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리 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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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rry Lyndon (1975)[ | ]

 

  • 감독: Stanley Kubrick, 1928-1999, US/UK
  • 촬영: John Alcott
  • 음악: Leonard Rosenman (including Handel, Schubert, J.S. Bach, Mozart, Vivaldi...)
  • 주연: Ryan O'Neal, Marisa Berenson, Leonard Rossiter, Patrick Magee
  • 러닝타임: 183분

오찬익, 2001-06-26

영화를 보면서 스탠리 큐브릭은 정말이지 빈틈없이 완벽함을 추구하는구나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큐브릭 감독은 다양한 쟝르를 두루두루 다루었다. 전쟁영화, 쓰릴러, 드라마를 비롯해서 SF, 그리고 판타지를 거쳐 역사물에 이르기까지 창작의 욕구는 한 곳에 머무르는 법이 없다. 언젠가 이야기했듯이 난 자신이 머무른 곳에 안주하지 않고 더 나은 곳을 지향하거나 혹은 다른 가능성을 모색하는 예술가를 좋아하고 또 훌륭히 표현할 줄 아는 능력마저 갖추고 있다면 그를 존경하게 된다. 바로 큐브릭은 그런 인물이다. 내가 이제껏 보았던 그의 작품들, 아이즈와이드셧과 반밖에 못본 시계태엽오렌지 그리고 언젠가 다시 큰 화면으로 제대로 보리라 생각했던 샤이닝을 또 한번 뛰어넘는 그의 힘을 배리린든에서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순서는 바뀌었지만. 배리 린든은 역사극의 탈을 쓰고 있지만, 요약하자면 개인의 흥망성쇠를 다룬 작품이다. 다소 의외였던 건 작품을 거대한 구조에 속한 유기적인 관계들과 또 그들을 이어주는 보이지않는 상징의 역할을 자주 이용하곤 했던 큐브릭의 훌륭한 수법이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는 점일 것이다. 아이즈와이드셧에서 숨겨졌던 것들이 이 작품에서는 매우 노골적으로 펼쳐져 보여진다. 심지어는 관객의 이해를 돕기위해 친절하게도 제목과 나레이션을 끼워넣으면서 까지 말이다. 아마도 큐브릭의 새로운 모험일까? 굳이 큐브릭을 존경하는 입장에서 보자면. 뭐 아무래도 좋다. 사실, 나에겐 적어도 작품을 감상하는 동안 만큼은 그런 것들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수도 있구나라고 느껴 졌으니까. 큐브릭이 나에게 마법을 건 것일까? 앞서 봤던 작품들이 넘 훌륭했기 때문에 선입견에 빠져버려서? 암튼...

스토리를 딱 놓고 보면, 약간은 진부할 수도 있는 역사극의 전형인 셈이지만 큐브릭 특유의 유머는 전반부를 매우 유쾌한 것으로 후반부를 매우 비극적인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18세기의 유럽은 귀족들에겐 위선의 삶이 강요되던 시기였나보다. 겉으로 드러난 그들의 고상한 모습 뒤에는 욕망의 분출구를 찾기위한 애처로운 몸부림이 애써 감춰진다. 고발이 아닌 유머로 그 끝자락을 흔들어댄 것은 예술가로써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이 아니었을까. 즐겁게 즐겁게 전반부는 거의 두시간이 느껴지지 않을만큼 빨리 흘러간다. 그리고 갑자기 호흡이 길어지기 시작한다. 큐브릭도 고집이 센 감독들 중 하나라서 타인이 자신의 작품으로 들어오는 걸 결코 반기지 않는 작가라는 생각이 서시히 깨어지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아들을 잃고 깊은 슬픔에 잠겨있는 린든 여백작의 우아한 모습을 꼭 곁에서 지켜보는 것 같은, 그를 결코 동정하지 않음에도 불행한 그의 모습이 마치 나인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전반부의 흐름으로 끝나버렸다면 무대를 중세로 옮겨버린 '클럭워크 오렌지'였겠지만, 지루할 만큼 늘어진 호흡은 흘려버릴 수도 있는 작품의 아름다움을 천천히 음미할 수 있는 여유를 줬다는 생각이 든다.

2001스페이스오디세이를 제외한 모든 작품에서 4:3의 화면비율을 고집했던 큐브릭은 아마도 스펙타클한 작품을 선호하는 작가는 아니었던 것 같다. 전반부의 약간 초라한 전쟁씬에 비해 고저가 뚜렸한 옛날 건축물들과 주인공들의 우아한 움직임이 잘 어울렸던 후반부가 그래서 더더욱 기억에 남는지도 모르겠다. (예를들어 거실의 의자에 축늘어진 배리의 모습이 더더욱 초라하게 느껴지는 건 천정이 높기 때문?) 재능있는 젊은이가 덕이 부족했고 또 시대를 잘못 타고나 망하게 된다는 줄거리는 사실, 완전히 바뀌어버린 입장에서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두번의 결투씬으로 요약해버리면 그만이다. 나는 이 작품에서 인간의 본성을 상징적인 방법으로 까발리곤 했던 감독의 의도가 그다지 훌륭하게 표현되었다고 생각하지도 않을 뿐더러 과연 이 작품에서도 그런 태도를 견지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하기엔 플롯이 지나치게 직선적이었고 호흡은 지나치게 늘어졌다고 생각하니까.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정서적인 느낌과 감동으로 전이시키는데 탁월한 재능을 보였던 느와르 계열의 작품들은 꾸며진 화면을 선호할 수 밖에 없었겠지만, 큐브릭은 NASA에서 제작된 정밀한 렌즈를 이용해서 꾸밈없는 화면처리와 철저한 고증, 그리고 감탄할 만한 화면구도와 절제된 배우들의 연기만으로 가장 인상적이며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어 낸 것이다.

큐브릭의 작품들은 꽤 기발한 상상력으로 우리들을 즐겁게 하기도 하지만 아마도 어떤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의 작품들에는 모종의 권위의식이 서려있다. 그게 작품의 질을 높이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곤 하지만, 의식의 자연적인 흐름을 거스르는 측면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보여주기'에는 자연적인 방식을 선호했던 그 였지만. 배리 린든이 불행해지면 불행해 질수록 우리를 작품으로 끌어들이려 한 큐브릭의 의도는 나를 난처하게 만들어버렸다. 사악한 큐브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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