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지와 아이들 리뷰

서태지와 아이들 리뷰
서태지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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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지와 아이들'을 여기에 적는 것을 조금 어색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나는 기본적으로 비교적 알려지지 않았지만 다시 알려져야할 이유가 충분하다고 생각되는 음반과 뮤지션에 대해 언급하는 공간으로 이곳을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서태지는 너무 많이 팔린 뮤지션 아니던가. 그의 존재가 중소기업 서너개 합친 것 이상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언급된 적도 있었으며 그가 한번 광고에 나온다거나 다음 앨범에 대한 계약을 어디와 맺느냐만으로도 충분히 뉴스거리가 될 정도였으니 말이다.
아이돌로서의 서태지가 어떤 식으로 영향을 미쳤는가에 대한 글들은 수없이 있고 심지어는 책으로도 몇권 나왔다. 나는 음악가로서의 서태지에 대해 내가 느낀점들 몇가지 써보려고 하는 참이다.

그가 내놓은 앨범이 '서태지와 아이들'과 솔로시절 정규 비정규로 얼추 열장이 넘는다. 정규앨범만 6장이다. 이정도면 사실 뮤지션으로서는 상당한 경력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건 해외에서 얘기고 우리나라에서는 좀 사정이 다르다. 싱글시장이 없는 우리나라에서 인기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선 앨범을 내는 사이클이 빨라야 했다. 때문에 우리나라의 대중가수들은 싱글로서 의미가 있는 곡들과 그 외에 적당히 채우기 위한 곡들을 묶어서 30분 간신히 넘는 앨범들을 양산하곤 했다. 서태지도 그런 혐의에서는 벗어날 수 없으며 그의 앨범들 중에는 30분이 채 안되는 것도 있다. '아이들'과 결별한 이후 그는 상당히 뜸하게 음악활동을 하고 있지만 '서태지와 아이들' 시기에는 단지 반년정도 활동을 멈춘 것만으로 '잠적'이라고까지 했었으니까 말이다. 당시 가요계에서 일년에 두 장정도 내놓는 것은 예사였다. 그러니까 앨범 두 장을 한 장정도로 생각해본다면 그는 음악가로서의 인생에서 앨범 서너장정도를 내놓아 중견 뮤지션이 되려고하는 시점이라고 보는 것이 맞을것이다. 아직 한창때라는 얘기다.

나는 서태지가 뮤지션으로서 자각하기 시작한 시점을 '서태지와 아이들' 3집을 녹음하던 때라고 생각한다. 2집까지는 샘플링 가득한 댄스뮤직이었지만(물론 무뇌 댄스 뮤직들과는 전혀 달랐던) 3집부터는 몇몇 곡들에서 밴드 구성을 갖추어나갔고 음악과 가사의 연관성이나 앨범의 톤이라는 것을 의도했기 때문이다. 물론 2집에서도 '하여가'와 '수시아'같은 주목할만한 곡들이 있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아직 가볍다는 느낌을 지우긴 어렵다. 반면에 3집은 메틀 리프의 도입, 구성을 갖춘 곡 구조, 의식적으로 쓴 가사 등 2집에 비해 진일보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러한 진보는 아이돌 팬으로 환호하던 단순한 팬들을 존경심을 갖춘 숭배자들로 만드는 것으로 이어졌다. 이 순간 서태지는 정말로 대단한 존재가 되었다. 한국 대중음악의 흐름을 움직이는 최선두에 설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이 시점에서 자신의 뿌리이기도 한 시나위 시절을 되살려 하드락/메탈쪽으로 움직였다면 한국 대중음악에서 헤비 사운드가 단숨에 올라올 수 있었을지도 모르고 4집에서 힙합에 대해 맛만 본 것이 아니라 제대로 해봤다면 한국 힙합의 폭발은 몇년 더 빨리 왔을지도 모른다. (역사에 가정은 필요없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서두~)
물론 서태지가 그런 특정 장르를 이끌 수 있는 뮤지션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그에게 폭발의 방아쇠가 될 수 있는 역량은 충분하다. 그는 트렌드를 만들어낼 수 있는 드문 뮤지션이었기 때문이다. 내 생각에 서태지는 흔하지 않으면서도 대중적인 멜로디를 만드는데 능하고 타 장르를 살짝 불러와서 적당히 곡에 배치하는 것에 능하다. 즉 서태지와 아이들 3, 4집에서처럼 다른 스타일을 차용한 자신만의 '가요'를 만드는 것이 그에겐 최선이 아니었는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어쨌든 서태지는 무슨 이유에서였는지 4집 이후로 한걸음 물러서는 행보를 보여왔으며 이후 다시는 예전과 같은 문화권력을 되찾지 못했다. 솔로로 돌아온 그는 '괴수 대백과 사전'이라는 자신의 레이블을 만들어보기도 했지만 사람들이 기대하는 만큼의 활동을 보여주지 못했다. 핌프락을 들고 돌아왔지만 이미 그때는 인디씬이 폭발한 다음이었고 다양한 음악인들이 각자 어딘가에서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고 있었을 시점이었다. 서태지가 트렌드를 잡고 움직일 수 있는 시대는 이미 지나갔던 것이다.

서태지가 내놓은 앨범들 중에서 나는 단연 '서태지와 아이들 4집'(1995)이 최고라고 생각한다. 이 앨범은 나오자마자 'Come Back Home'이 싸이프러스 힐의 창법과 유사하다는 이유로 표절시비에 휘말렸으며 '시대유감'이 공륜의 가사수정에 항의하는 의미로 연주만 실리는 등 상당한 화제를 몰고다녔던 앨범이다. 그런데 단지 서태지였다는 이유만으로 이 화제들은 그다지 단순하지 않게 되었다. Come Back Home의 표절시비는 국내에서 그다지 알려져있지 않던 싸이프러스 힐의 음반 판매고를 높일 정도로 커졌으며 가출 청소년들이 이 곡을 듣고 귀가했다는 농담이 있을 정도로 강력하게 어필했다. 그리고 Come Back Home은 표절이 무엇인가에 대해 사람들이 생각하게 해주었다. 시대유감 보컬 버젼의 누락은 사람들에게 사전심의가 얼마나 불합리한 것인지를 알렸고 결국 가요 사전 심의 철폐의 큰 동력이 되었다. 정태춘이 뮤지션의 긍지를 걸고 집요하게 사전 심의 철폐 운동을 해오고 있었을 때 서태지가 의도했든 아니든 힘을 실어주었던 것이다. 결국 사전 심의에서 사후 심의로 바뀌었고 서태지는 그것을 기념이라도 하듯 '시대유감'의 보컬버젼과 예전 곡들의 리믹스 버젼이 담긴 EP를 발매하기도 했다.

이 4집의 주된 감각은 훵키함이다. 3집에서 메틀 사운드를 도입하여 앨범에 묵직함이라는 느낌을 담았다면 이 앨범에서는 그루비한 리듬파트와 힙합 스타일의 도입으로 앨범 전체에 훵키한 느낌을 담아내었다. 언제나처럼 처음에 담긴 인트로곡 Yo! Taiji에서 이미 통통튀는 리듬에 훵키한 기타사운드를 들려주며 이 앨범의 분위기를 알린다. 다음곡 '슬픈 아픔'은 느린 템포로 진행되어 언제나와 같이 꼭 한두곡 들어있는 발라드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지만 듣다보면 스매싱 펌킨스를 조금 연상시키는 락넘버이다. 다음곡 '필승'은 독특한 구성으로 인상깊은 곡이다. 초반에 잠깐 나오는 나레이션이 지나가자마자 터지는 서태지의 울부짖음이 실연의 아픔을 말 그대로 터뜨려버리는데 적어도 내가 들었던 것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연가가 아니었나 싶다. 집요하게 반복되는 훵크 기타 사운드와 힙합스타일의 리듬파트가 들을수록 맛깔스럽다. 다음곡 'Come Back Home'은 지금 들어보면 그다지 싸이프러스 힐과 비슷하지도 않다. 뭐 스타일 자체는 조금 따라한 감이 있지만 뭐랄까 토속적이라고 할까. 요즘 국내 힙합들이 쥐어짜면 검은 물이 나올 것 같은 끈적함을 가지고 있는 반면에 Come Back Home은 아직 래핑이나 연주에서 가요적인 맛이 있고 그래서 그런지 좀 친숙한 느낌이 든다. 조금 연습하면 금방 따라부를 수 있을것 같은 그런 느낌이다(해봤지만 쉽게 따라할 수는 없었다...-_-). 다음곡 '시대유감'은 아마 이 앨범에서 가장 연주가 훌륭한 곡일것이다. 락적인 훅과 리드믹한 요소가 잘 버무려진 느낌이고 중간중간에서 잘 끊어주고 있어 3분대의 짧은 곡인데도 엉성하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각 연주 파트도 어디 하나 튀는 곳 없이 멋진 앙상블을 만들고 있기 때문에 연주곡만 담겨있어도 그다지 불만이 생기지 않는다. 3집에 있던 '발해를 꿈꾸며'의 연주곡은 사실 없어도 좋지 않았을까 했었으니까. 사후심의 철폐 후 나온 EP에 담긴 이 곡의 보컬버젼도 매우 만족스럽다. 3집의 '교실이데아'에 비하면 가사도 그다지 시니컬하진 않은데 왜 굳이 심의에서 거르려고 했는지 이해가 안된다.

'1996, 그들이 지구를 지배했을 때'는 비스티 보이즈같은 그룹이 잘 쓰는 오르간 소리와 스크래치로 시작하는데 댄스와 힙합이 잘 섞인 곡이다. Come Back Home에서 사용했던 보컬 스타일을 다시한번 사용하고 있는 곡으로 왠지 헐렁한 청바지와 야구모자에 주머니에 손을 찌르고 몸을 흔들고 싶은 느낌을 준다. 'Taiji Boys'는 그냥 짧은 그룹송이다. 아니나 다를까 'Good Bye'는 서태지와 아이들의 앨범에 항상 담겨있는 소녀풍 발라드다. 이 앨범에서 유일하게 분위기랑 맞지 않는 한 곡이다. 'Free Style'은 중간에 스크래치도 넣고 기타솔로도 있고 시나위 시절의 동료 김종서의 보컬도 들어가있는, 가벼운 마음으로 들을 수 있는 곡이다. 메틀 리프가 반복되면서 그 사이사이에 개인기(?)를 보여주기 때문에 무겁다는 느낌이 안드는게 아닌가 싶다. 마지막 곡 '이너비리스너비'는 무의미한 소리를 담고있다는 점에서 3집에 담겼던 '내 맘이야'와 비슷하다. '내 맘이야'가 비논리적인 문장을 내뱉고 있다면 여기서는 무의미한 말을 하고있다는 차이는 있지만서두. 'Free Style'보다는 '내 맘이야'나 '이너비리스너비'가 더 서태지식 프리스타일이 아닌가 싶다. 전체적으로 이 후반부는 앨범의 전반부에 비해서 응집도나 완성도에서 떨어지는 편이다.

그가 좀 더 뮤지션으로서 성장해보려고 했던 솔로 1,2집은 이전만큼 성공적이진 못했다. 가사전달이 잘 안되는 그런 곡들로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기는 어려웠지 않았나 싶다. 물론 음반 자체야 팬들에 의해 준수하게 팔렸고, 현재 절판인 솔로 1집은 고가에 거래되고 있는 형편이다. 개인적으로 솔로 1,2집은 꽤 괜찮다고 생각한다. 곡들을 따로 들으면 그런대로 괜찮은데 앨범으로 들으면 뭔가 '헐리우드 키드'가 만든거 같아서 자주 듣게 되는 편은 아니지만 말이다. 문제는 3년만에 내놓은 다음 앨범 Re-recording & ETPFEST Live(2003)같은 음반이다. 솔로 2집의 재녹음+라이브 앨범인데 사실 이런 행동은 음악의 질을 떠나서 그다지 건실한 것은 아니다. 그는 아직 헤비 사운드에 미련이 있어보이는데 기왕 그랬다면 솔로 2집의 연장선상에 있는 새 앨범을 녹음하여 정면승부를 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지 않았을까. 솔로 1,2집은 도발적이었다는 점에서 적어도 회피는 아니었다.

서태지를 편한 마음으로 '작가'라고 부를 수 없는 것은 그가 앨범을 완결된 작품으로 내놓기 보다는, 음악 자체에 집중하기 보다는 음악을 자기 스타일의 일부 정도로 취급하기 때문이다. 사실 서태지 정도되면 뭘 해도 사람들이 봐줄텐데 너무 대중들을 의식하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서태지가 좀 더 좋은 앨범을 만들 수 있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그는 예전만큼 판매고를 올려야겠다는 욕심 혹은 부담이 있었겠지만 사실 그런 것은 실력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어차피 그렇다면 음악적으로 더 나래를 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뭐 서태지는 탁월한 전략가였으니 당시는 치고 빠지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재미있는 것은 내게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의 곡들이 솔로 시절에 비해 더 오리지널리티가 있는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든다는 사실이다. 본격적으로 한가지 음악 스타일을 추구한건 솔로시절 쪽이 더 강한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일반인들에게 비틀즈는 'Yesterday'로, 레드 제플린은 'Stairway to Heaven'으로 기억되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 아닐까. 적어도 확실한건 솔로시절 곡들보다 '아이들' 시절의 곡들이 내 머리에 확연히 박혀있다는 사실이다.

뭐니뭐니해도 사실 음악이라는 것은 감각이고 추상적인 것이다. 감각은 또 매우 주관적인 것이니 백개의 귀가 있으면 백가지 평가가 있을게다. 나에게는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에 들려준 음악이 지금보다 훨씬 '감각적'이었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서태지가 다시한번 그 감각을 보여줬으면 좋겠다. -- 거북이 2003-10-24 12:52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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