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이야기

1 # 비와 심리변화[ | ]

어제, 그러니까 2007년 9월 14일 금요일은 서울에 예고없는 꼬마폭우가 내렸다. 우산이 없었지만 뭐 일단은 건물 내에 있고 또 택시를 타기도 하여 우산없이도 좀 버틸 수 있었다. 이마무라 쇼헤이 영화를 보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는데 아 비가 꽤 올거 같아서 우산을 사러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우산이 죄다 만원 넘는 녀석들만 있는 것이다. 이건 좀 아니다 싶어서 다시 금방 택시를 잡으려고 움직였다. 그런데 비오는날 종로에서 택시를 잡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종로에서 명동쪽으로 이동해야 했으므로 어떻게할까 하다가 덕수궁 돌담길쪽으로 가면 되겠다 싶었다. 그 와중에도 여러번 택시를 잡거나 버스를 타보려 했지만 정류장을 잘못 찾거나 택시를 뺏기거나 하여 계속 실패했다. 그런데 알고보니 덕수궁 돌담길은 일방통행이었다. 기묘한건 덕수궁쪽은 일방통행이지만 광화문쪽은 일방통행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 부분을 놓쳤던 나는 결국 택시잡을때까지 비를 쫄딱 맞았다.

처음에는 너무 비싼 우산을 사고싶지 않은 것이었지만 비를 조금 맞다보니 이젠 비맞은 것이 아까워서라도 계속 맞게 되었다. 맞다보니 에라 모르겠다 싶어서 택시잡기는 포기하고 걸었다. 뭐 이미 일방으로 들어온지라 잡으려해도 잡을 수 없었다. 잠시 맛이 간 상태였으므로 우산이고 뭐고 그냥 걸었는데 걷다보니 정신이 좀 들었다. 조그만 가판대에서 우산을 하나 샀다. 주인 아저씨가 왜 비를 다 맞았냐며 안되었다고 500원을 깎아주는 센스를 보여주셨다. 그 우산을 집어들고 나와보니, 명동까지 이어지는 지하도가 생각났다. 결국 비는 맞을만큼 다 맞고 지하도에 들어간 것이다. 이것 참. 그렇게 명동으로 가서 이마무라 쇼헤이의 작은오빠를 보았다. 다행히 영화는 즐거웠고 그래서 기분도 좋아졌다.

요즘 만날 우산을 가지고 다녔었는데 기습 폭우에 하도 오랜만에 비를 맞으니 적절한 대응능력을 잃었었다. 그런데 맞다보니 츄리닝 입고 가방은 없이 비를 맞는다면 나쁜 기분은 아닐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어제는 신발도 다 젖고 아주 엉망이었어. -_- -- 거북이 2007-9-15 12:25 pm

2 # 비에 관한 몇가지[ | ]

  1. 비가 오면 창문을 일단 연다. 그리고 창밖을 보면 자연스레 방관자가 된 느낌을 받게된다. 안정된 곳에서 비와 비오는 사람을 보며 여러가지 잡생각을 하곤 한다. 사무실에서도 비오는 바깥을 멍하게 바라볼 때가 있다. 역시 커피 생각이 난다. 비가오면 전달되는 싸늘한 공기가 마음에 든다. 갑자기 가을이 되는 것 같다.
  2. 비는 센치한 기분이 들게 만든다. 비 노래는 수도 없이 많다. 비가 오면 빗소리를 듣기도 하지만 뭔가 음악을 틀게 된다. (사실 나는 언제나 음악을 튼다. -_-)





  1. 하지만 비를 밖에서 만나면 일단 피하고 본다. 아무래도 머리카락에 신경이 쓰이기 때문. 가방이 젖으면 낭패가 되기도 하고.
  2. 비가 오면 물웅덩이를 피하며 걷는다. 당연한 행동이긴 한데 어느새 놀이처럼 하고있는 나를 발견할 때가 있다.
  3. 비가 오는 방향으로 우산을 돌린다. 아무래도 박쥐우산보단 좀 큰 우산이 낫다싶을 때가 있다. 아기엄마를 위해 어깨에 거는 우산도 나왔다고 한다.
  4. 우산은 애용품이지만 우비와는 참 인연이 없었다. 그건 내가 더위를 많이 타기 때문이다. 우비를 쓰면 정말 덥다. 훈련소에서 판초우의라 불리는 우비를 쓰고 훈련받을때도 우비가 너무 덥고 거추장스러워서 힘들었다.
  5. 역시 비는 밤에 오는 것이 좋다. 아침 공기가 상쾌해지기 때문에. 그리고 낮에 오면 좀 번거로우니까.
  6. 하지만 내가 활동할 시간에 비가 오길 기다린 기억도 있다. 사랑하는 여자 때문인데 그녀와 집에 가는 길에 찰싹 달라붙을 수 있는 기회를 비가 만들어주었고 결국 어느 비오는 날 자연스럽게 그녀의 손을 잡을 수 있었다. 그 시기에는 비가 오면 즐거웠다.
  7. 대만에 갔을 때 비오는 날 배를 탄 적이 있었는데 태풍에 준하는 폭우가 얼마나 무서운지 실감할 수 있었다. 불보다 물이 더 무섭다는데, 정말 물이 무서웠다.
  8. 비가 올 때 운전을 하면 역시 무섭다. 시야도 좁아지고 길도 엉망이 되니까 운전이 어려워진다. 영화의 살벌한 장면에서 어둠과 함께 비가 종종 내려주는 것은 상투적인 표현이 될 수 밖에 없다.
  9. 비가 오면 무서우니까, 연인은 고립되거나 이별하기 쉽다. 공무도하가에서 물에 휩쓸려 님이 돌아가시는 것도 분명 비가 많이 와서 홍수난 상황일게다. 연인이 고립되었을 때는 인연을 만들어주기도 하지만 이별하면 슬프다.
  10. 비는 이중적이다. 안오면 가뭄이고, 많이 오면 장마다. CCR은 Have you ever seen the rain과 Who will stop the rain이라는 상반된 제목의 노래를 불렀다.
  11. 비가 만드는 상투적인 장면 중 또 하나로 우산을 들고 마중나가는 것을 들 수 있다. 난 항상 과도하게 자립적인 아이였기 때문에 부모님이 우산들고 나오는 것을 싫어했다. 대충 뭔가를 뒤집어쓰고 뛰어가는 것을 선호했다. 사실 아버지 어머니는 우산들고 나오시는 것을 나름 좋아하셨던 것 같다. 왜 난 그리도 쓸데없이 혼자 잘난 아이었을까. 요즘은 차로 마중나가는 이미지로 바뀌지 않았을까 싶다.
  12. 생각해보니 내가 본 가장 기억에 남는 섹스신은 '무릎과 무릎사이'에 나온 이보희와 임성민의 빗속 진흙탕 섹스장면이다. 꽤 어릴때 보았는데 잊혀지지 않는 이미지가 되었다. 내 휘발성 기억력을 생각해보면 아직 남아있는 이 이미지가 얼마나 강렬했는지 알 수 있다. 원초적 본능에서 샤론 스톤이 만든 이미지만큼이나 강렬하게 남아있다. 임성민은 요절했던가. -- 거북이 2007-9-15 11:28 am

3 # 촌평[ | ]

1. 비와 연인하니까 생각났는데..
우산없이 비오는 날 길을 나서야 하는 누군가는 또다른 누군가와 우산을 함께 쓸 기화가 있지는 않을까, 그것이 만남으로 이어지지는 않을까 하는 망상;;은 누구나 가지고 있지 않을까 싶은데, 저에게도 젊었을때.딱한번 그런 기회가 있었거덩요. 이후에 생각해보니 이러저러 정황상 우산씌워준 갸도 나랑 뭐좀 인연한번 만들어 볼까 하는 그런 생각으로 그랬지 않나 싶은데,, 아, 내가..쪼다지..고맙습니다꾸벅 인사하고...내갈길 갔었답니다....;지금같았으면 핸폰번호라도 따는건데..


2. 아, 그립다. 같은 우산밑에서 손잡고 설렜던 그 기분...


오늘 아줌마 넷이랑 수다를 떨었는데 결론은 섹스보다는 걍 스킨쉽(정체불명의단어지만 어쨌든. 그리고 그 중 허깅)이 더 좋다.라우..
비오는날 떨리는 마음, 그 설레임과 따뜻함이라니..아마 그녀에게는 그것이 섹스보다 더 행복한 기억이 아니었을까.. -- acrobat 2007-9-16 1:16 am

사실 그 기분은 기억하기가 어려워요. 왜냐면 설레어 이성을 상실한 나머지 아무 생각이 없기 때문이죠. 그저 떨림만이 기억에 남아요. :-)

고맙습니다 꾸벅 하고 나왔다고 하시니 나중에 제가 어처구니없게 인연을 차버린 경험 하나 말씀드리죠. -_- 그래서 아직도 그때 생각을 하면 묘한 아쉬움이 하하.


마지막으로 섹스는 별로 즐겁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냥 안아주는 것과 안아주다가 섹스하는 것이 있다면 결국 안아주다가 섹스하는 쪽이 더 좋을거 같아요. 이래저래 섹스라는 것은 약간 제의(혹은 이벤트? 마침표? 핵심? 지향점?)같은 면이 있는듯. 그녀에게 리뷰 참조. :-) -- 거북이 2007-9-16 12:50 pm

4 같이 보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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