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취배추

1 2007 08 02 목 : 비취배추[ | ]

아침에 조금 늦게일어났더니 일단 아침밥 시간이 끝났다. 내일은 7시 반쯤에 일어나서 밥을 챙겨먹어봐야겠다. 밥은 7시부터 준다. 꾸역꾸역 움직여서 고궁박물관에 가기로 했는데 이게 교통편이 별로 좋지가 않다. 버스를 두번 타야한다. 어찌어찌하여 한번 타고 용케 내렸다. 역시 배가 고프니 안되겠어서 문 연 적당한 가게를 들어갔다. 앙꼬 든 빵이랑, 계란후라이가 든 패스트리 비슷한 거랑 두유를 먹었다. 이렇게 먹어도 3천원 정도니, 대만은 먹는 인심이 후해서 다른 것들도 다 후하게 느껴진다. 가게에서 일하는 꼬마 아가씨, 아마도 주인 아줌마 딸인듯 싶은데 웃는게 참 이뻤다.

 

컨퍼런스장인 지엔탄 해외청년활동센터(劍潭海外青年活動中心)

다시 버스를 타고 올라갔다. 멋모르고 30NTS를 또 냈다. 아까도 냈는데. -_- 버스는 15NTS다. 왜 잘못알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고궁박물관은 꽤 가야 한다. 올라가면서 드는 생각이, 아 이 빌어먹을 창카이셱은 분명 대륙에서 밀린것이 짜증나서 소심하게도 크게 지은 것이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워낙에 유물이 많아서 크게 지은 것일 수도 있고, 또 우리의 국립중앙박물관도 꽤나 크니까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일단 들어갔다.

   
   

고궁박물관 입구

생각보다 입이 떡 벌어질만한 유물이 많은 것은 아닌데 가끔 황당한 것들이 있다. 예를들면 상아를 17겹으로 양파처럼 깎은 것이라거나, 육면체 블럭모양의 옥을 깎아서 그 안에 무릉도원 비슷한 것을 묘사했다거나 하는 것들이 그러하다. 왜 이런 짓들을 하고싶었을까. 어쨌거나 조각하는 사람들의 섬세함이라는 것은 정말 놀랄만하다. 미켈란젤로가 그랬다며. 나는 돌을 보면 그 안의 조각이 눈에 보이니까 조각 아닌 부분만 떼내면 된다고. 조각가들의 결과물을 보면 정말 머리로 이미지를 만들면서 깎아나가는 것 같다.

사실 조각보다 나에게 가장 인상적인 것은 바로 옹정제의 주비유지(雍正硃批諭旨)였다. 신하들의 보고서는 검은 활자로, 황제의 교지는 붉은 활자로 번갈아가면서 인쇄된, 빨간펜 선생님의 기록이 출간되어 있었다. 이걸 참고서로 보라면서 나눠주었을 옹정제가 느껴지는 듯 하다. 그가 신하들에게 이것을 준 것은 까불면 죽는다는 메시지였을 것이다. 그 옹정제라는 인간은 뭇 신하들에게 모범이 되기 위해 얼마나 초인적인 노력을 한 것인지. 난 이런 지도자를 꼭 만나보고 싶다.

   
清 : 象牙鏤雕提食盒

재미있는 것들도 꽤 있다. 보석으로 배추를 깎은 것이라거나, 고기처럼 만든 것이라거나. 이런건 보석의 특성을 보고 생각해낸 아이디어 같다. 도자기 종류는 확실히 단아함이라는 측면에서 우리의 그것보다 떨어진다. 우리네 선조들은 확실히 우아한 면을 가진 사람들이었던 것 같다. 또 특이한 것들이 있다면 얘네들 그릇이나 뭐 여러 가지 장식으로 괴수들이 꽤 등장한다는 거다. 괴수 아닌 그냥 동물도 많지만 괴수들이 꽤 많더라. 제국의 특징인가? 모르겠다. 배추보석은 여기 인기 아이템인듯 싶다.

 
清 : 翠玉白菜 플래쉬 감상

그 외에도 말이 그릇으로 뛰어들려는 모양의 손잡이가 특히 인상적이었다. 그러고보니 요전에 서울시립미술관에서 했던 중국국보전에서 본 뚱뚱한 새 모양의 술잔이 생각난다. 난 동물이 코믹하게 묘사된 생활용품들이 너무 좋다. 은근히 동물을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난 누군가가 동물을 소재로 한 유물들을 동물별로 모아서 도록같은 것을 내주면 좋겠다. 유물에 담긴 모양은 인간 사고의 원형들이므로 모아두는 것이 분명 필요하다. 동물은 게다가 재미있지 않은가. :-)

재미 하니까 뚱보 스님이 빙글빙글 웃고있던 연적 비슷한 도기도 생각난다. 중국 유물에 묘사된 사람 모양은 다들 볼살이 오른게 둥글둥글하다. 어쨌거나 명성에 비해 살짝 실망해서 나오다가 전시관 2가 있길래 그리 움직였다.

이 두번째 전시관에서는 무슨 설치영화(이게 말이 되나 싶기도 한데)에 관한 전시를 하고 있었는데 뭐 당신도 예상하는 것처럼 그렇고 그런 현대예술이다. 당연히 짜증난다. 예를들면 어두컴컴한 공간에서 빨간 빛으로 동물의 움직임을 쏜다거나 뭐 그런 잡스러운 것들이다. 돌다가 가이드 총각에게 물어봤다. 여기서 가이드하고 있는 너에게 묻고싶다. 여기있는 것들 중에서 재미있다고 느낀게 한개라도 있냐? 아니, 사실 무쟈게 지루하고 짜증나. 그렇지? 나도 현대예술가들은 죄다 거짓말쟁이라고 생각해. 하지만 그중 웃기는 것도 하나 있었다. 그것은 차이밍량의 작품(?)이었는데 그냥 빈 방에서 아주 재미없는 일상을 찍은 비디오가 돌아가고 옆에는 두루말이 휴지(전문용어로 구리넥스. -_-)와 휴지통이 있었다. 뭐여 이건 하고 나오면서 작품 제목을 보니 에로틱 스페이스. -_-+ 그럼 거기서 자위라도 하고 나오란 말여? 차이밍량 정도 되면 그 안에다 몰카를 숨겼을지도 모르는데? -.-

 

컴컴한 방에서 뭔가 빨간 빛으로 영화를 쏘는 것 -.-

 

차이밍량의 작품인 에로틱 스페이스

대략 나왔다. 어떻게 갈까 하다가 그나마 적당한 노선이 하나 있길래 그넘을 기다렸다. 그런데 이 넘이 안온다. 다른 버스 하나가 네대나 왔는데도 안온다. 격분하여 노선도를 자세히 살펴본 결과 그것이 한시간에 한대만 오는 녀석임을 알았다. 그런데 문제는 그 버스는 두시에 오기로 했는데 두시 이십분이 되어서야 겨우 왔다는거다. 한 삼십분은 기다렸다. 여튼 타서, 시립미술관까지 갔다. 시립미술관에 간 것은 뭐 대충 간거고, 근처에 음반점이 있으므로 사실은 그걸 노리고 간 거였다.

 

고궁박물관 앞에 있는 럭셔리 아파트. 얼마쯤일까.

시립미술관은 몇개의 상설전시가 있었다. 하나는 첸밍쯔(陳孟澤)라는 서양화가의 개인전. 하나는 여러 서예가들의 작품을 모은 것. 마음-공간 탐색전, 슬로바키아 동세대 그래픽 아트, 정물화 상설전시 베스트 이러니까 뭐 나름대로 다 있어보였다. 그런데 죄다 구렸다. -_-+ 그나마 슬로바키아쪽이 괜찮았고 나머지는 참으로 구렸다. 특히 마음-공간 탐색 이쪽은 내가 그 전시물을 다 부숴버리는 퍼포먼스를 하고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나를 자극하는 훌륭한(!) 전시였다.

대신 시립미술관은 다른 장점이 있었으니, 일단 전시장을 특화시켜서 여러 전시를 한다는 감각이 괜찮았고 또 하나는 아이들과 함께하겠다는 마인드가 그것이다. 초서, 행서, 예서 등 한자에는 여러가지 필법이 있는데 이것을 애들에게 체험시켜가며 교육시키는 프로그램이 하나 있었는데 여기에 애들이 꽤 많았고 다들 즐겁게 놀고 있었다. 이건 교육 프로그램 자체도 괜찮거니와 애들에게도 먹혔다는 점에서 더욱 점수를 줄 수 있었다.

   

아이들을 놀면서 공부하게 하는 필법 체험 학습장

   

Silva, Tamayo, Noland, Lam, Casamada, Rouault, Johns, Delvaux 등 우리에게 생소한 작가들도 미술가 시리즈로 내놓고 있음에 나는 좀 놀랐다. 대만이 우리보다 문화적으로 나으면 나았지 못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는 사례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이제 두번째 일정도 끝냈으니 마음 편하게 판가게를 찾기로 했다. 어제 근처에 있다하여 찾아보았던 음반점 징고(金革唱片)에서 나에게 LP전문점이 있다고 알려주어 찾아가보았다. 숙소와 그리 멀지 않은 곳이어서 일단 들렀다가 돌아갈 생각을 하고 찾아갔다. 내가 간 곳은 LP전문관인 金革音響.

   
   

감동스러운 인테리어와 분위기.

일단 입구부터 문이 LP와 턴테이블 암으로 디자인되어 나를 감동시켰다. 정면 유리에는 여러 턴테이블이 놓여있고 안에는 여러 LP들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다. 직원인지 친구인지 애매한 사람들이 열심히 노가리를 까고있으며 알바들이 판을 정리하다가 나에게 커피를 권하여 마셨다. 이야...죽이네 하면서 판 가격을 확인해본 결과...헉. 명동에서 장당 2천원에 파는 것들이 여기서는 죄다 만원대다. 장수에 비해 컬렉션은 문제가 좀 있었다. 일본에서 폭주했던 나에게 여기는 아무것도 볼 것이 없는 수준이었다. -_- 대신 정리는 참 깔끔하게 되어있고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참 좋더라. 그냥 나오기 뭐하여 조지 해리슨 한 장 사들고 나왔는데 이쁜 백에 담아주기까지 했다.

요즘 우리나라에도 새로 재발매되는 LP들이 장당 만오천원에서 3만원 사이에 팔리고 있는데 그게 여기서도 마찬가지였다. 사는 사람이 있나 싶은데 없진 않은가보다. 징고는 그런 LP를 정말 많이 다루고 있었다. 여기가 도매상이 아닌가 싶다. 여튼 이렇게 장사해서 먹고사는 사람이 있다는게 놀라웠다. 대만은 인구 2천만밖에 안되는데도 말이다. 역시 우리나라는 문화적인 면에서 좀 불구적인 면이 있다. 징고는 대만 전역에 12개의 지점을 둔 대형 체인점이다. 일본의 디스크 유니언과 비슷한 형태로 보인다.

계산해주던 아저씨가 중국말로 뭐라 하길래 한국사람이라 했더니, 이것저것 물어본다. 가게는 마음에 드냐고. 컬렉션은 일본보다 못하지만, 분위기는 일본 음반점보다 좋았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다음에 대만에 오면 또 들러달라는 말을 뒤로하고 나와서 숙소로 걸어갔다.

결론은 꼭 갈 필요가 있는 곳은 아니라는 말이다. 외국의 LP 문화를 느끼고 싶은 사람에게만 추천.

   
 

숙소까지 가는 길. 개판이다. 길의 주인이 사람이 아니라 차(대만은 특별히 오토바이 추가)라는 점에서 대만은 대한민국과 다르지 않다.

이제 힘이 다 떨어졌다. 어제부터 너무 걸었다. 여기서 지도상으로는 별로 숙소가 멀지 않아 좀 더 걷기로 했다. 어차피 전철타고 뭐해도 비슷하게 걷는다. 그래서 열심히 걸었는데, 여기 로터리가 복잡하여 길이 개판이다. 그냥 택시라도 탈걸 그랬다. 매연을 마시면서 또 걸었다, 젠장. 가다가 장관을 하나 볼 수 있었다. 오토바이 떼가 신호를 기다리면서 대기하고 있었는데 글쎄 이 넘들이 신호 바뀌자 동시에 좌회전을 시작한거다. 생각해봐라 삼거리의 두 곳에서 동시에 좌회전을 하면 둘이 섞일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이 오토바이 족들은 속도도 부다다 내면서도 서로 안부딛혀가며 잘도 피해간다. 갑자기 대만의 오토바이 사고율이 궁금해졌다.

열심히 숙소로 가서 쉬었다. 먹으러 가려해도 좀 움직일만큼은 쉬어줘야지. 한시간쯤 쉬니까 훨씬 낫다.

   

일단 먹은 닭꼬치

다시 스린 야시장으로 갔다. 숙소 근처라면 이제 무조건 스린에 가서 하나씩 돌아가며 먹기로 했다. 이번에는 가서 먼저 닭(인지 오리인지)꼬치를 먹었다. 40원(1200원)인데 맛은 뭐 쏘쏘. 그 다음은 만두. 만두는 8개에 50원(1500원). 맛은 낫배드. 배부를까봐 좀 남겼다. 여기까지는 괜찮아.

   

일단 먹은 만두

모험삼아 냉면을 시켰다. 냉면이라고 써있으니까 냉면을 생각했다. 그게 인지상정 아니겠는가. 그런데 물이 없다. 그리 시원하지도 않다. 미지근면이라고나. 그리고 맛이 이상하다. 취두부도 잘 먹었는데 이건 쏠리더라. 물 좀 마시면서 먹으려 했더니 마실걸 시키랜다. 이런 쓋. -_-+ 기왕 모험을 할 것이었으니 좀 더 모험을 하기로 했다. 식초매실즙을 시켰는데 이것도 마시자마자 토할거 같았다. T_T 그래도 반은 마셨다.

   

토할것 같았던 냉면 -_-+

아 힘들었어. 나오면서 뭔가 특이한 음료를 시켜볼까 하다가...그냥 망고주스를 시켰다. 50위엔. 역시 음료는 단게 좋아.

 

나를 위로해준 망고주스

내일부터는 세미나 연속이다. 나름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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