발견해서 당연한 듯 들어가다. 이런 작태는 이후 유럽여행이 끝날때까지 전혀 고쳐지지 않는다. -_- 여기는 각종 부틀랙과 희귀 아이템을 파는 곳이었는데 집에서 굽고 칼라복사를 한 듯한 이 쓰레기같은 품질의 부틀랙을 장당 25E 가까이 팔고있다. 이런 미췬넘들. 이태리만큼도 못만들잖아 이거. 내가 와서 만들고 말겠다. -_-+
옆에 만화가게도 있었는데 조선과는 영 분위기가 다르다. 아주 얇은 만화책을 시리즈로 팔고있는데 우리나라나 일본에서 보는 만화책과는 생긴게 영 다르다. 익스트림이라는 한국만화도 있었다. 이 얇은 만화책 한권이 무려 7E. 이나라는 유제품 외에는 싼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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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지 좋아보이는 리피강. 하지만 별볼일 없음 -_-

버스타고 현대미술관에 갔다. 입구와 본관의 거리가 족히 1km는 된다. 이거 서울대를 연상시킨다. 다른 곳들처럼 성인지 집인지를 개조해서 미술관으로 만든 곳인데 방단위로 전시물이 걸려있다. 우리나라로 치면 아흔아홉칸 집의 방마다 미술품을 걸어두고 사람들이 들락날락거리며 보는 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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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손가락 끝이 가리키는 곳이 미술관이다. 인간적으로 너무 멀다.

토마스 러프Thomas Ruff라는 독일 사진작가의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는데 이 인간 완전히 뽀르노 사진가다. 남녀 동성애나 혼음장면들을 뿌옇게 어둠속에서 카메라 흔들리듯 찍어놓구선 이걸 작품이라고 주장하는거다. 또 다른 곳에는 아주 평범하기 짝이없는 초상화 사진들을 좌라락 걸어두고 있는 방이 있었다. 이것을 본 우람은 이날부터 앞으로 자기는 모던아트 작가가 될 것이라고 읊어대기 시작했다. 이후 나를 피사체로 삼은 우람의 모던 아트 작품이 몇개 생기게 된다.
어딜가도 녹지가 참 많다. 부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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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꼭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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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이 가장 유명하면서도 나름대로 가장 에로틱하고 그의 사진을 잘 표현했다고 생각되는 사진이다. 더 껄쭉한 사진을 원하면의 갤러리를 방문하시라. ||   ||

칼마인함 교도소에 들렀다. 학생할인 2E. 그냥 옛날 감옥이다. 별건 없고 어떤 인물들이 어느 방에 투옥되어있었다라는 것을 줄줄 읊는 곳이다. 감옥보다는 투어 가이드가 인상적이었는데 이 친구는 눈을 부라리거나 목소리를 떨면서 누가 어떻게 죽어갔다는 둥 뭐 이런 소리를 계속 해댄다. 아주 열혈 애국자인듯. 말이 너무 많아 힘들었다. 차라리 조이스 박물관이나 기네스 양조장에나 갈걸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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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도소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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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방에서 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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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도소 외부

시내로 나와 피쉬 앤 칩스Fish'n Chips로 요기를 했다. 8E. 배고파서 진짜 잘 먹었다. 별건 아니고 패스트푸드점에서 주는 감자튀김의 대형 버젼 몇개와 물고기 튀긴 것을 함께 주고 그 위에 소금과 식초를 뿌려먹는 것이다. 이 동네에선 그냥 패스트푸드 분위기로 판다. 훈제 연어가 조금 뻑뻑했다.

아일랜드의 자랑(?)인 펍에 갔다. 술집이 잔뜩 모여있는 템플바Temple Bar라고 하는 동네에 갔는데 아주 왁자하다. 우리나라로 치면 신촌 분위기쯤 될까나. 물론 네온사인과 호객 삐끼는 없다. 펍이 천개가 넘는다고 한다. 동네 악사들이 아이리쉬 음악을 연주하는걸 들으며 기네스 한 파인트를 마셨다. 조금 독하긴 하지만 부드럽게 술술 잘 넘어간다. 이후 기네스는 종종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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왁자한 템플바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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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잔씩 걸친 우람과 거북. 가운데 보이는 잔이 기네스 맥주.

'더블린 사람들'의 인상중 제일 강한 것은 다들 걸음이 빠르다는 것이다. 이것은 오직 아일랜드에서만 느꼈던 독특한 것이다. 내 걸음의 두배는 되는것 같다. 다리가 좀 길어서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뭐가 그리 바쁜지 애나 노인이나 할것없이 열심히 걷는다. 우람의 말에 의하면 그 안에 섞여있다보면 열심히 걷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단다.
그리고 그렇게 뚱보가 많다. 이것은 영국도 마찬가지였는데 그 원인은 기름진 음식과 맥주일 것이다. 배가 산만한 사람들도 아주 많다. 마른 여자들도 다들 옆구리 살들은 잡힐 정도인데 그러면서도 꿋꿋하게 허리가 드러나는 옷들을 입고다닌다. 이건 민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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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웨이에서 도촬한 옆구리 삐져나온 처자. 이 처자 정도면 매우 양호한 축에 속한다. 훨씬 심한 사람도 많았는데 고작 도촬한 것이 이정도다. 도촬에 재능이 없는듯.

이곳은 아주 오래된 도시라 길이 매우 좁다. 보통 2차선이고 아주 넓어야 4차선이다. 만성 교통체증이 있다. 그렇다고 2-300년 된 건물들을 부수지도 못하고. 그래서 유럽의 도시들은 보통 구시가를 내비두고 신시가를 만든다음 사람이 몰릴만한 곳들을 신시가로 옮기는 식으로 도시를 키워나간다. 일단 부순다음 생각하는 조선과는 전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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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사람이 많을 때의 오코넬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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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피강의 야경

집에오니 다른 어학연수생들이 모여있어 농담따먹기를 조금 하다가 누웠다. 우람과 이런저런 오래된 이야기를 하다보니 시간 잘 가더라. 그나저나 이놈은 기억력이 정말로 좋다. 이놈 말고도 내 친구놈들은 기억력 좋은 놈들이 좀 있다. 나는 나쁜 기억력을 보완하기 위해 친구들의 뇌를 빌리는 것일까?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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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이유럽서부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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